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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사람을 존경하십시오.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사람을 존경하십시오.  에바브로디도처럼 자기가 병든 것을 여러분이 알게 되었다고 걱정하는 사람 , 여러분 모두를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 , 여러분이 그를 다시 보게 되면 기뻐할 사람 , 멀리 있는 여러분을 대신해서 나를 도우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스도의 일을 하다가 죽을 뻔하기까지 한 사람 , 그런 사람을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기쁨으로 맞아들이고 또 그와 같은 사람들을 존경하십시오 ( 빌립보서 2:25-30, 현대인의 성경 ).

"이제 더 이상 불평 금지!"

  이제 더 이상 불평 금지! by Larry Osborne  /   2019-11-12 Photo by Jelleke Vanooteghem on Unsplash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당회 모임 하나를 기억한다.  리더십 컨퍼런스에서 한 대형 교회 목회자의 강연을 들은 후에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로 막 돌아왔을 때였다. 그 목회자는 목회 사역에 동반되는 고유한 도전과 어려움에 대해 열변을 토했었다. 그 강연을 요약하자면, 목회 사역은 가장 힘든 일이며, 위태로운 일이 끝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의 적은 악의 전형이며, 음흉하고, 사나우며, 궁극적으로 속이는 자이다. 우리는 오해받기 쉽고, 우리의 메시지는 인기가 없다. 우리의 보상은 대부분 나중에 온다. 그리고 우리는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베풀기를 요구받는다. 그때 나는 목회의 아주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기에, 그의 말은 내 관심을 끌었다. 시편 73편의 아삽처럼, 목회 사역 자체가 가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 다음의 당회에서, 나는 그 강연자가 한 말을 당회원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기도를 요청하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다. 실제로 나는 그저 약간의 공감과 이해를 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연민을 구하는 부분에 이르기도 전에, 당회원들 중의 한 명이 내게 이야기를 그만하라고 했다.  나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 장로는 베트남 전쟁이 있을 때 세 번이나 복무하고 은퇴한 해병이었다. 그는 용맹스럽게 싸웠고 전쟁의 공포와 대학살을 직접 경험했다. 더군다나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서 비웃음과 조롱을 당했다. 영웅에 대한 환영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내 말은 연민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내 말을 멈추게 한 것은 옳았다. 나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불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목회의 난관과 중압감에 대하여 불평할 권리도 없었다. 물론 목회 사역에 나름의 도전과 어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많은 고난 중에 있을 때 더 크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많은 고난 중에 있을 때 더 크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많은 고난 중에 있을 때 더 크게 말씀하십니다 .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 크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하시되  사람의 말로 받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게 하시사  그 말씀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 능력있게 역사케 하십니다 .   즉 , 성령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케 하시므로  더욱더 우리 마음에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십니다 .   그 결과 우리를 많은 고난 중에서 주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됩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1:5-6; 2:13).

하나님을 경외함을 우리 마음에 두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경외함을 우리 마음에 두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재앙을 내리신 것 같이  허락하신 모든 복을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렘 32:4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으로 징계하신 후  다시금 우리를 회복하시사 안전히 살게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사  우리와 우리 후손의 복을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항상 하나님을 경외케하시므로  하나님을 더 이상 떠나지 않고  우리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되  분명히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를 천국에 심으실 것입니다 (37-41 절 ).

어떻게 슬픔을 기쁨으로 견딜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슬픔을 기쁨으로 견딜 수 있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곧장 베다니로 가지 않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신 목적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 내가 거기 ( 나사로가 살고 있었던 베다니 ) 있지 아나힌 것을 너희 ( 제자들 ) 를 위하여 기뻐하 " 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요한복음 11:6, 15).   분명히 죽은 나사로로 인해 우는 마리아와 그녀를 위로하로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사 눈물을 흘리셨던 예수님이신데 (33, 35 절 )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흘리실 눈물 , 그 슬픔조차도 견디시고 제자들 ( 의 믿음 ) 을 위하여 기뻐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15 절 )   저는 그 대답을 골로새서 1 장 11 절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 " 그 ( 하나님 ) 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