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라벨이 사귐인 게시물 표시

“彼此接纳” [罗马书 15:7–13]

  “ 彼此接 纳 ”     [ 罗马书 15:7–13]   上 个 主日,我 们围绕 《 罗马书 》 15 章 1 至 6 节 , 领 受了 这样 一 个祷 告主 题 :“愿祢 赐给 我 们 同心合意的合一。”我 们献 上 这个祷 告,是 为 了持守我 们 在耶 稣 基督里所共有的合一。 为 了 维护教会 的合一,我 们学习 到在向神 祷 告的同 时 ,必 须尽 到三 项责 任: (1) 第一,我 们 “ 胜 利 教会 ”( Victory Church )的所有成 员 都必 须寻 求取 悦 邻 舍,而不是取 悦 自己; (2) 第二,我 们 必 须 借着 圣 经 中的忍耐 与 安慰, 坚 守盼望; (3) 第三,我 们 必 须 同心合意地 荣 耀神。   承接 这 一主 题 ,使徒保 罗 在今天的 经 文(《 罗马书 》 15:7 )中 劝 勉 罗马教会 的 圣 徒——也 劝 勉我 们 “ 胜 利 教会 ”的所有人——要“彼此接 纳 ”。 请 看第 7 节 :“所以, 你 们 要彼此接 纳 ,如同基督接 纳 了 你 们 一 样 ,使 荣 耀 归与 神。”使徒保 罗为 何要叫 罗马教会 中 犹 太背景和外邦背景的信徒彼此接 纳 ——也就是彼此包容和 拥 抱——呢?原因何在?原因很 简单 ,就是基督接 纳 了他 们 。 换 句 话说 , 你 我 为 何必 须 彼此接 纳 呢? 这 是因 为 耶 稣 基督接 纳 了像我 们这样 的罪人。 既 然公 义 的耶 稣 ——神的 儿 子——接 纳 了像 你 我 这样 的罪人,那 么 我 们这 些同 样 是罪人的人,去接 纳 其他的罪人, 岂 不是理所 当 然的 吗 ? 这 在 实际 上如何可能呢?我 们怎样 才能 真 正地彼此包容呢?在今天的 经 文中,使徒保 罗 提出了三 个 途 径 :   第一,要彼此包容,我 们 必 须 成 为 “仆人”。   请 看今天 经 文中的《 罗马书 》 15 章 8 节 :“我 说 ,基督是 为 神 真 理作了受割 礼 之人的 执 事(仆人),要 证实 神 给 列祖的 应许 。”如果我 们 心存傲慢,就无法彼此包容。特 别 是,如果我 们没 有意 识 到自己在神面前是 个 罪...

성질이 과격한 사람과 성 잘 내는 사람을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성질이 과격한 사람과 성 잘 내는 사람을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  성질이 과격한 사람과 성 잘 내는 사람을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그들을 닮아 우리 영혼이 덫에 걸리고 말 것입니다 ( 잠언 22:24-25, 현대인의 성경 ).

주님의 위로의 도구로 쓰임받는 주님의 제자

주님의 위로의 도구로 쓰임받는 주님의 제자 주님의 위로의 도구로 쓰임받는 바나바와 같은 주님의 제자는 다른 제자들이 변화된 사람에 대한 옛 선입관을 가지고 다가가기는 커녕 사귀려고 다가오는 그 변화된 사람을 두려워서 머뭇거리든 물리칠 때에도 그 변화된 사람의 삶 속에 행하신 주님의 일과 그 변화된 사람이 행한 주님의 일을 다른 제자들에게 알림으로 그 변화된 사람과 다른 제자들과 함께 지내도록 중재 역할을 잘 합니다 ( 참고 : 사도행전 9:26-28, 현대인의 성경 ).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을 죽이던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귀려고 했을 때 그들은 사울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을 믿지 않고 모두 그를 두려워했습니다(사도행전 9:26, 현대인의 성경) .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   어떻게 사울과 같은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   우리가 생각하기엔 ' 저 사람은 절대 / 결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될 사람이 아니다 ' 라는 사람조차도 주님은 충분히 변화시키실 수 있으십니다 .

왜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주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그 계명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   그 원인은  우리에게 큰 사랑을 베푸신 성부 하나님과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서  십자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태초부터 계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사귐 ( 교제 ) 를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요일 1:1-3; 2:2; 3:1, 16).

교제(사귐)의 기쁨

교제(사귐)의 기쁨 주님과 교제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사랑으로 형제 , 자매와  교제하므로  우리 마음에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 요일 1:1-4).

진정한 사귐(교제)에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진정한 사귐(교제)에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의  진정한 교제를 하고 있다면 ( 요일 1:3)  우리 안에는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4 절 ).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의 사귐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5:11-13; 롬 6:23)  그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이중 계명인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는 말씀과  "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 는 말씀에  순종하므로 ( 마 22:37, 39)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신적인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 요 15:9-12; 요일 1:4).

사귐(교제)(Fellowship)

사귐 ( 교제 )(Fellowship)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의 사귐이 헌신해야 합니다 ( 수직적인 사귐 ) ( 요한일서 1:6).   다시 말하면 , 우리는 먼저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에 (3 절 ) 에 헌신해야 합니다 .   그리할 때 우리에게는 서로의 사귐이 있습니다 ( 수평적인 사귐 ) (3, 7 절 ).   이 이중 사귐에 중요한 것은  " 그 교제 " 입니다 ( 사도행전 2:42 - 한국 성경엔 " 교제 " 라고 써있지만 원어 헬라어를 보면 정관사가 " 교제 " 란 단어 앞에 있음 ).   여기서 " 그 교제 " 란   성령님의 교제를 말합니다 .   그러므로 이중 사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성령님께서 성부 , 성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진리를 함께 나누게 ( 공유케 ) 하시고  또한 주님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그 진리를 서로에게 주는 것 ( 분유하는 것 ) 입니다 ( 사도행전 2:42 에 나오는 " 교제 "( 원어 헬라어 : 디아코니아 ) 의 의미는 공유와 분유임 ).   이 이중 사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리를 행하는 것입니다 ( 요한일서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