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에 혈통에서 나셨고”
[로마서 1장 3절]
로마서 1장 3절 말씀입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여기서 “그의 아들”이란 성부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성자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육신”이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8:7)이 아니라 죄가 없는 또는 죄와 관계가 없는 육신인 사람의 몸을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4)란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이시요(1절)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3절)이 “육신”
즉 죄 없는,
또는 죄가 전혀 관계가 없는 온전한 사람이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온전하신 하나님이시요 또한 온전하신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습니다(롬1:3). 여기서 ‘나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탄생을 말씀합니다. 그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누가복음
2장 1-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그리고 “다윗의 형통”이란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 마태복음
1장 16절을 보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하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요셉”은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예루살렘에서 다윗이 낳은 아들
4명 중에 두명이 “나단과 솔로몬”임(대상3:5)]의 후손이고,
마리아는 다윗의 아들인 나단[“…
나단이요 그 위는 다윗이요”(눅3:31)]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인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은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였기에(2:4) 그들은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고 다 호적하라 하였”을 때(1절) 호적하러(3절) 자기들의 고향힌 “베들레헴”으로 간 것입니다(4절).
그러면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후손)으로 이 세상에 죄 없는 또는 죄와 전혀 관련 없는 온전한 사람으로 오신 것일까요?
(1)
그 첫째 이유는,
온전한 하나님이시요 온전한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창조 때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기에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중보자가 필요없었지만 아담이 범죄한 결과 중보자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하신 하나님이시요 온전하신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중보자가 되시고자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2)
그 둘째 이유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 14장 8-9절 말씀입니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지만(1:18)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3)
그 셋째 이유는,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죽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은 죽으실 수가 없으시지만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죽으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자 다윗의 혈통(후손)으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시사[“우리 대신 죄가 되게 하셨으니”(쉬운성경), “우리 대신으로 죄를 씌우셨습니다”(새한글)]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롬8:32; 고후5:21).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욥의 아들들은 각자 생일이 돌아오면 자기 집에 잔치를 베풀고 형제들과 누이들을 모두 초대하여 함께 먹고 마시며 즐겼습니다. 그 잔치가 끝날 때마다 욥은 그의 자녀들을 불러다가 그들을 성결하게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자녀 수대로 불에 태워 바치는 번제를 드렸음.
이것은 그가
'혹시 내 아들들이 범죄하여 마음에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욥1:4-5, 현대인의 성경). 혹시 지금 우리가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았을까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고 하면서 우리 마음에는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있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가장 존귀하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가장 귀한 곳에 모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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