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1)
“그러나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그는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도록 내가
선택한 사람이다. … 그리고서 아나니아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당신을 택하여 그분의 뜻을 알게 하시고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셨으며 그 의로우신 분이 하신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그분의 증인이 되어서 보고 들은 일을 모든 사람에게 말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사도행전 9장 15절, 22장 14-15절, 현대인의 성경).
새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후렴 가사를 보면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간증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간증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사도행전 9장 15절과 22장 14-15절의 문맥을 보면 우리는 사도 바울의 간증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은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사도 바울의 간증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고 사도행전 22장 14-15절은 사도 바울이 자기를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는 군중들 앞에서 한 간증을 누가가
기록한 것입니다[참고로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2장
3-21절 외에도 26장 4-23절에서는 아그립바와
버니게와 베스도와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25:22-23) 앞에서 간증을 또 했음]. 이 사도 바울의 간증의 말씀을 보면 우리는 그의 간증문에는
3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1) 바울의 간증문의 첫 부분은 “예수님 만나기 전”(Before Christ)입니다(행22:3-5).
바울은 과거에
예수님을 만나기 전을 이렇게 진술하였습니다: 자신은 유대인이며 이방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난 시민이며, 예루살렘 성에서 성장했고,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방식에 따라서 철저히 교육을 가말리엘 문화에서 배웠으며,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2) 바울의 간증문의 두 번째 부분은 “예수님 만난 그 순간”(On Christ)입니다(6-16절).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회심(Conversion)했을 뿐만 아니라 주님께 사명(Commission)을 받았습니다. 이 순간이 바로 핍박자 사울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목숨 걸고 증거하는 선포자가 되는 대전환의 순간이었습니다.
(3) 바울의 간증문의 세 번째 부분은 “예수님 만난 후”(After Christ)입니다(17-21절).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아나니아를 통하여 눈을 뜨게 되고 주님의 뜻을 알게 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바울은 예루살렘을 속히 떠나 이방에 선교사로 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이 사도 바울의 간증문 중에 오늘 본문 사도행전 9장 15절의 문맥인 사도행전 9장의 말씀은 실제로 예수님을 믿기 전이었던 사울을 만나시사 그를 구원하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시사 세우시는 장면이 나오고 사도행전 22장 14-15절의 문맥인 사도행전 22장 3-21절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기를 없애려고 하는 난폭한 군중들(21:35-36, 현대인의 성경) 앞에서 한 자신의 간증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사도행전 9장 15절은 주님께서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10절)에게 사울에 대해
하신 말씀 내용이고, 사도행전 22장 14-15절은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경건한 사람”
“아나니아”가(12절)가 사울에게 한 말 내용입니다. 이 두 말씀의 부분에서 나오는 공통된 의미의 단어는 “택한”(9:15)이란 단어와 “택하여”(22:14)라는 단어입니다. 즉, 두 성경 구절의
공통점은 ‘주님께서 사울을 택하셨다’라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주님이 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란 제목 아래 3가지 교훈 중 한 가지만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의 교훈을 받아 순종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주님이 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합니다.
성경 사도행전 20장 24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한 내용의 한 부분으로서 바울은 그들에게 “지금 나는 성령님의 인도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만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모릅니다. 다만 내가 한 가지 아는 것은 어느 도시에서나 투옥과 고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성령께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22-23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한 후 말씀한 것입니다(24절).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24절). 왜 사도 바울은 “복음”이란 표현과 더불어 “하나님의 복음”(롬1:1;
롬15:16; 고후11:7; 살전2:2,
8, 9),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딤전1:11), “그리스도의 복음”(롬15:19; 고전
9:12; 고후2:12; 9:13, 10:14; 살전3:2),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고후4:4), “주 예수의 복음”(살후1:8), “우리의 복음”(살후2:14),
“우리 복음”(살전1:5), “복음의 진리”(갈2:5, 14), “복음의 비밀”(엡6:19),
“나의 복음”(롬2:16), “구원의 복음”(엡1:13)이란 많은 표현들 중에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라고 유일하게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는 그리 표현한
것일까요? 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22장 14절에 근거해서 적어도 그 이유가 4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첫째 이유는,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2장 14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 우리가 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말씀을 에베소서1장 4절인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를 사랑 안에서 …”란 말씀이나 로마서 8장
29-30절인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란 말씀의 관점에서 생각하곤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사랑하시사[“우리를 사랑 안에서”(엡1:4),
“미리 아신 자”"(롬8:29),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요일4:19, 현대인의 성경)] 우리를 (선)택하셨다[“우리를 택하사”(엡1:4), “미리 정하”셨다(롬8:29, 30)]는 말씀을 우리의 구원과 관련해서 생각하곤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선택하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사도행전
9장 15절과 22장
14-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널리 모든 사람에게 전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참고: 막8:35). 그런데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사울(바울)이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이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인정하며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사 말씀하시기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며(딤전1:13)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빌3:6).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사도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에 사도라고 불릴 자격마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며 내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 내가 다른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고전15:9-10, 현대인의 성경).
(2) 둘째 이유는,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2장 14절을 보십시오: “…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 아나니아가 사울(바울)에게 한
말로서 아나니아는 사울(바울)을 택하신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사울(바울)로 하여금 “자기 뜻”(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14절). 여기서 사울(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저는 한 3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a) 사울(바울)이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은 바울이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9장 15-16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이 말씀을 보면 사울(바울)이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이란 바로 주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주님의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린도후서 1장 1절로 말씀한다면 사울(바울)이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회심(Conversion)케 하시사(구원) 사명(Commission)을 받아 자신이 박해하던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참고: 행9:4-5)[(고후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 참고: 고전
1:1; 엡 1:1; 골1:1; 딤후1:1]. 즉, 하나님의 뜻이란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롬11:13; 갈2:8).
(b)
사울(바울)이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은 그를 부르시사 사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많은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9장 16절 보십시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현대인의 성경) “그가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인가를 내가 그에게 보이겠다”].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며(딤전1:13)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빌3:6)은 주님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보는 대로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였습니다(행9:1-2,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그는 다른 지역까지 원정을 가려고 했을 정도로 열심으로는 주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여 또한
구원을 받고 주님께 사명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들을 죽일 죄를 짓지도 않은 바울을 끊임없이 그리고 끈질기게
박해를 했으며 심지어 사도 바울을 없애고자 했습니다(21:36).
심지어 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음모까지 꾸몄습니다(23:12-30; 25:2-3). 또한 그들은 사도 바울을 로마 총독에게 고소를 했는데 바울이
잘못했다는 증거를 전혀 대지도 못했습니다(요18:23). 그러면서 그들은 로마 총독에게 사도 바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행25:15). 그 이유는 그들은 사도 바울이 마땅히 사형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11절). 이렇게 다른 지역으로 원정까지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을
핍박했던 사울이(22:4-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도가 되고 나서부터는 유대인들이 원정까지 와서 사도
바울을 핍박했습니다(14:19; 16:13; 21:27). 즉, 원정 핍박자였던 사울(바울)이 원정 핍박자인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14:19; 16:13; 21:27).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겼습니다(빌1:29).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길 원했습니다(빌3:10, 현대인의 성경). 실제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습니다(딤후2:9). 그는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졌었습니다(고후1:8). 이렇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육체에 채웠습니다(골1:24).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쳤습니다(고후1:5).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고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롬8:17). 그의 확고한 믿음으 생각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였습니다(18절).
(c)
사울(바울)이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9장 15절을 다시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으로서 주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는 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10-11절) “가라”(1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은 예수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절). 또한 사도행전 22장
15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이것은 당신이 그분의 증인이 되어서 보고 들은
일을 모든 사람에게 말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나니아가 사울(바울)에게 한 말로서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서 보고 들은 일을 모든 사람에게 말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도행전
9장 15절과 22장 15절은 주님께서는 사울(바울)을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당신을 택하여 그분의 뜻을
알게 하시고 …”(22:14, 현대인의 성경)]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5절 현대인의 성경에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택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나에게 나타내어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말했고, 로마서 15장
16절에서는 “이 은혜로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그대는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내며 복음 전하는 일에 힘을 다하여 그대의 사명을 완수하시오”라고 권면했습니다(딤후4:5, 공동번역).
(3) 셋째 이유는, 사도 바울은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2장 14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셨으며 ….” 사도 바울이 자기의 사명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20:24)이라고 말한 셋째 이유는 그가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사도행전
9장 3절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22: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26:13)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이것은 의로우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서
사도행전 22장 14절에서 아나니아는 사울(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사울(바울)로 하여금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26장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자기에게 “네가 나를 본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사울(바울)에게 나타나신 것을 가리켜 “네(사울)가 나(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본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고전15:9) 불의한 사울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시사 그로 하여금 자신을 보게 하신 것일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나중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맨 나중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내게도 나타나셨습니다”(고전15:8, 현대인의 성경).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또는 마땅히 의로우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4) 넷째 이유는, 사도 바울은 의로우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2장 14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 그 의로우신 분이 하신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사울(바울)이 들은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도행전
22장 7-8절을 보십시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는
사울(바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말씀과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 외에도 사도행전 26장 14절 하반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울(바울)에게 “…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로마인과 헬라인에 게 잘 알려진
속담으로서 신들이 정해준 운명을 거스르는 행위는 자신에게 아무 유익이 없는 어리석은 행위임을 일깨워주는 경구입니다. 짐승들이 가시채를 뒷발로 차면 상처만 남듯이 신들이 정해준
뜻에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깨우쳐 주는 표현입니다(유상섭). 또한 사도행전 26장
16-18절에서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는 사울(바울)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이렇게 사울(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의로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22:14). 이렇게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는 택하신 하나님의 종인 사울(바울)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자신을 보게 하시며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사울(바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서 보고 들은 일을 모든 사람에게 말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14-15절, 현대인의 성경).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주님이 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합니다. 사울(바울)은 주님이 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었습니다.
그의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인 이유는 그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기 때문이요,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요,
그는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요 또한 그는 의로우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8-1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맨 나중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내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사도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에 사도라고 불릴 자격마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며
내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 내가 다른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현대인의 성경).
백정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제임스 김 나눔
(2022년 1월 22일, 제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에 저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나누는 사명을 묵묵히 끝까지 감당하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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