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굳은 결심
(Unwavering
Resolve)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누가복음 9:51-56)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예수님은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가까와지자”(현대인의 성경)](눅9:51)란 말씀을 묵상합니다.
(a)
여기서 “차가매”란 헬라어 단어 “συμπληροῦσθαι”(심플레루스타이)는 “완전히 채워지다”,
“완성되다”라는 의미를 지닌
'심플레로오(συμπληρόω)'의 현재 수동태 부정사형입니다(인터넷).
(i)
이 단어의 구체적인 의미는 단순히 시간이 흘러 때가 되었다는 뜻을 넘어,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 예비된 결정적인 시기가 무르익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이제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이라는 구속 사역의 핵심 사건들이 일어날 때가 완전히 찼음을 나타냅니다(인터넷).
·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오늘 본문 누가복음
9장 51절은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나눈
"떠나심"에 대한 대화와 연결됩니다: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31절). 여기서 “별세”는 헬라어로
"엑소도스"
(Exodos)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해방된 것처럼,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해 인류를 죄에서 해방(출애굽)시키는 구원 역사를 완성하신다는 뜻입니다(인터넷).
(2)
둘째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눅9:51)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a)
여기서 “굳게 결심하시고”란 헬라어 단어 “ἐστήρισεν”(에스테리센)는 “고정하다”,
“굳게 세우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동사
'스테리조(στηρίζω)'의 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 형태입니다(인터넷).
(i)
“이 단어는 단순히 방향을 돌리는 것을 넘어,
어떤 장애물이나 고난 앞에서도 마음을 확고히 정하여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앞에 놓인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명확히 인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예루살렘 행을 결정하셨음을 보여줍니다”[“흔들리지 않는 굳은 결심
(Unwavering Resolve)”](인터넷).
·
누가는 이 단어를 통해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이 종료되고,
본격적으로 십자가와 승천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후 전개되는 사마리아인들의 배척(눅 9:52-56)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뜻을 굽히지 않으신 근거가 바로 이 “에스테리센”(ἐστήρισεν)(“굳게 결심하시고”)에 담겨 있습니다(인터넷).
-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위해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στήρισον)”(눅22:32)고 간구하셨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으로 그의 형제를 굳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στηρίξει(스테릭세이)]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여기서 누가복음
22장 32절과 베드로전서
5장 10절과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n
누가복음
22장 32절과 베드로전서
5장10절은 '스테리조(στηρίζω,
굳게 하다)'라는 단어를 매개로 하여,
베드로의 실패와 회복,
그리고 사명 완수라는 놀라운 영적 여정을 보여줍니다.
1.
명령과 성취의 관계
(사명의 계승)
누가복음 22장 32절(명령): 예수님은 베드로가 배반할 것을 아셨지만,
동시에 그가 회복될 것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στήρισον)"는 사명을 미리 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
(확신): 세월이 흘러 노년의 베드로는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며,
하나님께서 너희를 친히
"굳건하게 하시며(στηρίξει)"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따라 성도들을 세우는 사역을 완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주체의 변화:
베드로에서 하나님으로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그 일을 하라고 명령하시지만,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는 그 일을 행하시는 최종적인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주를 지키려다 실패했던 베드로는,
결국 형제를 굳게 세우는 힘 또한 인간의 의지가 아닌
"모든 은혜의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3.
고난과 시련의 필수성
누가복음 22장 31-32절: 사탄의 '밀 까부르듯 하는'
시험(고난)이 성장을 위한 과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 성도가 당하는 '잠깐의 고난'이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하고 굳건하게(στηρίξει)
만드는 재료가 됨을 역설합니다.
요약: 두 구절의 관계는
'실패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기도로 회복되어,
이제는 다른 이들을 굳게 세우는 위로자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성경의 아름다운 대조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베드로전서를 통해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인터넷).
(3)
셋째로,
예수님은 사자들을 앞서 보내셨으므로 그들은 가서 예수님을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눅9:52-53)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a)
여기서 사자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준비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일차적으로 수많은 일행이 머물 숙소와 음식이었습니다. “당시 예수님 곁에는 열두 제자뿐만 아니라 많은 여인과 추종자들이 함께 이동 중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은 유대인들에게 적대적이었으므로,
대규모 일행이 갑자기 들어가 머물 곳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미리 사자들을 보내 안전한 유숙처와 식사를 마련하려 했던 것입니다”(인터넷).
(i)
흥미로운 점은 '사자들을 앞서 보내다'라는 표현은 구약의 말라기
3장 1절("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을 연상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잠자리를 잡는 것을 넘어,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이 결정적인 여정에서 그분이 메시아임을 선포하고 그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시키려 했던 사역적 성격이 강합니다”(인터넷).
(b)
그러나 그 사마리아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는데 이 거절의 핵심은
'종교적 배타성'과 '기대감의 불일치'에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단순히 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기 때문에"
거절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인터넷):
(i)
예배 처소를 둘러싼 해묵은 갈등: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그리심 산을 유일한 예배 처소로 믿었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고집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는 것은 그분이 사마리아의 신앙 체계를 거부하고 유대인의 정체성을 선택하셨음을 의미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에게 예루살렘행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행위로 비쳐졌기에,
그분을 '선지자'나 '메시아'로 영접할 마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
'우리'를 위한 메시아가 아니라는 실망:
사마리아인들도 나름의 메시아(타헤브,
Taheb)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머물며 그들의 편이 되어주려 하셨다면 열광했겠지만,
정작 예수님의 목적지는 그들이 혐오하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이 자신들의 지역적,
종교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자 즉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입니다(인터넷).
-
여기서 타헤브(תאהב)는 아람어 어근으로
'돌아오는 자(The
One who returns)' 또는
'회복시키는 자(The
Restorer)'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고,
잃어버린 참된 예배를 회복할 인물을 상징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타헤브가 오면 그들이 성지로 여기는 그리심 산(Mount
Gerizim)에 숨겨진 성막의 기구들을 다시 찾아내고,
중단되었던 제사 제도를 온전히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기다린 타헤브라면 당연히 자신들의 성소인 그리심 산을 존중해야 하는데,
오히려 대척점인 예루살렘을 향해 굳게 결심하고 가셨기 때문입니다(인터넷).
(4)
넷째로,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나히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9:54)하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a)
예수님으로부터 “우레의 아들”[“보아너게”(막3:17)]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야고보와 요한은 매우 급하고 불같은 성격을 가진 자들로서 자신들이 모시는 스승이신 예수님이 사마리아인들에게 배척당하자 이를 참지 못하고 예수님께 즉각적인 심판과 보복을 요청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9:54)(참고: 인터넷).
(i)
이 요청은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가 갈멜산이나 군사들을 대적할 때 하늘에서 불을 내렸던 사건(왕하
1:10-12)을 배경으로 합니다.
방금 전 변화산 사건(눅 9:30)에서 엘리야를 직접 목격했던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가 엘리야보다 크기에 자신들도 그만한 심판을 행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에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자신을 잡으러 온 군사들을 멸했던 것처럼,
자신들도 메시아의 권능으로 사마리아인들을 심판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인터넷).
·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왕으로 등극하러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따라서 왕의 길을 막는 사마리아인들을
'심판받아야 할 대적'으로 간주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목적지는 심판의 보좌가 아닌 십자가였으며,
멸망시키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신 분임을 망각한 발언이었습니다”(인터넷).
-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인에 대해 가졌던 뿌리 깊은 적개심이 종교적 명분(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음)을 얻자 폭력적인 정죄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었습니다”(인터넷).
(5)
마지막 다섯째로,
예수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셨다(눅9:55-56)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a)
“제자들은 자신들이 예수님 편에 서 있다는 이유로 타인을 정죄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배타적인 선민의식과 분노를
'꾸짖으심'으로써, 하나님의 통치는 미움이 아닌 인내와 긍휼로 이루어짐을 교훈하셨습니다”(인터넷).
(i)
일부 사본과 고대 번역본(NASB,
개역개정 각주 등)에 따르면,
이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인터넷):
·
"너희는 너희가 어떤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모른다."
(사탄적 분노와 성령의 사역을 분별하지 못함을 지적)
·
"인자가 온 것은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오신 목적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메시아의 권능은 대적자를 멸하는
'폭력'이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구원'에 있음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인터넷).
n
“진정한 승리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적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으로 적의 마음을 녹이는 것입니다”(인터넷).
(b)
사마리아인들이 영접하지 않았을 때,
예수님은 보복하거나 강제로 굴복시키지 않으셨습니다.
(i)
예수님은 자신을 거절한 사마리아 마을과 싸우거나 보복하지 않으시고,
그저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이는 복음이 강압이나 폭력이 아닌 평화를 통해 전파됨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0장 10-11절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는'
행동의 실천적 본보기입니다(인터넷).
·
“예수님의 목표는 사마리아 마을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인류 구원(십자가와 승천)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소한 비난이나 거절에 매여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최종 사명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단호함을 보여줍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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