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라벨이 삼상18:9인 게시물 표시

가장 큰 은혜를 누리는 자가 가장 위험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은혜를 누리는 자가 가장 위험할 수 있습니다 .           “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10:13-16).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0 장 13-16 절 말씀을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 11 장 20-24 절 말씀과 함께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a)    첫째로 , 예수님께서는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셨습니다 ( 마 11:20).   (i)                   예수님은 70 인의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어느 고을 ( 마을 ) 들보다도 가장 권능을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으므로 그 고을 사람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   ·          여기서 예수님께서 가장 권능을 ...

질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질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분노가 잔인하고 파괴적이긴 하지만 질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 잠언 27:4, 현대인의 성경 ).   질투는 까닭 없이 상대방을 싫어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들어 멀리하게 만들며 심지어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만들어 살인을 시도하게까지 만듭니다 .   그리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   이것이 바로 ' 살인적 질투 ' 입니다 [ 참고 : 다윗을 향한 사울 왕의 질투 ( 사무엘상 18:9)].

질투는 상대방을 삐뚤게 보게 만듭니다.

질투는 상대방을 삐뚤게 보게 만듭니다.  질투의 눈으로 다윗을 바라보고 있었던 사울 왕 ( 사무엘상 18:9, 현대인의 성경 ) 은 자기 사위요 자기 신하들 중에 충실한 자요 궁중 모든 사람들에게도 높이 존경을 받는 다윗 (22:14, 현대인의 성경 ) 을 자기를 반역하는 자요 , 자기를 칠 기회만 노리는 자요 , 자기를 죽일 기회만 노리는 자로 여겼습니다 (8, 13 절 , 현대인의 성경 ).   이렇게 질투는 상대방을 그 모습 그대로 정확히 못 보게 만들고 오히려 삐뚤게 보게 만듭니다 .

다윗이 죽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뜻이 아니라 사울의 뜻이었습니다.

다윗이 죽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뜻이 아니라 사울의 뜻이었습니다.  아버지 사울은 아들 요나단에게 노발대발하면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 “ 이 미친 놈아 ! 네가 네 자신의 수치와 네 어미의 수치도 모르고 천한 이새의 아들 쪽을 택한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   그 녀석이 살아 있는 한 너는 절대로 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   당장 가서 그를 끌어오너라 .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 사무엘상 20:30-31,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1) 사울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로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 야고보서 1:20, 현대인의 성경 ).   오히려 사울의 분노는 잔인하고 파괴적이었습니다 ( 잠언 27:4, 현대인의 성경 ).   그러나 요나단을 향한 사울의 분노는 다윗을 향한 질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4 절 , 현대인의 성경 ; 참고 : 사무엘상 18:9, 현대인의 성경 ), (2) 미친 사람은 아들 요나단이 아니라 아버지 사울이었습니다 , (3) 수치를 알아야 할 사람은 아들 요나단이 아니라 아버지 사울이었습니다 , (4)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보다 친구 다윗을 선택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 (5) 이미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고 ( 사무엘상 15:23)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는데 (16:12) 사울은 자기 아들 요나단이 왕이 되길 원했습니다 , (6) 다윗이 죽은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뜻이 아니라 사울의 뜻이었습니다 , (7) 결국 다윗이 아니라 사울이 죽습니다 (31:5).

높임 받는 것에 중독된 사람은 자기 보다 더 높임을 받는 사람을 충분히 살인적인 질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높임 받는 것에 중독된 사람은 자기 보다 더 높임을 받는 사람을 충분히 살인적인 질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나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과 모든 군중 앞에서 높임을 받기를 원했던 사울 왕은 ( 사무엘상 15:30, 현대인의 성경 )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인 다음 승리한 이스라엘 군이 돌아올 때 이스라엘의 모든 성에서 여자들이 승전을 축하하면서 "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 명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수만 명이라네 " 라고 노래했을 때 얼마나 불쾌하였길래 그는 그 때부터 다윗을 계속해서 살인적인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았겠습니까 ? (18:6-9, 현대인의 성경 )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높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높임을 받으면 충분히 질투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사람들에게 높임 받기를 좋아하기 보다 하나님에게 높임 받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낮춰서 다른 사람을 우리보다 낫게 여기고 우리의 모든 특권을 버리며 종의 모습으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마태복음 20:28; 빌립보서 2:3-8, 현대인의 성경 ).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 참고 : 빌립보서 2:9-11).

질투와 미움은 이미 마음으로 상대방을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질투와 미움은 이미 마음으로 상대방을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살인적인 미움으로 동생 아벨을 죽인 형 가인 ( 창세기 4:8; 요한일서 3:12) 과 살인적인 미움으로 동생 야곱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결심한 형 에서 ( 창세기 27:41) 를 생각할 때 살인적인 질투로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 ( 사무엘상 18:9) 이 생각납니다 .   이렇게 질투와 미움은 이미 마음으로 상대방을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 참고 : 마태복음 5:28, 15:19; 갈라디아서 5:19-21; 요한일서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