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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se who are targeting us or The one we are targeting?

Those who are targeting us or The one we are targeting?           “Woe to you experts in the law, because you have taken away the key to knowledge. You yourselves have not entered, and you have hindered those who were entering.” When Jesus went outside, the teachers of the law and the Pharisees began to oppose Him fiercely and to question Him closely on many things, lying in wait to catch Him in something He might say” (Luke 11:52–54).       (1)    As I read today’s passage, Luke 11:52–54, the phrase “lying in wait” (v. 54) made me think of the meditation title, “Those who are targeting us.”   Then, as I reflected further, it occurred to me that there may also be “someone we are targeting.”   So, I titled this meditation: “Those who are targeting us—or the one we are targeting?”   (a)     What does the phrase “lying in wait” in Luke 11:54 actually mean?   I became curious abo...

우리를 노리는 사람들 혹은 우리가 노리는 사람?

우리를 노리는 사람들

혹은

우리가 노리는 사람?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누가복음 11:52-54).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 52-54 말씀을 읽으면서 노리고 있더라”(54) 말씀을 생각할 우리를 노리는 사람들이란 말씀 묵상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그런 생각하게 되었을 저는 우리가 노리는 사람 있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 묵상 제목을 우리를 노리는 사람들 혹은 우리가 노리는 사람?”이라고 정했습니다.

 

(a)    과연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 5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노리고 있더라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저는 원어 헬라어 의미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i)                      헬라어 단어 “θηρεσαί”(테레우사이) 신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여기 누가복음 11 54절에 등장하는 동사로서 사냥감을 붙잡기 위해 사냥하거나, 몰래 뒤를 밟거나, 잠복하여 기다리는 행위를 나타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해하려는 악의적인 음모를 묘사하기 위해 비유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성경 전반에 걸쳐 사냥에 관한 이미지는 흔히 약탈적인 사악함이나 목적을 지닌 추적 행위를 반영하는데, 누가복음의 용례는 명백히 전자에 속하며 진리에 대한 완고한 적대감을 드러냅니다)(인터넷).

 

·       오늘 본문의 맥락에서 단어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책잡으려’ 노리고 있는 상황을 묘사할 사용되었습니다.  , 짐승을 잡기 위해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꼬투리를 잡아 종교적·정치적 올무에 빠뜨리려는 그들의 악의적인 의도를 생생하게 표현한 단어입니다.  요약하자면, 단어는 단순한 경청이 아니라 상대를 파멸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말의 덫’을 놓는 적대적인 행위를 의미합니다(인터넷).

 

-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구실을 붙여 예수님을 잡으려고했다는 마가복음 12 13(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게 됩니다.  마태복음은 “어떻게 하면 말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 있을까 하고 의논”하였다(22:15, 현대인의 성경) 말씀하고 있고, 누가복음은 “그들은 예수님을 세심하게 지켜보다가 첩자들을 보”냈다(20:20, 현대인의 성경) 말씀하고 있습니다.

 

n  마가복음 12 13 현대인의 성경 말씀에 “구실을 붙여”라는 말씀은 개역개정은 “책잡으려 하여”라고 말씀하였는데 말은 “덫을 가지고 짐승을 사로잡는 것을 설명할 사용하는 말”로서(호크마) 마태복음 22 15 현대인의 성경은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였다는 말씀은 개역개정은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말씀도 본래 사냥에 사용되는 말로서 대상에 대해 주도 면밀하게 함정이나 덫을 설치하는 것을 말합니다(호크마).  누가복음 20 20 현대인의 성경 말씀에 “세심이 지켜보다가”란 말씀은 개역개정은 “엿보다가”라고 말씀하였는데 말씀은 주의깊게 몰래 지켜보는 것을 뜻하며 문맥상으로 예수님의 약점을 책잡아 공격하려고 호심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라는 뜻입니다(호크마).

 

·       제가 대하여 말씀 묵상 개를 나눕니다:

 

-            "사람을 죽이는 화살과 " 혀를 가진 "이웃"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유는 "그들은 항상 거짓을 말하고 입으로는" 우리에게 "다정히 말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우리를 "잡을 덫을 놓고 " 때문입니다(예레미야 9 4, 8, 현대인의 성경).

 

n  예레미야 9 8,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혀는 사람을 죽이는 화살과 같다.  그들은 항상 거짓을 말하고 입으로는 자기 이웃에게 다정히 말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그를 잡을 덫을 놓고 있다.  아첨하는 사람의 혀는죽이는 화살과 같습니다.  아첨하는 사람은 입으로 항상 거짓을 말합니다.  자기 입으로 이웃에게 다정히 말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상대방을 잡을 덫을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첨하는 자는 마음으로 거짓을 말합니다(12:2).  그러므로우리는 마음을 품고 우리에게 아첨하는 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아첨하는 자를 경계합니다.

 

-            난폭하고 교만한 악인들은 항상 우리를 넘어뜨릴 악한 음모를 꾸미며, 우리를 잡으려고 덫을 놓고 그물을 치며 길가에 함정을 파며, 그들은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이며, 그들의 혀는 뱀의 혀와 같고 그들의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원하는 것을 허락하지 마시고 그들의 계획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를 그들에게서 구하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길 기원합니다(참고: 시편 140:1-5, 8, 현대인의 성경).

 

-            죽음보다 지독한 것은 마음이 덫이나 그물 같고 손이 쇠사슬과 같은 여자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그런 여자를 피하지만 죄인은 그녀의 덫에 걸리고 맙니다(전도서 7:26, 현대인의 성경).

 

-            성질이 과격한 사람과 내는 사람을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그들을 닮아 우리 영혼이 덫에 걸리고 것입니다(잠언 22:24-25, 현대인의 성경).

 

-            우리보다 강한 우리의 원수들이 우리를 잡으려고 우리를 추격하며 우리 앞에 없이 덫을 놓으므로 우리가 말할 없는 어려움에 처해있으므로 위축되어 절망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감옥에서 끌어내시사 주님의 이름을 감사 찬양케 하시길 간구해야 합니다(참고: 시편 142:1, 6-7, 현대인의 성경).

 

-            만일 우리가 돈을 우상화하여 섬기면 돈이 우리에게 덫이 것입니다(참고출애굽기 23:33, 현대인의 성경).

 

-            예수님은 그들의 정중하고 호의적이며, 간절한 물음 속에 있는 살의와 사악함을 보셨습니다. 이에 대해 마가는 '외식함', 누가는 '간계'라고 표현했습니다( 12:15; 20:23).  그들의 입으로 말한 '외모를 보지 않으시는' 예수님은 당신을 시험코자 하는 그들의 중심을 아셨고 그것을 백성들 앞에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질문이 가지고 있는 함정과 덫을 바로 아셨던 것입니다(호크마).  우리도 사탄과 그의 세력의 함정과 덫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 우리는 사탄의시험”(유혹)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대한 지식을 굽게 합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지식을 구부러트립니다.  사탄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불신하게 만들고 거짓을 믿게 만듭니다.   거짓은 바로 우리가 시련을 당하고 있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유혹하신다는 거짓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시험(시련) 받을 사단의 유혹에 빠져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께 시험을 받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분명히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신하게 만들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려고 애를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유혹을 믿음으로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성경 욥기에 나오는 욥처럼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허락된 사탄의 유혹을 받을 욥처럼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해서는 아니 됩니다(1:22).  오히려 우리는 욥처럼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23:10) 믿음으로 우리가 접하고 있는 시련을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리할 우리는 욥처럼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옵는 축복을 누리게 것입니다(42:5).

 

(b)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 52-54절에서 예수님을 노리고 있었던 사람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53)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노리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i)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노렸던 핵심적인 이유는 예수님을 공식적으로 고소하고 파멸시키기 위한 ‘결정적인 말의 실수’를 잡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노리고 있었던 것과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발의 근거(책잡을 ): 그들은 예수님이 율법이나 성전, 혹은 로마 법에 저촉되는 발언을 하도록 유도하여 이를 법적·종교적 고발의 증거로 삼으려 했습니다.

 

권위의 위축: 예수님이 자신들의 외식(위선) 불의를 대중 앞에서 강하게 질책하시자(52),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와 사회적 입지가 흔들리는 것에 위협을 느껴 예수님의 권위를 깎아내릴 꼬투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유도 신문(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물음): 53절의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예수님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쏟아내어 실수를 유발하려는 의도적인 공격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사냥꾼이 짐승을 잡기 위해 덫을 놓고 숨어 기다리는 것처럼,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하나라도 율법 위반이나 선동의 증거로 포착하여 그를 제거할 명분을 찾고 있었습니다”(인터넷).

 

·       여기서 예수님이 율법이나 성전, 혹은 로마 법에 저촉되는 발언을 하도록 유도하여 이를 법적·종교적 고발의 증거로 삼으려 했습니다라는 의미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단순히 말다툼을 하려는 아니라, 예수님을 법정에 세워 처단하려는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노렸던 가지 법적 올무는 이렇습니다(인터넷):

 

1.       종교적 올무 (성전 유대 율법 위반):

 

예수님이 성전을 모독하거나 모세의 율법(안식일 준수 ) 무시한다는 증거를 잡으려 했습니다.  만약 이런 발언이 나오면 유대 종교 법정인 '산헤드린' 세워 '신성모독죄' 정죄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정치적 올무 (로마 위반 반란 조장):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마라" 같은 발언을 하도록 유도하여, 로마 총독에게 '민중 선동가' '반역자' 고발해 처형시키려 했습니다.

 

3.       사회적 매장:

 

만약 법적으로 걸리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백성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을 어기도록 유도하여 대중의 지지를 끊어버리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 “θηρεσαί”(사냥하다)라는 단어가 쓰인 것처럼,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대답을 해도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형 함정 질문 던지며 법적 처벌을 위한 결정적 마디 사냥하듯 기다렸던 것입니다(인터넷).

 

-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던졌던 대표적인 가지 함정 질문이 있었습니다(인터넷):

 

1.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정치적 )

 

가장 유명한 함정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굴욕으로 여겼습니다.

 

함정:

 

"내라" 하면 유대 민족의 배신자로 몰아 대중의 지지를

끊음.

 

"내지 마라" 하면 로마 황제(가이사) 대한 반역죄로 총독에게 고발함.

 

예수의 대답: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올무를 모두 벗어나셨습니다( 20:20-26).

 

2.       간음한 여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율법적 )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데려와 질문합니다.

 

함정:

 

"돌로 치라" 하면 평소 강조하신 '사랑과 용서' 가르침과 모순되며, 당시 사형권은 로마에만 있었으므로 로마법 위반이 .

 

"용서하라" 하면 모세의 율법(돌로 치라)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 .

 

예수의 대답: "너희 중에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며 상황을 반전시키셨습니다( 8:3-11).

 

3.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종교적 )

 

일부러 안식일에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예수님을 주시했습니다.

 

함정

 

안식일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는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는지 확인하여, 예수님을 '율법 파괴자' 낙인찍으려 했습니다.


예수의 대답: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 어느 것이 옳으냐?"라고 반문하시며 율법의 참정신을 일깨우셨습니다( 6:6-11).

 

이처럼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대답을 해도 한쪽 법에는 걸리게끔 교묘한 질문을 던지며 '사냥(θηρεσαί)'하듯 노리고 있었습니다(인터넷).

 

(c)    이러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11:53)에게 예수님께서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52)하고 말씀하셨는데 의미는 무엇일까요?

 

(i)                      저는 질문을 답하기 위하여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 52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읽을 열쇠라는 헬라어 단어 “κλεδα”(클레이다)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       문자적 의미

 

열쇠 (Key): 문이나 상자를 여는 도구를 뜻합니다.  고대 유대 사회에서 서기관들이 임직할 , 율법의 보물창고를 여는 권한의 상징으로 실제 열쇠를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2.       영적·비유적 의미 (지식의 열쇠)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지식의 열쇠' 가졌으나 오용하고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통로: 여기서 '지식'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진리(특히 메시아에 대한 예언) 깨닫는 지혜를 뜻합니다.

 

해석의 권한: 서기관들은 성경을 해석하여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어주어야 직무를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3.       예수님의 책망 내용 (열쇠를 가로채고 문을 닫음)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서기관들은 율법의 세칙에만 집착하여 율법의 본질인 '사랑과 ' 저버렸고, 정작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구원의 문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고: 자신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전통으로 백성들의 눈을 가려,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까지 방해했다는 뜻입니다.

 

요약하자면: “κλεδα”(열쇠) 성경 진리를 깨달아 구원으로 인도하는 권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귀한 열쇠를 가지고도 문을 열기는커녕, 오히려 문을 걸어 잠그는 도구로 쓰고 있다고 무섭게 비판하신 것입니다(인터넷).

 

·       “κλεδα”(열쇠)라는 단어가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 52 외에 마태복음 16 19(“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요한계시록 1 18(“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3 7(“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에도 나오는데 성경구절들을 연관해서 묵상할 인공지능(AI) 이러한 답변을 제시하였습니다(인터넷):

 

성경에서 '열쇠' 공통적으로 '권세' '통치권', 그리고 '열고 닫는 결정권' 의미합니다.  언급하신 구절들을 연결해 보면, 열쇠의 권한이 '하나님 예수님 교회(사도)' 이어지는 구속사의 흐름을 있습니다.

 

1.       계시록 1:18, 3:7 열쇠의 원천 (예수 그리스도)

 

모든 열쇠 권세의 근원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있습니다.

 

1:18 (사망과 음부의 열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생사와 사후 세계를 주관하는 절대적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3:7 (다윗의 열쇠):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사람이 없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다윗 왕국으로 예표됨) 누가 들어오고 나갈지를 결정하는 최종적 집행권이 오직 예수님께 있음을 뜻합니다.

 

2.       11:52 열쇠의 위임과 타락 (서기관들)

 

예수님 이전에 권세를 맡았던 자들이 서기관(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지식의 열쇠: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경(율법) 주어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도록 안내하는 '열쇠 지기'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직무 유기: 그러나 그들은 열쇠를 복음의 문을 여는 쓰지 않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문을 걸어 잠그는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3.       16:19 열쇠의 이전 (베드로와 교회)

 

서기관들이 열쇠를 오용하자, 예수님은 권세를 거두어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교회에 넘겨주십니다.

 

천국 열쇠: 이제 서기관들의 율법 해석이 아니라, 베드로가 고백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천국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매고 푸는 권세: 열쇠를 가진 교회는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사람들을 사망( 1:18)에서 생명( 3:7)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됩니다.

 

결론적 연결

구절들을 종합하면 하나의 흐름이 완성됩니다.

 

1.       예수님은 사망과 천국의 주권을 가진 열쇠의 주인(계시록)이시며,

2.       권세를 잘못 사용하던 서기관들로부터 열쇠를 회수(누가복음)하셔서,

3.       이제는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에 열쇠를 위임(마태복음)하셨습니다.

 

결국 '지식의 열쇠'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천국 열쇠' 사용하는 것이며, 핵심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살리는 있습니다”(인터넷).

 

-            오늘날 교회가 가져야 지식의 열쇠”(11:52)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지식의 열쇠’는 서기관들처럼 문을 닫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열어 보여주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모습은 크게 가지로 정리할 있습니다.

 

1.       성경 해석의 바른 권위 (진리의 열쇠)

 

서기관들은 율법을 복잡한 '조문'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짐을 지웠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열쇠는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풀어내는 지식이어야 합니다.

 

구체적 모습: 성경 공부나 설교가 단순히 도덕적 훈계나 복을 받는 비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발견하게 하여 성도들이 영적 자유함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2.       복음 전파와 영혼 구원 (선교의 열쇠)

 

마태복음 16장과 연결하여,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천국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구체적 모습: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소외된 이들이나 진리를 찾는 이들에게 복음을 명확하고 쉽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특권층의 전유물' 되지 않게 하고, 누구나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있음을 선포하는 ‘환대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3.       삶으로 증명하는 지식 (행함의 열쇠)

 

누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이 비판하신 핵심은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였습니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이 분리된 지식은 문을 잠그는 자물쇠가 됩니다.

 

구체적 모습: 성경 지식이 머리에만 머물지 않고 공의와 사랑이라는 삶의 실천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정직하고 자비로운 모습을 보일 ,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실제임을 깨닫고 문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요약하자면:

오늘날 교회가 가져야 지식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며, 이것이 ‘복음 전파’와 ‘사랑의 실천’이라는 바퀴로 굴러갈 비로소 천국 문을 활짝 여는 진짜 열쇠가 됩니다”(인터넷).

 

n  이러한 지식의 열쇠 가진 교회가 세상을 향해 어떤 구체적인 메시지를 던져야 합니까?

 

“'지식의 열쇠' 바르게 회복한 교회가 시대에 선포해야 핵심 메시지는 닫힌 문을 열고 참된 자유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서기관들이 율법으로 문을 닫았다면, 교회는 다음 가지 구체적인 메시지로 문을 열어야 합니다.

 

1.       종교적 정죄가 아닌, 회복과 용서의 복음

 

서기관들은 율법의 지식을 '누가 죄인인가' 판별하고 정죄하는 잣대로 썼습니다.

 

메시지: ‘하나님 나라의 문은 완벽한 자가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자에게 열려 있습니다.’

 

실천: 실패와 상처 속에 있는 현대인들에게 정죄의 '자물쇠'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얻는 '용서와 새로운 시작'이라는 열쇠를 쥐여주어야 합니다.

 

2.       무거운 짐이 아닌, 가벼운 멍에와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도 대지 않는다’( 11:46) 책망하셨습니다.

 

메시지: ‘신앙은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는 잔치입니다.’

 

실천: 교회가 세상에 '해야 (Do)' 목록을 던지기보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Done)' 선포하며 진정한 영적 안식을 제시해야 합니다.

 

3.       사유화된 축복이 아닌, 공의와 사랑의 실천

 

지식의 열쇠를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만 챙길 문은 닫힙니다.

 

메시지: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으며, 능력은 낮은 곳을 향한 사랑으로 증명됩니다.’

실천: 말로만 구원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아픔(소외, 불의, 갈등) 구체적으로 응답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가 여기 임해 있음' 삶의 언어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교회의 메시지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통과하면 있다 개방성과 희망의 메시지여야 합니다.  지식의 열쇠는 우리만 아는 비밀이 아니라, 모두가 누려야 '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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