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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주간 짧은 말씀 묵상 (2021년 12월 27-31일)

주간 짧은 말씀 묵상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외국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400년 동안 종살이하며 학대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약속의 성취하시는 과정에 있어서 야곱의 10명의 아들의 요셉을 향한 "시기"도 사용하셔서 결국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먼저 요셉을 애굽에 보내신 목적은 요셉의 형들을 구원하고 그 형들의 자손들이 살아 남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창세기 45:5, 7, 현대인의 성경).  결국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하여 극심한 가뭄 때 아브라함의 후손인 야곱의 아들들과 그들의 후손들을 보전하고 구원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10명의 형들에게 미움을 받되 더욱 미움을 받고(창세기 37:4, 5, 8) 또한 그 형들의 시기로 인해(11) 죽임을 당할뻔하다가(18) "한 구덩이에 던"져졌던 17세의 소년 요셉(2, 20, 현대인의 성경)이 그리도 낮은 구덩이에서 결국 약 13년 후인 그의 나이 30세 때(41:46)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었습니다(41).  10명의 형들에게 미움과 시기(사도행전 7:9)를 받던 요셉이 애굽 왕 바로의 신임을 받게 되어 결국 바로 왕은 요셉을 온 나라와 그의 궁전을 다스리는 총리로 임명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덩이에 있었던 요셉을 높이시되 애굽 나라의 총리까지 되도록 높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낮고 낮은 천한 이 땅에 오신 저주의 나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낮아지신 이유는 지옥에서 영원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천국에까지 높이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시대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든 "흉년"으로 말미암은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의 "큰 어려움"도 사용하셔서 야곱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시대 때 약속하신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야곱과의 그의 열 두 아들들 및 후손들을 "외국 땅"인 애굽에서 "나그네가 되어 400년 동안 종살이하며 학대를 받"게 하셨습니다(사도행전 7:6, 11-14,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저의 외증조 할아버지 목사님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저희 세대 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 대대 후손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실 줄 믿습니다.

동족을 사랑해서 동족을 구해내려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사 사용하셔야한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사도행전 7:25, 현대인의 성경).

 

애굽에서 40살이 되었던 "어느 날" 동족 한 사람이 애굽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았던 모세요 미디안에서 40년이 지난 "어느 날" 시내산 근처의 광야에 있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한 천사가 나타난 광경을 보았던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어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40년 동안 놀라운 일과 기적을 행했습니다(사도행전 7:23-24, 30, 36, 현대인의 성경).  모세는 40년 동안 이 놀라운 일과 기적을 행하기 전에 하나님은 그를 80년이란 세월을 애굽과 미다안에서 준비시키셨습니다.  모세의 120년의 삶을 보면 3분의 1의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3분의 2의 준비의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 교회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줬던 것처럼, 진정한 모세가 되시는 주님께서 교회인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지금도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계십니다(사도행전 7:38, 현대인의 성경). 

 

성령으로 충만한 말씀 선포자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가는 교인들 앞에서도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신 것을 봅니다(사도행전 7:54-55,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라고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누가복음 23:34, 46, 현대인의 성경).  스데반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으소서" "주님,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라고 말한 후 숨을 거두었습니다(사도행전 7:59-60,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은혜와 축복을 누릴 때 예수님처럼, 또한 예수님을 본받은 스데반처럼 성령충만하여 그러한 기도를 주님께 드리고 잠들 수 있길 기원합니다.

 

교회를 파괴하면서 미친 듯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믿는 사람들을 끌어내어 모두 가두어 버렸던 사울이(사도행전 5:42, 현대인의 성경),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사 하나님이 우편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고 사명을 받은 후부터는(9:3-7) 집집마다 다니면서 모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우리 주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증거하면서(20:20-21, 현대인의 성경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라면 우리는 가정 파괴자나 교회 파괴자가 아니라 가정과 교회를 세우는 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입술로만 증거할 뿐만 아니라 그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므로 가정과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모이기를 중단하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올수록 더욱 모이는 일에 힘을 써야 하지만(히브리서 10:25, 현대인의 성경) 동시에 교회는 심지어 박해를 통해서라도 흩어져서 가는 곳마다 복음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사도행전 8:1, 4).

 

주님께서 우리에게 "광야길"을 향하여 가라고 말씀하실 때에 만일 우리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여 우리의 지식을 의지한다면 우리는 미개척의 인적 없는 넓은 들판같은 광야길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모든 일에 주님을 인정하고 있다면 우리는 빌립처럼 즉시 순종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즉시 순종할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바른 길을 보이시사 결국 빌립처럼 우리에게도 전도할 사람을 만나게 하시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므로 한 영혼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잠언 3:5-7, 사도행전 8:26-38, 현대인의 성경).

 

박해자 사울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주님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보는 대로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고 했었는데 그러한 사울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도행전 9:1-5, 현대인의 성경; 디모데전서 1:13).  불신 속에서 무지함으로 신자들을 박해하는 사울과 같은 사람도 주님은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사명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케 하십니다.

 

사울은 "기도하는 중"에 아나니아를 만나 그 만남 속에서 주님의 뜻대로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이방인의 사도(로마서 11:13)인 복음 전파자로 세움을 받았고(사도행전 9:11-20) 바울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성문 밖 강가로 나가서 루디아를 만나 주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사 주님이 뜻대로 그녀와 온 집안 식구들이 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16:13-15).  이렇게 "기도하는 중"에 주님이 계획하신 만남을 통해 주님이 뜻인 놀라운 구원의 역사와 사명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마가복음 8:35).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서 ...  찾으라"(사도행전 9:11)는 사람에 대하여 우리가 아직도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만나셔서 변화시켜 주신 사람에 대한 우리의 옛 기억에 근거한 선입관을 뛰어넘지 못하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서 순종하여 가서 그 사람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사울"과 같은 사람을 우리가 그 "사울"은 절대 "바울"로 변하지 않을꺼야 라고 단정짓고 변화의 기회를 우리 마음에서 차단하는 것은 주님을 마음을 다하여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잠언 3:5).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지만 절대자 주님은 절대 변하지 않는 나같은 사람조차도 변화시켜주셔서 목사로 세우사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살게 하셨습니다.  "사울" "바울"로 변화시켜 주신 주님께서 이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사도행전 9:1-20).   이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시작하신 주님께서는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저를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시키시되(고린도전서 15:51) 저의 낮은 몸이 주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빌립보서 3:21).

 

주님의 제자들에게 고난을 주던 자가 고난당하신 주님을 만난 후로는 주님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주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사도행전 9, 특히 16).  변화를 받지 못한 사람은 고난을 주는 자지만 변화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당합니다.

 

변화받은 사울(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였고 또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증언했습니다(사도행전 9:20, 22).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거듭난 자/중생한 자)라고 말했고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고 말했습니다(요한일서 5:1, 4-5).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거듭난 자/중생한 자요 하나님의 자녀(1, 4, 현대인의 성경)]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을 변화시시키사 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케 하시므로 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님을 경외함과 성령님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게 하셨습니다(사도행전 9: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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