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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wilderness” Not only can we receive the Word of God, but we can also be tempted by Satan.

“In the wilderness ” Not only can we receive the Word of God , but we can also be tempted by Satan .             “ Jesus , full of the Holy Spirit , returned from the Jordan and was led by the Spirit in the wilderness, where for forty days he was tempted by the devil . He ate nothing during those days, and when they were over, he was hungry” ( Luke 4:1–2 ).       As I meditate on this passage, I would like to reflect on the lessons given to us through it.   (1)     When I meditate on Luke 4:1–2, which says that Jesus was tempted by the devil for forty days, I also look up the same account in Matthew 4:1–2 and Mark 1:12–13 .   By comparing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among them, I came to four main conclusions.   (a)     First, Jesus, full of the Holy Spirit, returned from the Jordan and was led by the Spirit into the wilderness (Lk. 4:1; cf. Mt. 4:1).  ...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탄에게 유혹도 받을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탄에게 유혹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하여 요단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40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기간이 끝났을 때는 몹시 시장하셨다”](누가복음 4:1-2)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저는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40 동안 시험을 받으셨다는 누가복음 4 1-2 말씀을 묵상할 동일한 이야기가 나오는 마태복음 4 1-2절과 마가복음 1 12-13 말씀을 찾아 함께 묵상하면서 비슷한 점들과 다른 점들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아보면서 이러한 4가지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a)   첫째로, 성령 충만하여 요단강에서 돌아오신 예수님은 성령님에게 이끌리셔서 광야로 나가셨습니다(4:1; 참고: 4:1).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내보내셨다”(현대인의 성경)](1:12).

 

(i)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셨는데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소리”) 너는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3:22)였습니다.

 

·         이렇게 요단강에서 성령 충만하여 돌아오신 예수님께서 성령님에게 이끌리셔서[“성령님의 인도로”(현대인의 성경)] 광야로 나가셨다는 말씀을 묵상할 저는 호세아 2 14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현대인의 성경은 거친 광야로번역을 하였습니다. 

 

-          그리고 저는 광야 생각할 예수님께서 공생애[“예수님의 공생애는 세례를 받으신 부활하시기 전까지 3 동안의 사역 기간을 의미합니다”(인터넷)] 조용한 시간[“이른 새벽”(1:35, 현대인의 성경)] 한적한 ”(35, 6:32; 5:16) 가셔서 조용히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기도하시면서(1:35; 5:16)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셨는데 저는 그것이 예수님의 모든 사역(공생애) 가장 중요한 중추(backbone)였다고 생각합니다.

 

n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조용히 시간(quite time) 조용한 마음(quite heart) 가지고 광야 같은 조용한 장소(quite place)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가지면서(참고: 요일1:3,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2:14).  특히 저는 예수님처럼 너는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3:22) 말씀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3:17) 말씀과 너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구원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것이다.    내가 너를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 여겨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 …”(43:1, 4,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더욱더 듣고 위로 받길 기원합니다.

 

(b)   둘째로, 예수님은 광야에서 40 동안[“계시면서”(1:13)] 마귀[“사탄”(13)]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4:1-2; 참고: 4:1-2).

 

(i)                  저는 성령님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신(4:1,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40 동안 계시면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말씀을 묵상할 광야라는 곳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말씀을 받고) “사람이 빵으로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8:3, 현대인의 성경) 배우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마귀(사탄)에게 시험(유혹) 받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말은 성령 충만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광야와 같은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하면서 진리의 말씀을 받을 때에 거짓의 아비”(8:44) 마귀란 놈을 진리가 속에 없으므로”(44) 우리를 엄청나게 그리고 끊임없이 유혹을 한다는 생각입니다.

 

-          예를 들어,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마음으로 조용한 장소에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인 너는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3:22)하는 진리의 말씀에 은혜를 받을 거짓의 아비인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범한 죄들을 생각나게 하면서 사죄의 불확신을 들게하므로 우리 자신을 미워하게 만드는 유혹을 엄청나게 그리고 끊임없이 합니다.

 

n  요한일서를 묵상하면서 적은 사랑 vs. 미움이란 짧은 말씀 묵상 글을 다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요일4:7).  다시 말하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므로서 진리에 속한 줄을 압니다(3:19).  그러나 미움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8, 10).  다시 말하면, 미움은 마귀에게로부터 것입니다.  우리가 미워할 우리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습니다(2:4).  다시 말하면, 우리가 미워할 우리는 어둔 생활을 하는 것이요 또한 진리대로 살지 않는 거짓말장이에 불과합니다(1:6, 현대인의 성경).”


(c)   셋째로, 예수님은 광야에서40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금식하여”(4:2, 현대인의 성경)] 기간이 끝났을 때는 몹시 시장하셨습니다(4:2, 현대인의 성경).

 

(i)                  여기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40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으셔서(금식하셔서) 결국 몹시 시장하셨다는 말씀을 묵상할 저는 가지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          첫째로, 저는 모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을 기록한 돌판을 받으려고 시내 산으로 올라가 40 동안 밤낮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는 말씀(9:8-9, 현대인의 성경)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의 40 금식과 모세의 40 금식을 묵상할 예수님의 금식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앞서 하신 금식이라면, 모세의 금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받는 과정에서 금식이라 생각합니다.

 

n  이러한 금식을 우리 사역자들에게 적용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서 뿐만 아니라 사역을 하기 위해서 금식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8 6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여기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의 특징 4가지를 인터넷에서 읽게 되었습니다(인터넷): (1) “사회적 정의 실현: 억압받는 사람들을 돕고, 사회적 불의를 해결하려는 실천이 포함됩니다.”  (2) “이웃에 대한 나눔과 사랑: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고 돌보는 행동입니다.”  (3) “약자를 향한 공감과 연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4) “영적 성장과 결합: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고백하고,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채워지기를 구하는 금식입니다.”

 

·         둘째로, 저는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40 동안 광야에서 있었을 그들의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그들에게 먹이셨지만(8:3) 그들은 함께 섞여 사는 탐욕을 품은 다른 인종들에게 나쁜 영향을 받아(11:4) 욕심을 내어(34) “우리가 입맛을 잃었어도 만나밖에는 먹을 것이 없구나!하고 불평하”면서(6,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신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같았”던 만나(8) 싫어하여 고기를 구하였을 (4)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불평과 원망 가운데서 요구한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되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동안만 아니라 내내 신물이 나도록 먹게하셨다는 말씀(18-20, 현대인의 성경) 다시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셔서 광야에서 40 금식 후에 몹시 시장하셨던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40년동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셔서 그들을 주리지 않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욕심 속에서   불평과 원망 가운데서 고기를 구했을 때에도 동안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배부르게 먹이셨다는 말씀을 묵상할 저는 예수님의 금식 기도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대조하면서 예수님의 굶주림과 우리의 배부름도 대조하게 되었습니다.

 

n  그리할 중보자 예수님(딤전2:5)께서 굶주리심으로 우리가 배부름을 받고 예수님의 금식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평과 원망의 기도 소리조차도 들어주시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d)   마지막 넷째로, 예수님은 광야에서 40 동안 들짐승과 함께 지내시자 천사들이 수종들었습니다[“시중들었다”(현대인의 성경)](1:13).

 

(i)                  호크마 주석에 의하면 당시 유대 광야 지역에는 , 이리, 표범, 여우, 멧돼지, 하이에나 등이 이따금씩 출몰했다고 합니다(호크마).  저는 그런 들짐승과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 동안 함께 지내셨다는 말씀을 묵상할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 관계를 단절하신 철저히 홀로 되셔서 고독에 역경을 감래하고 계셨다는 호크마의 말에 공감이 갑니다(참고: 호크마).

 

·         그리고 저는 우리도 어떤 때에는 모든 인간 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고 스스로 광야와 같은 한적한 곳으로 가서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홀로 되어 깊은 고독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헨리 나우웬의 말대로 외로운 광야를 고독의 동산으로 만들어 깊은 고독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제가 전에 썼던 글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조용히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기도하셨다는 말씀을 묵상할 헨리 나우웬이 외로운 광야를 고독의 동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여기서 외로움과 고독의 다른 점은 외로움은 홀로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지만 고독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광야도 아닌 도시 한복판에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광야에서의 외로움보다 무서운 군중 속에서의 외로움을 우리는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서운 사실은 이러한 군중 속에서의 외로움을 우리는 고독의 동산으로 바꾸지 못하는 무능력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화하는 대신 가까운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는 사람의 음성을 듣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사람들과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간을 선호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때에 어쩌면 이유는 우리가 고독을 즐기지 못하면서 외로움은 너무나도 싫어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외로움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조용한 마음(quiet heart)으로 홀로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경험하므로 외로운 광야를 고독의 동산으로 바꾸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ii)                호크마에 의하면 모든 천사들의 주된 임무는 예수님과 구원 얻을 모든 자들을 섬기는데 있습니다( 1:14).  천사들이 예수님께 수종든 때에 관해서는 마태복음 4 11절에 나와있는 대로 예수님께서 마귀를 물리치신 후였습니다[“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성경상에서는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께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종들었는지에 관해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아마도 하늘로부터 전해진 영적 위로를 전달하고 40 동안 금식하시느라고 주리신 예수께 육적인 양식을 공급하는 일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호크마).

 

·         이렇게 천사들이 예수님을 수종들었다는 말씀이 마가복음 1 13절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4 11절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구절들의 의미는 예수님이 마귀(사탄) 시험을 말씀과 능력으로 물리치신 영적 승리의 증거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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