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누가복음 11:49-51).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장 49-51절 말씀을 묵상할 때 먼저 헬라어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리하였을 때 제일 먼저 관심을 갖게 된 문구는 바로 “διὰ
τοῦτο”(디아 투토)(49절)입니다.
(a)
한국 성경에는 “그러므로”라고 번역을 했는데 그 헬라어를 직역하면 “이거 때문에”
또는 “이러므로”라는 뜻을 가진 접속사로서 47-48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연결을 해줍니다(참고: 인터넷).
(i)
예수님께서는 47-48절에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조상들이 죽인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며 겉으로는 존경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조상들의 악행에 동조하고 있음을 지적하셨었는데 “διὰ τοῦτο”(디아 투토)(“그러므로”)는 바로 이러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거부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가 심판의 메시지(선지자와 사도들을 보내어 박해받게 함으로써 그 세대에게 책임을 묻는 것)를 내놓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인터넷).
·
한 마디로 말하면,
누가복음 11장 49절의 “διὰ τοῦτο”(디아 투토)(“그러므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영적 거부와 위선적인 태도를 원인으로 지목하며,
그 결과로 닥칠 하나님의 섭리적 계획과 심판을 연결하는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합니다(인터넷).
(2)
두 번째로 제가 관심을 갖게 된 헬라어 문구는 바로 “ἡ σοφία τοῦ
Θεοῦ”(헤 소피아 투 테우)로서 한국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a)
성경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인터넷):
(i)
첫째 해석:
예수 그리스도 자신
·
가장 보편적인 해석 중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를 예수님 자신으로 보는 것입니다.
-
마태복음
23장 34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을 보내매"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은 이를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라고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지혜임을 암시합니다.
n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4절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ii)
둘째 해석:
의인화된 하나님의 속성
·
하나님의 지혜를 마치 살아있는 인격체처럼 묘사한 의인화(Personification)
기법으로 보기도 합니다.
-
구약의 잠언(8장 등)에서 “지혜”가 길거리에서 외치며 사람들을 초청하듯,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혜로운 경륜과 계획에 따라 선지자들을 보내셨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n
이는 인간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메신저를 보내 구원하려 하시며,
동시에 그 거부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지혜를 의미합니다(인터넷).
(b)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1.
성경 본문이 전하는 직접적인 말씀
(심판과 경고)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장 59절에서 '하나님의 지혜'는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포기하지 않는 사랑:
하나님은 인간이 거부할 것을 아시면서도 끊임없이
'선지자와 사도들'을 보내십니다.
이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집요한 노력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완악함에 대한 폭로:
하지만 인간은 그들을 죽이고 박해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정확히 꿰뚫어 보시고 이를 드러내십니다.
공의로운 책임:
결국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의로운 피의 대가를 그 세대가 담당하게 될 것임을 선언하며,
영적인 각성을 촉구합니다.
2.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
(지혜의 음성)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겉치레보다 중심을 보라":
조상들의 무덤을 꾸미며 자신들은 의롭다고 착각했던 율법사들처럼,
우리도 종교적인 형식 뒤에 숨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십니다.
"보내는 자를 영접하라":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말씀과 사람,
환경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십니다.
지혜는 그 음성을 거부하지 않고
'지금' 영접하는 것입니다.
"지식의 열쇠를 바르게 사용하라":
성경 지식을 남을 비판하거나 가로막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이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로 사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에게
"너희의 위선을 멈추고,
내가 보내는 진리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심판이 아닌 생명의 길로 나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인터넷).
(3)
세 번째로,
제가 관심을 갖게 된 헬라어 단어는 “Ἀποστελῶ”(아포스텔로)(“내가 … 보내리니 …”(눅11:49)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헬라어 단어에서 파생된 것인 “사도”[“ἀπόστολος” (아포스톨로스)]이기 때문입니다.
(a)
이 “Ἀποστελῶ”(아포스텔로)란 단어는 단순히
"보낸다"는 의미를 넘어,
이 단어가 이 문맥에서 갖는 중요한 신학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전권을 위임받은 파송
어원적 의미:
'아포스텔로'는 단순히 물건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과 전권(Authority)을 부여받은 대리인을 보낼 때 주로 사용됩니다[여기서 “사도”를 뜻하는 “ἀπόστολος”(아포스톨로스)가 유래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내가 보내리니"라는 선언은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인간이 거부할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메신저들을 파송하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2.
미래적 선포와 역사적 연속성
미래 시제:
이 말씀은 구약의 선지자들뿐만 아니라,
곧 있게 될 예수님의 제자들(사도들)과 장차 오게 될 복음 전파자들까지 포함하는 미래적 사건을 가리킵니다.
박해의 예견:
하나님께서 보낸 자들이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하고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리심으로써 제자들이 겪을 고난이 하나님의 섭리 밖에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3.
'아포스텔로'와 '펨포'의 차이
헬라어에는 '보내다'라는 뜻의 또 다른 단어
'펨포(πέμπω)'가 있지만,
본문에서 '아포스텔로'를 사용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펨포:
보내는 행위 그 자체나 보냄을 받은 자의
'이동'에 초점.
아포스텔로: 보낸 사람의
'권위'와 보냄을 받은 자의
'사명(Mission)'에 초점.
요약하자면, '아포스텔로(ἀποστελῶ)'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위를 부여한 대변인들을
"반드시,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파송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인터넷).
(i)
예레미야
25장 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종들을 “끊임없이”(부지런히)(again
and again) 보내십니다. 보내주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5절)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인 목사님들을 우리에게 부지런히 보내시사 계속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각자 악한 길에서 돌아서고 너희 행실을 고치며 하나님과 재물(돈)을 겸하여 섬기지 말아라.’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고 있습니다(참고: 렘
35:14-15, 현대인의 성경).
(4)
네 번째로,
저는 “ἀποκτενοῦσιν καὶ διώξουσιν”(아포크테누신 카이 디옥수신)(“죽이며 또 박해하리라”)(눅11:49)란 헬라어 문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a)
이 헬라어 문구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이 겪게 될 비극적인 운명을 두 가지 동사로 선포한 것입니다. 이 표현의 핵심 의미와 문법적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단어별 의미
“ἀποκτενοῦσιν”(아포크테누신): '죽이다'라는 뜻의
'아포크테이노(ἀποκτείνω)'의 미래 능동태입니다.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살해당함”을 의미하며,
복음의 증인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을 예고합니다.
“διώξουσιν”(디옥수신): '뒤쫓다', '박해하다'라는 뜻의
'디오코(διώκω)'의 미래 능동태입니다.
사냥꾼이 짐승을 끝까지 추격하듯,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몰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미래 시제의 강조:
"반드시 일어날 일"
두 단어 모두 미래형으로 쓰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그럴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가 내다본 역사적 필연성을 나타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하늘의 지혜(복음)를 전할 때,
세상은 반드시 저항(박해와 살해)할 것임을 미리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3.
'선지자'와 '사도'의 운명
과거의 선지자들: 이미 조상들에 의해
'아포크테누신(죽임)' 당했습니다.
미래의 사도들: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똑같이
'디옥수신(박해)' 당하고 죽임당할 것임을 연결합니다.
예수님은 이 두 단어를 통해 구약의 박해 역사가 신약의 사도들에게도 이어질 것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요약하자면, 이 문구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이 세상에서 환영받는 대신
"목숨을 잃고(살해), 끊임없이 쫓겨 다닐(박해)" 고난의 길을 걷게 될 것임을 매우 단호하게 예언하는 말씀입니다(인터넷).
(5)
다섯 번째로,
저는 “ἵνα
ἐκζητηθῇ τὸ αἷμα
πάντων τῶν προφητῶν”(히나 에크제테데 토 하이마 판톤 톤 프로페톤)(“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눅11:50)란 문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a)
이 말씀은 앞서 언급된 박해의
'목적'과 그에 따른
'준엄한 심판'을 선언하는 핵심 문구입니다(인터넷):
1.
주요 단어 분석
ἵνα
(히나):
"~하기 위하여"라는 뜻의 접속사입니다.
여기서는 박해의 결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어지는 필연적인 목적을 나타냅니다.
ἐκζητηθῇ (에크제테데): '찾다', '요구하다'라는 뜻의
'에크제테오(ἐκζητέω)'의 부정과거 수동태 가정법입니다.
성경적 용례로 "피 값을 되찾다"
혹은 "심판을 위해 책임을 묻다"라는 강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τὸ
αἷμα (토 하이마):
"그 피"를 뜻하며,
억울하게 죽임당한 자들의 생명을 상징합니다.
πάντων τῶν
προφητῶν (판톤 톤 프로페톤):
"모든 선지자들의"라는 뜻입니다.
2.
문구의 핵심 의미:
"피의 책임을 묻다"
이 문장은 "모든 선지자의 피 값을
(이 세대에게)
찾게 하려 함이라"고 해석됩니다.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은 의로운 자들의 죽음을 결코 잊지 않으시며,
그 억울한 피에 대해 반드시 법적·도덕적 책임을 물으신다는 선언입니다.
역사적 결산: 창세 이후로 누적된 모든 선지자의 피 값을 바로
'이 세대(예수님을 거부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청구하시겠다는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3.
왜
'이 세대'인가?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조상들의 악행(선지자 살해)을 비판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죽이려 함으로써 그 악행의 정점을 찍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과거의 모든 죄악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책임을 지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요약하자면, 이 문구는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흘려진 모든 의로운 피에 대해
"이제는 그 책임을 반드시 묻고 심판하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냅니다(인터넷).
(i)
여기서 “이 세대”[“τῆς γενεᾶς ταύτης”(테스 게네아스 타우테스)]는 단순히 그 시대에 살았던 일반 사람들을 넘어선 특정한 영적 대상을 지칭합니다. 그들이 왜 그토록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되었는지
3가지 측면에서 정리해 드립니다(인터넷):
1.
지칭 대상:
"복음을 거부하는 종교 지도자와 그 추종자들"
문맥상 이들은 예수님과 논쟁 중이던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었으나,
정작 말씀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죽이려 모의하고 있었습니다.
2.
왜 그들이
'모든 피 값'을 담당해야 하나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 세대'는 인류 죄악의
'정점'이자 '완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특권과 거부:
그들은 구약의 모든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를 직접 눈앞에서 보고도 거부했습니다.
이는 앞선 세대들보다 훨씬 더 큰 빛(진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큰 어둠을 선택한 죄입니다.
악순환의 종착역: 조상들은 선지자들을 죽였고,
이 세대는 그 선지자들이 예언한 주인공(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인류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를 완성했습니다.
따라서 창세 이후 쌓여온 모든 죄의 분량이 이 세대에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3.
역사적 성취:
"실제적인 심판"
성경에서 선포된 이 무서운 책임은 역사 속에서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예언(AD 30년경) 이후 약
40년 뒤인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당시 예루살렘에서 죽임당한 유대인의 수가 무려
110만 명에 달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경고하신
'이 세대가 담당해야 할 피 값'에 대한 역사적 실현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세대”는 하나님의 가장 큰 지혜(예수님)를 목격하고도 가장 완악하게 거절한 세대였기에,
인류 역사가 흘려온 모든 의로운 피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지게 된 것입니다(인터넷).
(6)
여섯 번째로,
저는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눅11:51)[“ἀπὸ αἵματος
Ἅβελ ἕως αἵματος Ζαχαρίου τοῦ ἀπολομένου μεταξὺ τοῦ
θυσιαστηρίου καὶ τοῦ οἴκου”(아포 하이마토스 아벨 헤오스 하이마토스 자카리우 투 아폴로메누 메탁쉬 투 뒤시아스테리우 카이 투 오이쿠)]라는 말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a)
왜 예수님께서는 “아벨의 비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i)
“예수님이 언급하신 ‘아벨의 피부터 사가랴의 피까지’는 구약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순교의 역사'를 상징하는 매우 정교한 표현입니다.
1.
왜 하필
'아벨'과 '사가랴'인가요?
당시 유대인들이 보던 히브리 성경(구약)의 편집 순서 때문입니다.
아벨 (창세기): 히브리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 나오는 첫 번째 순교자입니다(창 4:8).
사가랴 (역대하): 히브리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인 역대하에 나오는 마지막 순교자입니다(역대하
24:20-22).
의미: "창세기부터 역대하까지",
즉 구약 성경 전체에 기록된 모든 의로운 죽음을 통틀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A부터 Z까지와 같은 표현입니다.)
2.
사가랴 죽음의 특징
(눅 11:51)
예수님은 사가랴가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사가랴는 당시 왕과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꾸짖다가 성전 뜰 안에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갚아) 주옵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부르짖음이 응답되어 그 세대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3.
이 말씀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준 충격
역사의 반복: 그들은 조상들이 죽인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며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너희도 똑같이 사도들을 죽이고 박해할 것이니,
아벨부터 사가랴까지의 모든 피 값을 너희 세대가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예언적 성취: 실제로 이 말씀을 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였고,
이후 스데반과 야고보 등 사도들을 박해했습니다.
요약
이 표현은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거절하고 죽여온 인간의 죄악이 이제 너희 세대에서 극에 달했다’는 준엄한 심판의 메시지입니다”(인터넷).
(7)
마지막 일곱 번째로,
저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눅11:51)라는 말씀의 헬라어 문장인 “ναί, λέγω ὑμῖν, ἐκζητηθήσεται ἀπὸ τῆς
γενεᾶς ταύτης”(나이 레고 휘민 에크제테데세타이 아포 테스 게네아스 타우테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a)
이 문구는 앞서 언급된 모든 순교자의 피에 대한 최종적인 판결문과 같습니다.
단어별 의미와 신학적 무게를 정리해 드립니다(인터넷):
1.
주요 단어 및 구문 분석
“ναί” (나이):
"그렇다",
"진실로"
단순한 대답이 아니라,
앞의 진술을 강력하게 긍정하고 확증하는 강조어입니다.
마태복음의
'아멘(ἀμήν)'과 같은 무게를 가집니다
“λέγω ὑμῖν” (레고 휘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적 권위를 가지고 선포하실 때 사용하는 관용구입니다.
이 선언이 인간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판결임을 나타냅니다.
“ἐκζητηθήσεται”
(에크제테데세타이):
"(피 값을)
찾으리라 / 요구되리라"
동사
'에크제테오(ἐκζητέω)'의 미래 수동태입니다.
단순히 '찾다'가 아니라,
"반드시 끝까지 추적하여 그 대가를 받아내다"라는 법정적·보응적 의미가 강합니다.
하나님께서 가해자에게 그 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집행하시겠다는 뜻입니다.
“ἀπὸ τῆς
γενεᾶς ταύτης” (아포 테스 게네아스 타우테스):
"이 세대로부터"
심판의 책임을 물을 구체적인 대상을 지정합니다.
당시 예수님을 거부하고 박해하던 종교 지도자들과 그 세대를 지칭합니다.
2.
문구의 핵심 의미
심판의 확정성 (나이, 레고 휘민)
예수님은 "아마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다, 내가 분명히 선언한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 심판이 결코 취소되거나 비껴가지 않을 것임을 확증하셨습니다.
피 값의 청구
(에크제테데세타이)
성경에서 의로운 자의 피는 땅에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아벨의 피처럼).
하나님은 그 호소를 들으시고,
그 피를 흘리게 한 자들에게 생명의 값을 강제로 청구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실현됨을 의미합니다.
책임의 집중 (이 세대)
수천 년간 쌓여온 선지자들의 피 값이 왜 하필
'이 세대'에게 청구되는가?
그것은 이 세대가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임으로써 조상들의 죄를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불신앙의 종착역이 이 세대였기에 심판의 결산도 이 세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요약
이 문구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확언하노니,
창세 이후 모든 의인이 흘린 피에 대한 법적 책임과 형벌이 반드시 지금 이 악한 세대에게 집행될 것이다"라는 준엄한 선언입니다(인터넷).
(i)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 이 세대가 담당하되”(50절),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51절)하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누가복음
11장 50절과 51절에서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ἐκζητηθῇ / ἐκζητηθήσεται)"라는 말씀이 반복되는 것은 성경 사상 매우 이례적이며 강력한 심판의 확증을 의미합니다. 두 번의 반복 속에 담긴 핵심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심판의 절대적 확정성
(이중 인침)
성경에서 중요한 선포를 반복하는 것은 그 일이
"반드시, 지체 없이 일어날 것"임을 뜻합니다(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50절에서는 '목적'(ἵ나, ~하게 하려 함)으로, 51절에서는 '직설적 미래'(ἐκζητηθήσεται, 찾으리라)로 선포하며 심판의 계획과 실행을 동시에 확정 지으신 것입니다.
2.
책임의 중대성:
"인류 죄악의 결산"
왜 '이 세대'에게 두 번이나 강조하셨을까요?
죄의 완성: 아벨부터 시작된 선지자 살해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죽이려는
'이 세대'에서 절정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최종 통첩: 하나님은 오랫동안 참으셨으나,
하나님의 지혜(예수님)를 직접 보고도 배척하는 이 세대만큼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는 공의로운 분노가 담겨 있습니다.
3.
법정적 선언:
"피 값을 청구함"
헬라어 '에크제테오(ἐκζητέω)'는 빚이나 피 값을 끝까지 추적해 받아낸다는 법정 용어입니다.
첫 번째 언급:
창세 이후 모든 선지자의 피 값을 찾기 위함이다.
(심판의 근거)
두 번째 언급: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이 세대에게 찾으리라.
(심판의 집행)
즉, 하나님이 검사가 되어 기소하시고,
재판장이 되어 최종 형량을 확정짓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4.
역사적 성취
(AD 70년)
실제로 이 말씀을 들은 세대는 약
40년 뒤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파괴되는 참혹한 심판을 겪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두 번의 강조'는 그 비극적인 역사를 앞둔 강력한 경고이자 탄식이었던 셈입니다.
요약하자면, 두 번의 반복은
"너희가 쌓은 죄의 분량이 이제 가득 찼으니,
창세 이후의 모든 책임을 너희가 피할 길은 전혀 없다"는 준엄하고도 확실한 최후통첩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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