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문제로 마음이 흔들려서
미래를 두려워하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누가복음 12:32).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32절 말씀을 먼저 헬라어 성경으로 읽을 때에 “무서워 말라”[“Μὴ φοβοῦ”(메 포부)]라고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의 궁극적인 의미는 “두려워하는 것을 이젠 그만해라”
혹은 “계속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인터넷).
(a)
이 “무서워 말라”[“Μὴ φοβοῦ”(메 포부)](32절)는 말씀이 우리가 이미 묵상한 4절과 7절에도 나옵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μὴ φοβηθῆτε”(메 포베데테)](4절),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μὴ φοβεῖσθε”(메 포베이스테)]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7절).
(i)
4절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박해와 죽음의 위협 앞에서 “겁내지 말라”,
“두려움에 압도당하지 마라”는 의미이고,
7절에서”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고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알기에,
일상 속에서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두려워하거나 불안에 빠지지 말라는 의미이고,
오늘 본문
32절에서 “무서워 말라”는 말씀은 까마귀와 백합화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제자들의 필요를 채우실 것이니,
경제적 결핍 때문에 무서워하며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말라[“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29절)]는 의미입니다(인터넷).
·
여기서 저는 예수님의 “근심하지도 말라”(29절)는 말씀과 “무서워 말라”(32절)는 말씀의 연관성이 무엇인가 궁금해졌습니다. 그 연관성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의식주 문제로 마음이 흔들리면(29절), 결국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상태(32절)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참고: 인터넷).
(b)
만일 우리가 의식주 문제로 마음이 흔들려서(29절), 결국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상태(32절)에 빠지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i)
의식주에 대한 근심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이어질 때,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에서 그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두 가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십니다(인터넷):
1.
나 자신의 근심의 상태를 인정하고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29-30절). ‘근심’에서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30절).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해야 합니다(시선의 전환).
29절의 '근심(메테오리조)'은 '마음이 허공에 떠서 갈팡질팡하는 상태'입니다.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마음을 띄워 올리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방법: "내가 나를 먹여 살린다"는 생각에서
"아버지가 내 필요를 이미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불안이 엄습할 때 내 필요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안은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고립감에서 옵니다.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을
'창조주'를 넘어
'너희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공중의 까마귀와 들의 백합화를 보며(24,
27절), 그들을 먹이시는 분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상기하며 관계의 확신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까마귀와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시며,
심지도 거두지 않는 미물조차 먹이시는 하나님이 그보다 훨씬 귀한 자녀인 당신을 반드시 돌보실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십니다.
염려는 키를 한 자도 키울 수 없음을 지적하며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할 것을 권하십니다.
2.
'더 큰 보장'을 바라보며 ‘먼저’
해야 할 우선순위를 재설정해야 합니다(31-32절).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목적의전환).
작은 것(의식주)에 매몰되면 마음이 좁아지지만,
큰 것(하나님 나라)을 바라보면 여유가 생깁니다.
예수님은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불안은
'나'에게 집중할 때 커지지만,
사명에 집중할 때 작아집니다.
방법: '생존' 자체가 목적이 되면 평생 두렵지만,
'하나님의 다스림(나라)'을 목적으로 삼으면 생존은 하나님이 덤으로 주시는
'부수적인 것'이 됩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고 있는가?"에 집중할 때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사라집니다.
우리가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통치(평강, 정의, 사랑)가 이루어지기를 먼저 구할 때,
주님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우리가 구할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이 채워주실
'결과'임을 믿고 삶의 목적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2)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32절 말씀을 묵상할 때에 왜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가리켜 “적은 무리여”[“작은 양떼들아”(현대인의 성경)](눅12:32)라고 말씀하셨는지 궁금해졌습니다.
(a)
여기서 “적은 무리여”란 말씀은 헬라어로 “μικρὸν ποίμνιον”(미크론 포이므니온)인데 “μικρὸν”(미크론)은 '작은', '적은'을 뜻합니다.
이는 단순히 숫자가 적다는 의미를 넘어,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잘것없고 무력하며 연약한 상태를 암시합니다. 그리고 “ποίμνιον”(포이므니온)
'양 떼'를 뜻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 자체가 이미
'작은 양 떼'라는 의미를 담은 지소사(diminutive)
형태인데, 그 앞에
'미크론(작은)'을 한 번 더 붙여서 극도의 연약함과 소중함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습니다(인터넷).
(i)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리새인이나 로마 권력에 비해 사회적·경제적으로 힘이 없는 소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호칭을 통해 제자들이 세상에서 느끼는 위축감과 소외감을 정확히 알아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 눈에 작아 보이지?
나도 안다"는 공감의 표현입니다(인터넷).
1.
목자의 절대적 보호
(소속감 부여)
'양 떼'라는 표현은 반드시
'목자'를 전제로 합니다.
양은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전혀 없는 짐승입니다.
따라서
'적은 무리'라는 말은
"너희는 작고 약하지만,
내가 너희의 목자이기에 안전하다"는 강력한 보호의 약속을 내포합니다.
2.
반전의 정체성
(상속자로서의 선포)
이 구절의 놀라운 점은
'작은 양 떼'라고 부르신 직후에
'하나님 나라'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
큰 무리(강한 자)가 나라를 차지함.
하늘의 기준:
작고 약한 양 떼(신뢰하는 자)가 나라를 상속받음.
예수님은 제자들이 비록 현실은 연약한 양 떼일지라도,
신분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임을 선포하시며 두려움을 깨뜨리십니다.
3.
결론적 메시지
"미크론 포이므니온"(“적은 무리여”)은 제자들에게
"너희의 작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작음이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나라를 받는 데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위로를 줍니다.
결국 이 호칭은 우리에게
"내가 작을수록 목자이신 하나님의 크심이 더 드러난다"는 역설적인 평안을 선물합니다(인터넷).
·
"내가 작아질수록 하나님의 크심이 드러난다"는 고백은 기독교 신앙에서
'겸손'과 '하나님의 주권'
사이의 역설적인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를 통해 그 의미를 세 가지 핵심 원리로 풀이해 볼 수 있습니다(인터넷):
1.
의존의 공간 확보:
내가 스스로를
'큰 존재'로 여기며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할 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양처럼
'작고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내 삶에 개입될 공간이 생깁니다.
2.
능력의 출처 명확화:
작은 양이 험한 골짜기를 통과하거나 푸른 초장에 도착했을 때,
양이 작을수록 그 결과는 양의 능력이 아닌
'목자의 유능함'
덕분임이 분명해집니다.
즉,
나의 약함은 하나님의 강함과 지혜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배경(Backdrop)이 됩니다.
3.
영광의 주인공 전환:
세례 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했던 것처럼,
나의 자아(자존심, 계획, 공로)가 작아질 때 사람들의 시선은 나를 넘어 내 뒤에 계신 하나님께 향하게 됩니다.
나의 작음이 하나님을 비추는 투명한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문장은
"내 힘을 뺄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에서 더 크게 일하신다"는 믿음의 원리를 강조하는 것입니다(인터넷).
(3)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32절 말씀을 묵상할 때에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32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a)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는 것을
"기뻐하신다”[“εὐδόκησεν”(유도케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i)
여기서 “기뻐하신다”는 헬라어 “εὐδόκησεν”(유도케센)의 주요 의미와 특징입니다:
1.
자발적이고 기꺼운 즐거움:
이 단어는
'좋게 생각하다',
'기뻐하다', '만족스러워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못해 나라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최고의 즐거움을 가지고 이 일을 행하십니다.
2.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문법적으로 이는
'부정과거' 시제로 쓰여,
하나님이 이미 영원 전부터 우리에게 그 나라를 주시기로 확정하고 기뻐하셨음을 나타냅니다.
3.
관계적 친밀함:
이 단어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εὐδόκησα)자라"는 선포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즉,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보며 느끼셨던 그 동일한 무한한 기쁨을,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느끼신다는 놀라운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 주는 위로와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적은 무리'라고 부르시며 세상에서 위축되지 말라고 격려하십니다.
비록 우리는 작고 연약해 보일지라도,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분의 나라를 주시는 것을 진심으로 행복해하신다는 사실이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내쫓는 근거가 됩니다(인터넷).
(ii)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신다'는 것은 단순히 죽어서 가는 장소를 약속하시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적 맥락에서 이 선물은 크게 세 가지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인터넷):
1.
통치권의 회복
(Relationship)
성경에서 “나라”[“βασιλείαν”(바실레이아)]는 영토보다
'통치'나 '다스림'의 의미가 강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죄나 세상의 가치관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다스림 아래 보호받으며 살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됨을 의미합니다.
2.
현재적 누림
(Present Reality)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미래의 일만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희락과 정의를 맛보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맡길 때 경험하는 마음의 천국이 바로 그분이 주시는 나라의 시작입니다.
3.
상속자로서의 권위
(Status)
하나님은 우리를 종이 아니라
'자녀'이자 '상속자'로 대우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32절에서 '나라를 주신다'는 표현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업과 모든 권한을 물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세상을 치유하고 다스리는 영적인 권위와 사명을 부여하셨음을 뜻합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 나라를 주시는 것은 우리를 당신의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초청하여,
그분의 무한한 자원과 통치 아래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인터넷).
·
“하나님이 주시는 그 나라의 권세를 실제로
'내 것'으로 받아 누리는 방법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관계의 전환'에 있습니다.
다음 세 가지 단계를 통해 일상에서 그 자유를 경험해 보세요.
1.
'신분'을 먼저 확정하세요
(Be: 존재)
가장 먼저 할 일은 내가 하나님의
'가장 가까운 가족(자녀)'이라는 사실을 감정이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녀의 권세: 자녀는 아버지의 집에 들어갈 때 허락을 구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부탁'이 아닌
'대화'로 바꾸세요.
"하나님, 저는 당신의 자녀이니 이 상황에 개입해 주세요"라고 선포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소속감: 세상의 성과나 평가로 내 가치를 매기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가질 때 세상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2.
'주권'을 이양하세요
(Surrender: 통치)
그분의 무한한 자원은 그분이
'왕'이 되실 때 공급됩니다.
염려를 맡기기: 염려는 내가 왕 노릇 하려 할 때 생깁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문제의 핸들을 하나님께 넘겨드리세요.
작은 순종: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정직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작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력이 내 삶에 실제로 흐르게 됩니다.
3.
'자원'을 끌어 쓰세요
(Access: 누림)
하나님의 자원은 고갈되지 않습니다.
이를 누리는 도구는
'믿음'과 '기다림'입니다.
말씀을 약속으로 붙잡기:
성경에 기록된 약속들을 나에게 주시는 개인적인 약속(Rhema)으로 믿고 선포하세요.
감사로 선점하기: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이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해보세요.
감사는 하나님 나라의 자원을 이 땅으로 끌어오는 가장 강력한 통로입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 나라는 '내가 애써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짓누르는 가장 큰 걱정거리를 하나님 나라의 통치 아래 맡겨보는 연습부터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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