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 지금 웃은 자여” …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들에게는 불행이 닥칠 것이다. 너희는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위로를 이미 다 받았다.
지금 배부르게 먹고 지내는 자들아, 불행하게도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지금 웃는 자들아, 불행하게도 너희는 슬퍼하며 울 것이다”](누가복음 6:24-25)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6장 24-25절 말씀을 묵상할 때 제일 먼저 “부요한 자”란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a)
그래서 저는 ‘부요하다’라는 헬라어 단어 “πλουσίοις”(플루시오이스)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성경에 또 어디에 나오는지 찾아보면서 부요한 자(부자)에 대해서 좀 묵상하였습니다:
(i)
(눅21:1-4)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도 자기 생활비를 전부 바쳤지만,
부자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모두 넉넉한 데서”(현대인의 성경)]
헌금을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부자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가난한 과부”보다) “더 많이 헌금”을 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ii)
(딤전6:17-18)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그대는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교만하거나 곧 없어질 재물에 희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희망을 두라고 가르치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넘치게 주셔서 누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고 선한 일에 부요하며 나눠 주기를 좋아하고 남의 어려움을 깊이 동정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시오”(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보면 “이 세상의 부자들”은 하나님께 희망을 두기 보다 교만하거나 곧 없어질 재물에 희망(소망)을 둘 위험이 있다는 것과 남의 어려움을 깊이 동정하지
(너그럽지) 못하기에 선을 행하지 않고 도리어 선한 일(선한 사업)에 가난하여 나눠 주기를 싫어할 위험이 있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iii)
(약2:6-7)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그런데도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며 법정으로 끌어가는 사람들은 부자들이 아닙니까? 그들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고귀한 이름을 모독하지 않았습니까?”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보면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괴롭히며, 법정으로 끌고 가고,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모독)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iv)
(약5:1-6,
현대인의 성경)
“부요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닥쳐올 불행을 생각하고 울고 통곡하십시오. 여러분의 재물은 썩었고 옷은 벌써 좀먹었습니다. 그리고 금과 은이 녹슬었으니 그 녹이 여러분에게 증거가 되어 불같이 여러분의 살을 먹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마지막 때에 재물을 쌓아 두었습니다. 여러분이 일꾼들에게 주지 않은 품삯이 소리치고 있으며 추수한 일꾼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리며 잡혀 죽을 날을 눈 앞에 두고도 욕심만을 채워 왔습니다.”
·
이 말씀을 보면 “부요한 사람들”은 말세(마지막 때)에 재물을 쌓아 두었으면서도 추수한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않고 도리어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리면서 자신들의 욕심만을 채워 왔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v)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너는 부자라서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네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자만심과 자기기만,
그리고 영적 무지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셨는데 지금 교회가 물질적으로는 부유했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영적으로 곤고하고 가난하며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라면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참고: 인터넷).
(vi)
(계6:15-17,
현대인의 성경)
“그러자 땅의 왕들과 고관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자들과 모든 종들과 자유인이 동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서 산과 바위를 향하여
'우리 위에 무너져서 보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과 어린 양의 노여우심에서 우리를 숨겨다오. 그분들이 노여워하시는 날이 드디어 왔으니 누가 견디어 내겠느냐?'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
이 말씀을 보면 '여섯째 인'이 떼어질 때 임하는 최후 심판의 날에 땅의 모든 계층(왕, 귀족, 부자, 장군, 강한 자,
모든 종,
자유인)이 하나님의 진노와 어린양의 무서운 심판 앞에서 두려워 숨고,
바위와 산에 자신들을 가려달라고 외칠 것인데 이는 세상의 권세자들이나 죄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모든 은폐된 것이 드러나고 회개 없이는 멸망뿐임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인터넷).
(vii)
결론적으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고 말하면서 그 풍족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희망을 두기 보다 교만하거나 곧 없어질 재물에 희망(소망)을 두고 남의 어려움을 깊이 동정하지
(너그럽지) 못하기에 선을 행하지 않고 도리어 선한 일(선한 사업)에 가난하여 나눠 주기를 싫어하는 부자들,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괴롭히며, 법정으로 끌고 가고,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모독)하는 부자들,
마지막 때에 재물을 쌓아 두었으면서도 추수한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않고 도리어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리면서 자신들의 욕심만을 채우는 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모든 은폐된 것이 드러나고 회개 없이는 멸망뿐이라는 교훈을 받습니다.
(b)
저는 이 “부요한 자”(눅6:24)란 말씀을 “배부른 자”(25절)과 “웃는 자”(25절)와 좀 연관성을 짓게 되었습니다. 호크마 주석의 설명입니다:
(i)
“부요한 자”:
“여기서 '부요한 자'는 20절의 '가난한 자'의 반대개념으로서 등장한다.
본문의 의미가 이 땅의 모든 부자들이 화를 당할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는 상징적 의미로서 복음 사역을 방해하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자들을 뜻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신뢰하지 않고 죄를 회개하지 않으며 자신만을 신뢰하고 자만하며,
자신들의 교육,
학문, 지혜만 자랑한다.
더욱이 이들은 마음이 심히 완악하고 강퍅하여 그리스도의 경고의 메시지에 귀기울일줄 모르며 하나님의 축복과 하늘나라의 기업이 없이도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삶의 모든 의미를 두고 허탄한 일만 일삼는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심판 때에 돌이킬 수 없는 큰 화 곧 하나님의 영원한 사망의 형벌이 임하게 될 것이다.”
·
“배부른 자”:
“이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느끼지 못하고 영혼의 굶주림을 외면한채 재물을 방탕하게 사용하여 육체의 쾌락을 만족시키는데 급급하는 자들을 지칭한다.
이는
21절의 '주린 자'와 대조가 된다.”
-
“웃는 자”:
“여기서 웃는 자의 웃음은 세상에 속한 것들을 즐기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에서 오는 육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심판 때 대가로 받을 울음은 영원한 것이되어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한편 이
'웃는 자'는 21절의 셋째 축복
'우는자'와 대조된다”(호크마).
n
이러한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화 있을진저”(24,
25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2)
제가 오늘 본문 누가복음
6장 24-25절에서 두 번째로 관심을 갖게 된 말씀은 “화 있을진저”(24,
25절)라는 말씀입니다.
(a)
여기서 “화”란 헬라어 “οὐαὶ”(우아이)는 기본적으로 감탄사로,
원래 의미는 슬픔,
비탄, 또는 저주를 나타내는 강한 감정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οὐαὶ"는 종종 영적인 경고나 저주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거부하거나 율법을 왜곡하는 사람들에 대해
"οὐαὶ"를 사용하여 그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심각한 결과를 경고합니다(인터넷).
(i)
예수님의 “화 있을진저”
말씀들이 생각났습니다:
·
(마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마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
(마23:25-26)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
(마23:27-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
(마23:29-3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
(눅6:15하) “…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ii)
이사야 선지자의 “화 있을진저”
말씀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
·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사10:2).
-
사회적 약자 중 가장 보호받아야 할 대상인 과부에게는 억지로 빼앗고(토색),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행위는 극심한 불의로 간주되는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지도자들이나 권력자들이 오히려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불공정하게 재판하고 그들의 권리를 빼앗으며,
과부와 고아를 착취하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을 초래할 것이라는 강력한 저주와 경고의 말씀을 대언한 것입니다(참고: 인터넷).
·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현대인의 성경)
“자기 계획을 여호와께 숨기려 하는 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몰래 자기 일을 하며 너희 하는 짓을 보거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사29:15).
-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입술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여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13절). 그들의 신앙은 사람의 가르침이나 규정에 얽매여 있었습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 가운데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일을 빛 가운데서 행하기 보다 자신들의 일을 어두운 데해서 행하고 있었습니다(15절). 다시 말하면,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 몰래 자기들의 일을 자기들의 계획대로 행하고 있었습니다.
n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께 깊이 숨기려고 하면서 자신들의 일을 자신들의 계획대로 어두운 데에서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아무도 보고있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5절).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 조차도 자기들이 어두운 데레서 몰래 행하는 일들을 보고 계시지 않고 모르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
(사31:1-2).
-
겉으로 보기엔 갈대 지팡이와 같은 애굽이 강하게 보여 유다 왕들이(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애굽 군대의 말과 많은 병거와 심히 강한 마병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는데 이런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노의 아몬과 바로와 애굽과 애굽 신들과 왕들 곧 바로와 및 그를 의지하는 자들을 벌할 것이라”(렘46:25).
n
또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지하면 반드시 피해가 올 수 밖에 없는 것은 마치 나일강의 갈대가 부러지면 그 끝이 날카로와서 지나가는 사람의 어깨를 상하게 하고 또한 그 갈대를 기대게 되면 갈대가 부러져서 기대는 사람의 허리를 상하게 하는 것처럼(겔29:7, 인터넷)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지하면 반드시 “손에 찔려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왕하18:21).
(iii)
에스겔 선지자의 에스겔 34장
2절 말씀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
이스라엘 목자들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였습니다(겔34:3). 이렇게 양들을 먹이지 않을 때에 어떠한 현상이 일어납니까? 다시 말하면,
목자가 양들이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지 않을 때에 양들은 어떻게 됩니까? 유리(방황)하며 흩어지며 결국은 사탄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 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5-6절).
(iv)
유다서
1장 11절 말씀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현대인의 성경)
“그들에게는불행이 닥칠 것입니다.
그들은 가인의 악한 길을 따르고 …”].
·
우리는 가인의 악한 길로 행하지 말고 도리어 의로운 아벨의 의로운 길로 행해야 합니다(요일3:12). 우리는 아벨처럼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 또는 더 나은 예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히11:4). 우리가 하나님께 더 나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선 우리는 마태복음5장 23-24절 말씀을 무시해서는 아니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
성경은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다가 우리 형제,
자매에게 원망들을 만일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면 먼저 그 형제,
자매에게 가서 그 형제,
자매와 화목을 하고 그 후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형제,
자매를 사랑하면서 화목한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우리 형제,
자매와 화목하지 않고 다투고 싸우는 등,
이웃 사랑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답시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참 예배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n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바라기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대로 우리도 행해되(요일2:6) 우리는 의를 행해야 합니다(3:10). 즉,
우리는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형제를 사랑합니다(10절).
(3)
제가 오늘 본문 누가복음
6장 24-25절에서 마지막 세 번째로 관심을 갖게 된 말씀은 “부요한 자”들에게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24절)하는 말씀과 “배부른 자”들에게 “너희는 주리리로다”(25절)하는 말씀과 “웃는 자”들에게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25절)하는 말씀입니다.
(a)
첫째로,
“부요한 자들”에게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24절)하는 말씀은 현대인의 성경은 “너희는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위로를 이미 다 받았다”라고 번역했습니다.
(i)
“물질적 풍요와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부자들은 이미 이 땅에서 그들의 위로(보상)를 다 받았으므로,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위로(복)를 받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의미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주어지는 복(천국)과 반대로,
부자들은 현세의 안락함에 만족하여 영적인 축복을 놓치게 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인터넷).
·
“이 구절은 세상적 부와 쾌락에 안주하며 영적인 가치를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이미 받은 세상의 복이 전부이며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깨닫고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인터넷).
(b)
둘째로,
“배부른 자”들에게 “너희는 주리리로다”(25절)하는 말씀은 현대인의 성경은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i)
지금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하나님 없이도 행복한 것처럼 보이는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영적,
또는 미래에 궁핍과 고난,
그리고 심판으로 인해 굶주림을 겪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인터넷).
·
이 말씀은 세상 안주에 대한 경고로써 현재의 안락함에만 만족하며 영적인 것을 소홀히 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강력한 경고입니다(인터넷).
(c)
셋째로,
“웃는 자”들에게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25절)하는 말씀은 현대인의 성경은 “지금 웃는 자들아,
불행하게도 너희는 슬퍼하며 울 것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i)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물질적 풍요나 쾌락,
세속적인 성공에 만족하며 세속적인 즐거움에 빠져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현세의 만족을 누리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죄악과 연약함,
그리고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해 깊이 슬퍼하며 탄식하는 미래에 큰 슬픔과 고통이 있을 것이며,
반대로 지금 애통하고 우는 자(자신의 죄와 연약함에 대해 탄식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참된 기쁨을 얻게 될 것이라는
'역설적인 경고'입니다(인터넷).
·
“이는 참된 행복은 세상의 쾌락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데 있음을 강조하는 메시지입니다”(인터넷).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