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성도”?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38-42).
(1)
저는 누가복음
10장 38-42절 말씀을 2026년
2월 18일 수요일에 선교지에서 묵상한 후 이렇게 짧은 말씀 묵상의 글을 적었습니다:
“마르다에 대한 생각:
1.
이웃을 사랑하여 영접하고 섬기는 사람
2.
많은 일을 혼자 감당하고자 마음이 분주하고 염려하며 근심하는 사람
3.
도움이 필요한데 직접 도와달라고 말을 잘 못하는 사람
4.
그러다가 결국에 가서는 불만족 속에서 충분히 불평할 수도 있는 사람
5.
많은 일을 하려고 하기보다 일을 줄일 필요가 있는 사람
6.
주님 보시기에 족한 한 가지 일을 잘 선택할 필요가 있는 사람”
(2)
저는 여태까지 ‘마리아와 마르다’에 대하여 쓴 짧은 말씀 묵상 글들을 다시금 다 뒤돌아 보았습니다:
(a)
“사랑의 힘
(Power of Love)” (2009. 7. 18.)
“헨리 나우엔의 ‘죽음,
가장 큰 선물’이란 책을 보면
'행동은 성공을 가지고 오지만 존재는 열매를 맺는다'란 말을 오늘 영어예배 설교를 통해서 다시 한번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엇을 그를 위해 하는가 않하는가(마르다)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보다 내가 누구인가(마리아)에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난 믿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성공(예를 들어,
목회성공)을 원하시기 보다 주님을 닮은 나의 모습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
(b)
“자원하는 자들”
(2009. 7. 21.)
“…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순종이 제사보다 낮음을 알고
'마르다’이기 전에 ‘마리아’인 사람들,
헌신에 받드시 치러야 할 값을 알고도 기쁨으로 헌신하는 사람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인
risk-takers이 되어서 우리 속해 있는 공동체를 더욱더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며 하나님을 높이는 강한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개척자들로 세움을 받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c)
“나의 형통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시편 35편 17-28절)” (2010.
10. 13.)
“… 송원준이란 분의 ‘잠잠하신 하나님’이란 글을 보면 침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실 수도 있다.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의 궁정에서 끌어내시고,
미디안 광야에 그를 살게 하신 사십년 동안 침묵하셨다. 하나님은 십칠세의 다윗에게 왕으로 기름부으신 후 그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침묵하셨다. 하나님은 세계를 교구삼아 선교했던 바울의 눈물의 기도,
즉 몸의 가시가 된 병을 고쳐달라는 애원의 기도에 대해 침묵하셨다. 끝내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거절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이 잔을 옮겨 주소서’라는 한 인간의 간절한 기도에 잠잠하셨다.… 헨리 나우엔은 하나님의 부재는 하나님의 활발한 임재와 같다고 선언했다. … 시편 기자는 이와같은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잠잠하신 하나님이 지금 야속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 열심히 역사하고 계시다! 하나님은 오히려 침묵 속에서 나의 마음을 단련시키신다. … 하나님은 오히려 침묵 속에서 기도하게 하신다’(인터넷).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수동적이 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능동적인 마르다보다 수동적이 마리아가 되야겠다는 다시 한번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수동적이될 때에 하나님께서 오히려 더 능동적으로 일하시고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잠잠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더욱더 큰 능동적인 역사를 기대하며 기다리길 기원합니다.
…”
(d)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야 합니까?”
(2010. 12. 19.)
“… 우리는 마르다처럼 준비하는 일이 많아 분주히 일을 하는 것보다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 아래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눅10:38-42). 그리고 우리는 그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가운데 말씀 인격화되어가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며 또한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야 합니다.
…”
(e)
“하나님의 인도하심?”
(2017. 10. 3.)
“… 3. 앞서 인도하시다가 머물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앞서 우리를 인도하시다가 결국에 가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앞에 머물게 하십니다(마태복음
2: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르다처럼 분주하게 주님을 위하여 일을 할 때에 우리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시사 마리아처럼 주님 앞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누가복음
10:39-40). …”
(f)
“탈진”
(2018. 7. 16.)
“… 우리는 탈진 현상의 하나인 육신의 연약함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쉴 때는 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마르다 같은 일 지향적인 사역자들은 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리아처럼 일하는 것을 좀 내려놓고 예수님 앞에 잠잠히 앉아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
(g)
진정한 안식?
(2022. 9. 29.)
혹시 지금 우리 주님의 일꾼들은 안식일에도 우리의 몸과 마음을 혹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왜 우리는 안식일에는 교회의 많은 일로 분주하여 주님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왜 주일만 되면 몸과 마음이 분주한 것일까요? 교회에 봉사할 사람이 모잘라서 한 사람이 두 세개 일을 감당해야 해서인가요? 교회의 일을 좀 줄여야하는게 아닌가요? 많은 일을 줄여야 하지 않나요? 교회가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좀 줄여야하지 않나요? 펜데믹을 통해서라도 좀 모든면에서 교회가 단순화해야 하지 않나요? 마르다처럼 많은 일로 근심하기보다 마리아처럼 주님 발 앞에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안식일이 될 수는 없을까요?
(h)
“선교에 대한 저의 생각 나눔”
(2023. 5. 1.)
“… 17. 현지인 교회 지도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욱더 견고하고 튼튼하게 잘 세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길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르다처럼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분주하고 마리아를 의식하고 불평하기보다 마리아처럼 주님 앞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데 헌신한 일꾼들이 매우 중요합니다(누가복음
10:38-42). …”
(i)
“나의 사랑하는 딸 예은(Karis)이의 ‘헨리 나우웬의 Beloved(사랑의 존재)과 함께 한 해를 되돌아 보며’라는 글을 읽은 후”
(2023. 5. 3.)
“ … 또 한가지 생각하고 싶은 것은 예은이는 자신의 글에서 언급한 헨리 나우웬이 말한 마르다와 마리아에 대한 성경 이야기입니다(눅10:38-42):
‘요컨대 그(헨리 나우웬)는 예수님이 마르다를 꾸짖는 이유는 그녀가 그분을 섬기느라 너무 바쁘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불안정한 행동이 그녀의 바쁨을 부채질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활동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불안감에서 나온다면 왕국에 봉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증명하고 싶고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싶은 믿음 없는 행동이 됩니다’(예은). 저는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마르다의 불안정한 행동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불안감에서 나오는 행동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만일 마르다가 자신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딸(God’s beloved
daughter)이라는 확신(conviction)이 있었다면 그녀는 결코 불안정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40절). 그녀는 예수님께 ‘주님,
내 동생이 모든 일을 나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는데도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나를 좀 도와주라고 하십시오’(40절, 현대인의 성경)라고도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만일 마르다가 자신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의 확신이 분명했다면 그녀는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지 않고(41절)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했을 것입니다(42절). 그녀도 자신의 동생 마리아처럼 ‘이 좋은 편’인 ‘주님 앞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39절, 현대인의 성경). 이것을 생각할 때 저는 우리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예은이가 읽은 헨리 나우웬의 책 제목인 ‘Beloved’(사랑의 존재)입니다. 만일 우리가 ‘나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존재(아들/딸)이야!’라는 확신이 있으면 그 사랑의 존재라는 확신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우리의 행동(섬김)은 결코 불안정하지 않고(염려하거나 근심하거나 옆에 있는 사람하고 비교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 보시기에 좋은 편을 택하여 주님 앞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
(3)
유진 피터슨은 그의 책 “목회자의 영성”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본질적인 것들을 돌볼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나쁜 성도가 되어서 지치고 불안해하며 불평하게 됩니다. 묵상하는 마리아가 아니라 강박에 쫓기는 마르다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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