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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함은 기회입니다. (6)

불가능해 보이는 인간(부부) 관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믿음이란 ... (1)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게 합니다. (2)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합니다. (3)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합니다. https://youtu.be/LwfJR3i5w48?si=DeFjUqZG3WtAIYGA

짧은 말씀 묵상 (2021년 12월 13일)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빈무덤을 막았던 돌이 옮겨져 있는 것만 보았고 ,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는 세마포 놓인 것만 보았으나 , 사도 베드로는 직접 무덤에 들어가 놓인 세마포와 예수님의 머리에 쌌던 수건을 보았습니다 .   그 때에야 그 빈무덤에 먼저 도착했던 그 다른 제자도 빈무덤에 들어가 보고 믿었습니다 .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 요한복음 20:1-9, 현대인의 성경 ).   예수님의 빈무덤은 직접 눈으로 보고 믿긴했지만 , 마음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성경 말씀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   육신의 눈으로 모든 증거와 기적 등을 본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이는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   예수님의 빈무덤에 일요일 새벽에 제일 일찍 왔다가 ( 사도 요한과 베드로보다 ) 제일 끝까지 남아 있었던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다가 몸을 구푸려 무덤속을 들여다 보았을 때 흰 옷을 입은 두 천사들과 대화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 사도 요한과 베드로는 그 날 저녁에서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음 )( 요한복음 20:11-19, 현대인의 성경 ).   제 생각엔 막달라 마리아가 사도 요한과 사도 베드로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그리고 예수님을 더 사랑하던 그녀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제일 먼저 (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보다 ) 나타내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주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 마 22:37) 자에게 주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지 않나 생각됩니다 .   예수님의 빈무덤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달려가 "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어요 " 라고 말했던 막달라 마리아가 결국에 가서는 제자들에게 " 내가 주...

이러한 자에게도 사명을 주시는 주님

 이러한 자에게도 사명을 주시는 주님 " 어부 " 였던 사도 베드로 ( 마 4:18),  예수님께서는 그를 삼년간 데리고 다니시면서  " 사람을 낚는 어부 " 가 되게 하시고자 ' 제자훈련 '(?) 을 시키셨습니다 .   그런데 이렇게 삼년간 제자훈련을 받았던 베드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 ( 요 20:6-7) 과  제자들 가운데 두 번이나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19-29 절 )  " 나는 물고기 잡으로 가노라 " 하고 다시금 본업인 어부로 돌아갔습니다 (21:3).   이러한 사람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나타나셔 (14 절 )  세 번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질문하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 " 내 양을 먹이라 "/" 내 양을 치라 "(15-17 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