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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즐거워하시는 아버지

https://youtu.be/-_pXAr7y1Og?si=QWgStTY1tPWojs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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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을 가진 사람

두 얼굴을 가진 사람 "유다는 '내가 예수에게 입을 맞출 테니 그를 단단히 붙잡아 가시오.' 하고 미리 암호를 짜 둔 후 곧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 하며 예수님께 입을 맞췄다.  그러자 그들이 달려들어 예수님을 붙잡았다"(마가복음14:44-46,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좀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왜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려는 가룟 유다는 미리 암호를 짜 두었을까요? 어쩌면 그 이유는 그 당시에는 사진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우거진 감람나무 사이의 어두운 밤이었므로 요주의 인물을 찾아내기가 상당히 까다로웠을 것이기에 따라서 유다는 예수가 있는 곳에 도달하기 전에 무리들과 신호를 맞추어 손쉽게 체포하도록 했을 것입니다(호크마). (2) 그 신호가 왜 하필이면 입맞추는 것이었을까요?  당시 유대인들에게 입맞춤이란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는 일반적인 인사법이었습니다(사무엘하 20:9). 정상적인 인사 형태인 입맞춤이 어둠 속에서 체포의 군호로 사용됨으로써 마침내 배신과 위선의 상징으로 굳혀지고 말았습니다. 아마 이곳에 몰려온 무리들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때 그의 말을 들었던 무리들과는 다른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입 맞춤에 의한 확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호크마). (a) 흥미로운 점은 제자와 스승 사이에 있어서 제자가 먼저 스승에게 입맞추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합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먼저 입맞출 수 없는 이유는 제자와 스승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다의 입맞춤은 예수와의 사제 관계가 최종적으로 부정되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유다의 이 행동은 일종의 모욕적 행위를 뜻하기도 하는 것입니다(호크마).  (i) 한편 본문의 이 장면은 다읫시대 요압이 아마사에게 입맞추려는 체하면서 칼로 그를 찔러 죽인 사건을 연상시켜 줍니다(사무엘하 20:9, 10).  "바로 이러한 야누스(Janus)적인 성격이 사단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악인의 전형적 속성인데 그...

A Man with Two Faces

 A Man with Two Faces “Now the betrayer had arranged a signal with them: ‘The one I kiss is the man; arrest him and lead him away under guard.’ Going at once to Jesus, Judas said, ‘Rabbi!’ and kissed him. The men seized Jesus and arrested him.” (Mark 14:44–46, NIV) As I reflect on this passage, I seek to receive the lessons it offers: (1) Why did Judas Iscariot, who was planning to betray and hand Jesus over, prearrange a signal?  One possible reason is that, at that time, photography did not exist, and the dark night amid the dense olive trees would have made it quite difficult to identify a particular person. Therefore, Judas likely arranged a signal with the crowd beforehand so that Jesus could be quickly and easily identified and arrested once they arrived at the location (Hokhma). (2) Why was the signal, of all things, a kiss? Among the Jews of that era, a kiss was a common greeting that expressed respect and affection (2 Samuel 20:9). However, when this ordinary form of ...

시험에 든 자의 변질된 행동

 시험에 든 자의 변질된 행동 "그런데 예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곧 왔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그와 함께 왔다"(마가복음 14:43, 새번역)하는 말씀을 좀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 "...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2절)하고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 예수님을 파는(42절) 죄인(41절)인 12명의 제자들 중에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보낸 무리를 앞장서(누가복음22:47) 곧 왔습니다(마가복음 14:43, 새번역). (a)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 곧 유다가 단검을 가진 로마 병사들과 몽둥이를 든 성전 지키는 자들을 이끌고 나타난 것입니다.  유다는 밤에 겟세마네에 계신 예수에게로 그들을 인도하여 온 것입니다(호크마). (i) 마가는 유다가 언제 제자들 사이에서 빠져 나가 예수님을 잡으려하는 자들과 어울렸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는 반면에 요한은 유다가 마지막 만찬 때에 떡조각을 받은 후 제자들의 무리로부터 이탈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요한복음 13:30). 아마 유다가 대가를 받고 알려 주기로 한 것은 민란을 일으키지 않고 어느 조용한 곳에서 예수님을 체포할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로 어떤 곳을 자주 찾으시는지를 익히 알고있던 유다는(18:2 -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그분이 유월절 식사 후 감람산 겟세마네로 가실 것을 알고 나가서 무리를 끌고 그 곳으로 왔던 것입니다(호크마). * 익히 알고 있었던 예수님의 조용한 기도처소를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파는 장소로 선택한 것을 보면 깨어 기도하지 않아 시험에 들어 돈의 욕심에 이끌림을 받는 자가 어떻게 변질된 행동을 하는지를 좀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복하는 자의 담대한 태도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복하는 자의 담대한 태도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가복음 14:41-42)는 말씀을 좀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마태복음 26장 4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그들(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세 번째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의 세 번 기도는 (a) 예수님의 기도의 간절성과 (b) 그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위기 상황의 긴박감 및 (c) 예수의 아버지께 대한 순종의 절대성과 적극성등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 그 자체의 중요성이 은연중 강조되고 있습니다(호크마). (3)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란 말씀은 수난의 시간이 가까왔고 기도하거나 닥쳐올 시험에 대비하여 힘을 얻기에는 너무 늦었기에 이제는 잠을 자도 무방한 것이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호크마). (4) "때가 왔도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원수의 손에 잡히어 최악의 순간을 맞을 그 수난의 때가 이미 왔다는 말씀입니다(호크마).  (5)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는 말씀에서 "죄인"은 배신과 고발의 첫 행위자인 가룟 유다만을 의미하지 않고 산헤드린 공회원, 백성의 지도자, 일반 백성, 그리고 로마 행정 당국자들 모두를 내포합니다(호크마). (6) "일어나라 함께 가자"는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회피하지 않으시고 의연하게 맞으시려 하셨다(요한복음 18:4)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세 제자들에게도 그러한 의연함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담대한 태도는 성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 순복의 한 단면이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예수님이 다시 가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돌아와 보니 제자들이 몹시 피곤하여 또 자고 있었습니다 .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 마가복음 14:39-40, 현대인의 성경 ) 하는 말씀을 좀 묵상하고자 합니다 :   (1)    누가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 “ 예수님은 두 번째 가셔서 ' 아버지 ,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떠날 수 없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 하고 기도하신 후 다시 돌아와 보니 그들은 몹시 피곤하여 또 자고 있었다 ”( 누가복음 22:42-43, 현대인의 성경 ).   (a)    마가에 의하면 예수님의 두 번째 기도는 “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 ” 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마태에 의하면 예수님의 두 번째 기도는 첫 번째 기도와 좀 다릅니다 .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는 “ 아버지 , 할 수만 있으면 이 고난을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 마태복음 26:39, 현대인의 성경 ) 하고 간구하신 반면에 , 예수님의 두 번째 기도는 “ 아버지 ,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을 내게서 떠날 수 없다면 …”(42 절 , 현대인의 성경 ) 하고 간구하셨습니다 .   즉 ,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와 두 번째 기도를 비교하면 고난의 잔을 마시는 것에 관하여 예수님의 마음 자세가 좀 변하였습니다 .     (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