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승리 찬양대 찬양 (2026. 2. 15.)

  https://youtu.be/hzcz5t5vunw?si=TH2U2VpoA8hmEI0I

"아이의 장애 앞에서 배운 은혜의 언어"

"아이의 장애 앞에서 배운 은혜의 언어

김유리 그림
김유리 그림

 

장애공존_네 번째 이야기

‘죄책감’은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라면 한 번 이상은 느꼈을 감정이며, 어쩌면 부모라는 이름표를 단 순간부터 평생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죄책감’을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는 마음’이라고 사전은 정의합니다. 이러한 정의는 부모의 죄책감을 다룬 연구 결과와 함께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죄책감’은 양육 과정에서 부모가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 즉 분노나 좌절, 슬픔 등의 감정 중, 두드러지게 많이 보이는 연구 주제 중 하나입니다. 연구자들은 ‘죄책감’이 부모로 하여금 부정적인 선택을 하게 하거나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가장 깊은 뿌리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많은 연구가 특별히 ‘어머니’의 죄책감에 주목합니다. 세상의 속도는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빨라졌지만, 여전히 양육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 아래 ‘장애가 있는 아이를 돌보는 주 양육자는 엄마’로 한정되곤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양육의 책임과 ‘죄책감’의 무게가 엄마에게 쏠려 있다는 근거가 됩니다.

아토피로 밤새 잠을 설치며 피가 나도록 긁는 아이 곁에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우는 아이를 뒤로하고 출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발달장애나 자폐와 같은 장애 앞에서 엄마라는 이름은 항상 ‘죄책감’과 짝을 이룹니다.

저 역시 예외 없이 아이의 장애 판정 이후,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아이의 장애를 ‘내가 저지른 잘못의 결과’라는 사전적 의미 안에 스스로를 가둬버렸습니다. 출산 직후 아이의 뇌출혈위기로 시작된 죄책감은, 갓 돌이 지나서야 발견한 ‘청각 장애’로 극에 달했습니다.

누군가는 어떻게 아이의 청각 장애를 1년이 다 되어 발견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집중력이 좋고, 호기심이 많았던, 유난히 눈치가 빨랐던 아이를, 엄마가 처음이었던 제가 의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산후조리는 저에게 사치였습니다. 아이를 재우고는 매일 울며 인터넷을 검색했습니다. 유난히 인과관계에 집중하는 성향 탓에 저는 아이의 장애에 관한 분명한 원인과 결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저지른 잘못을 찾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거의 매일 밤 인터넷을 뒤졌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새 저를 괴롭혔습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몸이 부서지라 그토록 찾아 헤맸지만, 그 어디에서도 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저를, 그리고 내 아이를 이렇게 만든 하나님을 지독하게 원망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저보다도 더 훨씬 악하게 사는 사람들도 문제없이 살아가는데 저한테만 왜 이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시나요?”

“제가 잘못했다면 저에게 벌을 내리시지, 왜 아이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정말 사랑의 하나님이 맞습니까?”

사정없이 쏘아대는 ‘왜?’라는 질문에,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듯 느껴졌습니다. 철저히 버림받았다고 결론 내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그때, 닫혀있던 제 눈과 귀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깊은 죄책감을 깊이 이해했습니다. 그는 우리 안에 깊이 뿌리박힌 죄책감은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로마서 5:12, 18-19).

나는 죄책감의 문제를 ‘나의 잘못’에서 끌어왔지만, 하나님은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해결할 수 없는 죄책감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의의 옷’을 선물하셨습니다.

저의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 저의 무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유를 얻었습니다.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었지만,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으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의의 옷을 입혀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느끼는 죄책감은 이미 십자가에서 해결되었고, 의의 옷을 입혀주셨음에도 저는, 탕자처럼 3년 넘는 시간동안 의의 옷을 거절하고 죄책의 옷을 다시 주워 입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감사하게도 아이의 장애를 바라보며 더 이상 ‘내 잘못의 이유’를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매일 나에게 맡겨주신 아이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오늘도 의의 옷을 입혀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으로 용기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1-2)"



 https://www.gospelandcity.org/news/articleView.html?idxno=323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