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이며 어두움의 권세가 기세를 부릴 때이다”(눅22:53,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보낸 많은 무리 ( 마가복음 14:43, 현대인의 성경 ) 에게 “ 내가 마치 강도라도 되는 것처럼 너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왔느냐 ?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칠 때는 너희가 나를 잡지 않았다 .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48-49 절 , 현대인의 성경 ) 하고 말씀하신 내용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1)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보낸 많은 무리는 예수님을 “ 강도 ” 취급을 하였는데 여기서 “ 강도 ” 라는 헬라어 단어는 조직적이고 폭압적인 강탈자라는 뜻 외에 극단의 민족주의자들의 추앙을 받는 혁명가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Josephus). 사실 예수님께서 하시려는 일이 겨우 몇몇의 동지를 규합해서 로마나 유대 당국을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은밀한 곳에서 모의를 하는 흉기를 든 “ 강도 ” 와는 전혀 다른 분이셨습니다 . 늘 공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가르치셨으며 , 그 가르침의 내용도 “ 사랑과 평화 ” 였습니다 . 물론 그분은 악한 세력에 대혜서는 비겁하게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 그분은 원수들을 무서워하지 않으시고 성전을 정화 ( 정화 ) 하셨습니다 . 하지만 그것이 타락한 무법자요 강도의 행동과 같은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
불쌍히 여겨야 할 사람은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서 ... " 불쌍히 " 여겨야 할 사람 ( 충성된 군인 우리아 ) 은 불쌍히 여기지 않았으면서 ( 삼하 12:6) 내 자식이 심히 앓으닌까 (15 절 ) ( 다윗의 범죄로 인한 결과 ) 하나님께 나를 " 불쌍히 " 여겨달라고 금식하고 울며 간구하였던 다윗 (22 절 ) 처럼 지금 나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고 계시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내가 아프다고 , 내 자식이 아프다고 , 내가 사랑하는 식구들이 아프다고 , 하나님 아버지께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울면서 간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이러한 나 같은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시사 십자가에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버지께서 불쌍히 여기고 계시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싶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 빌 1:8)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며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싶습니다 ( 롬 12:15). 한 영혼을 주님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