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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들을 내주신 이 (롬8:32)

  https://youtu.be/9tJxsCkB1dc?si=yoecT3l2ALBPh1Wa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   그는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고 장례식에 가는 것이 결혼식에 가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또한 그는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것은 그 슬픔으로 인해서 새로운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살아있을 때 명심하는 것이 좋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이러한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자기 눈 앞에 보이는 즐거움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의 칭찬을 듣는 것보다 낫습니다 ( 참고 : 전도서 7:1-5, 현대인의 성경 ).

새해 2019년 들어와서 네 분의 장례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교훈

새해 2019 년 들어와서 네 분의 장례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교훈 : ​   (1) 고 유정숙 권사님 : 은혜 (Grace)   고 유권사님이 좋아하시던 찬송 305 장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을 생각할 때 고인은 " 잃었던 생명 " 이셨는데 여기 우리 교회에 나오시면서 예수님을 믿어 새생명을 얻으셨다 .   그 구원의 은혜의 깊이가 크기와 넓이와 높이를 아셨던 분이시다 .   그래서 그 분은 양로원에 계셨을 때에도 그리도 주님의 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를 드리고 싶어하셨다 .   나는 고 유정숙 권사님을 생각할 때 " 은혜 " 라는 단어와 함께 고린도전서 15 장 10 절 말씀이 생각났다 : "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2) 고 오뎍겸 장로님 : 평강 (Peace)   고 오 장로님 , 나의 장인 어르신은 찬송가 " 내 평생에 가는 일 " 을 좋아하셨다 .   그런데 나는 지난 주 금요일 새벽기도회 때에서야 처음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 ' 아니 , 어떻게 돌아가시기 전까지 질병으로 그리도 (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 고통을 당하시고 계셨는데 그 찬송가 1 절 가사처럼 " 내 평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을 늘 편한다 " 라는 고백을 찬양으로 하실 수 있으셨을까 ?'   어떻게 그 고통의 길이 순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어떻게 그 고통 중에 " 늘 잔잔한 강같 " 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너무나 어려우셨는데 어떻게 " 나의 영혼을 늘 편한다 " 라고 찬양을 즐겨하실...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은  살아 있을 때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결혼식 보다 장례식에 가서  그 슬픔으로 인해 새로운 것을 깨닫고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눈 앞에 보이는 즐거움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 전도서 7:1-4, 현대인의 성경 ).

우리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살아 있는 우리가 마음에 둬야 ( 명심해야 ) 할 것은  이 땅에서 모든 사람의 끝은 죽음이라는 사실입니다 ( 전도서 7:2).   우리는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가서 우리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   우리는 인생의 끝을 깊이 생각해 보면서  우리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드려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지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   언젠가는 우리 모든 인생 기차의 종착점에서 내려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