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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Frustration

Jesus’ Frustration         “I have come to bring fire on the earth, and how I wish it were already kindled!   But I have a baptism to undergo, and what constraint (or distress) I am under until it is completed!” (Luke 12:49–50).       (1)     When I read today’s passage, Luke 12:49–50, my attention was drawn to Jesus’ words: “what constraint (or distress) I am under” (v. 50).   So, I chose the title of today’s meditation as “Jesus’ Frustration.”   (a)     First, I became curious about the definition of the word “ frustration, ” so I looked it up online.   It was broadly defined in three contexts, and among them I was particularly interested in the psychological/situational frustration: “a painful state in which one feels anxious or stifled because things do not go as one wishes, or because one’s feelings are not resolved” (Internet).   (i)      ...

광야는 기회의 장소입니다. (9): 광야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곳입니다.

광야는 기회의 장소입니다. (9):

광야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곳입니다.

 

 

 

 

[민수기 202-13]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자를 사용하실까요?  제가 언젠가 YMCA에서 운동하면서 MP3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in Charlotte 총장님의 강의를 듣던 중 하나님이 쓰셨던 모세에 대하여 하신 말씀 중 마음에 다가왔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모세의 120년 삶을 3부분으로 나눠 어떻게 점진적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시고자 준비시키셨는지를 깨닫게 해주며 도전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1)  모세가 애굽에 40년 있었을 때 그는 자기가 뭔가가 된 줄 생각했습니다(He thought he was SOMETHING),

(2)  모세가 미디안에 40년 있었을 때 그는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He began to understand that he was NOTHING),

(3)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인도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아닌 자를 쓰시는 줄 깨달았습니다(Now he knows that God uses NOTHING). 

 

저는 이 강의 말씀을 들으면서 제 자신이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1) (2)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어쩔 때는 내 자신이 SOMETHING인 것 같이 착각할 때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시사 제가 아무 것도 아님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SOMETHING이란 것은 왠지 저로 하여금 욕심을 내게 만들고 또한 교만하게 만들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광야로 인도하셔서 낮추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홀로 그 분 앞에 잠잠이 있게 하시고 또한 기도 하는 가운데 그의 말씀으로 제 마음의 죄를 들춰내시고 또한 회개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부드럽게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인해 위로와 힘을 받습니다(2:14).  마가복음 9 29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 “… 기도 외에 …”(only by prayer).  마치 예수님께서 기도 외에는 귀신을 쫓아 내시 못한다는 교훈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 안에 욕심과 교만 등 죄악 된 것들을 비우기 위해선 기도 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20 6절을 보면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 중심으로 광야는 기회의 장소입니다. (9): 광야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곳입니다.”란 제목 아래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회중은 물이 없으므로모세와 아론에게로 몰려와 모세와 다투고 원망 하였을 때(20:2-5)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의 소리를 들은 후 총회 앞을 떠나 회막문에 이르러 엎드렸습니다(6). ,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서 엎드리다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나팔로서 '떨어지다', '쓰러지다', '자신을 던지다'라는 뜻으로서 그저 단순히 몸을 굽히는 수준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완전히 대는 '투신'에 가까운 항복과 겸비의 자세를 의미합니다(인터넷).  , 모세와 아론은 회막 문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은 단순한 자세를 넘어선 전폭적인 의지였습니다.  이 전폭적인 의지에는 자기 부인, 모세와 아론은 "우리는 이 백성의 갈증과 원망을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라는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는 좀 철저하게 우리 자신의 무기력함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감옥에 갇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동서남북 다 돌아보아도 문제 해결점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함을 느낄 때 그저 멍하니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저는 사방이 다 벽처럼 보이는 그런 상황에서 제 자신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많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성경책을 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특히 저는 새벽 기도회 때 기도하면서 교회 사역이나 가정 사역이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능력함과 무기력함 속해서 아버지 하나님을 찾곤 합니다.  그리할 때 제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게 하십니다.  그때 저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선포하며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성령님께서 저로하여금 붙잡고 기도케 하시는 말씀은 바로 로마서 8 26-27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또한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말씀은 창세기 39 2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또한 성령님께서 의지케 하시는 말씀은 히브리서 4 15절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이렇게 성령님께서 저로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하시고 그 말씀을 붙잡고(의지하고) 기도케 하실 때에 제가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신다는 믿음에 조금이나마 더 견고히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인내하며 견디게 하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깊이 느끼는 무기력함은 우리에게 기회(opportunity)가 될 수 있습니다.  무슨 기회가 될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도움이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진리를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121:2).  그러므로 우리는 새 찬송가 214나 주의 도움 받고자” 1절 가사처럼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아주소서하고 하나님께 엎드려 간구할 수 있습니다. 

 

제가 2025 2 1일에 외로운 광야를 고독의 동산으로 바꾸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란 제목 아래 쓴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 것이 예수님의 모든 사역의 중추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각자만의 조용한 기도하는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조용한 마음으로 홀로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홀로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좀 복잡한 생활 환경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갈 필요가 있습니다.  나 홀로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 멈추고 주님 앞에 조용히 나아가 잠잠히 하나님의 말씀 묵상하는 시간과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경험하므로 외로운 광야를 고독의 동산으로 바꾸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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