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become increasingly aware that we are living in a world
where even the most intimate relationships have become part of competition and
rivalry.”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아무리 제일 친한 관계라고 할찌라도 경쟁과 대립의 관계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을 더욱더 감지하게 됩니다.)
[헨리 나우웬, “Reaching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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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로운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외로움을 달래고자 우리는 여러
종류의 만남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도 추구하여
외로움을 달래보려고 하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의 외로움은 더욱더 우리를 홀로 있게 만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사람보다 컴퓨터나 다른 것들에 집착하여 외로움을 달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원인 중에 하나는 사람들과의 만남 가운데 진정한 영혼의 만족보다 경쟁과 대립의 관계로 인하여 상처와 실망을 경험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보이지 않는 경쟁심으로 인하여 만남 속에서 마음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보다 인간의 죄악된 쓴 뿌리에서 맺는 경쟁과 대립이라는 쓴 열매를 보면서 너무나 형식적이고 인위적인 관계에 역겨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자기 자신의 그 모습 그대로 상대방에게 보이지 못하게 하는 ‘경쟁과 대립’이라는 쓴 뿌리는 결국 우리의 욕심과 시기를 불태우는 가운데 서로를 망하게 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는 서로를 세워준다는 개념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우리 자신의 착각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더 외로움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경쟁과 대립의 관계 속에서 상처만 입는 자신의 모습에 실증이 나는 나머지 더욱더 우리는 자기 만의 세상을 찾아 나서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국은 사람이 싫어지는 현상 또는 사람을 기피하는 현상도 그저 이러한 경쟁과
대립의 관계의 산물이라 생각됩니다. 무서운 것은 이러한 산물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간의
관계 가운데서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도 시기와 질투, 욕심과 교만으로 인하여 주님 안에서의 교제한다는 형제, 자매 관계에서조차 우리는 경쟁과
대립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죄악된 쓴 뿌리를 보면서도 우리는
그 쓴 뿌리의 열매를 먹는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쓴 열매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달게 여겨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죄악을 먹고 마심에 익숙해져 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양심에 찔림과 꺼리낌도 이젠 익숙해져서인지 잘 포장하여 보암직도한 형제 교제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한 교회 안에서 목회자나 교역자로서 주님 안에서 동역자의 관계를 견고히 세워나아가기에 힘쓰기보다 보이지 않는 경쟁과 대립으로 인하여
성도님들의 눈을 속이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합리화시키면서 오히려 담임 목사가 부교역자의 경쟁을 ‘선의 경쟁’이라는 명칭아래 부채질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성도님들
또한 담임 목회자나 교역자들을 섬김에 있어서 서로 연합하기보다 경쟁하며 대립하는 가운데 교회의 화평을 깨트리는 경향이 많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자들끼리의 경쟁과 대립 또한 무시 못할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들어나게 보이는 경우도 많이 있겠지만 더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는 경쟁과 대립의 관계가 너무나 깊이 교회 안에 정착되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교회와 교회가 서로 경쟁하며 대립 관계를 갖고 있으며 나라가
나라가 경쟁하며 대립 관계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서로를 진심으로
받아주는 인간 관계가 가능한 것인가요? 다시 말하면, 과연 우리
안에서 경쟁과 대립이 없는 순수한 주님 안에서의 교제가 가능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요? 만일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 안에 외로움은 어떻게
만족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주신 이유 중 하나가 주님
안에서의 형제 관계 가운데 서로 사랑하면서 우리의 외로움을 서로 만족시켜 주는 가운데 더 나아가서 주님과 일대일 교제하는 고독의 동산으로 서로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닌가요? 과연 이러한 사랑의 섬김의 사역이 우리 공동체 가운데 일어나고
있습니까? 만일 이러한 사역이 일어나고 있다면 왜 우리는 군중 속에 더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까? 아무리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들과 교제한다고 이런 저렁 행사 및 친교 시간을 가지면서도 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그리도 무겁고 마음에는 낙심이 오는
것입니까? 과연 우리의 외로운 영혼이 만족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먼저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경쟁과 대립의
쓴 뿌리를 직시하고 하나님과 나 자신에게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그 모습 그 대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진정한 회개 가운데서 변질의 도로에서 변화의 길로 돌아서야 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진정한 교제를 추구하고 싶은 지식과 열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수평적인 형제 관계를 추구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의 복음으로 우리 마음의 벽들을 다 허물고 우리는 이제 진정한 주님 안에서의 형제 관계를 발전시켜 나아가는데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경쟁과 대립의 관계를 추구하지 마십시다. 더 이상 상처 입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더 이상 형식적이고 인위적인
형제 관계로 만족하면서 주저 앉지 마십시다. 경쟁과 대립의 벽을 예수 그리스도의 화평의
복음으로 허물고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면서 서로를 세워주는 자기 포기와 자기 희생이 따르는 형제 관계를 추구하십시다.
경쟁과 대립의 관계를 벗어버리고 주님 안에서 섬김으로 연합의 관계를 추구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07년 1월 17일
사랑하는 헨리 나우웬의 “Reaching Out”이라는 책을 다시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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