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게 하옵소서.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누가복음 12:41-44).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41-44절 말씀을 읽을 때에 주님께서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라고 말씀하신 대로 오늘 말씀 묵상 제목을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주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요 저의 기도 제목이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과 기도 제목을
3가지라 나눠서 묵상하면서 제 자신에게 반영하며 적용하고자 합니다:
(a)
첫째로,
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지혜 있고”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i)
저는 “지혜”를 묵상할 때 먼저 제 한국어 이름인 “지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원”이란 이름의 뜻은 ‘지혜에서 으뜸이 되다’(지혜 “지”짜에 으뜸 “원”짜)입니다. 제 아버님이 제가 태어났을 때 이 이름을 져주시면서 생각하신 말씀이 제가 알기론 다니엘
12장 3절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저는 이 말씀과 제 이름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제 이름 답게 살다가 주님을 만나길 기원합니다. 특히 이 악한 마지막 세대에 ‘하나님이 없다’고 마음에 이르는 어리석은 자들이 수 없이 많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를 우리에게도 주셔서 지혜롭게 살아가길 원합니다.
-
지혜롭게 살아가되 뱀 같이 지혜롭길 원합니다(마10:16). 신중한 분별력을 가지고 모든 사리를 잘 분별하고 판단하여 우리에게 장차 닥쳐올 환난을 조심성있게 대처하여서 그 환난을 모면하던지 극복하길 원합니다. 특히 앞으로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었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은 거짓 목사들이 더욱더 많이질텐데(마7:15;10:16)
뱀 같이 지혜로와서 거짓 복음을 잘 분별하고 판단하여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만을 듣고 전하길 기원합니다.
·
그런데 저는 계속해서 제 자신의 미련함이 들춰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제 자신의 미련함에 대해서 쓴 글 몇개를 나눕니다:
-
“나의 미련함은 … (1)”: 나의 미련함은 현재의 나의 잘못된 선택이 나중에 나에게 어떠한 쓰라린 결과로 오는지를 무지할 뿐만 아니라 무시하는 것이다(잠언 5:3-5).
-
“나의 미련함은 … (2)”: 나의 미련함은 내 길이 든든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잠언 5:6).
-
“나의 미련함은 … (3)”: 나의 미련함은 성적 유혹과 싸우면서 자신의 취약점을 알면서도 다른 이성을 멀리하지 않고 가까이 하는 것이다(잠언 5:8).
-
“나의 미련함은 … (4)”: 나의 미련함은 그 때 그 분의 훈계와 꾸지람을 왜 내가 마음으로 싫어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고 듣지 않으므로 지금 이러한 쓰라린 결과를 겪고 있는지 후회하는 것이다(잠언
5:11-14).
-
“나의 미련함”:
나의 미련함은 어디까지 인가 …
-
“나의 미련함은 …”: 나의 미련함은 반복되는 내 기도의 결과,
즉 내가 기도하고 기대한대로 되지않은 결과를 통해서도 내가 얼마나 내 고집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내 명철과 지식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잘못 기도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
“나의 미련함의 극치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십자가에 못자국난 손을 벌리시면서 “오라”고 부르셔도 내가 그 주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벌리신 주님의 손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은 저의 미련함의 극치입니다(참고: 잠언
1:24-25, 현대인의 성경).
·
그래서 저는 야고보서
1장 5절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좋아하게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
저는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성경의 지혜의 책들을 묵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주 수요 예배 때 잠언 책과 전도서 책을 다 묵상하고 설교하면서 제 자신의 미련함을 더욱더 깨닫게 해주시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n
그러기에 저는 더욱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게 되고 또한 더욱더 지혜의 교훈을 배우고 싶은 작은 갈증이 제 안에 더욱더 생겼습니다.
이러한 갈증에서 저에게 더욱더 필요한 것은 듣는 귀입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에 듣는 귀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들려주시는 권고와 훈계를 겸손히 들어(잠19:20) 더욱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ii)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41-42절 말씀을 다시 보면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41절)하고 여쭙습니다.
·
여기서 베드로가 말한 “이 비유”란 예수님께서 도둑같이 임할 인자의 재림에 대비해
"깨어 있으라"는 비유(35-40절)를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이 엄중한 경고가 제자들인 자기들에게만 해당되는 특별 지침인지,
아니면 일반 대중(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보편적 교훈인지 궁금했던 것입니다(인터넷).
-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직접적인 “예”나 또는 “아니오”라고 대답하지 않으시고 대신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의 비유(42절 이하)로 답하신 것입니다.
이는 깨어 있어야 할 책임이 모든 믿는 자에게 있지만,
특히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맡은 지도자(제자)들에게 더 큰 신실함이 요구됨을 시사합니다(인터넷).
·
저는 깨어 있어야 할 더 큰 책임이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지헤 있”는 “청지기”가 되라고 말씀하신 내용을 우리가 이미 “어리석은 부자의 진짜 죄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것'입니다.”란 제목 아래 묵상한 누가복음
12장 16-21절 말씀과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12:16-21)'와 '지혜로운 청지기(12:42-48)'는 누가복음
12장에서 '재물과 사명을 대하는 태도'를 극명하게 대조하며,
무엇이 진짜 지혜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1.
관점의 차이:
'나' vs '주인'
어리석은 부자:
모든 문장의 주어가
'나'입니다. ‘내가 ... 내 곡간을 ...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 내 영혼에게 이르되 ...’라며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합니다.
지혜로운 청지기:
자신의 위치가
'청지기(관리인)'임을 명확히 압니다.
모든 자원의 소유권이
'주인'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주인의 뜻에 따라 움직입니다.
2.
시간의 차이:
'현세' vs '영원'
어리석은 부자: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라며 이 땅에서의 안락함만 계획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라며 종말의 급작성을 경고하십니다.
지혜로운 청지기:
주인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46절)’에 올 것을 대비합니다.
그는 현재를 영원한 나라에서의 결산을 준비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3.
자원의 활용:
'축적' vs '분배'
어리석은 부자:
풍성한 수확을 보고 ‘더 큰 곡간을 짓고 쌓아 두자’고 결심합니다.
즉,
자원을 자신을 위해 고립시킵니다.
지혜로운 청지기:
주인이 맡긴 권한으로 ‘집안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합니다.
즉,
자원을 타인을 위해 흐르게 합니다.
4.
결과적 정의:
'어리석음' vs '지혜로움'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를
'어리석다'고 정의하십니다. 반면,
주인의 마음을 알고 맡겨진 이들을 돌보며 깨어 있는 자를
'지혜롭고 복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약하자면, 어리석은 부자는
'쌓아 두는 것'이 지혜라 믿었으나 결국 모든 것을 잃었고,
지혜로운 청지기는
'나누어 주는 것'이 주인에 대한 충성임을 알아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인터넷).
-
이렇게 나눔의 삶을 사는 지혜로운 청지기는 탐심을 물리치고(15절) 자기의 보물을 하늘 나라에 쌓아둡니다. 이렇게 탐심을 버리는 것(비움)과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채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12장의 전체 흐름을 보면 이 연결 고리가 더욱 선명해집니다(인터넷):
1.
탐심을 물리치는 지혜
(15절: 비움)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못 박으십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소유가 곧 생명이라고 믿었기에 곡간을 넓히는 데 집착했습니다(탐심). 하지만 지혜로운 청지기는
'소유의 유한함'을 알기에,
땅의 소유를 절대화하지 않고 탐심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킵니다.
2.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
(33절: 채움)
탐심을 물리친 자리에 들어오는 구체적인 행동이 바로
'구제'와 '나눔'입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33절)라는 말씀은,
땅에서 흘려보낸 물질이 하늘에서는 영원한 가치로 환산됨을 의미합니다.
지혜로운 청지기는 주인이 맡긴 양식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42절), 자연스럽게 자신의 보물을 하늘 창고로 옮겨 심는 사람입니다.
3.
마음의 방향: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34절).
탐심에 매인 자는 마음이 땅(곡간)에 묶여 주인의 오심을 두려워하거나 잊어버리지만,
하늘에 보물을 쌓는 청지기는 마음이 이미 하늘에 가 있기 때문에 주인의 재림을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깨어 있음).
결국, 탐심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더 가치 있는 보물(하늘 나라)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 지혜를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 칭찬하신
'지혜로운 청지기'입니다(인터넷).
(b)
둘째로,
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실한”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i)
저는 “진실한”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오래 전에 제 친할머님께서 살아계셨을 때 하루는 제가 할머님을 모시고 할머님이 아시는 더 나이 많으신 어느 권사님을 뵈러 갔었을 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 저는 친할어머님과 함께 그 권사님이 살고 계시는 한인타운 어느 노인 아파트에 갔는데 제 할머님이 그 권사님에게 저를
'앞으로 목사가 될 손자'라는 식으로 소개하시니까 그 나이 많으신 권사님이 뒤 돌아 저를 보시면서 딱 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실하십시오.' 평생 잊지 못하는 그 권사님의 이 한 말씀입니다.
·
그러므로 저는 목사로서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목사는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시33:4, 현대인의 성경)을 정직하게 증언하면서(잠12:17, 현대인의 성경)
주님을 진실하게 섬기는 자입니다(왕상18:3,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진실하게 섬기는 진실한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진실한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욥6:25,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진실한 목사는 말로만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일3:18, 현대인의 성경).
-
2010년
2월 3일 새벽기도회 후에 말씀 묵상하고 쓴 “진실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란 제목 아래 글에 서론만 나눕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080018256):
과연 나는 진실한 사람인가? 오늘 새벽기도회 때 찬송가
518장 “신자 되기 원합니다”를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이 찬양은
1절에서 4절 밖에 없습니다:“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1절), “사랑하기원합니다 진심으로”(2절), “거룩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3절), 그리고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4절). 그런데 오늘 새벽기도회때 저는 한 절을 더 추가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진실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진실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실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이렇게 한 절을 더 추가해서 오늘 새벽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싶었던 이유는 “진실하기 원합니다진심으로”가 하나님께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목사로서 하나님과 성도님들 앞에서 진실한 주님의 종이되길 원하기에 “진실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ii)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4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 베드로에게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진실한”이란 헬라어 단어 “πιστός”(피스토스)]는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하게 쓰이는 단어로,
'믿음'을 뜻하는
'피스티스(πίστις)'의 형용사형입니다.
이 단어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의 의미를 지닙니다(인터넷):
1.
능동적 의미:
'믿는'
(Believing)
하나님이나 주인의 약속을 확신하고 의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청지기가 주인이 반드시 돌아올 것과 그분의 보상을 확고히 믿고 있는 상태입니다.
2.
수동적 의미:
'믿을 만한,
충성된'
(Faithful, Trustworthy)
누가복음 12장 42절에서 강조되는 핵심 의미입니다.
주인이 보기에
"믿음직스럽다"는 뜻입니다.
신실함: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성품을 말합니다.
충성심: 자신의 이익보다 주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입니다.
3.
언어적 특징
이 단어는 '설득하다(peithō)'라는 동사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주인의 인격이나 명령에 완전히 설득되어 그 마음이 요동치지 않게 된 상태를 뜻합니다.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 이 단어는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는 사람'이나 '배신하지 않는 친구'를 묘사할 때 자주 쓰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진실한(피스토스) 청지기"란, 주인의 약속을 믿기에(능동), 주인이 보기에 믿음직스럽게(수동) 행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인터넷).
·
이 “진실한”[“πιστός”(피스토스)]란 단어는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도덕적 의미를 넘어,
성경적으로 매우 깊은
'충성심'과 '신뢰성'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요구하신
'진실함'의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주인의 부재 중에도 변함없는
'일관성'
진실한 청지기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주인이 있을 때와 똑같이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45절에 나오는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올 것이라 생각하자마자 태도가 돌변하여 동료들을 때리고 먹고 마십니다. 반면
'진실한 자'는 주인의 가시적인 통제가 없어도 주인의 명령을 자기 삶의 기준으로 삼는 한결같은 태도를 보입니다.
2.
맡겨진 직무에 대한
'신실함(Faithfulness)'
성경에서 '진실하다'는 표현은 종종
'충성되다'로 번역됩니다.
이는 자기 마음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맡긴
'매뉴얼(뜻)'대로 끝까지 완수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청지기에게 맡겨진 직무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진실한 자는 이 사소해 보이는 일상적인 나눔을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수행합니다.
즉,
일상의 성실함이 곧 성경적 진실함입니다.
3.
주인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성'
'피스토스'는 '믿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즉,
주인이 안심하고 집안일을 맡길 수 있을 만큼 신뢰가 형성된 상태를 뜻합니다.
주인은 이 청지기의 인격과 중심을 믿기에 모든 소유를 맡깁니다(44절).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는 안심하고 내 일을 맡길 수 있다"고 인정하시는 영적 신용도가 높음을 의미합니다.
4.
청지기적 정체성:
"내 것이 아니다"
진실함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는 데서 옵니다.
주인이 맡긴 권한을 마치 자기 것인 양 휘두르지 않고,
자신은 오직 관리자일 뿐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유지하는 것이 진실한 마음의 핵심입니다.
요약하자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실함"이란 "주인이 언제 오든,
보든 안 보든,
맡겨진 영혼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변함없는 충성심"을 의미합니다(인터넷).
(c)
마지막 셋째로,
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청지기”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i)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42절에 나오는
"청지기"의 헬라어는 “οἰκονόμος”
(오이코노모스)입니다(인터넷):
1.
어원적 의미
이 단어는 두 개의 헬라어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οἶκος (오이코스): 집 (House)
+ νόμος (노모스): 법, 관리 (Law,
Management) / 혹은
νέμω (네모): 경영하다, 분배하다. 즉,
문자적으로는
"집안의 사무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2.
성경적·역사적 배경
관리인: 고대 사회에서 청지기는 주인을 대신하여 집안의 재산,
가속(식솔), 재정을 총괄하는 직무를 맡았습니다.
신분: 자유인일 수도 있었지만,
대개 주인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종 중에서 임명되었습니다.
대리자: 자신의 것이 아닌 주인의 소유를 맡아 주인의 뜻대로 관리하고 분배하는
'대리자'의 성격이 강합니다.
3.
누가복음
12장 42절에서의 교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의 집 종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고 물으십니다.
여기서 청지기의 핵심 덕목은 두 가지입니다:
지혜 (Prudence): 주인의 뜻을 분별하고 상황에 맞게 일을 처리함.
진실/충성 (Faithfulness): 주인이 보지 않을 때도 맡겨진 임무에 성실함(인터넷).
·
성경 속 대표적인 청지기 사례로는 아브라함의 집을 맡았던 엘리에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청지기였던 엘리에셀(Eliezer)은 성경에서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관리자'의 전형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그의 삶을 통해 청지기의 핵심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인터넷):
1.
이름의 의미
엘리에셀 (אֱלִיעֶזֶר):
히브리어로
"나의 하나님은 도움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의 이름처럼 그는 평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인의 일을 수행했습니다.
2.
주요 특징과 역할
상속자로 여겨질 만큼의 신뢰: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던 시절,
엘리에셀을 자신의 집 모든 소유를 맡은 자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후계자(상속자)로 생각할 정도로 깊이 신뢰했습니다
(창 15:2).
중대한 임무 수행:
아브라함의 나이 약
140세 때,
아들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 고향 땅으로 보내진 인물도 바로 그였습니다
(창세기 24장). 이는 집안의 미래가 걸린 가장 중요한 과업이었습니다.
3.
청지기로서의 모범
(창세기 24장 중심)
엘리에셀이 이삭의 신붓감을 찾는 과정은 오늘날
'선한 청지기'의 모델이 됩니다:
기도하는 청지기: 임무 수행 전,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라고 기도하며 자신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을 먼저 구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
리브가의 가족을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을 소개하며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라고 말하며 철저히 주인의 대리자로서의 위치를 지켰습니다.
임무 완수가 최우선:
리브가를 만난 후 음식을 차려주었음에도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라며 육신의 안락보다 맡겨진 사명을 먼저 완수하려 했습니다.
성공의 공로를 주인과 하나님께:
일이 성사되자마자 그는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 경배하며 주인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인터넷).
(ii)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장 4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청지기의 사명은 단순히 재산을 지키는 것을 넘어,
'공동체를 살리고 세우는 돌봄'에 핵심이 있습니다(인터넷):
1.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위탁된 권위)
청지기가 맡은 가장 소중한 자산은 금전이나 건물이 아니라
'사람(종들)'입니다.
의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분이나 물질,
재능을 주신 이유는 그것으로 사람을 다스리라는 군림의 목적이 아니라,
주인의 소중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돌보라는 위탁의 목적입니다.
적용: 내가 가진 영향력과 자원이
'나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곁에 맡겨진 사람들'을 위해 존재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2.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
(적절한 공급)
청지기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굶지 않도록 양식을 제때 배분하는 것입니다.
의미: '양식'은 육적인 필요(물질, 복지)뿐만 아니라 영적인 필요(말씀, 격려, 위로)를 모두 포함합니다.
'때를 따라'라는 표현은 상대방의 상황과 필요를 민감하게 살피는 세심함이 필요함을 뜻합니다.
적용: 상대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내가 가진 것을 인색함 없이 적시에 흘려보내는
'통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네게 맡겨진 사람들을 사랑으로 먹이고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주인이 다시 오실 때(종말론적 관점),
청지기에 대한 평가는
"얼마나 많이 쌓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적절하게 나누어 주었느냐"로 결정된다는 엄중한 가르침입니다(인터넷).
·
여기서 저는 주님께서
1987년 5월 승리장로교회 대학부 수련회 때 요한복음 6장
1-5절 말씀으로 저를 부르시고 주신 사명이 생각납니다. 그 사명이란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48절)의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
그래서 이렇게 저는 지금처럼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 후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이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복음성가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1절)하고 묵상한 그 말씀 묵상의 글을 하나님께 기원하면서 받친 후 그 말씀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 카카오톡 단체 방이나,
승리장로교회 웹싸이트(https://vpcla.org/index.php/bbs/qt)나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kdicaprio74)나 제 페이스북 “말씀 묵상 나눔의 공간”(https://www.facebook.com/groups/891275965453230)과 승리장로교회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61563301492767)이나 카카오톡 스토리(https://story.kakao.com/_JLQIi5) 및 구글 블로그(https://draft.blogger.com/blog/posts/4251538604497548178?hl=en&tab=jj)나 또는 이 메일로 많은 지체들에게 믿음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덩어리로 남자만
5,000명을 배부르게 먹이시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은 기적)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n
제가 작사한 곡을 대학교 후배 민호태 형제가
AI(인공지능)로 작곡한 노래입니다.
노래 제목은
"이것은 나의 사명"입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3976533330):
감사해 말씀이신 주님
사랑해 주님의 말씀
그 말씀 주야로 묵상해
이것이 나의 즐거움
영의 양식인 주님의 말씀
먹여 주시는 주님
그 말씀 견고케해
이것이 나의 힘
오병이어 기적의 주님
나 주님께 항복해
말씀 묵상 나누는 것
이것이 나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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