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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최우선순위를 주님께 두는 사람들을 통해 확장됩니다. (눅9:57-62)

  https://youtu.be/cRd_c0nsQ2s?si=NqPeZDHbDhHqWHOw

우리 삶 속에 우리의 명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삶   속에   우리의   명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 우리 삶 속에 우리의 명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그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그 와중에서도 이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고민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곤 합니다 .   그렇지만 우리는 그 일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우왕좌왕하기도 합니다 .   그렇지만 이젠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다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신 뜻을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 참고 : 스가랴 1:9, 현대인의 성경 ; 잠언 3:5; 로마서 8:28; 12:2).

우리 자녀들도 영원한 반석이신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항상 신뢰하길 기원합니다.

우리 자녀들도 영원한 반석이신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항상 신뢰하길 기원합니다. 사자 굴 안에 있는 다니엘의 답변을 들은 다리우스 “ 왕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끌어올리라고 명령하였 ” 습니다 .   “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올라왔을 때 그 몸이 하나도 상하지 않았 ” 습니다 .   “ 이것은 그가 자기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이었 ” 습니다 ( 다니엘 6:23,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생각났습니다 .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세은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으므로 7 배나 더 뜨겁게 한 용광로 속에 던져졌지만 “ 화상을 입지도 않았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않았으며 그들의 옷도 상하지 않았고 불탄 냄새도 없었 ” 습니다 .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천사를 보내 “ 자기를 신뢰하는 종들을 구원하셨다 ” 고 말했습니다 (3:19-21, 27-28 절 , 현대인의 성경 ).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자 굴과 같은 이 험악한 세상에서 건져주시되 그들의 몸이 하나도 상하지 않게 하십니다 .   그러므로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들도 영원한 반석이신 하나님을 항상 신뢰하되 ( 이사야 26:4, 현대인의 성경 ) 마음을 다하여 ( 잠언 3:5) 우리를 돕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길 기원합니다 ( 시편 115:9, 10, 11, 현대인의 성경 ).

우리의 교만함은 헛된 기대감을 유발합니다.

우리의 교만함은 헛된 기대감을 유발합니다.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가 “ 직접 나와서 ” 자기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 자기 병을 고쳐 줄 것을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사람을 나아만 장군에게 보내 “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문둥병이 깨끗이 나을 것이라 ” 고 일러 주게 했습니다 .   그러자 나아만 장군은 화가 나서 ( 격분해서 ) 엘리사 선지자의 집 문 앞에서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 다마스커스에는 이스라엘의 그 어느 강보다도 좋은 아바나와 바르발 강이 있지 않은가 ?   나는 거기서 몸을 씻어도 깨끗이 나을 수 있다 ”( 열왕기하 5:10-12, 현대인의 성경 ).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지식을 의지하면 ( 잠언 3:5) 우리도 나아만 장군처럼 “ 하나님의 사람 ”(열왕기사 5:8) 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   겸손함이 없는 우리의 교만함은 헛된 기대감을 유발합니다 .

우리 자신의 필요성에 대한 갈급함과 긴급함이 있다면 ...

우리 자신의 필요성에 대한 갈급함과 긴급함이 있다면  ... 나아만 장군은 자기 아내의 하녀의 말을 듣고 자기 왕에게 가서 그 소녀 이야기를 했습니다 .   그 때 시리아 ( 아람 ) 왕은 나아만 장군에게 “ 갔다 오너라 .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드릴 편지도 한 장 써 주겠다 ” 고 말했는데 그 편지 내용은 “ 내가 이 편지와 함께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냅니다 .   아무쪼록 이 사람의 문둥병을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   그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 왕은 읽고 나서 자기 옷을 찢으며 “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란 말인가 ?   어째서 이 사람이 문둥병자를 고치라고 나에게 보냈는가 !   시리아 왕이 나에게 시빗거리를 찾는 것이 틀림없다 !” 라고 오해를 했습니다 ( 열왕기하 5:4-7, 현대인의 성경 ).   저는 나아만 장군이 자기 아내의 하녀의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묵상할 때 물론 나아만이 자기의 문둥병을 고치고 싶은 간절함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런데 그보다 저는 하나님께서 나아만의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그 소녀의 말까지도 듣게 하시사 결국에 가서는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자기의 문둥병도 고침을 받고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하나님이 없는 줄을 그가 이제 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4-15 절 , 현대인의 성경 ).   우리도 우리 자신의 필요성에 대한 갈급함과 긴급함이 있다면 가난한 심령과 겸손함 가운데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주위 사람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실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저는 시리아 ( 아람 ) 왕의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 왕의 반응을 묵상할 때 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오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그가 오해한 이유는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만 의...

쉬운 줄로 생각되는 가능하게 보이는 일만 행합니다.

쉬운 줄로 생각되는 가능하게 보이는 일만 행합니다. 믿음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전능하시고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케 하지만 불신앙은 자신의 지식을 의지하여 쉬운 줄로 생각되는 가능하게 보이는 일만 행합니다 ( 참고 : 신명기 1:41, 현대인의 성경 ; 창세기 17:1, 18:14).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은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니까 ...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은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니까  ...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은 "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 ?" 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니까 나는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과의 충돌 속에서 시련을 겪습니다 . 이 믿음의 시련의 과정에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해주시길 간구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의 시련을 통해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기 전에 나의 믿음을 전적으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게 하시사 그 하나님만 마음을 다하여 신뢰하게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 창세기 17:1, 18:14; 잠언 3:5, 현대인의 성경 ).

자기 자신과 자기 지식을 의지하는 사람은 ...

자기 자신과 자기 지식을 의지하는 사람은  ...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만 , 자기 자신과 자기 지식을 의지하는 사람은 자기가 보는 데로 믿고 또한 자기의 느낌을 믿습니다 ( 참고 : 민수기 13:16, 31-33; 잠언 3:5, 현대인의 성경 )

나쁜 소문을 퍼트립니다.

나쁜 소문을 퍼트립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의 지식을 의지하여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나쁜 소문을 퍼트립니다 ( 잠언 3:5; 고린도후서 5:7; 민수기 13:32, 현대인의 성경 ).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의 말은 맛있는 음식과 같아서 사람들은 그것을 삼키기 좋아합니다 ( 잠언 18:8, 26:22, 현대인의 성경 ).   그 결과 그들은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 민수기 14:27, 현대인의 성경 ).

선입관을 뛰어넘지 못하고 변화의 기회를 마음으로 차단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선입관을 뛰어넘지 못하고 변화의 기회를 마음으로 차단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 가서 ...   찾으라 "( 사도행전 9:11) 는 사람에 대하여 우리가 아직도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   주님께서 이미 만나셔서 변화시켜 주신 사람에 대한 우리의 옛 기억에 근거한 선입관을 뛰어넘지 못하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서 순종하여 가서 그 사람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   주님께서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는 " 사울 " 과 같은 사람을 우리가 그 " 사울 " 은 절대 " 바울 " 로 변하지 않을꺼야 라고 단정짓고 변화의 기회를 우리 마음에서 차단하는 것은 주님을 마음을 다하여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 잠언 3:5).

순종하는 도중에 ...

순종하는 도중에 ...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진 자는  자신의 명철로 이해되지 않는 주님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그 순종하는 도중에 주님의 기적 ( 임재 ) 를 경험합니다 ( 잠언 3:5; 누가복음 17:6, 14, 현대인의 성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