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없는 악인의 형통함보다는 고난이 있는 의인의 형통함이 낫습니다. 우리가 질투할만한 " 악인의 형통함 " 에는 "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 " 이나 " 재앙 " 이나 " 고통 " 이 없기에 교만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 그러나 의인의 형통함에는 그 고난이나 재앙이나 고통이 있기에 겸손히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 시편 73:3-6, 14, 16; 히브리서 5:8).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 악인과 함께 있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오히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 그리할 때 정녕히 우리의 장래가 있겠고 우리의 소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잠언 23:17-18; 24:1).
심한 고통이 될 정도로 생각하는 것? 우리 각자에게 심한 고통이 될 정도로 생각하며 고민하는 질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예를 들어 시편 기자 아삽은 의인은 고통을 당하는데 왜 악인은 형통한가 라는 질문이 그에게는 심한 고통이 되었습니다 ( 시편 73:16). 그러한 질문의 해답은 "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 깨닫게 됩니다 (17 절 ).
그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 잠 23:17, 24:1, 19; 참고 : 시 73 편 ). 오히려 우리는 의인의 고통에 참여하는 자요 ( 빌 3:10) 그 고통을 통해서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자들입니다 ( 창 39).
악인의 형통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 "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라 "( 시편 92 편 7 절 ) 한 장로님이 천국 가시기 몇 주전 저에게 던지신 질문은 ' 왜 악인은 형통하는데 의인은 고통을 당하는가 ?' 였습니다 . 깊이 생각하시길 좋아하시는 이 장로님의 질문 , 어쩌면 80 이 넘는 평생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셨나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 그렇지 않으셨더라도 확실한 사실은 인생의 마지막 종착점이 가까이 와서는 이 문제로 인하여 고민을 많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이러한 고민이 있으십니까 ? 과연 우리 크리스천들은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 보셨습니까 ? 의인의 고난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은혜의 말씀을 여러번 우리는 들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악인의 형통은 어떻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십니까 ? 오늘 시편 92 편 7 절 말씀은 악인의 형통을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알려 주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첫째로 우리가 현실 삶 속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악인은 흥왕하데 신속하게 흥왕한다는 말씀입니다 . 시편기자는 본문에서 악인을 풀과 비교하면서 " 생장 "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 ( 녀 ) 는 수고도 들이지 않고 간교함 속에서 신속하게 성공한다는 말씀입니다 . 얼마 전 저희 집에 뒷뜰 잔디가 죽어가는 부분이 있어서 아내와 제가 약도 뿌려보고 물도 뿌러보고 씨를 사서 뿌린 적이 있었습니다 . 지금은 빨리 자라나서 푸른 녹색의 잔디를 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