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는 기회의 장소입니다! (4)
[민수기 20장
2-13절 말씀]
여러분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는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와 같은 축복을 받아 누리고 계십니까?
제가2020년2월 21일에 “이것도 저것도 없는 광야의 축복”이란 제목아래 쓴 짧은 말씀 묵상 글입니다: 원래 광야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고(민20:5), 오직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하늘 양식”“만나”(시78:24; 참고: 민21:5)와 반석에서 내시는 “물”이 있을 뿐입니다(민20:10-11; 참고: 시105:41). 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게 하신 것일까요? (민20:5) 혹시 이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하게 만드시려고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합3:17-19).
혹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시려고 그러시는 것이 아닐까요? (신 8: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1-33).
저는 이 짧은 말씀 묵상 글을 다시금 읽고 묵상하면서 이 고난 주간 수요
예배 때 ‘광야는 고난의
축복을 깨닫게 해주는 기회의 장소입니다!’라는 주제 아래 그 고난의 축복이 무엇인지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광야에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축복을 받습니다.
시편
119편 71절 말씀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현대인의 성경) “고난당한 것이 나에게는 축복입니다. 내가 이 고난 때문에 주의 법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된다면 그것은 유익한 고난이지만, 고난을 통하여 아무 배움도 없다면 그것은 무익한 고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첫째 아기의 죽음이란 고난을 통하여 시편
63편 3절 말씀을 배우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음으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 말씀은 다윗은 그의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도망 다닐 때
유다 광야에서 주님의 신실한 사랑을 경험하므로 그 고난 중에서도 유다 광야를 성소로 삼고(2절)
주님을 찬양하였다(3절)는 말씀인데 저도 주님의
놀랍고 굉장한 구원의 사랑을 경험하므로 아기가 죽은 후 뼛가루를 호수에 뿌리고 돌아오면서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저로 하여금 ‘나의 구원자의 사랑’을 찬양케 하셨습니다. 또한 저는 개인적으로 셋째 자녀가 고난을 당하고 있었을 때
하루는 그 자녀가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새벽에 그녀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 간구하는데 베드로가 물에 빠지고 있었을 때 두려움 속에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Lord, save me!)라고 소리 질렀던 마태복음
14장 30절 말씀이 생각나서 ‘주님,
제 딸을 살려주세요!’라고 간구한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자녀의 고난을 통해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after you have
suffered a little while)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restore you) 굳건하게 하시며(make you strong) 강하게 하시며(firm) 터를 견고하게(steadfast) 하시리라.”
둘째로, 우리는 광야에서 고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최고의 가치를 깊이 깨닫게 되는 축복을 누림니다.
시편
119편 72절 말씀입니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현대인의 성경) “주의 입에서 나오는 법이 나에게는 수천 장의 금은보화보다 더 귀합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40년 고난을 통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신
8:3). 이와 같이 우리 또한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주님이 걸어가신 좁은 길, 즉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많고 다양한 고난들을 접하면서 결국 그 고난
중에 오직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그 말씀의 가치가 우리 생명보다 귀한 것임을
고백하게 됨. 이렇게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의 재물보다 이러한 말씀의 소중함과 말씀의 최고의 가치를
깨닫게 해줍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광야에서 고난을 통하여 주님께서 “고난의 골짜기”를 “희망의 문”이 되게하시는 축복을 받습니다.
호세아 2장 14-15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녀를 꾀어내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부드러운 말로 잘 타이르고 거기서 그녀에게 포도원을 되돌려주고 고난의
골짜기를 희망의 문이 되게 하겠다. 저가 어렸을 때와 같이, 이집트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거기서 노래할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는 “영적 간음”이었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버리고 풍요의 신인 바알을 쫓은 우상숭배였음(인터넷). 그들의 배은망덕한 죄는 모든 풍요(곡식, 포도주, 기름)를 하나님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알이 준 것이라 믿고 바알에게 바쳤습니다. 이것은 종교적 혼합주의였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며 속으로는 세상의 힘과 쾌락을
탐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도덕적
타락의 죄도 범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니 사회적으로 사기, 살인, 착취가 가득했습니다(인터넷).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지하던 풍요를 거두시고(가뭄, 기근),
광야 같은 고난 속으로 몰아넣으셨습니다. 이는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의지했던 것들이 헛수고였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사랑의 매'였습니다. 결국 호세아
당시의 북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는 끝까지 돌이키지 않아 결국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하지만
이 고난은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호 6:1)는 영적 각성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즉, 국가적 파멸이라는
극심한 고난을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죄를 직면하고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고난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없는 삶의 비참함을 깨닫고,
다시 '첫사랑'의 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고난을 통해서라도 나의 죄를 깨닫게 되고 그 범죄의
원인이 교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수만 있다면 그 고난은 매우 값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없이도 우리 힘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고난이 우리에게 값진 선물이 되는 이유는 교만의 껍질을 깨뜨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평안할 때 스스로를 돌아보기 어렵습니다.
고난이라는 강한 충격이 올 때 비로소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영역이 얼마나 많은지를 처절하게 깨닫습니다. 고난을 통해 내 안의 교만을 직면하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구나"를 인정하는 순간,
고난은 더 이상 저주가 아닌 ‘변장된 축복’이 됩니다. 호세아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의 징계는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가서 부드러운 말씀으로 잘 타이르고 고난의 골짜기를 희망의 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우리를 광야로 초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의지할 것들을 끊어내시고, 오직
주님과 단둘이 마주 앉는 시간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몽둥이로 때려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며 사랑의
음성으로 설득하시는 인격적인 돌봄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고통의 한복판(아골 골짜기)에서 "이제 끝이다"라고 절망할 때,
주님은 그곳을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바꾸어 버리십니다. 주님의 사랑의 징계는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가서 부드러운
말씀으로 잘 타이르고 고난의 골짜기를 희망의 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이 고난 주간에 우리는 ‘광야는 고난의 축복을 깨닫게 해주는 기회의 장소입니다!’라는 주제 아래 고난의 축복이 무엇인지 3가지로 묵상했습니다: (1) 우리는 광야에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축복을 받습니다(시119:71). (2) 우리는 광야에서 고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최고의 가치를 깊이 깨닫게 되는 축복을 누림니다(시 119:72). (3) 우리는 광야에서 고난을 통하여 주님께서 “고난의 골짜기”를
“희망의 문”이 되게하시는 축복을 받습니다(호2:14-15,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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