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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은혜를 누리는 자가 가장 위험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은혜를 누리는 자가 가장 위험할 수 있습니다 .           “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10:13-16).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0 장 13-16 절 말씀을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 11 장 20-24 절 말씀과 함께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a)    첫째로 , 예수님께서는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셨습니다 ( 마 11:20).   (i)                   예수님은 70 인의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어느 고을 ( 마을 ) 들보다도 가장 권능을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으므로 그 고을 사람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   ·          여기서 예수님께서 가장 권능을 ...

삼 삼 삼한 베드로?

삼 삼 삼한 베드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고 ( 누가복음 22:56-61), 예수님에게 세 번 사명의 말씀을 받은 베드로에게 ( 요한복음 21:15-17) 주님께서는 환상을 통하여 세 번 말씀하시므로 ( 사도행전 10:9-16) 베드로는 "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느 민족이든지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내가 분명히 깨 " 닫게 되었습니다 (34-35 절 , 현대인의 성경 ).   왜 베드로는 이렇게 세 가지 일들이 세 번씩이나 일어났어야 할까요 ?   한 번씩만 일어나면 안되었을까요 ?

그 때 그 닭의 울음 소리를 잊을 수 있었을까?

그 때 그 닭의 울음 소리를 잊을 수 있었을까?   그 때 그 닭의 울음 소리를 잊을 수 있었을까 ?    그 때 베드로는 닭의 울음 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 "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 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한 없이 울었었는데 그 기억을 잊을 수 있었을까 ?   분명히 자기 입으로 예수님께 "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린다 해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 라고 말했던 자인데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을 했으니 어떻게 그 때 그 닭의 울음 소리를 잊을 수 있겠는가 ( 마태복음 26:33-34, 56, 75, 현대인의 성경 ).

세 번 부인

세 번 부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을 했는데  빌라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죄를 범했다고 고발한 무리들 앞에서 그들의 말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 눅 23:4),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4 절 )  …   “이 사람은 죽을 짓을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15 절 , 현대인의 성경 ),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 (22 절 ).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베드로나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나 세 번이나 부인을 했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반면에 빌라도는 예수님이 죽일 죄가 없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것입니다 .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한 반면에 (22:61-62)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했음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고발하고 큰 소리로 재촉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한 무리들 (23:23) 에게 예수님을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했습니다 (25 절 ).   빌라도의 세 번 부인의 소리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는 그 무리들의 큰 소리가 이긴 것입니다 (23 절 , 현대인의 성경 ).   비록 그들의 소리가 이겨 그들의 뜻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 참고 : 사 53:10).   즉 , 하나님의 뜻은 죄가 없으신 ( 히 4:15)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한 번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 벧전 3:18,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

우리는 자만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자만해서는 아니됩니다.  "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니아다 " 라고 말한 사도 베드로 ( 마 26:35),  결국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70, 72, 74 절 ).   그리고 그는 "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 " 였습니다 (75 절 ).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믿어서는 아니됩니다 .    우리는 자신만만해 해서는 아니됩니다 .   우리는 자만해서는 아니됩니다 . 우리는 철철히 무너질 필요가 있습니다 .   우리의 자만은 철철히 깨질 필요가 있습니다 .   우리는 자신을 철철히 미워할 필요까지 있습니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철철히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 그리할 때 우리는 주님 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   그리할 때 우리는 주님 만을 신뢰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