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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죽으심(예수님이 죽으신 날은 "Good Friday"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날을 한국어로는 "성금요일"이라고 말하지만 영어로는 "Good Friday"라고 말합니다. https://youtu.be/jlNh0tMWhjY?si=vjqblV8mAK3rdm2F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신앙적인 가면을 벗어버리는 투명성이 있는 정직한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신앙적인 가면을 벗어버리는 투명성이 있는 정직한 신앙입니다!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외식을 주의하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누가복음 12:1-3).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3 말씀을 묵상할 헬라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주의하라 단어 “Προσέχετε”(프로세케테) 먼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무리 수만 명이 상황에서 먼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외식을 주의하라”(1)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a)    헬라어 단어는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주의를 기울이는 초점을 둡니다.  “주의를 기울이다, “경계하다, “헌신하다, 또는 “유의하다”로 번역될 있지만, 언제나 단순한 인지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집중된 반응을 요구합니다.   동사는 마음(진리를 이해함), 가슴(진리를 소중히 여김), 그리고 의지(진리에 따라 행동함) 모두 호소합니다(인터넷).

 

(i)                      예수님께서는 누룩—부패한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에 대한 경고에서 헬라어 단어 “προσέχω”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절외에도 반복적으로 사용하셨습다(인터넷):

 

·       ( 16:6) “삼가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       (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       (16:11-12) “어찌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을 삼가라 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            말씀들을 종합해서 묵상할 건전한 교리는 단지 진리를 소유하는 것만으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거짓이 스며들지 않도록 끊임없이 깨어 있음으로 유지되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인터넷).

 

n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주의하라”(딤전 1:4) 권면하고, 디도에게는 “유대인의 신화와 진리를 배척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피하라”( 1:14) 말씀하했습니다.  명령은 선제적입니다”: 오류는 뿌리내리기 전에 식별되고 저항되어야 합니다(인터넷).

 

(b)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외식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주의하라 헬라어 단어 “Προσέχετε”(프로세케테) 마음을 쏟아 경계하다”, 내면으로 스며드는 위선의 전염성을 파수꾼처럼 감시하라는 뜻입니다(인터넷).

 

(i)                      어떻게 우리는 내면으로 스며드는 위선의 전염성을 파수꾼처럼 감시할 있을까요?  , 어떻게 우리는 영적 파수꾼이 있을까요?

 

1.       '하나님의 시선' 앞에 머물기 (Coram Deo)

 

누가복음 12장 1절 바로 뒤인 2절에서 예수님은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선은 '사람' 의식할 생깁니다.

 

실천: 어떤 선행이나 사역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이 들면, 즉시 "하나님은 지금 마음의 중심을 보고 계신다" 사실을 상기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2.       '동기' 수시로 질문하기

 

바리새인의 누룩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동기'에서 시작됩니다.  파수꾼은 성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검문하듯, 마음의 동기를 검문해야 합니다.

 

자가 진단: "내가 지금 말을 하는 이유가 나를 높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진심으로 상대와 공동체를 위한 것인가?"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물어보세요.

 

3.       '' '' 간격을 인정하기

 

위선은 내가 도달하지 못한 영적 수준을 마치 도달한 것처럼 포장할 발생합니다.

 

실천: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하나님과 신뢰할 만한 공동체 앞에서 정직하게 고백하는 '영적 정직성' 유지하세요.  "나는 아직 부족한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고백이 위선의 누룩을 막는 가장 강력한 방부제입니다.

 

4.       '은밀한 시간' 소중히 여기기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의 모습이 진짜 나의 영성입니다.

 

방법: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도나 성경 읽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나만 아는 '골방의 시간' 늘려가세요.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와의 교제가 깊어질수록 겉치레에 대한 욕구는 줄어듭니다.

 

5.       공동체의 '거울' 활용하기

 

파수꾼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깨워줄 동료가 필요합니다.

 

적용: 나의 위선적인 태도나 교만함을 가감 없이 지적해 있는 영적 멘토나 공동체 형제들과 소통하세요.  타인의 권고를 겸손하게 듣는 태도가 위선의 전염을 막아줍니다.

 

결국 위선을 이기는 힘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실상을 그대로 대면하는 용기"에서 나옵니다 (인터넷).

 

·       저는 예수님의 주의하라”(12:1) 말씀을 묵상할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개들을 주의하라”(3:2) 말씀을 생각났습니다.  여기서 개들 유대인들, 특히 유대주의자들(Judaizers) 말합니다.

 

-            여기서 ‘유대주의자들’이란 누구입니까?  유대주의자들은 초기에 복음을 맹공격을 퍼부은 단체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들은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이 구약의 어떤 의식(특히 할례의식)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과 그들의 거짓된 복음을 이단으로 말하고있으며 심지어 저주까지 했습니다(갈라디아서).  그런데 문제는 유대주의자들은 교회 안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진짜 신자로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n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교회에서 그랬습니다(2:12).  그러나 정작 그들은 교회에서 복음의 명료성을 훼손하고, 복음을 심각하게 더럽혔으며 또한 이방 신자들을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혼란에 원인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바울의 논리는 누군가가 (1) 먼저 그리스도를 믿고, (2) 그런 다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고, (3) 다음에 즉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준비를 한다고 말한 반면에 유대주의자들은 누군가가 (1) 그리스도를 믿고, (2) 최선을 다해 율법을 지키고, (3) 그리고는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말한 것입니다(그래샴 메이첸).  

 

#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반면에 유대주의 자들은 인간이 노력하여 율법을지켜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전파하였던 참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지만(은혜), 유대주의자들이 주장한 거짓된 복음은 죄인인 사람들이 행하는 일에 초점을 맞춥니다(공로).  마디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유대주의자들은 인간의 행함으로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인간의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거짓가르치는 유대주의자들을 가리켜 “개들”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들이 물질을 탐하여 스승으로 자처하고 돌아 다니는 까닭이었습니다(3:19).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거짓된 복음(가르침) 전하는 거짓 스승들인 유대주의자들이 위험하기에 그들을 주의(조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            예수님이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절에서 경계하신 바리새인의 누룩(외식)’ 사도 바울의 시대에는 '할례와 율법 준수를 강요하는 유대주의'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인터넷):

 

n  본질적 공통점: 부류 모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중심"보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종교적 행위" 앞세웠습니다.

 

n  바울의 결론 ( 3:3): 진정한 할례는 몸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성도) 진짜 할례파라고 선언합니다.

 

-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3:2) 강하게 경고했을까요?

 

n  이유는 유대주의자들의 외식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결함에 그치지 않고,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이라는 복음의 기초를 흔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가복음 12 1절의 예수님처럼 "조심하라(삼가라)" 말을 번이나 반복하여 강력하게 권면한 것입니다(인터넷).

 

(2)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3 말씀을 묵상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외식을 주의하라”(1) 하신 말씀에서 누룩 외식이란 단어의 연관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a)    먼저 누룩이란 헬라어 단어 “ζύμης”(쥐메) 성경에서 주로 '보이지 않게 퍼져서 전체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영향력' 상징합니다(인터넷):

 

1.       사전적 의미

 

원뜻: 발효제, 이스트(yeast). 반죽을 부풀게 하는 물질입니다.

 

특징: 아주 적은 양으로도 반죽 전체의 성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침투력' '확산성' 특징입니다.

 

2.       부정적 의미: "부패와 위선" ( 12:1)

 

성경에서 누룩은 대부분 죄나 부패, 잘못된 교훈을 상징할 쓰입니다.

 

외식(위선):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위선을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12:1).  겉은 경건해 보이나 속은 부패하여 남들까지 전염시키는 종교적 허위를 경계하신 것입니다.

 

거짓 교리: 사천 명을 먹이신 ,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16:6, 1112),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8:15) 경고하셨습니다.  분별력 없는 마음이 이를 받아들일 , 종교적 율법주의와 정치적 기회주의는 모두 빠르게 퍼질 있습니다.

 

도덕적 관용: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음행을 용인한 것을 책망하며 “적은 누룩이 덩어리를 부풀게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5:6)라고 말했습니다.

 

의식적 자기 의존: “적은 누룩이 덩어리를 부풀게 한다”( 5:9) 바울은 율법주의적인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경고하며, 행위에 근거한 메시지가 어떻게 은혜를 무너뜨리는지를 드러냅니다.

 

침투성: 죄는 처음에는 작아 보이지만, 방치하면 순식간에 영혼 전체와 공동체를 오염시킵니다.

 

3.       긍정적 의미: "천국 복음의 확장"

 

드물게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입니다.

 

마태복음 13 33: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누룩과 같으니라."

 

의미: 복음이 개인과 세상에 들어갔을 , 보이지 않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확장시키는 생명력 있는 영향력을 뜻합니다(인터넷).

 

(b)    그러면 외식이란 헬라어 단어 πόκρισις”(휘포크리시스) 의미는 무엇일까요?

 

(i)                      헬라어 단어는 본래 성경 용어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 연극 무대에서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단어의 유래와 의미를 알면 예수님이 그토록 죄를 경계하셨는지 명확해집니다(인터넷):

 

1.       단어의 유래: "가면을 배우"

 

어원: '아래에서' 뜻하는 '휘포(πό)' '대답하다/판단하다' 뜻하는 '크리노(κρίνω)' 합성어입니다.

 

배경: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가 커다란 가면을 쓰고 '가면 아래에서' 대사를 읊는 행위를 뜻했습니다.  , 실제의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인물인 연기하는 것이 단어의 본뜻입니다.

 

2.       성경적 의미: "신앙의 연기"

 

예수님은 단어를 종교적 맥락으로 가져오셔서,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이 아닌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종교적 퍼포먼스를 비판하셨습니다.

 

이중성: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속은 부패한 상태, '가면' '실제 얼굴' 다른 상태를 말합니다.

 

관객 중심의 신앙: 하나님이 관객이 아니라 '사람들' 관객으로 삼아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는 태도입니다.

 

3.       누룩”(ζύμη)과의 상관관계

 

예수님이 위선을 누룩 비유하신 이유는 전염성 때문입니다.

 

누룩이 반죽 속에 숨어서 보이지 않게 퍼지듯, “휘포크리시스”(위선) 처음에는 아주 작은 '체면'이나 '자랑'에서 시작되지만, 결국은 영혼 전체를 좀먹고 공동체 전체를 가식적인 분위기로 몰아넣습니다.

 

4.       사도 바울의 서신과의 연결 ( 2:13)

 

사도 바울도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안디옥에서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사하다가 유대주의자들을 두려워하여 피했을 , 바울은 이를 '외식(휘포크리시스)'이라고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의미: 복음의 진리(은혜)보다 사람의 눈치(율법적 체면) 살피는 행위가 바로 '가면을 쓰는 행위'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휘포크리시스'(외식)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종교적인 가면' 쓰고 사는 모든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인터넷).

 

·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 가장 내려놓기 힘든 '신앙적인 가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공지능은 가지로 요약을 하였습니다(인터넷):

 

1.       "괜찮은 " 하는 가면 (영적 허세)

 

내면은 메말라 있고 죄와 싸우느라 처절한데, 교회나 공동체 안에서는 마치 아무 문제 없는 신실한 신앙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실체: 슬픔이나 의심, 연약함을 드러내면 믿음이 없다고 평가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2.       " 많이 아는 " 하는 가면 (지적 교만)

 

성경 지식이나 신학적 용어는 유창하게 사용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고민이나 실천이 없는 상태입니다.

 

실체: 머리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나, 가슴과 손발은 자기 유익을 따르는 이중성입니다.

 

3.       "하나님을 위하는 " 하는 가면 (공로주의)

 

겉으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수고와 헌신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고 인정받지 못하면 서운해하는 마음입니다.

 

실체: 영광은 하나님께 돌린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영광의 일부를 내가 취하려는 욕심입니다.

 

예수님이 '휘포크리시스(외식)' 누룩처럼 무섭다고 하신 이유는, 이것이 처음에는 '예의' '경건' 모양으로 시작되어 결국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완전히 끊어놓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마음 한구석에 "사람들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드러나 있는" 모습이 있으신가요?  그것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이 가면을 벗는 시작입니다(인터넷).

 

-            어쩌면 가정 벗기 힘들게 느껴지는 가면은 가식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식(假飾)'이라는 한자어가 헬라어 '휘포크리시스(πό크리시스)' 의미를 가장 정확하고 날카롭게 꿰뚫는 단어입니다.

 

(): 거짓 / 빌릴

(): 꾸밀

 

, '진짜 자기 모습이 아닌 거짓된 것을 빌려와서 겉을 예쁘게 꾸미는 ' 가식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식' 위험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누룩같은 가식 ( 12:1)

 

가식은 처음에는 아주 작게 시작됩니다.  조금 경건해 보이고 싶어서’, ‘남들에게 실망을 주기 싫어서살짝 꾸미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것을 누룩이라 부르셨습니다.   허용하면 영혼 전체를 '연기하는 연기자'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2.       개들같은 가식 ( 3:2)

 

사도 바울이 경계한 유대주의자들의 가식은 '형식' 있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과 먼데, 몸에 할례를 행하고 율법의 조항들을 지키는 '모양' 갖춘 것입니다.  바울은 알맹이 없는 그들의 종교적 가식을 향해 개들을 삼가라 아주 거친 표현을 썼습니다.

 

3.       가식의 결말: 소외와 고립

 

가식을 떨면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을지 모르지만, 가지 치명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하나님과의 단절: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중심' 보시기에, 가식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자기 소외: 진짜 모습과 꾸며진 모습 사이의 간격이 커질수록, 영혼은 공허해지고 지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가식을 벗는 유일한 방법은 '정직한 노출'입니다.  바울처럼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라고 고백하거나, 시편 기자들처럼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하나님 앞에 가감 없이 쏟아내는 것이 가식이라는 누룩을 제거하는 길입니다”(인터넷).

 

(3)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3 말씀을 묵상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2)라고 말씀하신 내용의 의미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a)    저는 2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때에 먼저 감추인 이란 헬라어 단어 “συγκεκαλυμμένον”(슁게칼뤼메논) 숨긴 이란 헬라어 단어 “κρυπτν”(크뤼프톤)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인터넷):

 

(i)                      감추인 ”[“συγκεκαλυμμένον”(슁게칼뤼메논)]:

 

단어는 예수님께서 앞절(1)에서 경고하신 '외식(가식)' 실체를 폭로하는 핵심 단어입니다(인터넷):

 

1.       단어의 어원과 의미

 

어원: '~ 함께' 뜻하는 '(σύν)' '덮다, 감추다' 뜻하는 '칼뤼프토(καλύπτω)' 합성어입니다.

 

: '완전히 덮어씌워진', '철저히 은폐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뉘앙스: 단순히 살짝 가린 것이 아니라, 겹겹이 포장하거나 베일로 씌워 안의 실체를 전혀 없게 만든 상태를 말합니다.

 

2.       누가복음 12 2절에서의 맥락: "가면의 한계"

 

예수님은 1절에서 외식(가면 쓰기) 주의하라고 하신 , 바로 단어를 사용해 결말을 선언하셨습니다: "감추인 (συγκεκαλυμμένον)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저치 않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폭로의 필연성: 아무리 겹겹이 덮어씌워(슁게칼뤼메논) 완벽하게 감춘 가식이라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아래에서는 '완전한 노출' 피할 없다는 뜻입니다.

 

위선의 허망함: 사람의 눈은 속일 있을 만큼 철저히 덮을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덮개(가면) 자체가 무용지물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3.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의 연관성 (고전 4:5)

 

사도 바울 역시 비슷한 논조로 개념을 설명합니다: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바울은 '감추인 ' 단순히 행위뿐 아니라 '마음의 동기()'까지 포함된다고 보았습니다.  빌립보서 3 2절에서 경계한 유대주의자들의 '외적 행위'라는 덮개 역시 결국 심판 날에 벗겨질 것임을 시사합니다.

 

요약하자면, “감추인 ”[“συγκεκαλυμμένον”(슁게칼뤼메논)] 우리가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꽁꽁 싸매어 위선의 보따리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어차피 드러날 텐데, 힘들게 덮어쓰고(가식하며) 사느냐?"라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결국 단어는 우리에게 '은밀한 영역에서의 정직함' 요구합니다. 

 

지금 삶에서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아 겹겹이 덮어둔(슁게칼뤼메논)" 마음의 영역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하나님 앞에 스스로 먼저 여는 것이 위선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인터넷).

 

(ii)                    숨긴 ”[“ κρυπτν”(크뤼프톤)]:

 

단어는 앞서 언급된 감추인 ”[“συγκεκαλυμμένον”(슁게칼뤼메논)] 짝을 이루어, 위선의 '은밀함' '비밀성'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1.       단어의 의미

 

원뜻: '숨겨진', '비밀의', '은밀한' (영단어 Crypt, Encryption 어원).

 

뉘앙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어, 밖에서는 없는 내면의 영역을 뜻합니다.

 

2.       누가복음 12 2절에서의 맥락

 

예수님은 단어를 통해 위선의 속성을 정의하셨습니다: "감추인 (겉으로 덮은 )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크뤼프톤, 내면에 숨긴 비밀)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중적 폭로: 겉으로 포장한 가식(외식)뿐만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은밀한 동기와 생각까지도 하나님 앞에서는 밝혀질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3.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의 사용 (핵심 연결고리)

 

바울은 '크뤼프톤'이라는 단어를 매우 중요하게 사용했습니다.  그는 복음이 결국 인간의 '은밀한 ' 심판한다고 보았습니다.

 

로마서 2 16: "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κρυπ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의미: 겉으로 드러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마음의 '비밀스러운 영역'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4 5: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 κρυπ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의미: 빌립보서 3 2절에서 언급된 유대주의자들처럼 겉모습만 꾸미는 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입니다.  인간의 눈은 속여도 하나님의 빛은 '숨겨진 '까지 비춘다는 논리입니다.

 

4.       종합적 의미

 

숨긴 ”[“κρυπτν”(크뤼프톤)] 우리가 남몰래 품고 있는 '비밀의 ' 같습니다.

 

예수님과 바울은 공통적으로 "신앙이란 사람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숨겨진 (크뤼프톤)' 정직하게 관리하는 "임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위선을 이기는 힘은 "하나님은 나의 '크뤼프톤(비밀)' 이미 알고 계신다"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지금 나의 '비밀의 '에는 어떤 생각들이 담겨 있나요?  그것이 세상에 밝히 드러난다고 , 당신의 마음은 평안한가요 아니면 불안한가요?   차이가 바로 우리 영성의 현주소일지 모릅니다(인터넷).

 

(b)    다음에,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2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때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말씀에서 드러나다라는 헬라어 단어 ποκαλυφθήσεται”(아포칼뤼프테세타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말씀에서 알려지다라는 헬라어 단어 “γνωσθήσεται”(그노스테세타이)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i)                      드러나다’[“ποκαλυφθήσεται”(아포칼뤼프테세타이)]:

 

단어는 위선의 결말을 단정 짓는 가장 강력한 단어입니다(인터넷):

 

1.       단어의 어원과 의미

 

어원: '~로부터 멀리' 뜻하는 '아포(πό)' '덮개' 뜻하는 '칼뤼마(κάλυμμα)' 합성어입니다.

 

직역: '덮개를 벗겨내다', '베일을 제거하다'라는 뜻입니다.

 

영단어 유래: 여기서 요한계시록의 제목인 '아포칼립스(Apocalypse, 계시)' 나왔습니다.

 

2.       누가복음 12 2절에서의 맥락: "강제적 노출"

 

예수님은 앞서 언급된 '감추인 (슁게칼뤼메논)' 대응하여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덮어 씌워진(슁게칼뤼메논) 것이 베일이 벗겨지지(아포칼뤼프테세타이) 않을 것이 없고..."

 

수동태의 의미: 단어는 헬라어 문법상 '신적 수동태' 이해됩니다.  , 사람이 스스로 벗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강제로 가면을 벗기실 것이라는 엄중한 선언입니다.

 

완전한 반전: 위선(가식) 사람의 눈을 가리는 '덮개' 씌우는 작업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덮개를 단번에 낚아채어 본래의 추한 실체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작업입니다.

 

3.       사도 바울의 서신과의 연관성

 

바울은 단어를 주로 '하나님의 진리나 심판이 나타남' 설명할 사용했습니다.

 

로마서 1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ποκαλύπτεται)."

 

의미: 빌립보서 32절의 유대주의자들처럼 겉만 꾸미는 자들의 불의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앞에 숨길 없이 '폭로'된다는 논리입니다.

 

고린도전서 3 13: "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ποκαλύπτεται)..."

 

의미: 마지막 날에 우리가 쌓은 신앙의 업적이 '가식의 나무'인지 '진실의 '인지가 불로 베일을 벗기듯 드러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4.       종합적 의미: "가면 파티의 "

 

'아포칼뤼프테세타이' 연극이 끝나고 배우가 가면을 벗어야 하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가식(휘포크리시스)으로 꽁꽁 싸맨(슁게칼뤼메논)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의 '아포칼립스(계시/폭로)' 앞에서는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단어는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강제로 가면을 벗기시는 (심판)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베일을 벗고 정직하게 나아갈 것인가?"(인터넷)

 

(ii)                    알려지다’[“γνωσθήσεται”(그노스테세타이)]:

 

단어는 위선의 결과가 단순한 노출을 넘어, 실체가 '완전하고 객관적으로 이해됨' 의미하는 단어입니다(인터넷):

 

1.       단어의 의미와 문법적 특징

 

어원: '알다' 뜻하는 '기노스코(γινώσκω)' 미래 수동태형입니다.

 

: '알게 것이다', '인지될 것이다', '판명될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뉘앙스: 단순히 정보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간파당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2.       누가복음 12 2절에서의 맥락: "감출 없는 진실"

 

예수님은 앞서 언급된 '숨은 (크뤼프톤)' 대응하여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숨은 (크뤼프톤) 알려지지(그노스테세타이) 않을 것이 없나니."

 

객관적 판명: 위선자는 자신의 속마음을 감출 있다고 믿지만, 결국 그가 품었던 은밀한 동기(크뤼프톤) 무엇이었는지 모든 이가 ', 사람이 저런 마음이었구나'라고 분명히 알게 되는 날이 온다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 인간은 겉모습에 속아 넘어가지만, 하나님은 실체를 이미 '알고 계시며', 장차 모든 피조물 앞에서 진실을 확증(확인)하실 것임을 선포합니다.

 

3.       사도 바울의 서신과의 연관성 (고전 13:12)

 

사도 바울은 단어를 사용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대면할 때의 상태를 아주 아름답고도 엄중하게 묘사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 12: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같이(πεγνώσθην) 내가 온전히 알리라."

 

의미: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온전히 알고 계심' 강조합니다.  빌립보서 3 2절의 유대주의자들이 아무리 율법으로 자신을 포장해도, 하나님은 이미 그들의 중심을 꿰뚫어 알고 계시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합니다.

 

고린도후서 5 11: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려졌으니(πεφανερώμεθα) 너희의 양심에도 알려지기를 바라노라."

 

의미: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알려져(그노스테세타이와 유사한 의미)' 있음을 고백하며, 성도들의 양심 앞에서도 가식 없는 진실함이 드러나기를 구했습니다.

 

4.       종합적 의미: "전지하신 시선"

 

'그노스테세타이' 우리 인생의 성적표가 하나님 앞에서 '공개 채점'되는 장면과 같습니다.

 

위선(휘포크리시스)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수는 있지만, 결국 모든 진실은 하나님의 아래서 ' 정체가 탄로 수밖에 없음' 보여줍니다.

 

결국 단어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영적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안다' 하는 모습과, 하나님이 나에 대해 '알고 계신' 실제 모습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지금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생각이 세상에 '온전히 알려진다면(그노스테세타이)', 당신은 결과가 영광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부끄러움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알려짐의 ' 준비하는 것이 바로 위선의 누룩을 제거하는 가장 정직한 신앙의 태도입니다”(인터넷).

 

(4)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3 말씀을 묵상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3)라고 말씀하신 내용의 의미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a)    말씀은 앞서 살펴본 '외식(가식)' 대한 최종적인 경고이자 물리적 확장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2절이 내면의 '상태' '심판' 다뤘다면, 3절은 위선이 어떻게 공개적으로 폭로될 것인지를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대비를 통해 보여줍니다(인터넷):

 

1.       극명한 장소적 대비의 의미

 

예수님은 가지 상반된 상황을 설정하여 위선의 허망함을 드러내십니다.

 

어두운 (암흑) 광명한 ():

 

'어두운 ' 남들이 보지 못한다고 믿고 은밀하게 공모하거나 위선을 행한 곳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 자체이기에, 어둠 속의 모든 은밀한 행위는 마치 대낮의 햇빛 아래 놓인 것처럼 선명하게 '들리게(드러나게)' 됩니다.

 

골방(밀실) 지붕 (광장):

 

'골방' 당시 유대 가옥에서 가장 깊숙하고 은밀한 곳으로, 남몰래 속삭이는 장소입니다.

 

'지붕 ' 당시 마을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는 공공의 장소(방송대) 역할을 했습니다.

 

의미: "너희만 안다고 생각하며 소곤거린 위선적인 계획들이, 결국은 세상 사람이 있도록 확성기로 대고 말하는 것처럼 전파될 "이라는 뜻입니다.

 

2.       사도 바울의 편지와의 맥락적 일치

 

사도 바울 역시 빌립보서 3 2절에서 경계한 '행악자들'이나 '유대주의자들' 은밀한 위선이 결국은 수치로 드러날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 5: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예수님의 '광명한 데서 들리고'라는 말씀과 바울의 '드러내고(bring to light)' 완벽히 일치하는 통찰입니다.

 

에베소서 5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위선은 어둠을 먹고 자라지만, 진리의 빛이 비추는 순간 정체가 탄로 난다는 원리를 강조합니다.

 

3.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 "비밀은 없다"

 

말씀의 핵심은 '은밀함의 종말'입니다.

 

위선자는 "아무도 모르겠지"라는 전제 하에 연기(휘포크리시스) 시작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는 비밀번호가 걸린 방이 없다" 선언하십니다.  따라서 성도의 삶은 '골방'에서 하는 말과 '지붕 '에서 하는 말이 다르지 않은 '투명성' 회복해야 합니다.

 

결국 구절은 우리에게 "당신의 삶이 생중계되고 있다면, 지금 말과 행동을 계속하겠는가?"라고 묻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들이 나중에 '지붕 위에서 울려 퍼져도' 당당할 있을까요?

 

가장 은밀한 순간의 나와 사람들 앞에서의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정직한 신앙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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