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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puedo hacer nada por mí mismo. Solo el Señor que mora en mí puede hacerlo».

  «No puedo hacer nada por mí mismo. Solo el Señor que mora en mí puede hacerlo».         «No puedo hacer nada por mí mismo; juzgo según lo que oigo. No busco mi propia voluntad, sino la voluntad del que me envió. Por eso mi juicio es justo» (Juan 5:30).       (1)      Después de leer todo el pasaje de Juan 5:30-47 en la Biblia en coreano, bajo el título «El testimonio que lleva a creer en Jesús», sentí repetidamente el deseo de detenerme a meditar solamente en el versículo 30. Por eso, hoy quisiera concentrarme primero en ese único versículo. Al meditar en él, deseo prestar especial atención a la expresión «mi juicio», es decir, al juicio del Señor, y relacionarla también con el juicio del gran trono blanco que se describe en Apocalipsis 20:11-15, para recibir las enseñanzas que Dios nos da por medio de estos pasajes.   (a)      En primer lugar, quisiera meditar en las palabras de...

주님의 위로가 내 영혼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주님의 위로가 내 영혼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     “ 내 마음 속에 걱정이 태산 같았을 때 주의 위로가 내 영혼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 시편 94 편 19 절 , 현대인의 성경 ).               걱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   가정만 보아도 얼마나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우는 일들이 많습니까 .   부모님은 자녀를 걱정하고 , 자녀는 부모님을 걱정하는 가정 안에 얼마나 걱정스러운 일들이 많습니까 .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자녀를 결혼시키면 다 끝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결혼한 자녀의 가정 삶 속에 큰 어려움과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   자녀의 입장에서는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이런 저런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계시는 모습을 볼 때에 자녀는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   이렇게 가정만 보아도 우리는 걱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부인 할 수가 없습니다 .   그런데 참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걱정이 태산 같이 많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충분한 위로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그리도 누군가가 우리를 위로해 주기를 사모하지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충분히 위로를 받지 못하므로 계속해서 근심과 걱정 속에서 우리의 영혼이 즐거워하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   이러한 때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   과연 우리는 어떻게 위로를 충분히 받을 수 있을까요 ?             오늘 본문 시편 94 편 19 절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