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문제로 다투지 말고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누가복음 12:13-15).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13-15절 말씀을 묵상할 때 먼저 “유산”(13절)이란 헬라어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제 주위에 부모님의 유산 문제로 이런저런 갈등을 하였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a)
예를 들어,
제가 아는 어느 형제는 맏아들로서 동생이 둘이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마 그 형제의 부모님(아마 아버님)이 세 자녀들 중에 맏아들인 그 형제에게 자신의 유산을 다른 두 자녀들보다 훨씬 많이 줬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제 개인적인 생각은 그 부모님(아버님)이 세 자녀들에게 자신의 유산을 똑같이 삼등분해서 주셨으면 형제들끼리 다투지(갈등하지) 않았을 텐데(화목할 수 있었을 텐데)
…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i)
그런데 조금 전에 인공지능에다가 “부모님이 세 자녀들에게 유산을 똑같이 삼등분?”이라고 질문을 했더니 이렇게 답변을 하였네요:
“성경 시대(유대 사회)에는 유산을 똑같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장자의 명분:
신명기 21:17에 따르면,
장남은 다른 형제들보다 두 몫(갑절)을 받았습니다.
만약 자녀가 셋이라면 유산을
4등분하여 장남이
2개, 나머지 두 자녀가 각
1개씩 갖는 방식입니다”(인터넷).
·
그래서 저는 인공지능에다가 “한국 유교 사상(전통)에서는 유산을 어떻게?”라고 질문을 했더니 이렇게 요약을 해줬습니다:
“전통적으로 조선 전기는
'삼등분(평등)'에 가까웠고,
조선 후기는
'장남 몰아주기'
방식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민법(균등 상속)은 오히려 조선 전기의 평등한 전통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참고: 여기서 “조선 전기”는 17세기 이전을 말하는데 조선 중기까지는 유교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시대의 전통이 남아 있어 아들과 딸,
선후와 상관없이 유산을 똑같이 나누었다고 함,
“조선 후기”는 17세기 이후를 말하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성리학적 질서가 강화되면서,
가문의 대를 잇는
'장남'에게 재산이 집중되기 시작했다고 함. 가문의 제사와 조상의 묘소를 관리해야 하는 장남에게 더 많은 몫(봉사조)을 주었다고 함](인터넷).
(b)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1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유산”이란 헬라어 단어 “κληρονομίαν”(클레로노미안)의 원형은 “κληρονομία”(클레로노미아)이며 어원적 의미는 클레로스(κλῆρος, 제비뽑기) + 네모마이(νέμομαι,
분배하다/점유하다)의 합성어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토지나 자산을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진 몫'이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노력해서 얻은 대가가 아니라,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주어진
'할당된 몫'을 의미합니다(인터넷).
(i)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13절에서 이 단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실제적인 재산(부동산, 가축, 노비 등)'을 뜻합니다. 당시 유대 율법(신 21:17)에 따르면 장남은
2/3를, 차남은 1/3을 가져야 했습니다. 예수님께 질문한 사람은 형이 이 법적 분배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거나,
본인이 더 공평한 분배(예: 이등분)를 원했을 때 이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 것입니다(인터넷).
·
제 생각에는 예수님께 질문한 사람은 자기 형이 장남은
2/3를, 차남은 1/3을 가져야 하는 이 법적 분배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본인이 더 공평한 분배(예: 이등분)를 원했기에 예수님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13절)하고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15절)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께 질문한 그 사람은 탐심 속에서 예수님께 자기 형을 명하여 유산을 자기와 나누게 하라고 말씀해 주시길 부탁한 것입니다.
-
인공지능의 말입니다:
“그 말씀이 정확한 통찰입니다.
질문자님의 해석은 본문의 문맥과 예수님의 응답을 가장 일관성 있게 연결하는 해석입니다.
그렇게 보시는 근거가 매우 탄탄한데,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1.
예수님의
'탐심(Pleonexia)'
경고
예수님께서 곧바로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신 것은,
질문자의 내면에
'더 가지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음을 꿰뚫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플레오넥시아(πλεονεξία)'는 '더 많이(pleon)
+ 가지다(echo)'의 합성어로,
정당한 몫 이상의 것을 탐내는 마음을 뜻합니다.
만약 형이 법을 어겨 동생의 몫(1/3)을 아예 주지 않은 정의의 문제였다면,
예수님은 탐심이 아닌
'공의'를 언급하셨을 것입니다.
2.
"나와 나누게 하소서"의 뉘앙스
13절의 "나와 나누게”[“μερίσασθαι
μετ’ ἐμοῦ” (메리사스다이 메트 에무)]라는 표현은 단순히
'내 몫을 달라'는 요구를 넘어,
형과 동등한 위치에서 분할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투영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당시 관습법상 장남이 가문의 대표성을 띠고 재산을 관리하는 구조였는데,
동생은 그 권위 아래 있기보다 독립적인
'반분(1/2)'을 원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나와 나누게”[“μερίσασθαι
μετ’ ἐμοῦ” (메리사스다이 메트 에무)]는 ‘평등한 분배(이등분)를 향한 욕구’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a.
“μερίσασθαι” (메리사스다이): "나누게 하소서"
이 단어는
'나누다, 분배하다'라는 뜻의 동사
'메리조(μερίζω)'의 부정과거 중간태입니다.
중간태의 의미:
헬라어에서 중간태는 주어가
'자기 자신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단순히 법을 집행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나의 유익(나의 몫)이 되도록 나누게 해달라"는 사적인 욕구가 투영된 표현입니다.
분할의 의미:
이는 단순히 관리권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형과 묶여 있는 공동 재산을
'각자의 몫으로 쪼개어(partition)'
나에게 귀속시켜 달라는 강력한 요구입니다.
b.
“μετ’ ἐμοῦ” (메트 에무):
"나와 함께"
이 부분이 질문자님의 해석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문법적 근거입니다.
전치사 메타(μετά) +
소유격: '누구와 함께(with)',
'동반' 혹은 '대등한 관계에서의 참여'를 뜻합니다.
해석의 묘미: 만약 동생이 형에게
"내 몫(1/3)을 주시오"라고 정당한 권리만을 주장했다면,
단순한 여격(emoi,
나에게)을 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나와 함께(with
me) 나누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의미: 이는 형을 가문의 대표자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형과 대등한 파트너(1:1)로 설정하고 재산을 나누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즉, 서열에 따른
2:1 분배가 아닌,
'나와 형이 똑같이'
나누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c.
탐심(Pleonexia)과의 연결
예수님께서 왜 이 요청을 듣고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셨는지 이 구절을 통해 명확해집니다.
질문자는 '법적 정의'를 외치고 있지만,
예수님은 그 단어 선택(메트 에무)
속에 숨겨진
'형보다 더 가지려는 마음'
혹은 '전통적 한계를 넘어서는 소유욕'을 보신 것입니다.
결국 이 구절은
"형의 권위를 부정하고,
내 몫을 형과 똑같이(1/2)
챙기겠다"는 동생의 계산적인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요약하자면: “나와 나누게”[“
μερίσασθαι μετ’ ἐμοῦ” (메리사스다이 메트 에무)]는 단순히 재산을 달라는 말이 아니라,
"형의 기득권을 깨고 나와 동등하게(1:1)
재산을 쪼개게 해주십시오"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지적하신
'탐심'의 실체였던 것입니다.
3.
'어리석은 부자'
비유와의 연결
이어지는 비유(16-21절) 속 부자는 남의 것을 뺏은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자기 소유를 쌓아두는 데만 집중한 사람입니다.
즉,
질문자님의 생각처럼 이 사건의 핵심은
'법적 정당성'의 싸움이 아니라,
'재물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으려는 탐심'의 싸움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요약하자면, 질문자님께서 짚어내신 대로,
그 사람은 예수님을 권위 있는
'랍비'로 이용하여 자기 몫을 법적 기준(1/3)
이상으로 키우려 했거나(1/2),
형의 권위에서 벗어나 재산권을 완전히 독립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비교하고 더 가지려는 마음'을 탐심으로 정의하신 것이죠(인터넷).
(2)
두 번째로,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13-15절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는 말씀에서 “탐심”(15절)이란 헬라어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는 제가 요즘 “광야는 기회의 장소입니다.”란 제목 아래 민수기
20장 2-13절 말씀 중심으로 설교를 하고 있는데 민수기
11장 4절 말씀을 여러분 언급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a)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탐심”이란 헬라어 단어 “πλεονεξίας”(플레오넥시아스)의 어원적 의미는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갈망”입니다[플레온(πλέον,
더 많이/많게) + 에코(ἔχω, 가지다)의 합성어임]. 이 단어는 단순히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태보다 더 많은 몫(more
share)을 가지려는 끊임없는 욕구"를 뜻합니다(고대 헬라 문헌에서 이 단어는
'자신의 정당한 몫을 넘어 더 큰 몫을 차지하려는 탐욕'을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되었습니다)(인터넷).
1.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의 구체적 의미:
전통적 몫(1/3)
vs 탐심의 몫(1/2):
율법이 정한
3분의 1에 만족하지 못하고,
형과 똑같이(1/2)
나누어 '더 많은 몫(plēon)'을 챙기려는 마음이 바로 이 단어의 실체입니다.
관계보다 소유:
형제간의 우애나 가문의 질서보다
'숫자상으로 더 많은 것'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바로
'플레오넥시아'입니다.
2.
영적/도덕적 의미:
"우상숭배"
자기중심적 확장: 이 단어는 단순히 돈을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
자신의 안전과 가치를
'소유의 넉넉함(15절)'에서 찾으려는 태도를 뜻합니다.
신약의 정의: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5에서 이 단어(플레오넥시아)를 사용하여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더 많은 것을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의 진단:
"모든(pasēs) 탐심"
예수님은 본문에서
'파세스(πάσης,
모든 종류의)'라는 수식어를 붙여
"모든 탐심(πάσης
πλεονεξίας)"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형제간의 재산 분쟁뿐만 아니라,
우리 삶 전반에 깔린
"비교를 통해 더 가지려는 모든 마음"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πλεονεξία”(플레오넥시아)(탐심)는 단순히
'도둑질'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몫 이상의 것을 원하는 마음"입니다(인터넷).
(i)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탐심”[헬라어: “πλεονεξία”(플레오넥시아)]와 민수기
11장 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탐욕”[히브리어: “הִתְאַוּוּ תַּאֲוָה”(히트아우 타아바)]과 비교를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을 때 이러한 답변을 얻었습니다(인터넷):
·
누가복음의 플레오넥시아(πλεονεξία)와 민수기
11:4의 히트아우 타아바(הִתְאַוּוּ תַּאֲוָה)는 '욕망'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성격과 방향에서 흥미로운 차이가 있습니다.
1.
민수기
11장 4절의 탐욕:
"타아바(תַּאֲוָ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고기를 요구하며 부린 탐욕입니다.
의미: '타아바'는 강렬한 육체적 욕구,
갈망, 식욕을 뜻합니다.
4절의 히브리어 원문은
'타아바를 욕망했다(hit’awwu ta’awah)'는 강조 표현으로,
"욕심을 몹시 내매"라고 번역됩니다.
특징 (결핍의 과잉):
이미 만나라는 은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애굽)의 자극적인 맛을 그리워하며
'지금 없는 것'에 집착하는 통제 불능의 욕구입니다.
성격: 생존을 넘어선
'감각적 쾌락'과 '불평'이 섞인 욕망입니다.
2.
누가복음
12:15의 탐심:
"플레오넥시아(πλεονεξία)"
유산 분배를 요구한 사람에게 예수님이 지적하신 탐심입니다.
의미:
앞서 살펴본 대로
"더 많이(more)
가지려는 의지"입니다.
특징
(비교의 과잉):
단순히 고기가 먹고 싶은 본능적 욕구가
아니라, 형의 몫과 내 몫을 비교하며 자기 영역을 더 확장하려는
'사회적/계산적' 탐욕입니다.
성격: 소유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존재론적' 탐욕입니다.
3.
두 단어의 비교 분석
민수기 11장 4절의 “탐욕”(타아바)은 현재 주어진 은혜(만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의 자극적인 쾌락을 갈구하는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불평'에 가깝다면,
누가복음 12장 15절의 “탐심”(플레오넥시아)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몫을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계산적이고 존재론적인 탐욕'을 의미합니다.
즉, “탐욕”(타아바)은 결핍에 대한 과도한 보상 심리에서 나오는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의 문제인 반면,
“탐심”(플레오넥시아)은 소유의 넉넉함에서 생명의 안전을 찾으려는
'멈출 줄 모르는 소유욕'의 문제입니다.
4.
종합적 통찰
민수기 11장
4절의 “탐욕”(타아바)이 본능적인 갈구라면,
누가복음 12장15절의 “탐심”(플레오넥시아)은 계산적인 갈구입니다.
'이등분을 원하는 마음'은 민수기식의 굶주림이라기보다,
누가복음식의
"내가 왜 형보다 적게 가져야 하는가?
나도 그만큼(혹은 더)
가질 자격이 있다"는 철저한 자기 중심적 확장성을 보여줍니다.
결국 두 단어 모두
'하나님이 정해주신 또는 허락하신 분복(Portion)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과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욕망을 채우려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불신앙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인터넷).
(b)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눅12:15)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15절).
(i)
여기서 “소유”란 헬라어 단어 “ὑπαρχόντων”(휘파르콘톤)는 “소유물”,
“재산”, “가진 것”을 의미하며,
동사 휘파르코(ὑπάρχω, 존재하다·있다)의 분사형에서 유래한 명사적 표현입니다.
이 단어가 이 구절에서 갖는 의미와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문자적 의미:
직역하면
"그에게 존재하는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추상적인 부가 아니라,
현재 실제로 손에 쥐고 있거나 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구체적인 물건이나 자원을 가리킵니다.
2.
생존을 위한 수단: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종종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나 재산을 뜻할 때 사용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참된 생명이 이러한
'물질적 자원'의 넉넉함에 달려 있지 않다고 경계하셨습니다.
3.
영적 가치와의 대조:
이어지는 누가복음
12장 33절에서도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어,
땅에 있는
'소유(ὑπάρχοντα)'를 팔아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가르침으로 연결됩니다.
즉,
사라지거나 도둑맞을 수 있는 가변적인 지상의 재산을 의미합니다.
4.
결론적으로,”탐심”(15절)이 더 가지려는
'내면의 욕망'이라면, “소유”[“ὑπαρχόντων”(휘파르콘톤)]은 그 욕망의 대상이 되는
'외부의 실제 재산'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외적인 소유가 아무리 풍부해도 그것이 내면의 생명을 보장하거나 정의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하신 것입니다(인터넷).
(ii)
여기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 ‘넉넉하다’라는 헬라어 단어 “περισσεύειν”(페릿세우에인)는 단순히
'많다'는 뜻을 넘어,
"잔의 물이 넘쳐흐르듯 남는 것",
"필요한 양보다 훨씬 더 초과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이 단어는 일상적인 생활을 위해 필요한 수준을 넘어서서
'쌓아두고 남는 재산'을 뜻합니다(인터넷).
·
일상적인 필요를 넘어
'쌓아두고 남는 재산[“περισσεύειν”(페릿세우에인)]은 유산 문제와 결합할 때 단순한 경제적 풍요를 넘어 심각한 영적·관계적 위험을 초래합니다. 그 위험성을
3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인터넷):
1.
관계의 파괴:
'형제'가 '경쟁자'가 됨
유산이 '생활을 위한 수단'을 넘어
'더 많이 가져야 할 전유물'이 되는 순간,
가장 가까운 혈연관계는 수치와 계산의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단절: 누가복음 12장의 질문자처럼
"내 형을 명하여"라고 말하는 순간,
형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내 몫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탐심의 전염:
재산이 넘쳐나면(과잉) 그것을 지키고 더 키우려는 욕구 때문에 가족 간의 신뢰보다 법적 공방과 원망이 앞서게 됩니다.
2.
생명의 착각:
'소유'를 '존재'로 오해함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가장 큰 위험은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는 진리를 잊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짜 안전감: 재산이 쌓여 넘치면(페릿세우에인), 사람은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2:19)라고 스스로를 속입니다.
우상화: 유산으로 받은 '남는 재산'이 자신의 미래와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순간,
하나님 대신 재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3.
영적 어리석음:
'결산'의 때를 망각함
넘치는 재산은
'오늘 밤'
내 영혼을 도로 찾으실 수 있다는 삶의 유한성을 가립니다.
곳간만 키우는 인생:
필요 이상의 유산에 집착하는 사람은 정작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상태(눅 12:21)가 됩니다.
목적 상실:
유산은 원래 다음 세대를 위한 축복의 통로여야 하지만,
과도한 소유욕은 그것을 자기만을 위한
'거대한 곳간'으로 변질시킵니다.
요약: 유산 문제에서 '쌓아두고 남는 재산'에 집착하는 것은,
형제라는 '현재의 복'을 버리고,
재물이라는 '가짜 미래'를 선택하는 어리석음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유산을 똑같이 나누느냐의 비율보다,
그 재산 때문에 당신의 영혼과 형제 관계를 잃어버리는 위험을 가장 경계하신 것입니다(인터넷).
-
“재산이나 유산 때문에 형제 관계를 잃어버리는 것은 성경적·유교적 관점,
그리고 인륜적인 측면에서
'본말(本末)이 전도된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설명: “본말전도(本末顚倒)”라는 사자성어는 사물의 중심이 되는 뿌리(本)와 지엽적인 끝부분(末)이 뒤바뀌었다(顚倒)는 뜻입니다. 유산 문제와 관련하여
'본말이 전도된 비극'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근본(뿌리)과 수단(끝)의 역전
본(本, 뿌리): 가족, 형제간의 우애, 부모님이 물려주신 사랑과 가문의 정신입니다.
이것은 삶을 지탱하는 본질입니다.
말(末, 끝): 유산, 즉 돈이나 토지 같은 재산입니다.
이것은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부차적인 수단일 뿐입니다.
비극: 더 많은 재산(末)을 차지하기 위해 정작 소중한 형제 관계(本)를 끊어버리는 것은,
뿌리를 잘라내고 나뭇가지를 얻으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인터넷)].
1.
'수단'을 위해
'목적'을 버리는 모순
재산은 원래 가족의 평안과 생존을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유산 때문에 형제와 등을 지는 것은 수단(돈)을 얻기 위해 존재의 이유이자 목적인 가족(관계)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성경은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고 경고합니다.
2.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의 맞교환
재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페릿세우에인(넘쳐나는 소유)'은 오늘 밤이라도 안개처럼 사라질 수 있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형제: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평생,
그리고 신앙적으로는 영원히 이어질 소중한 가치입니다. 유산 분쟁은 잠시 머물다 갈
'재물'을 차지하기 위해 평생을 함께할
'동역자'를 영구히 삭제해버리는 영적 어리석음입니다.
3.
하나님 나라(또는 가문의 가치)의 훼손
신앙적 관점: 예수님은 형제와 화해하지 않은 채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마
5:23-24). 유산 때문에 갈라선 형제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클레로노미아)을 누릴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유교적 관점: 유교에서도 효(孝)의 완성은 형제간의 우애인 제(悌)로 이어집니다.
부모가 남긴 유산 때문에 자녀들이 싸우는 것은 부모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가장 큰 불효(不孝)로 간주됩니다.
4.
탐심이 낳은
'고립'이라는 감옥
질문자님이 지적하신 대로
'이등분'을 고집하여 형보다 더 많은 몫을 챙겼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풍요 속의 고립'입니다. 곳간은 넘치게 채웠으나(페릿세우에인), 그 곁에는 함께 웃어줄 형제가 없습니다.
결국 그 재산은 그를 지켜주는 성벽이 아니라,
그를 타인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감옥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유산 때문에 형제 관계를 잃는 것은 ‘가장 비싼 값을 치르고 가장 무가치한 것을 사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신 이유는,
그 탐심이 결국 우리를 가장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단절시키고 영혼을 빈사 상태로 몰아넣기 때문입니다”(인터넷).
(c)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눅12:13)하고 말한 사람에게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14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i)
예수님의 이 답변은 질문자의 잘못된 동기와 예수님의 사명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 의미를 세 가지 핵심으로 정리한 것입니다(인터넷):
1.
세속적 분쟁의 도구가 되기를 거부하심
당시 랍비들은 율법에 근거해 유산 분쟁을 중재하는 법적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그저
'재산권 다툼을 해결해 주는 세속적 판사'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차단하신 것입니다.
질문자가 예수님을
'선생님(랍비)'이라 부르며 형에게 명령해달라고 한 것은,
예수님의 영적 권위를 자신의 경제적 이득(이등분 탐심)을 위해 도구화하려는 심보였습니다.
2.
문제의
'현상'보다 '뿌리'를 보심
예수님은 재산을 1/3로 나누느냐,
1/2로 나누느냐는
'물건 나누는 일(메리스텐)' 자체보다, 그 요구를 하게 만든 마음속의
'탐심'이 훨씬 더 큰 문제라고 보셨습니다.
재산을 정확히 나눠준다고 해서 그 형제의 갈등이나 욕심이 사라지지 않음을 아셨기에,
겉으로 드러난 증상(유산 분배)을 고치기보다 근본적인 병인(탐심)을 치료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를 선포하심
예수님의 사명은 땅의 유산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세웠느냐"라는 질문은,
예수님이 세상의 법적 질서 위에 군림하여 강제로 재산을 배분하는 통치자가 아님을 시사합니다.
예수님은 강제적인
'명령'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탐심을 버리고 사랑으로 화해하는 자발적인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원하셨습니다.
요약: 예수님의 말씀은 "나는 너의 탐심을 만족시켜 주는 재판관이 아니다.
너의 생명은 그 재산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니,
재산을 나누기 전에 네 마음속의 탐심부터 제거하라"는 준엄한 경고입니다(인터넷).
·
우리 마음 속에 재산에 대한 탐심을 어떻게 제거해야 할까요?
“마음속 재산에 대한 탐심(플레오넥시아)을 제거하는 것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를 넘어,
가치관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합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지침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자족(Contentment)'의 비결을 배우십시오
탐심의 가장 강력한 해독제는 자족입니다.
지침: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7-8).
실천: '더 많이(More)'를 외치는 세상의 소리 대신,
'이미 충분하다(Enough)'는 감사의 고백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2.
소유의
'청지기(Steward)'
의식을 가지십시오.
재산을 내 소유가 아닌,
하나님이 잠시 맡기신 것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침: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 6:17).
실천: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버리면,
유산 분배 과정에서도
'내 권리'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게 됩니다.
3.
'나누는 삶(Generosity)'을 통해 탐심의 뿌리를 자르십시오
탐심은 움켜쥘 때 강해지고,
손을 펼 때 약해집니다.
지침: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8).
실천: 예수님은 탐심을 경계하신 후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눅 12:33)고 하셨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구체적으로 나누는 행위는 재물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실제적인 훈련입니다.
4.
'생명의 본질'을 날마다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대로,
소유가 내 생명을 연장하거나 구원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지침: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실천: '오늘 밤 내 영혼을 도로 찾으신다면 이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입니다(눅 12:20).
5.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십시오.
마음의 빈 공간을 재산으로 채우려 하면 탐심이 생깁니다.
그 공간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야 합니다.
지침: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1).
실천: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는 영적 자산을 늘리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탐심은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더 고귀한 가치(하나님 나라와 형제 사랑)로 마음을 채움으로써 밀어내는 것입니다.
유산 문제 앞에서
"내가 형제보다 더 가져야 한다"는 마음이 들 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영원한 기업은 무엇인가?"를 먼저 질문해 보시길 권합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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