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높이는 모든 이를
사랑의 마음으로 포용하십시오.”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요한이 예수님께 '주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에 우리가 그렇게 못하도록 했습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님이 그에게 '막지 말아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위하는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9:49-50).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9장 49-50절 말씀을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9장 38-40절 말씀과 함께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a)
첫째로,
요한이 예수님께 ‘주님,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않은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가 그렇게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눅9:49; 막9:38).
(i)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왜 요한은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더 이상 주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는 것을 금하였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
오늘 본문 누가복음
9장 49절에서 그 대답을 찾아봅니다:
“…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이것은 “우리 중심의 배타주의”와 “조직적 특권 의식”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인터넷):
-
“’우리’라는 울타리
(소속 지상주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수행하는 공식적인 그룹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사역의 유일한 자격 요건으로 보았습니다.
성경 강해(BibleRef)에 따르면,
이들은 사역의
'열매(귀신이 쫓겨남)'보다 '절차와 소속(우리 팀인가?)'을 더 중요하게 여겼음을 의미합니다.
n
영적 독점욕: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않는다’는 말 속에는 ‘예수님의 이름은 우리만 사용할 권한이 있다’는 독점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의 문맥 흐름을 보면,
제자들은 자신들만이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대리인이라고 믿고 자신들 외의 사역을 불법으로 간주한 것입니다”(인터넷).
-
왜 우리는
"우리 중심의 배타주의"와 "조직적 특권 의식"을 매우 경계해야 하나요?
n
“‘우리 중심의 배타주의’와 ‘조직적 특권 의식’은 겉으로는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매우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엄히 경계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역의 목적이
'영혼'에서 '세력'으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배타주의에 빠지면 ‘사람이 살아나는 것’보다 ‘우리 조직이 확장되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요한이 본 그 사람은 귀신을 내쫓아 한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영혼의 해방보다 ‘우리 허락 없이 사역한다’는 절차와 세력권에만 몰두했습니다. 결국 본질(사랑과 치유)은 사라지고 형식(소속과 권위)만 남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주권을 인간의 틀에 가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든 교단,
교회, 단체라는 울타리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라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만 일하셔야 한다’는 교만입니다. 특권 의식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대로 다른 사람이나 다른 방식을 통해 일하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3.
공동체 내의 서열화와 교만을 부추깁니다.
특권 의식은 반드시 내부적으로
'누가 더 높은가'라는 서열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눅
9:46에서 제자들은
"누가 크냐"며 다투었습니다.
‘우리는 특별하다’는 생각은 외부를 향해서는 배타성으로,
내부를 향해서는 권력 다툼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섬김의 도'와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4.
복음의 확장성을 가로막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나 누룩처럼 소리 없이,
그리고 경계 없이 퍼져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배타적인 성벽을 쌓는 순간,
복음은 그 성벽 안에 갇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하시며,
복음의 동역자 범위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게 설정하셨습니다.
결국 배타주의와 특권 의식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대리인'이 아닌
'하나님 노릇'을 하는 자리에 앉게 만듭니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깨어 경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인터넷).
·
또한 누가복음
9장 40절에서 그 대답을 찾아봅니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
“비교와 시기심:
직전에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는 데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눅 9:40). 반면,
이름 없는 이 사람은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본헤럴드(BonHD)는 제자들이 느낀 상실감과 시기심이 ‘우리 소속이 아니니 멈추게 해야 한다’는 통제 욕구로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합니다”(인터넷).
n
왜 우리는
"비교와 시기심"을 경계해야 하나요?
“’비교와 시기심’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 문제를 넘어,
영혼을 갉아먹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죄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적,
심리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이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이 주신
'나만의 소명'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비교는 내 시선을
'하나님'이 아닌
'타인'에게 고정시킵니다.
제자들이 다른 사역자를 금지했던 이유는 그가 자신들보다 사역을 더 잘하고 있다는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
타인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고유한 달란트와 사역에 감사하기보다 남이 가진 것을 탐내느라 내게 주어진 복을 낭비하게 됩니다.
2.
공동체를
'동역자'가 아닌
'경쟁자'로 보게 합니다.
시기심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우는’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 정신을 파괴합니다.
시기심의 무서운 점:
상대의 실패를 은근히 기뻐하게 되고,
상대의 성공을 나의 위협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귀신이 쫓겨나 영혼이 자유케 된
'선한 결과'보다, 그 일을
'누가 했느냐'를 따지며 경쟁자로 대했습니다.
이는 결국 공동체의 분열을 초래합니다.
3.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왜곡합니다.
비교와 시기심은 세상의
'서열 논쟁'을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누가 더 큰가(눅 9:46)라는 질문은 비교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누가 더 높은가'가 아니라
'누가 더 낮은 곳에서 섬기는가'에 가치가 있습니다.
시기심에 사로잡히면 예수님의 섬김의 도를 따를 수 없게 됩니다.
4.
영적인 기쁨과 감사를 즉시 메마르게 합니다.
시기심은 '뼈를 썩게 한다'(잠 14:30)는 말씀처럼,
우리 내면을 황폐화합니다.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아도 남과 비교하는 순간 그 은혜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는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이름 모를 사역자 한 명 때문에 불평과 적대감에 사로잡혔습니다”(인터넷).
(b)
둘째로,
예수님께서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다. 너희(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우리)를 위하는 사람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눅 9:50; 막9:39-40).
(i)
여기서 예수님은 왜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지 두 가지 이유를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
첫번째 이유는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다’입니다(막9:39).
-
“이 말씀은 사역의
'진정성'과 '영적 원리'를 설명하시며,
제자들의 좁은 소견을 넓혀주시는 핵심적인 답변입니다.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 이름의
'권능'에 대한 신뢰
예수님의 이름은 단순한 주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권을 상징합니다.
대한성서공회의 문맥에 따르면,
누군가 주님의 이름을 의지해 기적(능한 일)을 행했다면,
그는 이미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이나 권위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이 돌변하여 주님을 욕하거나 대적하는 일은 영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씀입니다.
2.
'행동'이 증명하는
'신앙'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방향성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바이블허브(BibleHub)의 주석은 그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한 열매를 맺고 있는 한,
그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편'에 서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겉모습(우리와 함께 다니는가)보다 그가 내는 열매(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하는가)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더 정확히 말해준다는 의미입니다.
3.
'잠재적 아군'을 적으로 만들지 말 것
예수님은 사역의 범위를 제자
12명에게만 한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 강해(BibleRef)에 따르면,
이 말씀은 비록 지금은 제자단이라는 공식 조직 안에 없더라도,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라면 언젠가 온전한 제자가 될 수 있는 사람임을 시사합니다.
그들을 배척하여 복음의 적대자로 만들지 말고,
오히려 포용하라는 가르침입니다.
4.
영적 우선순위의 확립
제자들은 "우리 소속인가?"를 먼저 물었지만,
예수님은
"그가 나를 높이고 있는가?"를 먼저 물으셨습니다.
본헤럴드(BonHD)는 이것이 조직 이기주의를 깨고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를 갖게 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합니다.
요약하자면: ‘주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이미 마음이 주님께 기울어 있는 사람이니,
사소한 소속 문제로 그를 정죄하여 소중한 동역자를 잃지 말라’는 거룩한 포용력의 선포입니다”(인터넷).
·
두 번째 이유는 ‘너희(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우리)를 위하는 사람이다’입니다(눅9:50; 막9:40).
-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 범위를 규정하는 대원칙’으로,
제자들의 폐쇄적인 사고방식을 완전히 깨뜨리는 선언입니다.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중립’은 없으며,
사역의 ‘방향성’이 중요하다.
영적인 세계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선을 행하는 일은 결코 우연히 일어날 수 없습니다.
바이블허브(BibleHub)의 주석에 따르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이미 사탄의 세력에 반대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주님을 대적하지 않고 그분의 사역에 힘을 보태는 자라면,
그는 이미 잠재적 아군이자 같은 편이라는 의미입니다.
2.
‘소속’보다 ‘목적’이 우선이다.
제자들은 "우리 팀인가?"라는 조직적 소속을 기준으로 삼았지만,
예수님은
"나를 위하는가?"라는 사역의 목적을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대한성서공회(BSK)의 흐름을 보면,
비록 우리와 같은 방식을 취하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확장하고 있다면 그를 용납하고 기뻐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3.
복음의 ‘개방성’과 ‘포용성’
예수님은 복음 사역이 제자
12명에 의해 독점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성경 강해(BibleRef)는 이 말씀이 ‘최소한의 공통분모(예수 이름)’만 있다면 모두를 형제로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 넓게 연대하라는 전략적 가르침이기도 합니다”(인터넷).
-
‘너희(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우리)를 위하는 사람이다’(눅9:50; 막9:40)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n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영적 포용력과 연합의 원리에 대해 매우 강력한 교훈을 줍니다.
1.
‘나만 옳다’는 영적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속한 교회,
내가 배운 신학,
나의 봉사 방식만이 정답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 주석(BibleHub)에 따르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인의 사역을 비난하는 것을
'영적 교만'으로 간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만든 울타리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2.
‘본질’이 같다면 ‘형식’의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귀신을 쫓아낸 그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 집단(형식)에는 없었지만,
예수님의 이름(본질)을 의지했습니다.
대한성서공회의 가르침처럼,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선한 열매를 맺고 있다면,
예배 방식이나 교파가 다르더라도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존중해야 합니다.
3.
‘비판’보다는 ‘격려’의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다른 이의 사역에서
'부족한 점'을 찾아 금지하려 했지만,
예수님은 그가 행하는
'선한 일'에 주목하셨습니다.
성경 강해(BibleRef)는 우리가 타인의 사역을 비판하기보다,
그들이 주님을 위해 일하는 그 마음을 귀히 여기고 협력할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4.
사역의 ‘독점권’이 아닌 ‘확장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경쟁하는 시장이 아닙니다.
누군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 편이 늘어난 것이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 것입니다.
본헤럴드(BonHD)는 이 구절이 교회 간의 불필요한 경쟁을 멈추고,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거룩한 연대'를 요청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한 문장 요약:
‘나와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적으로 만들지 말고,
주님을 높이는 모든 이를 사랑의 마음으로 포용하십시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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