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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하나님은 분명히 진심으로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을 향한 분노를 거두셨는데 하나님의 종인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죽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진심으로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을 향한 분노를 거두셨는데 하나님의 종인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죽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요나   선지자가   죽고   싶을   정도로   성낼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요나는   니느웨   성에서   나가   성   동편에   초막을   만들고   그   그늘   아래   앉아   그   성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자   했습니다 ( 요나   4:4-5,   현대인의   성경 ).     분명히   요나는   하나님께서   회개하여   악한   길에서   돌아선   니느웨   사람들에게   내리겠다고   선언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겠다고   뜻을   돌이키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3:10-4:2,   현대인의   성경 )   니느웨   성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자   그   성에서   나가   성   동편에   초막을   만들고   그   그늘   아래   앉아   있었던   것을   보면 (5 절 ,   현대인의   성경 )   요나는   그   때에도   자기가   선포한대로   하나님께서 ...

죽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괴로울 때

  죽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괴로울 때     “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 민수기  11 장  11, 14-15 절 ).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나요 ?   지금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버터 보았는데 이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심신이 지치고 마음이 괴롭지 않나요 ?    제가  2000 년 초반에 한국에 가서 살면서 그 때 처음으로 들어본 말이 바로  ‘ 버티기 ’ 였습니다 .   그 때 저는 사역 가운데 만난 몇몇 청년들은 자신들의 힘든 삶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대해서 자신들의 힘든 상황 속에서도 견뎌내고 있으면서 계속해서 버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얼마나 힘들었으면 버틴다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각자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견뎌내고 있었을 텐데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생각해 봅니다 .   물론 저는 그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   그저 제 마음은 그 청년들의 힘든 마음을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해서 주님 안에서 교제를 나눴었습니다 .   그리고 그 교제 가운데 저는 여러 청년들이 속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