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2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 ” ( 골 4:15) 에 관하여 : (1) 풍요 속의 결핍과 외주화 : 사우디가 엄청난 오일머니로 무기를 사고 지상전을 외국인 용병에게 맡겼다가 전투 의지를 상실 한 것처럼 , 라오디게아는 교통과 금융의 중심지로서 엄청난 부를 누렸지만 정작 생존에 가장 중요한 물 ( 수자원 ) 이 나오지 않아 외부에서 관을 통해 물을 끌어와야 ( 외주화 ) 했습니 다 . 라오디게아는 부유함 속에 치명적인 결핍을 외부 의존으로 해결하려다 영적 미지근함에 빠졌습니다 . (2) 내부 구조적 무능과 자만 :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물질적 풍요가 곧 영적 우월함이라 착각하는 자만에 빠졌습니다 [( 계 3:17) "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 그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약과 특산품인 검은 양모로 만든 옷으로 유명했지만 , 영적으로는 정작 본인들이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 ( 무능과 부패 ) 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 (3) 영적 종이호랑이 ( 싸울 의지의 상실 ) :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상태로 영적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한 ' 종이호랑이 ' 성도들이었습니다 . 세상의 부와 타협하느라 복음을 위해 싸울 의지도 , 핍박을 견딜 신앙의 야성도 사라진 상태였 습니다 .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린다 해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 하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바로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 하셨습니다 . 그러나 베드로는 “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 하고 장담하였습니다 .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다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 마태복음 26:33-35,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생각이 듭니다 : (1) 역시 “ 절대로 ” 란 말은 절대하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 하하 . (2) 예수님께서 “ 분명히 ”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그 말씀이 ‘ 반드시 ’ 이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 (3) 비록 베드로는 자기 입으로는 “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 하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 그는 예수님께서 “ 분명히 ” 베드로에게 “ 바로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70, 72, 74 절 ).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참고 : 마태복음 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