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기초적인 요구'를 다 보고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 기초적인 요구 ' 를 다 보고 알고 계십니다 .         “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누가복음 12:29-31).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장 29-31 절 말씀을 묵상할 때 제일 먼저 헬라어 성경으로 읽을 때 29 절을 시작하는 “Κα ὶ ”( 카이 ) 라는 접속사의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   (a)     한국어 성경 개역개정과 개역한글에는 이 “Κα ὶ ”( 카이 ) 라는 단어가 번역이 되있지 않지만 현대인의 성경과 공동번역은 “ 그러니 ” 라고 번역을 했고 새번역은 “ 그러므로 ”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   (i)                       제가 이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개역개정으로 29 절 말씀을 읽었을 때 “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 ” 고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앞서 말씀하신 내용과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어쩌면 원어 헬라어 성경에는 예수님의 앞서 ...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기초적인 요구'를 다 보고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필요한 '기초적인 요구'

보고 알고 계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누가복음 12:29-31).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29-31 말씀을 묵상할 제일 먼저 헬라어 성경으로 읽을 29절을 시작하는 “Κα”(카이)라는 접속사의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a)    한국어 성경 개역개정과 개역한글에는 “Κα”(카이)라는 단어가 번역이 되있지 않지만 현대인의 성경과 공동번역은 그러니라고 번역을 했고 새번역은 그러므로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i)                      제가 단어에 관심을 갖게 이유는 개역개정으로 29 말씀을 읽었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앞서 말씀하신 내용과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어쩌면 원어 헬라어 성경에는 예수님의 앞서 하신 말씀과 29절부터 하시는 말씀과 연결시켜주는 접속사가 있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제가 헬라어 성경을 찾아 보니까 “Κα”(카이)라는 접속사가 있길래 인공지능(AI)에다가 12:29에서 말씀하고 있는 Κα라는 접속사의 의미는?”이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얻은 답변입니다:

 

누가복음 12 29절에 쓰인 헬라어 접속사 '카이(Κα)' 문맥상 앞서 언급된 내용과 뒤따르는 교훈을 강하게 연결하며, 의미를 '심화 확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구절에서 '카이' 다음과 같은 신학적·문법적 의미를 지닙니다.

 

1.       연결과 강조의 의미 ("그리고 또한")

 

문맥적 연결: 앞서 공중의 새와 백합화를 기르시는 하나님의 돌보심( 12:24-28) 이어, "그리고(Κα) 너희는..."이라며 결론적인 교훈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강조: 단순히 문장을 잇는 수준을 넘어, 하나님이 미물도 입히시니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성도가 가져야 마땅한 자세를 강조합니다.

 

2.       금지의 대조적 강조

 

부정적 상관 관계: 12: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Κα μ ζητετε)..." 시작합니다.  여기서 '카이' 앞의 긍정적 돌보심과 대조하여 "그렇기에 너희는 세상 사람들처럼 구하지 말아야 한다"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3.       '카이' 일반적 기능과 구절에서의 특수성

 

순접적 기능: 헬라어에서 '카이' 'and'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이지만, 구절에서는 앞선 비유(백합화, )에서 도출된 필연적인 결과를 도입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종속적 의미: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전제되었을 비로소 "먹고 마시는 것을 구하지 않는 상태" 나아갈 있음을 나타냅니다.

요약하자면, 12:29 Κα 하나님의 신실하신 공급하심을 근거로 삼아, 제자들이 세상적인 염려에서 벗어나야 함을 선포하는 '결정적 전환과 확신' 접속사라 있습니다”(인터넷).

 

(2)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신 공급하심을 확신하지 못하기에 세상적인 염려를 한다는 것입니다. 

 

(a)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이미 번이나 하셨습니다: (1)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2) (직설적 명령), (2) “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키를 자라도 더할 있느냐”(25) (반문 형식의 강조), (3)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26) (염려의 무익함 강조). 

 

(i)                      우리가 이미 묵상했듯이 여기서 사용된 염려하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μεριμνάω”(메림나오)로서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적 의미는 단순히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흔들려 불안해하고 마음이 분산된 상태를 말합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염려하는 습관을 멈추라(22), 염려를 계속하고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라(25), 현재 처해 있는 염려의 상태의 무익함을 강조하셨습니다(26)(인터넷).

 

(b)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29절에서는 염려하지 말라’[예수님께서는 단어를 누가복음 12 22, 25, 26절에서만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11절에서도 사용하셨음(도합 4번임)]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근심하지도 말라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i)                      여기서 근심하지 말라 헬라어 단어는 “μετεωρίζω”(메테오리조)로서 앞서 언급된 22, 25, 26절의 “μεριμνάω”(메림나오)(염려)와는 다른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인터넷):

 

1.       “μετεωρίζω”(메테오리조)(근심하다)라는 단어의 의미

 

어원적 의미: '높이 올리다'라는 뜻의 '메테오로스(μετέωρος)'에서 유래했습니다.  현대 영어 단어인 'Meteor(유성, 별똥별)' 어원이기도 합니다.

 

비유적 의미: 배가 바다 위에서 파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있는 상태, 혹은 마음이 공중에 떠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상태' 묘사합니다.

 

2.       문맥적 해석 ("마음을 띄워 두지 말라")

 

단어는 당시 천문학이나 기상학적 현상을 설명할 때도 쓰였는데,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뉘앙스를 가집니다.

 

불안과 초조: 내일 일을 없어 마음이 허공에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심리 상태입니다.

 

지나친 기대나 걱정: 세상적인 욕심 때문에 마음이 들떠 있거나, 반대로 닥치지 않은 일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하며 평안을 잃은 상태를 금지하시는 것입니다.

 

3.       “μεριμνάω”(메림나오)(염려)“μετεωρίζω”(메테오리조)(근심하다) 차이

 

“μεριμνάω”(메림나오)(염려)(22, 25, 26):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분열) 초점이 있습니다.

 

“μετεωρίζω”(메테오리조)(근심하다)(29): 마음이 정착하지 못하고 ' 떠서 흔들리는 '(불안정) 초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음이 세상 염려로 갈라지지도 말고(메림나오), 닥칠 일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지도 말라(메테오리조) 경계하신 것입니다(인터넷).

 

(3)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신 공급하심을 확신하지 못하기에 무엇을 먹고 마실까 염려 가운데 구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 구하는 입니다.

 

(a)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그러니 너희는 먹고 마시는 것을 구하지 말고 이런 일로 걱정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모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 구하는 것이다”(현대인의 성경)](12:29-30).

 

(i)                      저는 말씀을 묵상할 구하다라는 헬라어 단어 πιζητοσιν”(에피제투신)(30)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       누가복음 12 30절에 사용된 πιζητοσιν”(에피제투신) 찾다”, “구하다라는 뜻의 기본 동사 “ζητέω”(제테오) 접두어 πί”(에피) 붙은 형태입니다.  단어는 단순히 무엇을 찾는 행위를 넘어 다음과 같은 강한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인터넷):

 

1.       "간절히, 필사적으로 구하다"

 

강조의 의미: 접두어 πί”(에피) 방향성과 강도를 더해줍니다.  따라서 끈덕지게 매달리다” “열성을 다해 추구하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삶의 목적: 세상 사람들이 의식주 문제(무엇을 먹고 마실까) 해결하는 것을 인생의 최우선 순위이자 전부로 삼고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2.       문맥적 의미: "이방인들의 태도"

 

예수님은 "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πιζητοσιν)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생존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물질적인 가치에 집착하는 모습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백성들(이방인)' '제자(하나님 자녀)' 결정적인 차이를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가' 두셨습니다.  그들이 물질적 가치에 집착(에피제테오) 수밖에 없는 심리적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늘 아버지' 부재

 

이방인들에게는 삶을 책임져 절대적인 보호자, '아버님'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나를 돌보는 상위 존재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생존의 모든 책임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

 

삶이 전적으로 노력과 비축한 재물에 달려 있다고 믿으면, 자연스럽게 '강박적 집착' 생깁니다.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생존이 위협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29절에서 금지하신 '메테오리조(불안해하며 마음이 )' '에피제테오(집요하게 구함)'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3.       하나님은 '너희 아버지'이시다(30 하반절)

 

예수님은 이방인들의 집착을 언급하신 직후 곧바로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것을 아시느니라" 선포하십니다.

 

이방인과 신자의 차이는 '필요한 것이 있느냐 없느냐' 차이가 아니라, ' 필요를 미리 알고 계시는 아버지가 있느냐 없느냐' 차이임을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이방인들의 물질 집착은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영적 고아 상태'에서 오는 생존 본능입니다.  반면 제자들은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신뢰하기에, 생존 에너지를 하나님의 나라(31) 구하는 데로 전환할 있는 자유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3.       “ζητέω”(제테오)(29) vs “πιζητέω”(에피제테오)(30)

 

πιζητέω”(에피제테오)(30): 이방인들이 세상 것들에 대해 보여주는 탐욕스럽고 집착적인 구함입니다.

 

“ζητέω”(제테오)(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ζητετε)."  제자들이 추구해야 본질적인 방향을 말할 때는 기본 동사인 '제테오' 사용하여 대조를 이룹니다. (물론 '제테오' 역시 간절함을 포함하지만, 여기서는 추구하는 대상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제테오(ζητέω)(구하다)라는 헬라어 단어가 오늘 본문 29절과 31절에 “ζητετε”(제테이테)라는 똑같은 형태(현재 명령형) 쓰였졌는데 의미는 "먹고사는 것에 대한 집착을 멈추고(29), 열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지속적으로 구하라(31)" 강한 대조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요약하자면, “πιζητοσιν”(에피제투신)(“간절히, 필사적으로 구하다”)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매몰되어 그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갈구하는 상태를 뜻합니다(인터넷).

 

(4)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우리에게 있어야 것을 알고 계신다는 말씀(30)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다만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우리에게 더하실 것입니다(31).

 

(a)    여기서 저는 헬라어 단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i)                      첫째로, ‘알고 계시다라는 헬라어 단어 “οδεν”(오이덴)입니다(30). 

 

·       하나님의 완전한 통찰과 세심한 돌보심을 동시에 보여주는 매우 위로가 되는 단어입니다.  단어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       직관적이고 완전한 지식

 

어원: '보다'라는 뜻의 '에이도δω)' 완료 형태에서 유래했습니다.  헬라어에서 '오이다' 학습을 통해 점진적으로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보아서 이미 알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의미: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드리기 전에도 우리의 형편과 결핍을 직접 보고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2.       '안다' 것의 신학적 무게

 

단순히 지식적으로 '정보' 알고 있다는 뜻을 넘어 다음과 같은 뉘앙스가 있습니다.

 

공감과 배려: 아버지가 자녀의 배고픔을 아는 것처럼, 우리의 고통과 필요를 자신의 일처럼 깊이 인지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충분한 근거: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사실은, 제자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집요하게 구걸(에피제테오)하거나 불안해(메테오리조)하지 않아도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됩니다.

 

3.       현재적이고 확정적인 상태

시제: 문법적으로 완료 시제지만 현재의 의미로 쓰입니다.  , ‘과거에도 보셨고, 지금도 여전히 속속들이 알고 계신 상태 강조합니다.

 

결론적 의미

예수님은 단어를 통해 '고아의 영성' '자녀의 영성' 가르고 계십니다.

 

고아: 아버지가 없기에 형편을 알릴 대상이 없고, 스스로 생존을 증명해야 합니다.

 

자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오이덴( 보고 알고 계신)' 아버지가 계시기에, 먹고사는 문제보다 높은 가치인 '하나님 나라' 집중할 있습니다.

 

"아심" 전제되었기에 31절에서 "그의 나라를 구하라" 명령이 무리한 요구가 아닌, 신뢰에 기반한 권유가 되는 것입니다”(인터넷).

 

(ii)                    둘째로, ‘너희에게 있어야 (필요한 )’라는 헬라어 단어 “χρζετε”(크레제태)입니다(30).

 

·       단어의 핵심 의미와 뉘앙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절실히 필요하다’ (Necessity)

 

어원: '사용하다, 필요로 하다'라는 뜻의 '크라오마이'에서 유래했습니다.

 

의미: 사치품이나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필수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음식, , 거처와 같이 인간이 살아가는 필요한 '기초적인 요구' 가리킵니다.

 

2.       하나님의 '오이덴(아심)' 연결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이 '크레제테(절실히 필요한 )' 이미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적인 상태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한계와 물질적인 결핍까지도 충분히 인정하고 공감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그런 중요하지 않아라고 무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3.       염려의 정당성(?) 잠재우는 단어

 

우리는 보통 필요하니까 염려하는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어를 통해 너희에게 그게 정말 필요하다(크레제테) 아버지가 이미 알고 계시니(오이덴), 너희는 이상 필요에 매여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논리를 완성하십니다.

 

정리하자면

'크레제테' 우리가 가진 생존의 욕구와 필요가 정당함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자신의 결핍(크레제테)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를 소진하는 대신,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31) 구하는 우선순위의 전환을 이룰 있게 됩니다”(인터넷).

 

(iii)                 셋째로, “πλν”(플렌)(다만)이라는 헬라어 단어입니다(31).

 

·       헬라어 단어는 앞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논의를 한곳으로 모아 '우선순위의 대전환' 선포하는 결정적인 접속사입니다.  단어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인터넷):

 

1.       강한 대조와 전환 ("오직", "오히려", "그것보다도")

 

의미: (30)에서 언급한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방식' 제자들이 취해야 '새로운 삶의 방식' 강력하게 대조합니다.

뉘앙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만, 너희만큼은(but rather) 달라야 한다" 단절과 전환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       '제외' '집중' 의미 ("~ 제쳐두고")

 

어원적 배경: 단어는 ' 많은'이라는 뜻의 '플레온'에서 유래했지만, 문맥상으로는 "다른 모든 것은 일단 젖혀두고 가장 중요한 이것에 집중하라" 의미로 쓰입니다.

 

해석: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염려를 마음의 중심에서 밀어내고(제외),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 가져다 놓으라는 강력한 권고입니다.

 

3.       문맥상의 역할: "삶의 중심 이동"

 

29-30: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하는 '자기 중심적' 생존의 문제.

 

31 (πλν): 하나님의 통치와 뜻을 구하는 '하나님 중심적' 사명의 문제.

 

예수님은 '플렌'이라는 단어 마디로 제자들의 시선을 (생존)에서 하늘(사명) 단번에 끌어올리십니다.

 

요약하자면, '플렌' "너희는 이방인과 다르니, 이제 그런 염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오직(rather) 이것에만 전념하라" 단호한 명령의 전환점입니다(인터넷).

 

(b)    그러면 우리가 오직 전념해야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여라”(12:31, 현대인의 성경)인데 의미는 무엇입니까?  [참고: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i)                      여기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킵니다(다국어성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현대인의 성경)“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면 벌써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있는 것이다”](11:20; 참고: 12:28).  말씀을 보면 2000 전에 예수님께서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을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임했다는 것을 수가 있습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다는 것을 과거형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7 2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미래형으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09, 11절을 보면 성경은 “…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9), “…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줄을 알라 ..(11)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22 18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현대인의 성경) “나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것을 다시 마시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과거형과 미래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Already) 임했다는 것과 동시에 “아직도”(Not yet) 임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요일5:13) 또한 장차 구원을 받게 것이라는 말씀(8:23, 3:12-14) 더불어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2:12),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형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과 유사합니다[구원의 삼중성(인터넷)].  ,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도 과거, 현재, 미래형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임했을 뿐만 아니라 장차 임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미”와 “아직도” 사이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현재 어떻게살아가야 하느냐 질문할 마태복음 6 33절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신 주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며 또한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1.       왕이신 주님의 통치 (Lordship)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의 개념보다 '통치(Basileia)' 개념이 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삶의 보좌를 주님께 내어드리고, 뜻이 아닌 주님의 다스림이 가정, 직장, 그리고 마음속에 임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2.       말씀에 대한 복종 (Obedience)

 

왕의 통치는 '말씀' 통해 나타납니다.  누가복음 12 31절에서 '구하라' 명령(제테이테) 현재 명령형으로, '지속적으로 순종하는 ' 의미합니다.  단순히 입술로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선택지에서 하나님의 법과 말씀의 가치를 선택하며 사는 태도입니다.

 

3.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는 (Empowerment)

 

의지만으로는 주님의 통치에 온전히 복종할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사도행전과 연결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먹고사는 염려(메림나오) 이기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쫓을 있는 힘은 오직 성령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결론적 의미: 결국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이란, "나의 생존(먹고사는 문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고, 나는 오직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과 사명에 전념하는 " 말합니다(인터넷).

 

·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의를 행한다’는 의미입니다(요일2:29).  의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나라의 왕이신 의로우신 예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6:33).  , 의를 행한다는 것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요일2:1) 행하시는 대로 우리도 행하는 것입니다(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대로 우리고 행해야 하는데(6)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7-11).  예수님의 이중계명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7-40).  

 

먼저 의를 행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중 계명 번째 계명대로 하나님을 우리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계명을 요한일서의 관점으로 말한다면 요한일서 2 15-17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아버지께로부터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것이라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의미는 지나가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의를 행하는 것이란 첫째로 지나가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대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 뜻을 행하면서 사는 것입니다(2:15-17)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4:3)].  다음에 의를 행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중계명 번째 계명대로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계명을 요한일서의 관점으로 말한다면 요한일서 2 3-11절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데 말씀을 요약한다면 형제를 사랑하고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계명의 순종하여 형제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습니다(5).  그리고 그는  가운데 거하여[“빛 가운데 살기 때문에”(현대인의 성경)] 자기 속에 거리낄 만한 것이 없습니다(10, 현대인의 성경).

 

(c)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서 살면(12:31; 6:33) 예수님께서는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12:31) 약속하셨습니다.

 

(i)                      여기서 "더하시리라"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προστιθήσεται”(프로스티데세타이)입니다.   단어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아주 풍성하고 넉넉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인터넷):

 

1.       단어의 구성과 의미

 

어원: '~곁에(πρός)' '두다, 놓다(τίθημι)' 합성어인 '프로스티데미'에서 왔습니다.

 

의미: 원래 있던 것에 '추가로 덧붙여 주다', 혹은 '덤으로 얹어 주다'라는 뜻입니다.

 

2.       "부록" 또는 "보너스" 개념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 모든 ) 인생의 '본론'이라고 생각하며 매달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본론'이고, 우리가 염려하는 의식주 문제는 본론에 딸려 오는 '부록'이나 '(Bonus)'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 왕이신 주님의 통치를 구하며 , 주님은 우리 삶에 필요한 것들을 마치 덤을 얹어주는 상인처럼 기꺼이 더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3.       수동태의 의미 (하나님의 주권)

 

단어는 헬라어 문법상 미래 수동태입니다.

 

우리가 애써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고 있을 하나님에 의해(by God) 우리 삶에 선물처럼 주어지는 결과임을 강조합니다.

 

정리하자면, 예수님은 우리의 시선을 '생존'에서 '사명'으로 옮기라고 도전하십니다.  "너희가 나의 (하나님 나라) 우선하면, 나는 너희의 (먹고사는 문제) 덤으로 책임지겠다" 거룩한 계약의 말씀입니다(인터넷).

 

·       우리가 실천해야 삶의 태도를 가지로 요약하여 제안해 드립니다(인터넷):

 

1.       마음의 방향을 수정하십시오 (Stop & Shift)

 

요약: 세상 사람들처럼 먹고사는 문제에 집착(에피제테오)하거나, 내일 일을 몰라 마음이 공중에 것처럼 불안(메테오리조)해하는 습관을 멈추어야 합니다.

 

적용: 염려가 몰려올 "이건 하나님 없는 이방인들의 방식이다"라고 선포하십시오. 내가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형편을 보시고 아시는(오이덴)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2.       우선순위를 단호하게 재정립하십시오 (The 'But Rather' Life)

 

요약: "오직(플렌)"이라는 단어처럼, 삶의 우선순위를 '생존'에서 '사명'으로 옮겨야 합니다.

 

적용: 매일 아침 "오늘 어떻게 살아남을까?"라는 질문 대신, "오늘 삶에서 주님의 다스림(통치) 나타나려면 내가 무엇에 순종해야 할까?" 먼저 질문하십시오.   생각과 계획보다 주님의 말씀(하나님 나라) 앞세우는 것이 '구하는(제테오)' 삶의 시작입니다.

 

3.       ''으로 주시는 은혜를 신뢰하며 사십시오 (Trust the Bonus)

 

요약: 내가 하나님의 일을 우선할 , 하나님께서 삶의 필요를 수동태적 은혜(프로스티데미) 채워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적용: 필요한 (크레제테) 생길 때마다 그것을 얻으려 발버둥 치기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머무르십시오.  "하나님, 제게 이것이 필요한 것을 아시지요?  저는 오늘 주님의 나라를 구하는 일에 집중하겠습니다"라고 맡겨 드리는 배짱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인터넷).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