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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dom of God is the greatest blessing that is open to all people, but to reject it is the most dangerous misfortune a human being can choose.

The Kingdom of God is the greatest blessing that is open to all people, but to reject it is the most dangerous misfortune a human being can choose.           “After this the Lord appointed seventy others and sent them on ahead of Him, two by two, into every town and place where He Himself was about to go.   And He said to them, ‘The harvest is plentiful, but the laborers are few.   Therefore, pray earnestly to the Lord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into His harvest.   Go your way; behold, I am sending you out as lambs in the midst of wolves . Carry no moneybag, no knapsack, no sandals, and greet no one on the road.   Whatever house you enter, first say, “Peace be to this house!” And if a son of peace is there, your peace will rest upon him; but if not, it will return to you.   And remain in the same house, eating and drinking what they provide, for the laborer deserves his wages. Do not go from house to house. ...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최고의 축복이지만,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불행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최고의 축복이지만,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인간이 선택할 있는 가장 위험한 불행입니다.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동네와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집에서 집으로 옮기지 말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줄을 알라 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날에 소돔이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누가복음 10:1-12).

 

 

 

(1)   저는 오늘 예수님께서 70인의 제자를 파송하시는 장면의 말씀인 누가복음 10 1-12절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a)   첫째로, “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동네와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10:1)라는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i)                  여기서 주님께서 따로 70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동네와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는데 후에 앞서 누가복음 9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중요한 가지 사건들 이후에 그리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참고: 인터넷):

 

·         제일 근접한 사건은 어제 우리가 이미 묵상한 누가복음 9 57-62절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등의 철저한 제자도를 요구하시는 장면의 말씀입니다[참고: “하나님의 나라는 최우선순위(First Priority) 주님께 두는 사람들을 통해 확장됩니다.”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4178291361)].  " 후에" 예수님은 이러한 엄중한 부르심에 응답하여 헌신한 자들을 선별하여 실전 사역지로 파송하셨음을 보여줍니다.

 

·         번째로 근접한 사건은 누가복음 9 51-56절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신 사건입니다.  이제 십자가의 때가 가까워졌으므로, 주님이 직접 가실 마을들에 앞서 제자들을 보내어 하나님 나라를 신속하게 예비하게 하신 것입니다[참고: “흔들리지 않는 굳은 결심 (Unwavering Resolve)”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4174803029)].

 

(ii)                저는 중요한 사건을 오늘 본문 누가복음 10 1절과 연관해서 묵상할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신 예수님의 엄중한 부르심에 응답하여 헌신한 제자들인 70명을 따로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동네와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셨음을 수가 있습니다.


·         흥미로운 점은, 누가복음 9 1-6절에서 제자를 불러모으시고 모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그들에게 주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병든 자를 고치라고 그들을 내보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0 1-12절에서는 70명의 제자들을 따로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동네와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1).

 

-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중대한 전환점입니다.  

 

1.      사역의 ‘보편성’과 ‘확장’ ( 세계를 향한 복음)

 

열두 제자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표를 상징한다면, 70(일부 사본은 72)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세상의 모든 민족’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이는 복음이 유대인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인류와 열방을 향해 확장될 것임을 암시하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성서백과 사전: 70인의 의미를 참고하면 당시 유대 전통에서 70 열국을 상징했음을 있습니다.

 

2.      ‘추수할 일꾼’의 시급함 (선교적 긴박성)

 

예수님은 파송하시며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 10:2) 탄식하셨습니다.

 

둘씩 짝지어 보냄: 이는 증인의 신실함을 확보하는 율법적 원칙인 동시에, 서로 격려하며 사역의 효율을 높이는 전략입니다.

 

앞서 보내심: 예수님이 직접 방문하시기 , 제자들이 미리 영적 토양을 갈고 닦게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신속하게 준비시킨 것입니다.

 

3.      평신도 리더십의 원형 (모두가 제자)

 

열두 사도(핵심 그룹)뿐만 아니라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일반 제자들(70)에게도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동일한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이 세상으로 보냄받은 소명자이며, 주님과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모델이 됩니다”(인터넷).

 

·         저는 어제 묵상한 누가복음 9 57-62 말씀 중심으로 짧은 말씀 묵상 제목이 다시금 생각났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최우선순위(First Priority) 주님께 두는 사람들을 통해 확장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께 최우선순위를 70명의 헌신된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시고자 그들을 따로 세우시사 친히 가시려는 동네와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10:1).

 

-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보내심으로 그들이 사마리아 사람의 마을로 들어갔다고 누가복음 9 51-52절은 말씀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 누가복음 10 1절은 주님께서 따로 70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동네와 지역[“모든 도시와 마을”(현대인의 성경)]으로 둘씩 앞서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 주님께서는 친히 가시려는 곳에 앞서제자들을 보내셨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가시려는 곳에앞서제자들을 보내신 것일까요?

 

n  예수님께서 친히 가실 곳에 제자들을 앞서”(πρὸ προσώπου) 보내신 데에는 가지 신학적, 실제적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인터넷):

 

1.      ‘길 예비자’로서의 사명 (세례 요한의 역할 계승)


누가복음에서 "주의 길을 준비한다"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9 52절을 보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인의 마을에 "사자들을 앞서 보내셨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과거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듯, 이제는 제자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왕이신 주님이 임하실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과 환경을 미리 준비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2.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의 긴박성

 

누가복음 9 51절은 예수님의 사역이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신' 중대한 전환점입니다.  십자가의 때가 다가오고 있었기에, 예수님은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동네에 복음을 전하셔야 했습니다.  제자들을 앞서 보내는 것은 복음 전파의 효율성을 높이고 방문할 지역에 영적 토양을 미리 일궈놓는 전략적 선교의 의미가 큽니다.

 

3.      제자들의 실전 훈련과 대리권 부여

 

예수님은 단순히 "가서 구경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병을 고치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권능을 주셨습니다( 10:9).

 

실전 테스트: 주님이 도착하시기 , 제자들은 스스로 복음을 전하며 영적 전투를 경험합니다.

 

대리자 원칙: "너희 말을 듣는 자는 말을 듣는 것이요"( 10:16)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제자들을 주님과 동일시하는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4.      수용 여부 확인 (영적 탐색)

 

제자들은 주님을 영접할 준비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가려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9 53절에서 사마리아인들이 영접하지 않자 다른 마을로 가신 것처럼, 앞서 보낸 제자들의 반응을 통해 사역의 방향을 결정하시기도 했습니다.

 

(iii)              저는 말씀을 묵상할 성경 구절들이 생각났습니다: (1)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사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그들(우리)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대속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기에 우리 모두가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셔서 앞서주님의 엄중한 부르심에 응답한 헌신된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셔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케 하고 계십니다.

 

-          그러므로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우리 생명을 버려야 합니다(8:35,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에게 받은 사명,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우리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20:24).

 

(b)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70명의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10:2) 말씀을 묵상합니다.

 

(i)                  저는 말씀을 묵상할 제가2014 1 11일에 주님,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소서 칼럼을 다시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세상에는 추수할 것이 많습니다(9:37a).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이유는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에게 깊은 동정을 느끼시는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추수할 것은 예수님께서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무리들입니다.  , 예수님을 모르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는 세상 사람들입니다(참고: 4:35). 

 

둘째로, 추수할 일꾼들이 적습니다(9:37b).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므로 말미암아 교회가 효과적으로 열매를 많이 맺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도와 선교를 효과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일꾼들이 부족한 이유는 세상에서 나은 생활,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는 가운데 주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생하며 희생하고자 하는 헌신도가적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주님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해야 합니다(9:38).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리는 일꾼들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는 지혜롭고 부지런한 일꾼들, 추수하는 즐거움을 알고 즐거움을 누릴 아는 일꾼들(9:3) 그리고 충성된 자들로서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들입니다(25:13).

 

·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승리장로교회를 생각할 영어사역이나 히스패닉 사역의 어린이들부터 해서 젊은 학생들을 생각할 주님께 계속해서 기도하는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기도 제목은 ‘주님, 저들을 주님 중심된 꿈을 가진 일꾼들로 세워 주시옵소서”입니다.  우리 교회 젊은 학생들을 생각하며 기도할 마음에 뭉클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이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죄악된 세상을 생각하며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할 마음이 아프기까지 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때에 우리 교회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마태복음 9 38절에서 예수님께서 “주님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보내 주소서 하라”고 명하셨는데 우리는 어떠한 추수할 일꾼들을 위하여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까?  4가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리는 일꾼들을 보내 주시길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13:3, 4:14). 

 

특히 말씀을 씨를 진실하고 신실하게 뿌리는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들을 보내주시길 간구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26:5-6).

 

(2)   우리는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는 지혜롭고 부지런한 일꾼들을 보내 주시길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잠언 6 6-8절을 보십시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는 지혜롭고 부지런한 일꾼들은 추수 때에 게을리 잠을 자지 않습니다.  그러한 일꾼들을 주님께 부끄러움을 끼치는 자들입니다(10:5). 

 

(3)   우리는 추수하는 즐거움을 알고 즐거움을 누릴 아는 일꾼들을 보내 주시길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이사야 9 3 말씀입니다: “주께서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우리가 주님께 간구해야 일꾼들은 충성된 자들로서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들입니다.

잠언 2513 말씀입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아서 능히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충성하되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들로서 나중에 것에도 충성된 자들을 위하여 우리는 주님께 보내주시길 간구해야 합니다(16:10).  그러한 자들이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므로 결국 주님 앞에 때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라고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25:21)[참고: “주님,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182151021)].

 

(c)   셋째로, 예수님께서 70 제자들에게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10:3)하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i)                  말씀은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제자들이 마주할 냉혹한 현실과 속에서 가져야 영적 태도를 비유적으로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핵심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역의 위험성과 박해 (세상적 현실)

 

이리 (늑대): 복음을 거부하고 제자들을 핍박하는 세상의 권세와 적대적인 세력을 상징합니다.

 

어린 : 무방비 상태의 연약함을 뜻합니다.  제자들이 세상적인 힘이나 무기(, , 권력)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나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0:16 병행 구절에서는 이와 함께 "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지침이 추가됩니다.

 

2.      절대적인 보호의 필요성

 

어린 양이 이리 가운데서 살아남을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목자의 보호뿐입니다.  , 파송은 제자들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 과정입니다.

 

3.      공격성이 아닌 '희생적 사랑' 원리

 

이리는 공격하여 죽이지만, 양은 죽임을 당할지언정 공격하지 않습니다.  이는 기독교 복음이 폭력이 아닌 희생과 평화( 10:5) 통해 전파됨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초기 기독교인들은 말씀처럼 박해 속에서도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4.      긴박함과 담대함 ("갈지어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갈지어다(Go!)"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리가 무서워 머뭇거릴 시간이 없을 만큼 하나님 나라의 전파가 시급하다는 긴박성을 강조합니다”(인터넷).

 

·         여기서 저는 마태복음 10:16 병행 구절에서는 이와 함께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지침이 추가됩니다.” 말을 읽으면서 제가2020 8 3일에 분별해야 합니다. (1)” 칼럼을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여기서 뱀은 지혜의 상징입니다.  뱀의 지혜는 자기에게 닥쳐오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조심성 있게 대처하여서 어려움을 모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뱀이 지혜롭다는 것은 신중한 분별력을 말합니다.  뱀의 지혜로움은 모든 사리를 분별하고 판단할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가 뱀같이 지혜로워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파송하셨는데 세상에는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었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인 거짓 선지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거짓 선지자들을 주의하고 경계하며 조심하라’ 말씀하시면서 “양”과 “이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나아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의 의미는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탈을 쓰고 양처럼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거짓 선지자들은 같이 보여서 우리에게 아무 해를 끼치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은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들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노략질”이란 헬라어 단어의 의미에는 ‘강도나 사기꾼과 같이 극심하게 탐욕스러운’ 이란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10:16).

 

(d)   넷째로, 예수님께서는 70 제자들에게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10:4)라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i)                  제자들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시면서 전대(돈주머니) 배낭이나 신발조차 금지하신( 10:4) 독특한 명령에는 가지 깊은 공급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1.      전폭적인 신뢰의 훈련 (Total Dependence)

 

위험한 곳에 가면서 생존 도구를 포기하라는 것은 생명의 공급자가 누구인가?’ 묻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책임: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여정에 필요한 모든 (의식주)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결과: 제자들이 사역을 마치고 돌아왔을 , 예수님은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더냐?’라고 물으셨고 그들은 없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22:35).

 

2.      복음 전파의 긴박성 (Urgency)

 

명령은 짐을 싸고 준비하는 시간조차 아까울 만큼 하나님 나라의 임박함이 시급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 이는 무례하라는 뜻이 아니라, 당시 중동의 길고 복잡한 인사 관습에 얽매여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오직 복음 전파라는 본질적인 목적에만 집중하라는 엄중한 명령입니다.

 

3.      일꾼의 권리 (The Worker's Right)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굴하게 구걸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일꾼이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10:7)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을 듣는 공동체로부터 생계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신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사역자와 공동체 사이의 상호 책임 원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모든 지침은 사역자의 힘은 소유(Possession)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속(Belonging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에서 나온다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인터넷).

 

(e)   다섯째로, 예수님께서는 70 제자들에게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10:5-6)하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i)                  말씀은 복음 전도자가 가져야 축복의 태도와 축복이 작동하는 영적 원리를 설명합니다.

 

1.      ‘평안’(Shalom)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스라엘의 인사말인 ‘샬롬’은 단순히 안부를 묻는 수준을 넘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전인적인 회복과 평화를 뜻합니다.  제자들을 보내실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게 하신 것은,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가 평화의 통치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2.      평안의 ‘머무름’과 ‘돌아옴’ (영적 전이의 원리)

 

예수님은 축복이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평안을 받을 사람(Son of Peace): 마음이 열려 있고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사람을 뜻합니다.  축복은 준비된 그릇에 머물며 실재적인 능력을 발휘합니다.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만약 상대가 거절하거나 적대적일지라도, 제자들이 선포한 축복은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축복은 그대로 빌어준 사람(전도자)에게 되돌아와 그의 영적인 보상이 됩니다.

 

3.      사역자의 마음가짐: "선제적 축복"

 

중요한 점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미리 판단하지 말고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평안을 빌라는 것입니다.

 

상대의 자격을 따지기 전에 먼저 사랑과 평화를 베푸는 것이 주님이 보내신 사역자의 우선순위입니다.

 

결과(상대의 영접 여부) 상관없이 축복을 빌어주는 자체가 전도자의 사명임을 강조합니다”(인터넷).

 

·         여기서 제자들을 보내실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게 하신 것은,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가 평화의 통치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하고 말하고 있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평화의 통치일까요?  의미는 무엇일까요?

 

-          하나님의 나라가 '평화(Shalom) 통치'라는 말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넘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자연 만물이 원래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2:14-17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평화이심을 강조합니다.

 

주요 핵심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관계의 회복 (Vertical Peace)

 

하나님의 통치는 죄로 인해 끊어졌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에서 시작됩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다스리실 인간은 심판의 공포에서 벗어나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며, 이것이 모든 평화의 근원이 됩니다.

 

2.      깨어진 세상의 치유 (Horizontal Peace)

 

예수님은 70 제자들을 보내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평안을 빌라" 하셨고, 동시에 "병자들을 고치라"( 10:9) 하셨습니다.

 

질병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하나님의 나라는 질병, 귀신(영적 억압), 가난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결핍으로부터의 회복을 동반합니다.

 

사회적 화해: 누가복음의 문맥에서 예수님은 유대인이 멸시하던 사마리아 지역까지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이는 인종, 계급, 성별의 벽을 허무는 평등한 평화를 뜻합니다.

 

3.      통치의 수단: '' 아닌 '사랑'

 

세상의 나라는 무력과 강압으로 질서를 유지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희생과 섬김으로 다스려집니다.

 

제자들이 '어린 '처럼 보냄받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폭력이 아닌 복음의 평화로운 선포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며 확장되는 나라입니다.

 

4.      이미 임하였으나 완성될 평화

 

예수님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가운데 있느니라’( 17:21) 선포하셨습니다.  성령의 통치를 받는 공동체 안에서 평화를 미리 맛보는 것이며, 장차 주님이 다시 오실 세상에 완벽한 평화(이사야 11:6-9) 임하게 됩니다”(인터넷).

 

n  우리가 전해야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공간적 천국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땅에 이미 임하였고(Already), 장차 완성될(Not Yet)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Reign of God)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정의, 사랑, 평화가 삶의 영역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인터넷).

 

(f)     여섯째로, 예수님께서 70 제자들에게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집에서 집으로 옮기지 말라”(10:7)하신 말씀을 묵상합니다.

 

(i)                  말씀은 복음 전도자가 머무는 공동체와의 관계와 사역에 임하는 진정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입니다.  크게 가지 의미로 나눌 있습니다.

 

1.      사역자의 정당한 권리와 공동체의 책임

 

일꾼이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세상의 노동보다 가치 없는 일이 아니며, 전도자가 사역을 통해 생계를 공급받는 것은 부끄러운 구걸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정당한 원리입니다.  바울 또한 구절을 인용하며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가르쳤습니다(고린도전서 9:14).

 

2.      사역의 순수성 유지 (욕심 경계)

 

집에서 집으로 옮기지 말라’: 당시 관습상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였는데, 사역자가 좋은 음식이나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집을 찾아 옮겨 다니는 것을 엄격히 금하신 것입니다.

 

만약 전도자가 나은 대접을 찾아 거처를 옮긴다면, 복음 전파보다 자신의 안락함을 우선시한다는 오해를 있고 사역의 진정성이 훼손될 있기 때문입니다.

 

3.      영접한 가정에 대한 존중과 집중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제공받는 음식이 무엇이든(비록 유대인의 정결 예법에 조금 어긋나거나 소박하더라도) 감사히 받으라는 뜻입니다.  이는 음식의 종류보다 영혼과의 교제와 복음 선포에 집중하라는 의미입니다.

 

처음 자신을 영접해 가정과 깊은 영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집을 거점으로 동네 사역을 안정적으로 펼쳐나가라는 전략적 지침이기도 합니다.

 

요약하자면 지침은 사역자에게 대접의 질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오직 주신 사명에만 몰입하라 명령입니다”(인터넷).

 

(g)   마지막 일곱째로, 예수님은 70 제자들에게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줄을 알라 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날에 소돔이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10:8-12)하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i)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이 마주할 가지 상반된 반응(영접과 거절) 대한 대처법과, 결과에 따르는 엄중한 영적 책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복음을 영접하는 동네 (8-9): ‘평화와 치유의 현존

 

겸손한 수용: ‘차려놓는 것을 먹으라 것은 전도자가 대접의 질을 따지지 말고 그들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임으로써, 복음 수용자와 인격적 친밀함을 형성하라는 뜻입니다.

 

가시적 증거 (병자 치유): 하나님 나라가 말에만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육체적·영적 치유는 하나님의 통치가 실제로 임했다는 강력한 표적입니다.

 

메시지의 핵심: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제자들의 사명은 고침 자체가 아니라,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2.      복음을 거절하는 동네 (10-11): ‘먼지를 떨어버리는 단호함

 

먼지를 떨어버림: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 지역을 여행하고 이스라엘로 돌아올 하던 관습적인 행동입니다.  우리는 너희의 멸망에 책임이 없으며, 너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최후의 경고이자 관계의 단절을 상징합니다.  사도행전 13:51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실제 행동을 수행했습니다.

 

여전한 진리: 무서운 점은 거절한 동네를 떠나면서도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줄을 알라 재차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영접하든 거절하든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 진리이며, 거절한 자들에게는 진리가 심판의 근거가 됨을 뜻합니다.

 

3.      소돔보다 무거운 심판 (12): ‘복음을 거부한

 

소돔의 비유: 소돔은 구약에서 타락의 대명사로 심판받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복음을 직접 듣고도 거절한 동네가 소돔보다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계시의 책임: (복음) 보고도 거부한 자에게는 책임이 따릅니다.  마태복음 11:21-24에서도 주님은 고라신과 벳새다를 향해 이와 유사한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최고의 축복이지만,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인간이 선택할 있는 가장 위험한 불행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줍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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