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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보물은 예수님이시기에, 나의 마음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눅 12:33-34)

  https://youtu.be/AZu7grezMlQ?si=ZbAwJFs5oNH9adTq

문을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

문을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있으라 너희는 마치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주인이 이경에나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너희도 아는 바니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알았더라면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2:35-40).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35-40 말씀을 읽고 읽으면서 말씀 묵상의 제목을 문을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제목 중심으로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a)   첫째로, “문을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i)                  여기서 저는 묵상할 요한계시록 3 20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말씀에서 문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분은 바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은 구원이 인간의 노력보다 하나님의 간절한 열망과 사랑에서 시작됨을 보여줍니다(참고: 인터넷).

 

-          문의 특징은 바깥에 손잡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전능하신 예수님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응답하고 영접할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인격적으로 우리를 존중해주시기에 문을 열면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참고: 인터넷).

 

n  유대 문화에서 누군가와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단순한 끼니 해결이 아니라, "가족이 되다" 혹은 완전한 화해와 우정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를 도와주러 오시는 손님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공유하고 깊은 영적 친밀감을 나누길 원하신다는 뜻입니다”(인터넷).

 

#   요약하자면,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고 계시며, 우리가 마음을 비로소 우리 삶에 들어와 참된 안식과 기쁨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인터넷).

 

·         흥미로운 점은, 요한계시록 3 20 말씀은 원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지근한 신앙을 가졌던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란 사실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정작 예수님을 마음 중심( ) 모시지 않고 예수님을 문밖에 세워둔 종교 생활만 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엄중하고도 따뜻한 경고입니다”(인터넷).

 

-          요한계시록 3 20절을 현대 교회와 성도의 삶에 적용할 , 핵심은 '익숙함에 가려진 소외' 걷어내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적용 방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종교적 분주함' '예수님' 분리하기

 

현대 성도들은 예배, 봉사, 소그룹 모임 등으로 매우 바쁘게 활동합니다. 하지만 바쁜 활동 자체가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대신할 없습니다.

 

적용: "내가 지금 교회의 일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과 함께하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주님을 문밖에 세워둔 주님의 (교회) 청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는 것이 현대적 적용의 첫걸음입니다.

 

2.      '성공과 풍요'라는 라오디게아적 착각 깨기

 

라오디게아 교회는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 했지만, 주님은 그들이 가난하고 눈멀었다고 하셨습니다.  현대의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두드림을 듣지 못하게 하는 '소음' 됩니다.

 

적용: 삶에 결핍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영적인 갈급함을 회복하고, 삶의 안락함보다 주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3.      마음의 '주도권' 넘겨드리기 (식탁의 교제)

 

함께 먹는다는 것은 삶의 가장 일상적이고 은밀한 영역까지 공유하는 것입니다.

 

적용: 주일을 제외한 평일의 , 나의 재정 관리, 진로 결정, 인간관계의 갈등 삶의 '안방'까지 주님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주님을 인생의 '조언자' 정도로 문밖에 두지 않고, 삶의 주권을 가진 '호스트(주인)' 인정하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4.      ' ' 예수님을 향한 감수성 회복

 

현대 교회 안에서 소외된 이들,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적용: 교회라는 건물이나 조직 안에 갇힌 신앙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신음하며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주님의 음성(이웃의 고통 ) 응답하여 마음의 빗장을 여는 확장이 필요합니다.

 

5.      공동체적 회개

 

말씀은 개인뿐 아니라 '교회(공동체)'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적용: 우리 교회가 프로그램이나 전통, 건물 유지에만 매몰되어 정작 예수님이 주인 노릇 하지 못하시는 상태는 아닌지 공동체적으로 돌아보고, 본질적인 '예배의 감격' '첫사랑' 회복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현대적 적용의 핵심은 종교 생활(Religion)’ 관계(Relationship)’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음 문을 두드리는 세밀한 음성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문을 여는 '작은 순종' 가장 적용입니다”(인터넷).

 

(ii)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3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치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말씀하십니다. 

 

·         여기서 "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이란 말씀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Second Coming) 그에 대한 성도의 영적 깨어 있음을 상징합니다(인터넷):

 

-          여기서 주인인 혼인집에 돌아와 말씀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예표합니다.  당시 유대인의 혼인 잔치는 늦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잔치의 흥겨움에 따라 며칠씩 이어지기도 했기에 주인이 언제 잔치를 마치고 돌아올지 종들은 정확한 시간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재림의 시기가 예고 없이 갑자기 임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n  주인이 혼인집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는 행위는 주님의 오심이 바로 앞까지 도달했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개인적인 죽음의 순간이나 세상 끝의 심판 주님이 사람의 영혼을 부르시는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          여기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 단순히 앞에 있는 사람을 넘어, 주인을 향한 전적인 집중과 사랑을 가진 성도를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사람을 뜻합니다(인터넷):

 

1.      영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사람 (준비성)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위해 밤이 깊어도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는 세상의 유혹이나 영적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항상 재림의 신앙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태도를 말합니다.

 

2.      주인의 음성에 기울이는 사람 (민감함)

 

주인이 소리로 부르기 , 작은 '두드림' 소리만 듣고도 즉시 반응할 준비가 사람입니다.  평소 기도로 주님과 소통하며 그분의 뜻과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적 민감성을 가진 자를 뜻합니다.

 

3.      지체 없이 순종하는 사람 (즉각성)

 

" 열어 주려고"라는 표현처럼, 주인이 오셨을 자신의 상황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끌지 않습니다.  주님이 부르실 즉시 삶을 내어드릴 있도록, 세상에 미련이나 감추고 싶은 죄가 없는 정결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4.      주인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 (사랑)

 

억지로 의무감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너무나 사랑해서 만남을 설레며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성경적 문맥에서 이는 신랑(예수님) 기다리는 신부의 마음과 같습니다.

 

결국 말씀은 "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온전히 내어드리고, 그분이 언제 오시더라도 기쁘게 맞이할 있는 상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인터넷).

 

(iii)              마치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12:34) 그리스도인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습니다(35).  다시 말하면, 누가복음 12 35절의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있으라" 말씀은 '기다리는 사람' 갖춰야 구체적인 준비 자세를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인터넷):

 

1.      허리에 띠를 띠고 (Readiness for Action)

 

당시 유대인들이 입던 옷은 통이 넓고 겉옷이었습니다.  평소에는 편하게 늘어뜨리고 있지만, 일을 하거나 길을 떠날 때는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끈으로 허리를 질러 매야 했습니다.

 

영적 의미: '즉각적인 순종' '사명 수행' 의미합니다.  주님이 언제 부르시더라도 지체 없이 움직일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동여매고 있는 상태, 영적인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자세를 뜻합니다(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급히 떠나기 위해 허리에 띠를 띠고 유월절 음식을 먹었던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2.      등불을 켜고 (Vigilance and Purity)

 

주인은 밤중에 가능성이 큽니다.  등불을 켜두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주인을 맞이할 없고, 주인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영적 의미: '영적 분별력' '삶의 증거' 의미합니다.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진리의 말씀( 119:105) 성령의 기름 준비를 통해 신앙의 빛을 밝히고 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착한 행실을 통해 세상의 빛이 되어 주님의 오심을 증명하는 ( 5:16) 뜻하기도 합니다.

 

3.      있으라 (Attentiveness)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 있는' 자세는 주인을 맞이하기 위한 최종적인 대기 상태입니다.

 

영적 의미: '깨어 있는 예배자' 자세입니다.  영적 (나태함, 방탕함) 빠지지 않고 항상 주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능동적인 기다림을 상징합니다.

 

요약하자면, 모습은 마치 5 대기조처럼,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 반응할 행동의 준비(허리띠) 영적인 분별력(등불) 모두 갖춘 상태를 말합니다(인터넷).

 

·         저는 말씀을 묵상할 마태복음 25장의 처녀 비유 말씀에서 그릇에 기름을 담아 (lamps) 함께 신랑을 맞이할 준비한 슬기 있는 다섯 처녀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있는 문을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은 종들에게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태도에 대한 교훈을 얻습니다:

 

1.      지속적인 영적 내실 (기름 준비)

 

겉으로 보이는 '등불(종교적 형식)'에만 만족하지 않고, 불을 계속 밝힐 있는 '그릇의 기름(내면의 경건과 성령 충만)' 채우는 태도입니다.  이는 주님의 오심이 더딜지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낼 있는 인내와 실력을 의미합니다.

 

등불(외적 신앙): 누구나 들고 있을 있는 겉모양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거나 직분을 가진 모습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의 형태를 의미할 있습니다.

 

기름(내적 실재): 등불을 계속 타오르게 하는 본질적인 에너지원입니다.  이는 주님과 맺고 있는 인격적인 관계, 성령의 충만함,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내는 내면의 믿음을 상징합니다.


연결: 누가복음의 "등불을 켜고 있으라" 명령은 단순히 등을 들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의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불을 계속 밝힐 있는 충분한 기름(영적 내공) 갖추고 있으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영적 내공이란 단순히 지식이 많은 상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유지하고 증명해내는 내면의 " 의미합니다(인터넷):

 

a.      말씀의 체화 (Internalization of the Word)

 

등불의 연료인 기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 능력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생각이 아닌 말씀이 먼저 튀어나오는 상태가 바로 내공이 쌓인 상태입니다.

 

b.     흔들리지 않는 영적 맷집 (Resilience)

 

주님의 재림이 생각보다 더뎌지거나(지체됨), 삶의 고난이 닥칠 쉽게 낙심하지 않는 힘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밤이 깊어져도 불을 밝힐 있었던 것처럼, 어두운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신앙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c.      성령과의 지속적인 교제 (Fellowship with the Holy Spirit)

 

기름은 흔히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영적 내공' 매일의 기도와 묵상을 통해 성령님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연결이 탄탄해야 주님이 문을 두드리시는 세밀한 소리에도 즉각 반응할 있습니다.

 

d.     삶으로 증명되는 경건 (Practical Godliness)

 

등불이 어둠을 밝히는 실질적인 빛을 내는 것처럼, 영적 내공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행함' '인격'으로 나타납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 앞에 있는(Coram Deo) 정결한 삶의 자세입니다.

 

결국 "영적 내공을 갖추라" 것은 주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주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기쁘게 맞이할 있는 '준비된 영적 실력' 키우라는 뜻입니다(인터넷).

 

2.      삶의 현장에서의 긴장감 (허리띠와 등불)

 

'허리에 띠를 띠는 ' 일상의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는 현장성을 뜻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일은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 속에서 (등불) 발하며 깨어 일하는 삶임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일상의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고 신실하게 사명을 감당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이란 한마디로 '나그네의 의식' '청지기의 성실함' 결합된 삶입니다.  구체적으로 가지 모습으로 정의해 있습니다(인터넷):

 

a.      '목적지' 잊지 않는 나그네의

 

세상이 주는 편안함이 영원한 안식처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안락함 자체를 거부하는 금욕주의라기보다, 안락함 때문에 주님을 향한 갈망이 무뎌지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입니다.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주님이 부르시면 떠날 있도록 마음의 짐을 가볍게 유지하는 상태입니다.

 

b.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하는 청지기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해서 일상을 내팽개치고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이 맡겨주신 가정, 직장, 공동체라는 사명의 자리에서 가장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12:43)라는 말씀처럼, 가장 일상적인 업무와 관계 속에서 주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것이 재림 준비입니다.

 

c.      '사랑의 빚진 ' 섬기는

 

누가복음 12장에서 주님은 깨어 있는 종들에게 주인이 직접 수종드는 파격적인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안락함을 혼자 누리는 쓰지 않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허리띠를 띠는 자신의 자원을 사용합니다.  그것이 바로 '등불을 켜고 있는' 모습입니다.

 

결국 삶은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성실하게 살고, 동시에 주님이 오늘 오실 것처럼 간절히 사모하며 사는 "이라고 있습니다(인터넷).

 

3.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 열어주려는 마음)

 

주인이 문을 두드릴 "" 열어줄 있는 이유는 평소 주님과 친밀한 사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림은 두려운 심판의 날이 아니라, 사모하던 주님을 마침내 만나는 기쁨의 날이기에 지체 없이 반응할 있는 것입니다(인터넷).

 

(b)   마지막 둘째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i)                  저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 평소 주님과 친밀한 사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예수님의 재림은 두려운 심판의 날이 아니라 사모하던 주님을 마침내 만나는 기쁨의 날이기에 주님께서 세상에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주님의 노크 소리는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신랑의 다정한 음성으로 들릴 것입니다(참고: 인터넷).

 

·         여기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기에 깨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 37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종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주인이 몸소 허리에 띠를 두르고 종들을 식탁에 앉힌 다음 직접 시중들 것이다.”

 

-          성경은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음의 가지를 강조합니다.

 

1.      항상 기도하며 힘쓰기 (누가복음 21:36)

 

예수님께서는 장차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 같아서, 하나님과 계속 대화하는 상태 자체가 영적인 잠을 방지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2.      근신하여 정신을 차리기 (베드로전서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세상의 유혹이나 염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감정과 생각을 절제하며, 영적인 분별력을 유지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3.      말씀의 아래 머물기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니이다.’  어두운 밤에 등불이 없으면 잠들기 쉽듯,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삶의 방향이 주님을 향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깨어 있음은 특별한 이벤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일상을 주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인터넷).

 

·         여기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은 집에 도둑이 침입하지 못하도록(12:39, 현대인의 성경) 영적 방어를 합니다.

 

1.      틈을 주지 않는 철저함: 도둑은 집의 가장 약한 부분() 노립니다.  영적 방어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교만, 안일함, 혹은 반복되는 죄의 습관이 주님과의 관계를 파고들지 못하도록 마음의 문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급니다.

 

2.      가치의 보존: 주인이 도둑을 막는 이유는 안에 소중한 보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믿음' '성령의 기쁨'이라는 보물을 세상의 염려나 유혹에 빼앗기지 않도록 깨어 지킵니다.

 

3.      상시 경계(Ready-state):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은 두려움이 아니라 '깨어 있는 상태' 유지하게 만듭니다.  이들에게 방어는 일시적인 훈련이 아니라, 주님을 만날 때까지 지속되는 안전한 일상이 됩니다(인터넷).

 

-          여기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은 집에 침입하는 도둑으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것이 있는데 소중한 것을 크게 가지 측면으로 생각할 있습니다(인터넷):

 

a.      주님을 향한 ' 사랑' '믿음의 정절'

 

도둑(세상 유혹, 사탄) 가장 먼저 훔치려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중심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설렘과 뜨거운 사랑이 식어버리지 않도록, 그리고 세속적인 가치관에 믿음이 오염되지 않도록 마음의 문을 지키는 것입니다.

 

b.     주님이 맡기신 '사명' '달란트'

 

이어지는 누가복음 12 42 이하를 보면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은 각자에게 맡기신 직분과 사명이 있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주님이 오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들을 있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은사를 허비하지 않고 관리합니다.

 

c.      구원의 '기쁨' '소망'

 

영적으로 잠들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구원의 감격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12:22-34) 도둑처럼 들어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앗아가지 못하게 방어하는 것이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결국 소중한 것이란 '주님 앞에 섰을 주님께 드릴 우리의 온전한 자체'라고 있습니다(인터넷).

 

n  예수님께서는 주님 앞에 섰을 주님께 우리의 온전한 자체를 드리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은 주인이 띠를 띠고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12:37) 약속하십니다.

 

1.      상상을 초월하는 '은혜의 보상'

 

당시 문화에서 주인이 종을 위해 허리에 띠를 띠고 시중을 드는 것은 있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 깨어 기다린 수고보다,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실 상급과 영광이 훨씬 크고 압도적임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작은 기다림을 주님은 '최고의 환대' 갚아주십니다.

 

2.      '섬기는 '이신 예수님의 본성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것처럼( 13:5), 마지막 날에도 우리를 지배하는 군주가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 분으로 다가오십니다.  "인자가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20:28)라는 말씀의 최종적인 성취입니다.

 

3.      영원한 '천국 잔치' 기쁨

 

'자리에 앉히고 수종든다'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귀한 손님으로 초대받았음을 뜻합니다.  이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니라, 주님과 얼굴을 맞대고 영원히 소통하며 누리는 가장 깊은 친밀함과 안식을 상징합니다.

 

4.      수고에 대한 '지극한 위로'

 

밤을 새우며 주님을 기다리느라 지친 종들의 허기를 채워주시고, 직접 시중을 드시는 주님의 모습은 우리가 땅에서 겪은 모든 눈물과 수고를 닦아주시는 세밀한 위로를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은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삶이 '고된 의무' 아니라, '영광스러운 대접' 보장된 가장 행복한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확증해 줍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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