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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기초적인 요구'를 다 보고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 기초적인 요구 ' 를 다 보고 알고 계십니다 .         “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누가복음 12:29-31).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장 29-31 절 말씀을 묵상할 때 제일 먼저 헬라어 성경으로 읽을 때 29 절을 시작하는 “Κα ὶ ”( 카이 ) 라는 접속사의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   (a)     한국어 성경 개역개정과 개역한글에는 이 “Κα ὶ ”( 카이 ) 라는 단어가 번역이 되있지 않지만 현대인의 성경과 공동번역은 “ 그러니 ” 라고 번역을 했고 새번역은 “ 그러므로 ”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   (i)                       제가 이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개역개정으로 29 절 말씀을 읽었을 때 “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 ” 고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앞서 말씀하신 내용과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어쩌면 원어 헬라어 성경에는 예수님의 앞서 ...

어리석은 부자의 진짜 죄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진짜 죄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입니다.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부자가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곳간을 헐고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내가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누가복음 12:16-21).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6-21 말씀을 묵상할 먼저 우리가 이미 유산 문제로 다투지 말고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제목 아래 묵상한 누가복음 12 13-15 말씀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4248451901).

 

(a)   아마도 이유는 제가 누가복음 12 16-21절을 읽을 비유로 그들(제자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16)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시작하시면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말씀하셨기 때문인 같습니다.  , 저는 누가복음 12 13-15절에서 예수님께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있지 아니하니라”(15)하신 말씀과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6-21절에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특히 20절에서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하신 말씀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i)                  연관성이란 (1) 예수님께서는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15)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한 부자”(16) 대해 비유로 말씀하신 것과 (2)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하는 이유는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있지 아니한데(15) 부자”(16) 자기의 생명이 자기의 소유의 넉넉한 있다고 믿고 자기 밭에 소출이 풍성하므로 내가 곡식 쌓아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하고 심중에 생각(17) 결과 내가 이렇게 하리라 곳간을 헐고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옳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곳간을 헐고 크게 지어 거기에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겠다”(현대인의 성경)](18) 것입니다.

 

·         저는 오늘 연관성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2)   첫째로, 저는 모든 탐심을 물리치지 못한 부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a)   먼저 보편적으로 저는 부자는 모든 탐심을 물리치는 것이 힘든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리하였을 생각은 시편 73 말씀입니다. 

 

(i)                  시편 기자 아삽이 말한 악인의 형통함”[악인들이 되는 ”(현대인의 성경)](73:3) 관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4-12).

 

·         저는 말씀을 다시금 묵상할 마음이 정결한 ”(1) 아삽이 말한 악인 우리가 소이 말하는 부자였는데 악한 부자는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힘이 강건하[“일평생 아무런 고통도 없이 건강하게 낸다(현대인의 성경)](4) 것입니다.  악한 부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병으로 고생하는 일도 습니다(5, 현대인의 성경).  생각해 보십시오.  가난한 의인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부자인 악인은 일평생 아무런 고통과 어려움과 병으로 고생하는 것도 없이 건강하게 지낸다면 우리도 아삽처럼 부자 악인의 형통함( 되는 ) 보고 질투”(3)하지 않겠습니까?  부러워하지 않겠습니까?

 

-          그런데 다가 악한 부자는 살찜으로” “눈이 솟아나며그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그의 탐욕은 하늘 높은 모른다”(현대인의 성경)](7) 정도로 탐욕스러운 포만감을 가지고 자신이 기대하거나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재물을 거뭐쥐는데 상상 이상의 부가 굴러 들어오는 이해할 없는 악한 부자의 현실을(참고: 인터넷) 가난한 의인의 입장에서 우리도 시편 기자 아삽처럼 부자 악인의 형통함( 되는 ) 보고 질투하지 않겠습니까?  부러워하지 않겠습니까?   

 

n  악한 부자는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는데[그는 언제나 편안한 생활을 하고그의 재산은 날로 늘어만가는데(현대인의 성경)](12), 어떻게 우리가 아삽처럼 악한 부자의 형통함( 되는 ) 보고 질투하지 않겠습니까?  부러워하지 않을 있겠습니까?

 

(ii)                부자는 모든 탐심을 물리치는 것이 힘든 것일까?’ 질문의 답변을 시편 73편에서 찾아볼 부자가 탐심(탐욕) 물리치기 힘든 이유는 단순히 '돈이 많아서'라기보다, () 주는 심리적·영적 왜곡 때문입니다.  시편 73편의 맥락과 연결해 보면 이유를 4가지로 분석할 있습니다(인터넷):

 

1.      "소득이 마음의 소원보다 많기" 때문입니다(7).

 

보통 사람은 결핍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기도를 배웁니다.  하지만 시편 73 7 말씀처럼 소득이 계획이나 소원보다 많이, 쉽게 들어오면 사람은 '자신의 능력' 신격화하게 됩니다.  결핍이 없으니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사라지고, 채워도 채워도 남는 여유분이 다시 새로운 탐심의 불씨가 되는 '탐욕의 선순환' 갇히게 됩니다.

 

여기서 탐욕의 선순환이란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요가 탐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다시 소득으로 이어져 탐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인터넷).

 

2.      "살찜" 영적 감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7).

 

성경에서 '살찜' 풍요를 뜻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영적 둔감함을 상징합니다.  배가 부르고 삶이 안락하면 고난받는 이웃의 아픔이나 하나님의 경고가 들리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가 관찰한 악한 부자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힘이 강건"(4)했기에, 자신들은 영원히 안전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탐심을 제어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탐심을 제어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게 하는 "살찜"이란 영혼과 양심이 두꺼운 지방질에 둘러싸여 마비된 상태를 뜻하는 강력한 은유로서 이러한 살찜 영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감각의 마비 (Spiritual Insensitivity)

 

살이 과하게 찌면 촉각이 무뎌지듯, 영적인 살찜은 죄에 대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보통 사람은 남을 해치거나 욕심을 부리면 양심의 가책(통증) 느끼지만, 이들은 풍요로움이라는 두꺼운 지방벽에 갇혀 하나님의 경고나 이웃의 신음소리를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아프지 않으니 고칠 필요도 없다"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자기 만족의 (Self-Sufficiency)

 

'살찜' 부족함이 전혀 없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배가 너무 불러서 이상 배고픔을 모르는 상태처럼, 모든 욕구가 즉각적으로 채워지다 보니 하나님께 매달릴 이유(결핍) 사라집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있다는 오만이 생기면서, 탐심을 '' 아니라 '능력'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3.      "눈이 솟아나오게" 만드는 탐욕의 통로 (Source of Arrogance)

 

성경은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라고 연결합니다.  이는 너무 먹고 살아서 눈이 밖으로 돌출될 정도라는 시각적 묘사인데, 결국 내면의 가득 탐욕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상태를 말합니다.  눈이 밖으로 향해 있으니 자기 내면을 성찰할 기회는 없고, 오직 가질 (땅의 ) 찾게 됩니다.

 

4.      죽음에 대한 망각 (Oblivion to Judgment)

 

시편 73 4절에서 말하듯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습니다."  삶이 너무 기름지고 평안하니, 언젠가 치러야 인생의 결산이나 심판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오늘 이렇게 행복한데 무슨 절제가 필요한가?"라는 안일함이 탐심을 제어할 브레이크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살찜"이란: 자신의 풍요에 취해 하나님도 두렵지 않고, 사람도 우습게 보이며, 자신의 (심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비대증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삽이 그토록 질투하며 괴로워했던 악인의 '무서운 평안' 실체입니다.

 

3.      부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11)

 

부자는 재물로 세상을 통제할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11)라고 말하는 오만함은, 돈이 주는 힘이 하나님의 통치보다 가깝고 강력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돈이 나의 보호자(목자) 되는 순간, 탐심은 죄가 아니라 '자기를 지키는 수단'으로 정당화됩니다.

 

여기서 돈이 주는 힘을 믿을 탐심은 죄가 아니라 자기를 지키는 수단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은 탐심이 우상 숭배( 3:5) 되는 가장 무서운 심리적 기제입니다.  돈이 주는 힘을 신뢰하게 되면, 탐심은 이상 버려야 '' 아니라 나를 보호해 주는 '방패'이자 '정의' 둔갑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있습니다(인터넷):

 

1.      생존을 위한 '필요악'으로 위장

 

돈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에게 세상은 '약육강식의 전쟁터'입니다.  이런 세계관 속에서 탐심은 남을 해치려는 악의가 아니라, "내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없는 선택" 혹은 " 가족의 미래를 지키는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됩니다.  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기에 죄책감은 사라지고 오히려 '현명함'으로 칭송받게 됩니다.

 

2.      '안전'이라는 이름의 성벽

 

시편 73편의 악인들이 "항상 평안한"(12) 이유는 그들의 재산이 견고한 성벽 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돈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물질적 메시아'입니다.  돈이 있으면 질병, 사고, 심지어 법의 심판으로부터도 안전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안전을 두텁게 하려는 탐심은 정당한 '자기 방어 기제' 됩니다.

 

3.      '자유' '권력' 획득

 

돈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있는 (권력) 줍니다.  시편 73 8-9절처럼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할 있는" 근거가 바로 재력입니다.  탐심을 통해 많은 부를 가질수록 내가 부릴 있는 자유가 커지기 때문에, 부자는 탐심을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정당한 권리'라고 믿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돈의 힘을 믿는 순간, 인간은 하나님의 보호(Providence) 대신 자신의 소유(Property) 의지합니다.  이때부터 탐심은 " 가져야 내가 안전하다" 논리를 만들어내고, 결국 탐심이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미끄러운 '임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려버립니다.

 

4.      "항상 평안하고 재물이 늘어나는" 환경 때문입니다 (12)

 

심은 대로 거두는 법인데, 악하게 살아도 재산이 날로 늘어만 가는(12) 비정상적인 현실은 부자로 하여금 '잘못된 확신' 갖게 합니다.  "이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없네?"라는 경험적 확신이 탐심을 물리칠 기회를 박탈하고, 오히려 탐욕을 부려도 좋다는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주게 만듭니다.

 

악하게 살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인과응보'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 현실은, 부자에게 일종의 '영적 학습 효과' 줍니다.   "잘못된 확신" 구체적으로 어떻게 탐욕의 면죄부가 되는지 4가지 단계로 설명할 있습니다(인터넷):

 

1.      ‘경험적 무죄’가 주는 대담함

 

보통 사람은 죄를 지으면 ‘혹시 벌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시편 73 12절처럼 재산이 날로 늘어나는 경험이 반복되면, 부자는 "하나님은 없거나, 있더라도 편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죄를 지었는데 오히려 결과(수익) 좋으니, 성공이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는 '증거'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2.      ‘심판의 부재’를 ‘승인’으로 착각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심판을 참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악한 부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침묵) 자신의 삶에 대한 '합격 판정'으로 오해합니다.  "정말 내가 잘못했다면 벌써 망했겠지, 하지만 나가잖아?"라는 논리가 탐심을 버려야 '' 아니라 계속 가져가야 ''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3.      ‘데이터 기반’의 오만함

 

부자들은 세상을 철저히 계산적으로 봅니다.  그들의 계산기에는 '도덕'이나 '영성' 없습니다.  "악하게 투자해서 100배를 벌었다" 데이터가 쌓이면, 다음에는 악행(탐심) 저지르는 주저함이 없어집니다.  성공한 경험이 진리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이라는 '소프트웨어' 아예 삭제되는 것입니다.

 

4.      사회적 평판이라는 보호막

 

재산이 늘어나면 주변 사람들도 그를 칭송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보다 그가 가진 '평안과 재물' 집중합니다.  세상의 박수 소리는 그가 탐심을 물리칠 기회를 완전히 가로막는 두꺼운 방음벽이 되어, "나는 살고 있다" 면죄부를 매일 발행해 줍니다.

 

결론적으로, 부자가 탐심을 물리치기 힘든 이유는 () 주는 '거짓 평안' '거짓 안전'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19:24) 말씀하신 것입니다(인터넷).

 

(3)   마지막 둘째로, 저는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있지 아니한 것을 모르고 부자”(16) 자기 밭에 소출이 풍성하므로 내가 곡식 쌓아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하고 심중에 생각(17) 결과 내가 이렇게 하리라 곳간을 헐고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옳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곳간을 헐고 크게 지어 거기에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겠다”(현대인의 성경)](18)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a)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있지 아니하니라”(15) 말씀하셨는데 부자”(16) 밭에 소출이 풍성하였을 곡식 쌓아 곳이 정도로 소유가 넘쳐나서 있는 곳간을 헐고 크게 져서 자기의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에 쌓아 두려고 심중에 생각하였습니다(17-18).

 

(i)                  여기서 심중에 생각하다라는 헬라어 “διελογίζετο”(디엘로기제토) 생각하다라는 뜻의 “διαλογίζομαι”(디알로기조마이) 미완료 과거형입니다.  단순히 생각하고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끊임없이 계산하고 고민했다는 생생한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단어의 핵심 의미와 비유 속에서의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단어의 의미: '내면의 이중창'

 

어원: '철저히/사이에' 뜻하는 dia '계산하다/추론하다' 뜻하는 logizomai 합쳐진 말입니다.

 

뉘앙스: 머릿속에서 주판알을 튕기듯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깊이 고민하는 상태' 말합니다.  우리말의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라는 표현이 '내적 대화' 느낌을 살리고 있습니다.

 

2.      문법적 특징: 미완료 과거 (Imperfect)

 

헬라어에서 미완료 시제는 '지속되는 동작' 나타냅니다.  , 부자가 풍성한 소출을 보고 ", 어떻게 할까?" 하고 단번에 결론을 것이 아니라, "이걸 어디다 두지? , 저렇게 할까? 아니지, 이렇게 해야지!" 하며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골몰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3.      비유 속에서의 신학적 의미

 

단어는 부자의 가지 영적 상태를 폭로합니다.

 

독백의 고립 (Self-Centered Dialogue): 부자의 고민에는 하나님도, 이웃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self)'하고만 대화합니다.  기도가 아니라 '독백'이며, 상담이 아니라 '자기 확신'으로 흐르는 폐쇄적인 모습을 상징합니다.

 

풍요 속의 불안: 역설적이게도 '풍성한 소출' 감사 대신 '치열한 계산(고민)' 가져왔습니다.  "내가 곡식 쌓아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라는 그의 고민은, 소유가 늘어날수록 관리와 보존에 대한 염려(Anxiety) 함께 늘어남을 단면적으로 보여줍니다.

 

요약하자면: “διελογίζετο”(디엘로기제토) 부자가 하나님의 은혜인 수확물을 두고 감사가 아닌 '자기중심적인 수지타산' 깊이 빠져 있었음을 묘사하는 아주 날카로운 단어입니다[여기서 자기중심적인 수지타산이란, 하나님이 주신 풍요를 접했을 '감사' '나눔' 생각하기보다, 오로지 '나의 이익과 안락'만을 기준으로 손익을 계산하는 태도를 의미함(인터넷)].

 

·         여기서 하나님이 주신 풍요를 접했을 '감사' '나눔' 생각하기보다, 오로지 '나의 이익과 안락'만을 기준으로 손익을 계산하는 부자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          부자의 문제는 단순히 '부유함' 자체가 아니라, 풍요를 다루는 '영적 관점의 부재' 있습니다.   가지 핵심 포인트입니다(인터넷):

 

1.      근원에 대한 망각 (은혜 vs 권리)

 

문제: 누가복음 12 16절에서 밭이 소출을 풍성히 것은 부자의 능력이기보다 기후와 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입니다.

 

태도: 부자는 풍요의 '기원' 하나님께 두지 않고, 오직 자신의 '소유권(My crops, My barns)'으로만 해석했습니다.  감사가 있어야 자리에 관리의 계산만 남은 것입니다.

 

2.      이웃에 대한 폐쇄성 (나눔 vs 축적)

 

문제: 당시 유대 사회에서 풍년은 공동체의 축제였으며, 가난한 자들과 나누는 기회였습니다.

 

태도: 부자의 고민(διελογίζετο) 속에는 '이웃' 없습니다.  그는 남는 곡식을 헐어 나누기보다, 곡간을 지어 '고립된 풍요' 선택했습니다.  성경은 이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는 '(21)이라 비판합니다.

 

3.      영혼에 대한 무지 (물질 vs 생명)

 

문제: 부자는 " 영혼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말합니다(19).

 

태도: 영적인 존재인 '영혼' 만족을 '물질(곡식)' 채울 있다고 믿는 카테고리 오류를 범했습니다.  그는 육체의 안락이 영혼의 안녕이라고 착각하는 '영적 무지' 빠져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부자의 진짜 죄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입니다(21).  그는 세상의 계산기(수지타산)로는 완벽한 승자였으나, 생명의 주권자 앞에서는 어리석은 ”(20) 되었습니다.

 

(b)   지금도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어리석은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현대판 어리석은 모습은 대개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곤 합니다(인터넷):

 

1.      '안전' 근거를 통장 잔고에서 찾는 모습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입술로는 "하나님은 나의 요새"라고 고백하지만, 실제 삶의 평안은 '쌓아둔 재물'이나 '보험', '연금'에서 얻을 때가 많습니다.  누가복음 12 19절의 부자처럼 "여러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자"라고 속삭이는 물질적 안전망을 하나님보다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2.      '나의 나라' 세우는 몰두하는 신앙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보다, ' 곡간(커리어, 자녀의 성공, 부동산 )' 넓히는 기도로 신앙생활을 채우는 경우입니다.

 

“διελογίζετο”(디엘로기제토)(치열한 계산)[“심중의 생각하여”(17)] 대상이 '어떻게 하면 주님의 뜻대로 사용할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자산을 불릴까'에만 고착되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비유 부자의 모습과 닿아 있습니다.

 

3.      '영혼의 만족' '소비' 대체하려는 착각

 

영혼의 갈급함을 예배나 말씀이 아닌, 쇼핑, 미식, 취미 생활, SNS 인정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으로 채우려 합니다.  현대의 소비주의 문화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영적인 풍요(Zoe) 물질적인 넉넉함과 혼동하게 만듭니다.

 

4.      '나눔' 손실로 여기는 수지타산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소출 만났을 , 그것을 이웃과 흘려보낼 '기회' 보기보다 내가 지켜야 '소유'로만 봅니다.  하나님께 부요한 자는 '나누어도 영혼은 안전하다' 믿음이 있는 자이나, 어리석은 자는 '움켜쥐어야만 안전하다' 계산기에 갇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어리석은 그리스도인' 특징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미래를 완벽하게 설계할 있다고 믿는 '실천적 무신론' 빠져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묻습니다. "오늘 영혼을 도로 찾으신다면, 네가 계산기 두드려 만든 모든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i)                  그러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점검해볼 있는 실제적인 지침 가지입니다(인터넷):

 

1.      ' '에서 '맡겨진 '으로 (청지기 의식)

 

부자”(12:16) 가장 실수는 누가복음 12 17~19절에서 모든 소유에 '(my)'라는 꼬리표를 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요한 자는 다음을 인정합니다.

 

고백의 전환: " 소출은 하나님이 주신 φόρησεν)이며, 나는 잠시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지점이 '어리석은 부자' '지혜로운 청지기' 가르는 결정적인 분수령입니(인터넷):

 

1.      주어의 전환: "내가" 아니라 "밭이

 

누가복음 12 16절을 보면 "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φόρησεν)"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자가 잘나서 만든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법칙 속에서 밭이 결실을 내어준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 "(My) 곡식, (My) 곳간"이라며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자신의 당연한 권리로 착각했습니다.

 

청지기: "하나님이 밭을 통해 이만큼을 맡기셨구나!"라고 고백하며 소유의 출처를 하나님께 둡니다.

 

2.      소유의 목적: "보관" 아니라 "관리"

 

부자의 관심은 오직 '쌓아 두는 (18)'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지기의 사명은 주인의 뜻대로 유통하는 것입니다.

 

εφόρησεν”(풍성한 소출) 목적은 부자 혼자 배불리 먹고 쉬는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굶주린 이들을 먹이고,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위해 사용되도록 위탁된 자산이었습니다.

 

3.      영적 자유함: "도로 찾으심" 대한 대비

 

하나님은 20절에서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라고 하십니다.   단어는 '빌려준 것을 다시 청구하다' 금융 용어입니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영혼이나 재물을 도로 찾으실 절망하고 저항합니다.  하지만 "잠시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주인이 부르실 기꺼이 결산할 준비를 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의 여유입니다.

 

실천: 나에게 주어진 시간, 재능, 물질의 주인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훈련입니다.

 

2.      '쌓는 곳간'에서 '흐르는 통로' (나눔의 신비)

 

어리석은 부자는 넘치는 소출을 보고 ' 곡간' 지을 궁리만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부요한 자는 '나누는 ' 계산합니다.

 

영적 원리: 땅의 곡간에 쌓으면 좀과 동록이 해하지만, 이웃에게 흘려보내면 그것은 '하늘 문법'으로 환산되어 영원한 가치가 됩니다.

 

여기서 ‘나누는 법’을 계산한다는 것과 ‘하늘 문법’으로 환산된다는 것은, 세상의 경제 논리를 거슬러 영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고도의 지혜를 의미합니다(인터넷):

 

1.      ‘나누는 법’을 계산한다 (Spiritual Calculation)

 

세상의 계산은 '뺄셈'이지만, 신앙의 계산은 '나눔을 통한 보존'입니다.

 

투자 대상의 변경: 어리석은 부자는 썩어 없어질 '곡간' 투자했지만, 하나님께 부요한 자는 '사람(이웃)' '하나님 나라' 투자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이득임을 계산해낼 아는 영적 안목입니다.

 

비우는 지혜: 움켜쥐면 썩지만(출애굽기 만나의 원리), 나누면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시작된다는 역설적인 수지타산을 맞추는 것입니다.

 

청지기적 기획: "어떻게 하면 창고를 넓힐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잉여(Surplus) 어떻게 사용해야 가장 기뻐하실까" 치열하게 고민(διελογίζε)하는 태도입니다.

 

2.      ‘하늘 문법’으로 환산된다 (Heavenly Translation)

 

땅의 언어(물질) 하늘의 언어(영원한 상급) 번역하는 원리입니다.

 

통화(Currency) 가치 변환: 지상에서 사용하는 '' '재물' 죽음과 동시에 가치가 '0' 됩니다.  그러나 이를 이웃 사랑과 구제로 사용하면, 하늘나라에서 통용되는 '영원한 가치' 변환됩니다. 마치 여행 환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좀과 동록이 없는 보관법: 땅의 곡간은 도둑이나 부패(, 동록)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늘 문법은 '나눔 = 영원한 저축'이라는 공식을 가집니다. 내가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억 속에 기록되어 가장 안전하게 보관되는 것입니다.

 

생명으로의 치환: 세상 문법은 "소유가 생명을 보장한다" 속이지만, 하늘 문법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 진짜 생명이 된다" 가르칩니다.

                                                               

세상 문법(부자의 계산) 하늘 문법(청지기의 계산) 차이:

 

1.      목표의 차이

 

세상 문법은 오로지 나의 안락과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소유를 늘리는 집중하지만, 하늘 문법은 모든 결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의 생존을 돕는 목적을 둡니다.

 

2.      방식의 차이

 

세상 문법은 미래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창고를 넓히고 재물을 쌓아두는 방식(Accumulation) 취하는 반면, 하늘 문법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필요한 곳으로 기꺼이 흘려보내는 방식(Distribution) 선택합니다.

 

3.      결과의 차이

 

세상 문법의 끝은 예기치 못한 죽음 앞에서 맞이하는 허무한 상실뿐이지만, 하늘 문법의 끝은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는 영원한 부요함과 상급으로 이어집니다.

 

4.      핵심 가치(고백) 차이

 

세상 문법을 따르는 자는 모든 소유를 향해 "이것은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집착하지만, 하늘 문법을 따르는 자는 "이것은 하나님이 잠시 맡겨주신 것이다"라고 고백하며 청지기의 자유함을 누립니다.

 

결론: 세상의 계산기는 '얼마나 가졌는가' 승패를 따지지만, 하늘의 문법은 '얼마나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했는가' 인생의 참된 가치를 결정합니다.

 

실천: 나의 '남는 '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 응답' 있음을 믿고 손을 펴는 것입니다.

 

3.      '물질의 안락'에서 '영혼의 평안'으로 (우선순위)

 

부자는 물건이 많으니 영혼아 즐거워하자고 했으나, 영혼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옵니다.

 

가치의 재정립: 세상의 넉넉함이 주는 가짜 평안에 속지 않고, 하나님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실천: 분주한 '수지타산' 계산기를 잠시 내려놓고,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며 그분의 뜻을 묻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마지막 질문: 오늘 우리 각자의 삶에서 ' 크게 지으려고만 했던 곡간' 무엇인가요?  그리고 곡간의 문을 열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흘려보낼 걸음은 무엇이 있을까요?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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