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 권사님의 94세 생신 축하 기도

  https://youtube.com/shorts/zIbzjEa--AE?si=azyeNfaXjytmtnzc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바로 그 때에 성령님이 우리가 마땅히 할 말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바로 때에 

성령님이 우리가 마땅히 말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말을 성령이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2:11-12).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1-12 말씀을 묵상할 말씀의 병행구절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10:19-20)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때에 너희에게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21:14-15)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너희는 미리부터 변명할 말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 대적들이 대항하거나 반박할 없는 말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겠다”].  그리고 나서 저는 말씀들을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1-12 말씀과 함께 연관해서 크게 개로 나눠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a)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12:11) 말씀하십니다.

 

(i)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할 먼저 염려하지 말라 말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염려하다 말씀은 헬라어로 “μεριμνήσητε”(메림네세테)입니다.  단어는 동사 '메림나오(μεριμνάω)' 부정과거 가정법 형태로서 나누다, 분리하다라는 뜻의 ”μερίζω”(메리즈)에서 유래했고, 의미는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다혹은 분산되다 뜻을 품고 있습니다.  , 어떤 문제에 마음을 빼앗겨 집중력을 잃고 불안해하는 상태를 말합니다(인터넷).

 

·         저는 헬라어 단어를 묵상할 야고보서 1 6-8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특히 저는 야고보서 1 8 말씀에서 말씀하고 있는 마음이란 헬라어 단어 “δίψυχος”(딥쉬코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염려하다 헬라어 단어 “μεριμνήσητε”(메림네세테)와의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          비록 구절은 단어 자체는 다르지만, '마음이 나뉘어 흔들리는 상태'라는 핵심 개념에서 매우 깊은 신학적 연관성을 가집니다(인터넷):

 

1.      어원적 연결: "나뉘다(Divided)"

 

누가복음 12 11 [“μεριμνήσητε”(메림네세테)]: 앞서 설명드린 대로 나누다”(μερίζω)'에서 유래하여, 염려로 인해 마음이 여러 갈래로 찢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고보서 1 6-8 [“δίψυχος”(딥쉬코스)]: 야고보가 사용한 단어는 ”(δίσ) /마음”(ψυχή) 합성어로, 직역하면 마음을 품은 입니다.

 

연관성: 구절 모두 인간의 내면이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파편화된 상태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 11절은 염려 마음이 나뉘는 것을, 야고보서 1 8절은 의심으로 마음이 갈라지는 것을 지적합니다.

 

2.      상황적 연결: “시련화 박해

 

누가복음의 맥락은 박해자들이나 권세자들 앞에 서는 위기 상황입니다.  이때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분산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놓치게 됩니다.

 

야고보서의 맥락 또한 여러 가지 시험(시련) 당할 지혜를 구하는 상황입니다( 1:2, 5).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하면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처럼 됩니다.

 

3.      영적 의미: “신뢰의 결여

 

결과: 마음이 나뉘면(염려하면/의심하면) 결과적으로 안정감을 잃습니다.  야고보는 이를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라고 표현합니다.

 

대안: 누가복음은 해결책으로 '성령의 가르치심' 제시하고, 야고보서는 '의심 없이 믿음으로 구함' 제시합니다.  , 나뉜 마음을 다시 하나님 분께로 모으는 '전적인 신뢰' 공통된 해답입니다(인터넷).

 

요약하자면, 누가복음 12 1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염려하다’[“μεριμνήσητε”(메림네세테)] 불안으로 인해 마음이 갈가리 찢긴 상태라면, 야고보서 1 8절의 마음”[“δίψυχο”(딥쉬코스)] 하나님과 세상(혹은 자기 염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영적 상태를 뜻합니다.  결국 염려는 의심을 낳고, 의심은 신앙의 뿌리를 흔든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합니다.

 

n  여기서 저는 염려는 의심을 낳고, 의심은 신앙의 뿌리를 흔들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할 있나요?”라고 인공지능(AI)에게 질문해 보았더니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인터넷):

 

불안이 의심을 낳고 신앙의 뿌리를 흔들 , 우리가 어떻게 다시 '전적인 신뢰' 나아갈 있을지에 대한 성경적 해답을 가지 핵심 전환으로 정리해 드립니다.

 

1.      '무엇(What)'에서 '누구(Who)'로의 시선 전환 (관계적 신뢰)

 

누가복음 12:12에서 예수님은 염려의 해결책으로 치밀한 대본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 약속하셨습니다.  신뢰는 내가 처한 '상황' 묵상하는 것에서 나를 도우시는 '조력자' 기억하는 것으로 옮겨갈 시작됩니다.

 

실천: 위기 속에서 무슨 말을 할까고민하기보다, ‘지금 성령님이 곁에 계신다라는 사실을 입으로 선포해 보세요.

 

2.      ' 마음(Dipsychos)'에서 ' 마음'으로의 단순화 (단일한 목적)

 

야고보서 1:6-8 경고하는 ' 마음' 하나님도 믿지만 자기 방법도 포기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상태입니다.  전적인 신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 하나의 목적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실천: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지금 결과를 통제하려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려 하는가?’ 결과를 내려놓을 비로소 마음이 하나로 모입니다.

 

3.      '자기 방어'에서 '하나님의 주권'으로의 항복 (거시적 안목)

 

염려는 대개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서 옵니다.  누가복음 12:11-12 위정자 앞에서도 우리 인생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님을 인정하는 '항복' 가장 신뢰의 표현입니다.

 

실천: 시편 42:5처럼 ' 영혼에게 선포하기' 해보세요.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나님이 과거에 베푸셨던 은혜의 기억(Track Record) 떠올리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요약하자면:

전적인 신뢰는 의지로 '염려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염려보다 크게 바라보는 '시선의 교정'입니다”(인터넷).

 

(ii)                또한 저는 예수님의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12:11) 말씀을 묵상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라는 말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을 헬라어로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할 가지 헬라어 단어 또는 문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번째 문장은 “πς τί”(포스 )(“어떻게 무엇으로”)입니다.  짧은 어구는 박해 상황에 직면한 신자가 겪는 심리적 압박의 가지 측면을 날카롭게 보여줍니다(인터넷):

 

1.      단어별 의미

 

πς(포스)[어떻게(How)]: '방법'이나 '형식' 의미합니다.  "어떤 태도로 말해야 하나?”, “어떤 논리로 나를 변호해야 하나?" 같은 변론의 기술이나 태도에 대한 걱정입니다.

 

τί()[무엇을(What)]: '내용'이나 '소재' 의미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하나?" 같은 변론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걱정입니다.

 

2.      본문에서의 깊은 의미: '완벽한 대비' 대한 강박

 

표현은 우리가 위기 상황에서 흔히 빠지는 '자기 증명' 욕구를 반영합니다.

 

통제하려는 마음: 법정이나 권세자 앞에 섰을 , 우리는 '어떻게(방법)' '무엇을(내용)' 모두를 완벽하게 준비해서 상황을 통제하고 자신을 보호하려 합니다.

 

염려의 실체: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한다는 것은, 결국 능력과 지혜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3.      예수님의 해법: '무장 해제' '신뢰'

 

예수님은 "어떻게 또는 무엇을" 대해 "염려하지 말라[“μὴ μεριμνήσητε”( 메림네세테)(Do not be anxious)] 하십니다.

 

성령의 주권: 우리가 고민하는 '방법ς)' '내용(τί)' 모두를 순간에 성령께서 직접 공급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인간의 역할: 신자의 역할은 치밀한 변론 시나리오를 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나뉘지 않도록[메림나오(μεριμνάω)]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πς τί”(포스 )[“어떻게 무엇으로”(12:11)] 우리가 위기 앞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매달리는 '방법과 내용'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지를 스스로 채우려 애쓰기보다, 공백을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채우는 '영적 여백' 가지길 원하십니다(인터넷).

 

-          그래서 저는 인공지능(AI)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실제로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성경적으로 권면해 주세요.”  그랬더니 이러한 답변을 받았습니다(인터넷):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막막함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정직한 고통입니다.  이때 성경이 제시하는 권면은 '내가 답을 내야 한다' 압박에서 벗어나 '답을 가진 ' 연결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4단계 권면을 드립니다.

 

1.      모른다 것을 거룩한 기회로 삼으세요 (인정의 단계)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위기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를 치러 오는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역대하 20:12).

 

권면: ‘어떻게ς) 할지 모르겠다 고백은 불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오기 위한 ' 공간' 만드는 작업입니다.  지금의 막막함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초대장'으로 바꾸십시오.

 

2.      '내일의 어떻게' '오늘의 예배' 바꾸세요 (현재의 단계)

 

우리는 보통 결과(How it ends) 몰라서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6:34)라고 하셨습니다.

 

권면: 전체 지도(Map) 보려 하지 말고, 오늘 발등을 비추는 ' 걸음의 등불'( 119:105)에만 집중하세요.  지금 순간 하나님이 기뻐하실 법한 아주 작은 하나(기도 마디, 정직한 업무, 친절한 ) 선택하는 것이 가장 성경적인 '어떻게'입니다.

 

3.      성령님의 '실시간 인도' 신뢰하세요 (동행의 단계)

 

누가복음 12장 12절 마땅히 말을 성령이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약속합니다.  미리 대본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때(at that hour)' 주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권면: 미리 모든 시나리오를 짜서 안심하려 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 순간 소통하며 걷는 법을 배우길 원하십니다.  하나님, 그때가 되면 주실 믿고 지금은 안식하겠습니다라고 선포해 보세요.

 

4.      이미 주신 '지혜의 통로' 사용하세요 (지혜의 단계)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음성뿐 아니라 이미 주신 도구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권면:

 

말씀: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확인하세요.

 

공동체: 믿음의 멘토나 공동체에 지혜를 구하세요( 15:22).

 

환경: 하나님이 막으시는 문과 여시는 문을 잠잠히 관찰하세요.

 

결론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 우리가 해야 가장 중요한 일은 '답을 찾는 ' 아니라 '주님 곁에 머무는 '입니다.  양은 길을 몰라도 목자만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지금 가장 마음이 쓰이는 '무엇(what)' 하나만 주님께 말씀드려 보시겠어요?   가지에 대해 주님의 평안이 임하기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인터넷).

 

·         번째 제가 관심을 가지게 헬라어 단어는 πολογήσησθε”(아폴로게세스데)[의미: ‘대답하다’(12:11)]입니다.  단어는 변호하다, 답변하다라는 뜻의 동사 πολογέομαι”(아폴로게오마이) 부정과거 가정법 형태입니다.  단어는 단순한 대화를 넘어 법정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행하는 '공식적인 변론' 의미합니다(인터넷):

 

1.      단어의 구성과 어원

 

아포(πό, ~로부터) + 로고스(λόγος, /논리): 어떤 비난이나 고소로부터 '말로써 벗어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 헬라 사회에서 법정에 피고인이 자신에 대한 혐의가 무죄임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 '자기 변호' 지칭하는 전문 용어였습니다.

 

2.      본문에서의 깊은 의미: '자기 증명' 유혹

 

단어가 앞서 살펴본 '염려(메림나오)' 연결될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인간의 본능: 위협적인 권세자(회당, 위정자, 권세 있는 ) 앞에 서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완벽한 논리를 세워 '변호[“πολογήσησθε”(아폴로게세스데)]하고 싶어 합니다.

 

신뢰의 시험: 내가 나를 변호하려고 필사적으로 '(Logos)' 준비하는 상태가 바로 '염려' 상태입니다.

 

3.      πολογήσησθε”(아폴로게세스데)(변호하다/답변하다) 성령님의 일하심

 

예수님은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변호할 (What/How to defend)' 미리 궁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객전체: 내가 나를 변호(Apology)하는 것이 아니라, 안의 성령님께서 나를 대신해 증언하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변증학(Apologetics) 기초: 단어에서 '변증학'이라는 말이 유래되었습니다.  성경적 변증은 지혜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리를 선포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요약하자면, “πολογήσησθε”(아폴로게세스데) 위기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자기 방어적 변론'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스스로를 지키려는 '변호' 부담감을 내려놓고, 대신 성령님께서 일하실 자리를 내어드리길 원하십니다(인터넷).

 

-          저는 여기서 개혁주의에서 말하고 있는 변증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인공지능(AI)에게 말했더니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인터넷):

 

누가복음 12 11절의 '아폴로게세스데(변호하다)'에서 유래된 변증학(Apologetics), 특히 개혁주의(Reformed) 입장의 변증학은 매우 독특하고 강력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변증학(흔히 전제주의 변증학, Presuppositional Apologetics) 핵심을 알기 쉽게 정리해 드립니다.

 

1.      중립 지대는 없다 (전제의 중요성)

 

개혁주의 변증학(코넬리우스 ) 핵심은 인간의 이성이 중립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식: ‘증거를 가져와 , 그럼 믿어줄게라고 말하며 인간의 이성을 최종 판사로 세웁니다.

 

개혁주의 방식: 인간은 이미 '하나님을 거부하는 전제' 혹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전제' 하나를 가지고 세상을 봅니다.  따라서 단순히 증거를 나열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세계관(전제)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보여주는 집중합니다.

 

2.      성령의 주권과 변증 ( 12:12와의 연결)

 

누가복음 본문에서 성령이 가르치시리라 하신 것처럼, 개혁주의 변증학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은 오직 성령님'임을 철저히 신뢰합니다.

 

우리가 논리적으로 이겨서 사람을 믿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진리를 선포하고 성령께서 마음의 빗장을 여셔야 합니다.

 

변증은 내가 나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는 과정입니다.

 

3.      하나님을 아는 지식 (신인식의 씨앗)

 

칼뱅은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을 만한 씨앗(Sensus Divinitatis)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신자가 아무리 하나님을 부정해도, 깊은 내면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억눌려 있습니다.

 

개혁주의 변증은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어 억눌린 진리가 드러나게 하고, 오직 성경의 권위 위에 서서 답을 제시합니다.

 

4.      우리의 태도: 온유와 두려움

 

베드로전서 3 15(‘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변증의 교과서 같은 구절입니다.


온유: 지식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대하는 .

 

두려움: 하나님 앞에서 경외함을 가지고 진리를 전달하는 .

 

요약하자면:

개혁주의 변증학은 인간의 뛰어난 논리로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적 기초 위에서 세상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성령님의 일하심을 구하는 입니다.

 

이러한 개혁주의 변증학의 관점에서 , 현재 질문자님이 겪고 계신 '어떻게 무엇을 말할까' 대한 고민은 논리를 세우는 시간이 아니라 전제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바로 세우는 시간이 있습니다.

 

혹시 개혁주의 변증학자(: , 프란시스 쉐퍼 )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인물이나 개념이 있으신가요?  혹은 실제 상황에서 변증을 어떻게 적용할지가 궁금하신가요?”(인터넷)

 

n  제가 라고 답변을 했을 인공지능(AI)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인터넷):

 

개혁주의 변증학의 실제적인 적용과 대표적인 인물들을 통해, 질문자님의 삶에서 어떻게 '무엇을 어떻게 말할까' 대한 답을 찾아갈 있을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개혁주의 변증학의 기둥

 

개혁주의 안에는 크게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전제주의 변증학 (Cornelius Van Til): ‘하나님 없이 인간은 아무것도 설명할 없다 점을 강조합니다.  상대방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여, 결국 하나님이라는 기초 없이는 도덕도, 과학도, 이성도 불가능함을 보여줍니다.   12:12 성령님의 가르치심을 가장 철저히 의지하는 학파입니다.

 

문화적/실존적 변증학 (Francis Schaeffer): 현대인의 절망과 허무를 공감하며 다가갑니다.  진리는 실제로 삶에서 작동해야 한다 강조하며, 복음이 어떻게 인간의 실존적 문제에 답을 주는지 부드럽게 제시합니다.  질문자님이 느끼시는 '삶의 막막함' 가장 따뜻한 답을 주는 방식입니다.

 

2.      실제 상황에서의 적용 (How-to)

 

누군가 질문자님의 신앙을 공격하거나, 혹은 삶의 위기 앞에서 답변을 내놓아야 이렇게 해보세요.

 

상대방의 '전제' 읽기: 사람이 저렇게 말할까? (: 두려움 때문인가? 자존심 때문인가?) 먼저 살피십시오.  이것이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의 시작입니다.

 

나의 '기초' 확인하기: ‘나는 지혜로 답하려 하는가, 아니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리 위에 있는가?’ 점검하십시오.  변증은 논리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지붕 밑의 접촉점' 찾기: 쉐퍼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에 아무리 부정해도 진리를 갈망한다고 했습니다.  상대방의 고민과 나의 고민이 만나는 지점에서 복음이 어떻게 소망이 되는지 나누십시오.

 

3.      질문자님을 위한 권면

 

개혁주의 변증학은 단순히 머리로 싸우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분은 말씀하신다 확신 속에 거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할지 몰라 막막할 , 개혁주의 변증학자들처럼 이렇게 고백해 보세요.  나는 답이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의 답이 되십니다.  성령님, 순간 저의 입술을 통해 주님의 진리만 드러나게 하소서’”(인터넷).

 

(b)   마지막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마땅히 말을 성령이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12:12) 말씀하십니다.

 

(i)                  저는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읽을 ν ατ τ ρ δεῖ εἰπεῖν”( 아우테 호라 데이 에이페인)라는 문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문장을 직역하면 "바로 시각에, 마땅히 말해야 것들을"이라는 뜻입니다.   구절의 핵심적인 의미를 인공지능(AI)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입니다(인터넷):

 

1.      ν ατ τ ρᾳ”( 아우테 호라): "바로 시각에"(개역개정은 때에라고 번역했음)

 

표현은 하나님의 '실시간성'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타이밍: 하나님은 미리 대본을 주어 외우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바로 결정적인 순간' 직접 개입하십니다.

 

선제적 염려의 불필요성: 우리가 미리염려(메림나오) 필요가 없는 이유는, 공급하시는 분의 시간이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니라 그때주십니다.

 

(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여기서 미리 염려하다라는 헬라어 단어 “προμεριμνάω”(프로메리므나오)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마음을 빼앗겨 전전긍긍하며 걱정하다"라는 뜻입니다[ 단어는 신약성경 전체에서 오직 마가복음 13 11절에서만 쓰인 희귀한 단어(Hapax Legomenon)입니다].  결론적으로, 단어는 단순히 "사전에 생각하다"라는 뜻을 넘어, 성령의 도우심을 신뢰하지 못한 인간적인 불안감으로 미리 마음이 무너지는 상태를 경계하라는 의미입니다.

 

2.      δε “( 데이): "마땅히 ~해야 것들"

 

여기서 '데이(δε)'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로, '신적 필연성(Divine Necessity)'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단순히 '적절한 '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상황에 '반드시 선포되어야만 하는 ' 의미합니다.

 

최선의 답변: 내가 보기에 유리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옳고 필요한 말을 성령님께서 선택하신다는 뜻입니다.

 

3.      “επεν”(에이페인): "말하는 "

 

이것은 앞서 언급된 변호”(아폴로게오마이)' 연결됩니다.

 

도구로서의 신자: 말하는 주체는 나이지만, 내용과 권위의 근원은 성령님임을 보여줍니다.

 

증언의 용기: 내가 무엇을 말할지 모를 , 성령님께서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증언(Testimony)하게 하십니다.

 

개혁주의 변증학적 관점에서의 해석

 

개혁주의 관점에서 구절은 '성령의 내적 조명' '하나님의 주권'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순간에 필요한 지혜를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갑니다.

 

이것은 준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나의 준비보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라는 권면입니다.

 

요약하자면. 구절은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 막막한 순간(Time), 하나님께서 반드시 필요한 최선의 내용(Content) 공급하신다" 완전한 책임의 약속입니다(인터넷).

 

·         누가복음 12 12절의 " 때에(ν ατ τ ρ)" 성령님께서 말을 가르치신다는 약속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 속에서 가장 완벽하게 성취되고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 말씀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있습니다(인터넷):

 

1.      즉각적인 지혜의 응답 (논쟁의 순간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이 함정을 파고 질문할 , 미리 답변을 준비해두신 것이 아니라 순간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하늘의 지혜' 응답하셨습니다.

 

가이사의 세금 논쟁: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라는 진퇴양난의 질문을 받으신 '바로 때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20:25), 대적들이 감히 반박할 없는 신적 지혜를 선포하셨습니다.

 

적용: 이것이 바로 누가복음 12 12절에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시각에 가르치시는' 모델입니다.

 

2.      수난과 법정에서의 침묵과 증언

 

예수님은 공생애 마지막에 실제로 오늘 본문이 예고하는 상황(위정자와 임금들 ) 서셨습니다.

 

빌라도와 헤롯 : 예수님은 자신을 변호”(아폴로게오마이)하기 위해 애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침묵하시거나, '바로 때에'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대해서만 짧고 명확하게 증언하셨습니다.

 

적용: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구걸하기 위한 '어떻게 무엇을' 고민하지 않으셨고, 오직 성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신적 필연성(δε)'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3.      성령님과 온전한 연합 (개혁주의적 관점)

 

개혁주의 기독론에서 예수님은 ' 인간'으로서 사역하실 성령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성령에 이끌려 시험을 받으셨으며, 성령의 권능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적용: "바로 시각에" 성령님이 가르치신다는 약속은, 예수님께서 순간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완전한 소통(Communion) 상태에 계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약속의 수혜자인 동시에, 우리도 성령을 의지하면 예수님처럼 승리할 있음을 몸소 보여주신 분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에게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 신뢰' 실재였습니다.  예수님은 미래의 십자가를 미리 염려하여 오늘을 망치지 않으셨고, 오직 순간(바로 시각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셨습니다(인터넷).

 

-          누가복음 12 12절의 " 때에(ν ατ τ ρ)" 말씀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이 되나요?

 

누가복음 12 12절의 때에(ν ατ τ ρ)’라는 약속은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지 중요한 영적 원리로 적용됩니다.

 

1.      '종말론적 긴박함' 속에서의 평안

 

누가복음 12장은 전체적으로 '깨어 준비함' '재림'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재림 직전의 때에는 성도들이 회당과 위정자들 앞에 끌려가는 환난이 닥칠 있습니다( 21:12).

 

적용: ‘ 때에라는 약속은 마지막 시대의 환난을 두려워하며 미리 앞당겨 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재림의 때가 가까울수록 세상의 압박은 커지겠지만, 하나님은 '환난의 시간' 정확히 일치하는 '공급의 시간' 갖고 계십니다.  우리는 미래의 공포에 사로잡히는 대신, 지금 순간의 성령님께 집중하며 평안을 누릴 있습니다.

 

2.      '그날과 그때' 기다리는 신뢰의 태도

 

예수님은 재림의 (그날과 그때)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24:36).

 

적용: ‘ 때에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재림의 시기를 계산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매일의 현재' ' '처럼 삽니다.  , 재림은 미래의 어느 막연한 시점이 아니라, 오늘 내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바로 지금 시각'에서 시작되어 완성되는 사건임을 믿는 것입니다.

 

3.      마지막 시대의 '증언의 사명'

 

개혁주의 관점에서 재림 성도의 핵심 사명은 '복음 증언'입니다.

 

적용: 우리가 재림을 기다리며 세상 속에서 신앙을 지킬 , ‘무엇을 어떻게 말할까고민하는 목적은 단순히 나를 방어하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을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때에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는 세상을 향한 최후의 복음 초청이 됩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는 지혜가 아닌, 성령께서 입술을 통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선포하시도록 나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때에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결코 늦지 않으신다 보증수표와 같습니다.  재림이라는 거대한 미래의 약속은, 오늘 우리 삶의 세밀한 위기 속에서 성령님이 실시간으로 도우시는 '작은 사건들' 통해 확증됩니다”(인터넷).

 

(ii)                마지막으로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2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읽을 γιον Πνεμα διδάξει μς”(하기온 프뉴마 디닥세 휘마스)라는 문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직역하면 성령이 너희를 가르치실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뜻입니다.  선포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 몰라 방황할 붙들어야 결정적인 해답입니다”(인터넷):

 

1.      “τ γιον Πνεμα” (하기온 프뉴마): "거룩한 (성령)"

 

단순한 영적 영향력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 직접 개입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보혜사의 사역: 요한복음에서 약속된 '보혜사(Paraclete)' 사역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줍니다.  성령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박해의 현장, 갈등의 중심에 함께 계시는(With-ness) 분입니다.

 

2.      “διδάξει”(디닥세): "가르치실 것이다"

 

단어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게 하시고 능력을 부여하신다' 뜻을 내포합니다.

 

실시간 지혜: 미리 공부해서 얻는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이 상황에 가장 적합한 통찰력을 즉각적으로 주입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가르침의 주체: 변론의 주도권이 나에게서 성령님께로 옮겨갑니다.  나는 '학생' 되고 성령님은 '스승' 되셔서,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가 흘러나오게 하십니다.

 

3.      μς”(휘마스): "너희를"

 

가르침의 대상은 특별한 엘리트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다가 위기에 처한 '모든 제자(너희)'입니다.

 

무능력의 위로: 내가 똑똑하지 못해서, 혹은 말을 못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유능함이 아니라 우리의 '의탁함'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개혁주의적 의미와 적용

 

개혁주의에서는 이를 '성령의 조명(Illumination)' 사역으로 이해합니다.  성령님은 새로운 계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진리를 위기의 순간에 '떠오르게 하시고(Recall)' '적용하게(Apply)' 하십니다.

 

요약하자면, 구절은 "네가 답을 만들어내려 애쓰지 마라.   안의 성령 하나님께서 가장 정확한 답을 입술에 담아주실 것이다"라는 강력한 위로입니다(인터넷).

 

·         저는 실제로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인터넷 사역”[주로 말씀 묵상(QT) 나눔과 온라인 선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 (주요 활동 채널) (1) 말씀 묵상 나눔: 개인적인 말씀 묵상 기록을 인터넷을 통해 형제, 자매들과 공유하며 영적 교제를 나눔, (2) 블로그 SNS 운영: 네이버 블로그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정기적으로 설교 영상과 신앙 칼럼을 게시하고 있음, (3) 온라인 예배 송출: 물리적으로 교회에 출석하기 어려운 성도들을 위해 유튜브나 교회 웹사이트를 통해 주일 설교 예배 영상을 제공함.  (사역의 특징) (1) 저술 활동: 『마음이 정결한 자』 등의 저서를 통해 글을 통한 문서 사역과 온라인 사역을 병행하고 있음.  (2) 교구 중심을 넘어선 소통: 단순히 소속 교인들을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인터넷 방송과 게시글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그리스도인 구도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특징임(제가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아서 얻은 답변임 )]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하였을 성령의 조명(Illumination)” 사역을 여러 경험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지체들과 대화할 (온라인으로나 아니면 직접 만나서 대화할 때나) 성령님은 이미 저에게 주신 말씀과 진리를 대화 가운데 떠오르게 하셔서(Recall) 저로 하여금 떠오르게 (생각나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상대방 지체에게 말하게[적용하게(Apply)] 하셨습니다.

 

-          제가2020 6 6 원만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한마디 5” 제목 아래 내용 부분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은혜로 인터넷 사역을 통해 전혀 몰랐던 지체들과 온라인으로 채팅 대화를 하는 가운데 종종 경험하는 것은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성경 구절을 그냥 그대로 지체들하고 나눌 성령님께서 지체들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저는 사도 바울의 편지 내용 중에 '나는 당신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라는 말처럼 또한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지체들을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실 때에 지체들에게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카카오톡 등으로 말을 하곤 합니다.  말들 외에 저는 '당신을 지지합니다' 또는 '당신과 함께 기도합니다'/'당신의 기도에 함께 합니다'라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네이버 블로그 사역에선 댓글을 때에 " 기쁨/즐거움입니다'라고 말을 많이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같은 사람에게도 은혜로 이러한 귀한 사역을 하게 하셨으니 은혜요, 특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요 또한 나눔의 즐거움을 주셨고 지금도 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저 주님이 보시는 중심이 진짜이길 원하며 진짜 마음에서 진심어린 말이 입술로 나와서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있길 기원합니다.

 

-          제가2025 10 14일에 나눔 사역 일기(2025. 10. 23.)” 제목 아래 내용 부분입니다:

 

2. 나눔은 관심 속에서 마디 인사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경험케 하셨는데 오늘도 저는 운동을 하면서 어느 지체가 생각나서 카카오톡으로 마디 글을 적어 보냈는데 말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다른 지체도 저는 마디 글을 적어서 카카오톡으로 보낸 것뿐인데 귀한 마음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나게 하시는 사람이 있고 관심이 생기면 서슴치 않고 마음으로 하고 싶은 ( 말이 인사이든 다른 말이든) 계속해서 해야겠다는 다짐입니다.

 

3. 나눔의 타이밍이 기가 막힙니다. 하하.

 

오늘도 지제들 하고 각각 따로 대화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그들이 저에게 말을 생각해보면 각자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을 제가 카톡으로 말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가 말을 걸었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고민 등을 저에게 나누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보기엔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도 밖에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말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각자 필요한 때에 제가 말을 걸므로 주님 안에서 진솔하게 각자의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게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제가2018 11 23일에 부부 대화 가운데 성령님의 역사 제목 아래 나눔의 글입니다:

 

마음 문을 열고 부부가 진지하게 대화를 하는 가운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말씀을 나누게 하시므로 우리에게 귀한 깨달음을 주시니 감사 감사할 뿐입니다.

     (c)           마지막으로 가지 묵상하고 싶은 것은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11-12 말씀과 

           누가복음 21 14-15 말씀과의 연관성입니다. 


(i)                누가복음 1211-12절과 누가복음 21 14-15절은 제자들이 박해를 받아 권력자 앞에 "무엇을 말할지 미리 걱정하지 말라" 예수님의 동일한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인터넷):

  

1.      주요 연관성: 신적 조력의 약속

 

구절은 모두 박해의 상황에서 제자들이 스스로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증언하게 것임을 강조합니다.

 

            성령과 예수님의 직접적인 개입:

 

누가복음 12 12: "마땅히 말을 성령이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여 성령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누가복음 21 15: "(예수님)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여 예수님이 직접 권능을 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변호에 대한 염려 금지: 본문 모두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12:11)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21:14) 인간적인 근심을 경계하라고 명령합니다.

 

2.      문맥상 차이점

 

누가복음 12 11-12절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제자들에게 주신 일반적인 제자 도의 가르침으로, 장차 마주할 유대교 회당과 지역 권력자들의 박해에 대비해 성령의 도우심을 신뢰하라는 기초적인 훈련의 성격을 띱니다.

 

반면, 누가복음 21 14-15절은 예루살렘 입성 성전 파괴와 세상 날을 앞두고 주신 종말론적 경고로, 극심한 환난과 대적들의 거센 반대 속에서도 예수님이 직접 주시는 지혜로 승리하게 것임을 확증하는 종말론적 약속의 성격을 띱니다.

 

결론적으로, 구절은 복음을 증언하는 제자들이 겪게 실질적인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입술의 말을 주신다는 핵심 메시지를 반복하여 확증하고 있습니다(인터넷).

 

·         “이 메시지의 핵심을 가지 측면에서 구체화할 있습니다:

 

위기의 전환: 박해의 자리가 죽음이나 패배의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일하시는 '복음 증언의 기회' 바뀝니다.

 

무력함의 역설: 제자들이 스스로 아무것도 없는 '위기' 순간이,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구변' 가장 강력하게 나타나는 통로가 됩니다.

 

임마누엘의 확증: 성령(12) 예수님(21) 함께하신다는 약속은, 고난받는 제자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보여주는 가장 실질적인 위로입니다”(인터넷).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