“엄마잖아”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2장 7-8절).
오늘 어머니 주일(날)을 맞이하기에 앞서 저는 지난 주 목요일
점심 때 부모님이 집에 내려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어머님이 아주 맛있다고 말씀하신 냉면을 한국 마켓 안에 있는 Food court에서 맛있게 식사하였습니다. 그 날 차 안에서 저는 어머님과 대화를 했을 때 어머님께서는 저에게 “엄마잖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어머님께서 그리 말씀하신 이유는 어머님의 저의 어머님으로서 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기에 ‘주기’(giving)를 기뻐하시되 그 날 점심 식사도 식사비를 내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 날 오후에 오늘 어머니 주일 설교를 생각하였을 때 제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엄마잖아”를 그대로 설교 제목으로 삼고 싶어졌습니다. 여기서 한국어 “엄마잖아”란 의미가 무엇입니까? 상황에 따라 크게 3가지 맥락으로 해석이 된다고 하는데 저는 그 중에 한 가지 의미만 나누고 싶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의 표현: 자녀가 미안해하거나 힘들어할 때, 엄마가
"괜찮아, (내가 네) 엄마잖아"라고 말하며 안심시키는 용도로 쓰입니다[의미: "엄마니까 당연히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어."
뉘앙스: 포용, 희생,
따뜻한 유대감](인터넷).
저는 “엄마잖아”를 생각하였을 때 구약 성경에서 “어머니”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어머니를 뜻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어는 '엠'(אֵם, 'Em)인데 어원적 의미는 '황소(알레프)'와 '물(멤)'의 조합으로 '강한 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가죽을 물에 끓여 접착제(아교)를 만들었는데, 이를 '강한 물'이라 불렀습니다. 즉, 어머니는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접착제' 같은 존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합니다(인터넷). 흥미로운 점은
“어머니”라는 히브리어 단어 “엠”이라는 글자가 유대교의 핵심 가치와 뿌리를 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1) “믿음 (Emunah, 에무나): 어머니의 돌봄처럼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뜻합니다. (2) 진리
(Emeth, 에메트): 변치 않는 사실을 의미하며 '엠'을 어원으로 공유합니다. (3) 아멘 (Amen): "진실로 그렇습니다"라는 뜻의 아멘 역시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이처럼 히브리어에서 '엄마'는 단순히 가족 관계를 넘어 가정을 결속시키는 힘이자, 신앙과 진리의 기초가 되는 존재로 존중받습니다(인터넷).
그러면 신약 성경에서 “어머니”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신약 성경(헬라어)에서 "어머니"를 뜻하는 단어는 '메테르(μήτηρ, mētēr)'인데
구약의 '엠'(어머니)이 가족과
민족의 결속이라는 '뿌리'의 의미가 강하다면, 신약에서의 어머니는 영적인 생명력과 양육, 그리고 믿음의 전수라는 측면에서 더 확장된 의미를
갖습니다(인터넷). 여기서 제가 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양육”입니다:
어머니는 조건 없는 돌봄의 모델로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모델이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7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내세울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사도 바울은 거친 선교
현장에서 성도들을 대할 때 자신을 "유모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했다고 표현했습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명령하거나 대접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그 권위를 내려놓고 어머니와 같은 '부드러움(gentleness)'으로 성도들을 대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유모'로 번역된 헬라어(트로포스)는 '직접 젖을 먹여 기르는 어머니'의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젖)을 자녀에게 나누어 주는 희생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이것은 남의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를 돌보듯, 성도들을 향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양육했음을 보여줍니다(인터넷).
저는 이 말씀을 이리 묵상할 때 육신의 어머님이 자녀를 양육하심에 있어서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 전서 2장 7-8절 말씀을 적용할 때 4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공지능을 통해 답변을 얻었습니다(인터넷):
(1) “권위보다 유순함(Gentleness)”이 먼저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명령하고 가르칠 정당한 '권위'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권위보다 '유순함'을 선택했습니다. 적용입니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나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힘이나 목소리로 제압하는
'권위주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대신 아이의
눈높이에서 부드럽게 다가가는 것이 자녀의 마음을 여는 진정한 양육의 시작임을 가르쳐 줍니다.
(2) '유모'처럼 생명을 나누는 헌신입니다.
양육은 지식이나 물질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부모의 시간,
감정, 에너지를 떼어 주는 '자기 희생'의 과정입니다. 자녀가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은 부모의 화려한 교육 환경보다, 부모가 직접 살과 피를 나누며 곁에 있어 주는
'존재의 나눔'임을 말해줍니다.
(3) '자기 자녀'로 여기는 지극한 사랑입니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이나 자랑거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겨주신
가장 소중한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며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다"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 양육의 핵심입니다.
(4) 복음과 함께 '목숨'까지
기꺼이 주는 사랑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육신의 어머니가 자녀에게 좋은 것(복음/교훈)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내어주는 사랑의 태도입니다.
억지로 하는 희생이 아니라 '기쁘게' 목숨까지
내어주는 그 사랑이 자녀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인터넷).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저는 어머님의 복음과 함께 목숨까지 기꺼이 주시는 사랑(살전2:8)을 묵상할 때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과 로마서
8장 32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 세 성경구절 중 요한복음 3장 16절은 어머니가 자녀를 “이처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주시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데살로니가전서 2장 8절은 어머니가 자녀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기쁜 마음으로 내어주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로마서 8장 32절은 어머님께서 가장 귀한
자신의 생명도 주셨다면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고 자녀를 위해 주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보여주는 이 땅의 가장 강력한 비유입니다. 자녀를 위해 목숨까지 주기를 기뻐하는 어머니의 마음(살전 2:8)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요 3:16, 롬 8:32)을 매일의 삶 속에서 체험하게 하는 '살아있는 성경 구절'과 같습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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