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结语

  结语     神 赐 予我 们 的恩典,在于 祂 借着耶 稣 基督的仆人 传扬 福音,使我 们 能因信主耶 稣 基督而 称 义 。 换 言之,我 们 唯 独 因信耶 稣 而得 称 为义 。如今我 们既属 于基督耶 稣 ,便不再 处 于神的震怒或 审 判之下,而是活在 祂 那不可 动摇 的 爱 中—— 这爱 已 浇 灌在我 们 的心里。因此,我 们 成了 爱 神的人,也成了彼此相 爱 、彼此接 纳并乐 于分享 与 关 怀 的人。 简 而言之,我 们 已成 为 一 个 充 满 主 爱 的群体。   借着主耶 稣 基督在十字架上的死,我 们 罪得赦免;借着 祂 的 复 活,我 们 在神面前被算 为义 。我 们 因此蒙受了 极 大的福分, 获 得了救恩 与 永生。 这 救恩是源于耶 稣 基督恩典的 礼 物,也是至高无上的 礼 物。作 为这 至高 礼 物的 领 受者,我 们 必 须 活出合乎主心意的生命。我 们 要 怀 着 对 救恩之恩的感恩之心敬拜神, 并 经历 生命的更新 与 改 变 。我 们 要 将 自己的意愿放下在十字架前,同心 寻 求主的旨意, 并 按此旨意生活;我 们 要 过 一 种 蒙神喜 悦与悦 纳 的事奉生活。   我 们 都是蒙恩的 债户 ,因此必 须顺 服主的主 权 ,活出 为 神 结 果子的生命。我 们 要勇敢 传扬 福音 与 信心的信息,毫不羞愧。神若 帮 助我 们 , 谁 能 敌挡 我 们 呢?我 们既 是 真 正的基督徒,就必 须 追求 灵 命的成熟。我 们 要凭信心生活——那是一 种 在看似毫无指望 时 仍存盼望的信心。在 属灵争 战 中,我 们 要 过 得 胜 的生活, 坚 信凡在基督里的人就不被定罪 这 一 真 理。愿我 们 都能活出 与 福音相 称 的生命。

질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질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분노가 잔인하고 파괴적이긴 하지만 질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 잠언 27:4, 현대인의 성경 ).   질투는 까닭 없이 상대방을 싫어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들어 멀리하게 만들며 심지어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만들어 살인을 시도하게까지 만듭니다 .   그리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   이것이 바로 ' 살인적 질투 ' 입니다 [ 참고 : 다윗을 향한 사울 왕의 질투 ( 사무엘상 18:9)].

질투는 상대방을 삐뚤게 보게 만듭니다.

질투는 상대방을 삐뚤게 보게 만듭니다.  질투의 눈으로 다윗을 바라보고 있었던 사울 왕 ( 사무엘상 18:9, 현대인의 성경 ) 은 자기 사위요 자기 신하들 중에 충실한 자요 궁중 모든 사람들에게도 높이 존경을 받는 다윗 (22:14, 현대인의 성경 ) 을 자기를 반역하는 자요 , 자기를 칠 기회만 노리는 자요 , 자기를 죽일 기회만 노리는 자로 여겼습니다 (8, 13 절 , 현대인의 성경 ).   이렇게 질투는 상대방을 그 모습 그대로 정확히 못 보게 만들고 오히려 삐뚤게 보게 만듭니다 .

다윗이 죽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뜻이 아니라 사울의 뜻이었습니다.

다윗이 죽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뜻이 아니라 사울의 뜻이었습니다.  아버지 사울은 아들 요나단에게 노발대발하면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 “ 이 미친 놈아 ! 네가 네 자신의 수치와 네 어미의 수치도 모르고 천한 이새의 아들 쪽을 택한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   그 녀석이 살아 있는 한 너는 절대로 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   당장 가서 그를 끌어오너라 .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 사무엘상 20:30-31,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1) 사울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로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 야고보서 1:20, 현대인의 성경 ).   오히려 사울의 분노는 잔인하고 파괴적이었습니다 ( 잠언 27:4, 현대인의 성경 ).   그러나 요나단을 향한 사울의 분노는 다윗을 향한 질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4 절 , 현대인의 성경 ; 참고 : 사무엘상 18:9, 현대인의 성경 ), (2) 미친 사람은 아들 요나단이 아니라 아버지 사울이었습니다 , (3) 수치를 알아야 할 사람은 아들 요나단이 아니라 아버지 사울이었습니다 , (4)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보다 친구 다윗을 선택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 (5) 이미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고 ( 사무엘상 15:23)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는데 (16:12) 사울은 자기 아들 요나단이 왕이 되길 원했습니다 , (6) 다윗이 죽은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뜻이 아니라 사울의 뜻이었습니다 , (7) 결국 다윗이 아니라 사울이 죽습니다 (31:5).

높임 받는 것에 중독된 사람은 자기 보다 더 높임을 받는 사람을 충분히 살인적인 질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높임 받는 것에 중독된 사람은 자기 보다 더 높임을 받는 사람을 충분히 살인적인 질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나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과 모든 군중 앞에서 높임을 받기를 원했던 사울 왕은 ( 사무엘상 15:30, 현대인의 성경 )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인 다음 승리한 이스라엘 군이 돌아올 때 이스라엘의 모든 성에서 여자들이 승전을 축하하면서 "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 명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수만 명이라네 " 라고 노래했을 때 얼마나 불쾌하였길래 그는 그 때부터 다윗을 계속해서 살인적인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았겠습니까 ? (18:6-9, 현대인의 성경 )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높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높임을 받으면 충분히 질투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사람들에게 높임 받기를 좋아하기 보다 하나님에게 높임 받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낮춰서 다른 사람을 우리보다 낫게 여기고 우리의 모든 특권을 버리며 종의 모습으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마태복음 20:28; 빌립보서 2:3-8, 현대인의 성경 ).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 참고 : 빌립보서 2:9-11).

질투와 미움은 이미 마음으로 상대방을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질투와 미움은 이미 마음으로 상대방을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살인적인 미움으로 동생 아벨을 죽인 형 가인 ( 창세기 4:8; 요한일서 3:12) 과 살인적인 미움으로 동생 야곱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결심한 형 에서 ( 창세기 27:41) 를 생각할 때 살인적인 질투로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 ( 사무엘상 18:9) 이 생각납니다 .   이렇게 질투와 미움은 이미 마음으로 상대방을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 참고 : 마태복음 5:28, 15:19; 갈라디아서 5:19-21; 요한일서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