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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관계

부부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겠지만 부부 관계가 잘 성장하기 위해선 배우자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싫어해도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건강한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 자신부터 감정 다스려라”는 기사를 읽고 나서 ...

자녀를 건강한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 자신부터 감정 다스려라”는 

기사를 읽고 나서 ...

 

 

 

 

저는 기사를 읽으면서 가지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1.       먼저 기사의 제목인 자녀를 건강한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 자신부터 감정 다스려라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물론 우리가 부모로서 우리 자녀의 감정을 존중해야 하지만 이전에 우리의 감정이 우리 자녀에게 존중받을 정도로 건강한 감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그리고 부모 자신부터 다스려야 감정 가장 중요한 감정은 분노라는 말에도 동의합니다: “분노는 파괴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감정이며, 그래서 우리는 대개 그것을 묻어버린다.  그런데 이때 분노는 안으로 폭발하여 우울, 죄책감, 불안, 수치심으로 나타날 있다. 혹은 밖으로 폭발하여 공격성으로 표출될 있다.”  우리가 부모로서 분노라는 감정을 우리 자녀 앞에서도 절제하거나 조절할 없을 정도라면 우리는 우리 자녀를 건강한 아이로 키우기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분노 조절을 못하는 부모를 통해서도 우리 자녀를 제일 사랑하시기에 건강한 아이로 양육하실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3.       더해 헨델이 분노를 개의 분리된 단계인 (a) 분노를 경험하는 내적인 과정과 (b) 스스로와 가족에게 건설적인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외적인 과정이 저에겐 흥미롭습니다.  이유는 저는 주로 번째 단계인 분노를 경험하는 내적인 과정만 생각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의 경우 아내는 분노를 외적으로 표현(표출?)하는데 익숙했지만 저의 경우는 속으로(내적으로) 분노를 내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자신이 참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였지만 아내를 통하여 저는 속으로 분노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저희 부부는 자녀들의 부모로서 우리 각자의 분노를 우리 자녀들에게 건설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저의 내적 분노를 비언어적으로 표현하므로 자녀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충분히 끼쳤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내의 경우는 분노를 언어적으로나 행동으로 표현하므로 우리 자녀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구요).  결국 저희 부부는 분노라는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자녀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4.       기사를 보면 글을 헨델과 프라가 박사가 불안 많은 수치심이란 말을 하였는데 저는 말들을 읽으면서 아내와 제가 생각났습니다.  , 저는 불안이란 단어를 읽을 아내가 생각났고, “많은 수치심이란 단어를 읽을 자신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아내와 살면서 불안이란 단어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아내가 저에게 실제로 자기는 불안하다고 심각하게 말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가 말한 불안 무엇이고 제가 그녀의 남편으로서 어떻게 아내로 하여금 불안에서 자유를 누릴 있는지에 대한 매우 심각하게 고민과 기도 등을 하였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신이 수치심 매우 많고 강렬하게 느낄 정도로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특히 아내랑 살면서 공적인 자리나 사람들 앞에서 아내가 분노할 때나 제가 생각하기에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는데 아내가 기준대로 하지 않았을 느끼는 수치심에 제가 매우 민감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저는 아내가 우리 자녀들 앞에서 분노할 매우 수치심을 느꼈었습니다.  그랬기에 저는 불안이란 단어와 수치심이란 단어가 저희 부부를 생각나게 만들 밖에 없었던 같습니다.

 

5.       헨델은 건강한 수치심은 이유가 있어 존재한다.  적절한 수치심은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법을 따르며,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가르친다 말했는데 저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헨델은 “부모님로부터 수용될 없다고 느끼게 만든 무언가가 있었는가?”라고 물으며, 수치심은 우리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거나, 감정 표현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 생긴다고 보았다.  예컨대 슬픔을 드러냈을 그것이 부모로부터 수용되지 못하면, 아이는 슬픔과 수치심을 연결지어 슬픔을 느낄 때마다 수치심을 느껴 결국 슬픔을 억압하게 된다.” 말에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부부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자녀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거나, 감정 표현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 수치심을 가질 있겠지만, 저는 부부 관계에서도 서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거나, 감정 표현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에도 수치심은 충분히 생길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수치심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분노라는 감정도 충분히 자극을 받을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부가 먼저 각자의 수치심이나 분노의 근원이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헌신해야 하며 또한 각자의 억압된 핵심 감정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건강하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       기사를 헨델과 프라가 박사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아버지로서의 역할에도 작용할 있다 말을 하였는데 저는 아버지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어머니로서의 역할에도 충분히 작용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부모가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부부 관계 뿐만 아니라 부모와 저녀와의 관계에서도 어리 시절 트라우마가 매우(?) 안좋게 영향을 충분히 끼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나 아내가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주님 안에서 극복해야 하는지가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트라우마를 극복할 있도록 주님이 저희 부부를 짝지어 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비결은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7.       저는 헨델과 프라가 박사가 제시한 변화 삼각형(Change Triangle) 개념이란 제목 아래 그림(도표) 보면서 비록 도구는 정서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우리 자신의 내적 자아로 돌아가도록 안내하기 위해 고안되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방어 기제”(Defense) 생각할 우리는 정서적 불편함과 고통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행위가 너무나(?) 강한 것도 문제라 생각합니다.  말은 우리는 우리 각자 자신만의 방어 기제를 적어도 부부 관계에 있어서는 내려놓아야 부분들은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도로 부부 관계가 성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부부 관계는 계속해서 각자의 핵심 감정(core emotions)” 적랄하게 수가 없고  오히려 차단된 결과 부부는 진정한 자아를 서로에게 모습 대로 보여주지 못한체 서로를 사랑하게 위험(?) 많다고 생각합니다.

 

8.       마지막으로 저는 “자녀를 건강한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 자신부터 감정 다스려라”는 기사를 읽고 읽으면서 마지막 부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스스로 기쁨에 집중하는 것이다하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 저희 부부를 뒤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했을 저와 아내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쁨은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저희 부부로 하여금 각자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신 자녀들 각자의 속에 어떻게 일하고(역사하고) 계시는지를 대화 나눌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쁜 일들을 가정 일기를 쓰고 이웃들에게 나누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혼 부부들에게 저처럼 가정 일기를 쓰는 것을 권면합니다.  이유는 그것이 프라가 박사가 말하는 기쁨 찾기”(joy seeking)” 연습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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