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말씀 묵상
귀신 들린 한 여종의 주인들은 그녀가 점을 쳐서 자기들에게 많은 돈을
벌어 주고 있었기에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그녀에게서 나오게 했을 때 돈을 벌 희망이 사라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로마 관리들에게 끌고 가서 "이 유대인들이 우리 도시를 소란하게 하며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아들일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는 풍습을 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사도행전 16:16-21, 현대인의 성경). 그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에게서 자유를 누리게
된 이 기쁜 일이 그녀의 주인들에게는 돈을 벌 희망이 사라진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쌍한 한 영혼의 구원과 자유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는 교인들에게는
고통을 당하는 불쌍한 사람도 자신들에게 돈을 벌어 줄 사람으로만 보일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의 말은 듣지도 않고 귀신 들린 한 여종의 주인들의 말만 들었던
로마 관리들은 군중들까지도 그 주인들과 한패가 되어 비난하자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게 한 후에 감옥에 가뒀습니다(사도행전 16:20-23, 현대인의 성경). 우리의
귀가 한쪽 사람들의 말만 듣는 경향과 소수의 사람보다 군중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경향과 그들의 비난에 더 민감한 경향을 극복해야 합니다.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또 기울일 때 주님께서 가능케 하실
줄 믿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
사도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한 여종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그녀에게서 나오게 하는 바람에 그녀의 주인들에게 붙잡혀서
로마 관리들에게 끌려 가 결국에는 "감옥"에 가둔
봐 되어 그 감옥에서 "기도"를 했습니다(사도행전 16:16-25). 분명히 사도 바울과 실라가 찾던 "기도하는 곳"은 "감옥"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자신들이
원했던 원치 않았던 사람들의 인도함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감옥"을 "기도하는 곳"["기도처"(현대인의 성경)](16절)으로 삼고 기도했다는 그 사실이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지금 우리가 동서남북으로 갇힌 바된 것처럼 문제의 해결점이 망막하게 보이고 있다면 어쩌면 그 "감옥"같은 상황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처"일 수도 있습니다.
깊은 감옥에 가둔바 되어 내 발이 쇠고랑을 든든하게 채워 놓은바 된 것처럼
만일 지금 우리가 여러 종류의 쇠고랑이들이 우리의 손과 발과 몸 등을 다 든든하게 채워 놓아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깊은 침체 가운데 허덕이고
있다면 우리는 바울과 실라처럼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우리의 인생에도 일어나 우리를 묶었던 모든 쇠고랑이 다 풀리고 아무리
깊은 감옥이라 할지라도 그 감옥의 문이 다 열릴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십니다!
(참고: 사도행전 16:24-27).
하나님께서는 한밤중에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던 바울과 실라를 그
깊은 감옥에서 자유케 하시사 자다가 깨어 감옥 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살하려던 간수를 육신적으로만 살려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죽었던 영혼도 살려주시사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간수의 온 가족도 다 하나님을 믿게하시사 구원해 주셨습니다(사도행전
16:25-34). 성경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1절).
자살하려고 했던 사람이 살린바 된 것도 감사하고 기쁜데, 주 예수님을 믿어 영적으로 죽었던 자가 살아나
구원을 받게 된 것도 감사하고 기쁜데, 온 가족까지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세례를 받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함께 기뻐하고 함께 감사한 일입니까! (참고: 사도행전
16: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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