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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관계

부부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겠지만 부부 관계가 잘 성장하기 위해선 배우자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싫어해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관심?

하나님의 무관심? 죄를 짖는 의인에게 있어서  참으로 이해가 안되고 괴로운 것은  악인들은 형통한데  의인들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드는  하나님은 무관심하다는 생각이다 .   (W. Robert Godfrey, "LEARNING TO LOVE THE PSALMS")

고난이 없는 악인의 형통함보다는 고난이 있는 의인의 형통함이 낫습니다.

고난이 없는 악인의 형통함보다는 고난이 있는 의인의 형통함이 낫습니다. 우리가 질투할만한 " 악인의 형통함 " 에는  "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 " 이나 " 재앙 " 이나  " 고통 " 이 없기에 교만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   그러나 의인의 형통함에는  그 고난이나 재앙이나 고통이 있기에  겸손히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 시편 73:3-6, 14, 16; 히브리서 5:8).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 악인과 함께 있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오히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   그리할 때 정녕히 우리의 장래가 있겠고  우리의 소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잠언 23:17-18; 24:1).

심한 고통이 될 정도로 생각하는 것?

심한 고통이 될 정도로 생각하는 것?  우리 각자에게  심한 고통이 될 정도로  생각하며 고민하는 질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예를 들어 시편 기자 아삽은  의인은 고통을 당하는데  왜 악인은 형통한가 라는 질문이  그에게는 심한 고통이 되었습니다 ( 시편 73:16).   그러한 질문의 해답은  "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 깨닫게 됩니다 (17 절 ).

그 고통을 통해서

 그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 잠 23:17, 24:1, 19; 참고 : 시 73 편 ).  오히려 우리는 의인의 고통에 참여하는 자요 ( 빌 3:10) 그 고통을 통해서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자들입니다 ( 창 39).  

악인의 형통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시편 92편 7절)

  악인의 형통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     "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라 "( 시편  92 편  7 절 )        한 장로님이 천국 가시기 몇 주전 저에게 던지신 질문은  ' 왜 악인은 형통하는데 의인은 고통을 당하는가 ?' 였습니다 .  깊이 생각하시길 좋아하시는 이 장로님의 질문 ,  어쩌면  80 이 넘는 평생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셨나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   그렇지 않으셨더라도 확실한 사실은 인생의 마지막 종착점이 가까이 와서는 이 문제로 인하여 고민을 많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이러한 고민이 있으십니까 ?   과연 우리 크리스천들은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 보셨습니까 ?   의인의 고난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은혜의 말씀을 여러번 우리는 들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악인의 형통은 어떻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십니까 ?       오늘 시편  92 편 7 절 말씀은 악인의 형통을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알려 주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첫째로 우리가 현실 삶 속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악인은 흥왕하데 신속하게 흥왕한다는 말씀입니다 .  시편기자는 본문에서 악인을 풀과 비교하면서  " 생장 "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 ( 녀 ) 는 수고도 들이지 않고 간교함 속에서 신속하게 성공한다는 말씀입니다 .  얼마 전 저희 집에 뒷뜰 잔디가 죽어가는 부분이 있어서 아내와 제가 약도 뿌려보고 물도 뿌러보고 씨를 사서 뿌린 적이 있었습니다 .  지금은 빨리 자라나서 푸른 녹색의 잔디를 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