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2019년 들어와서 네 분의 장례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교훈:
(1) 고 유정숙 권사님: 은혜
(Grace)
고 유권사님이 좋아하시던 찬송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생각할 때 고인은 "잃었던 생명"이셨는데 여기 우리 교회에 나오시면서 예수님을 믿어 새생명을 얻으셨다. 그 구원의 은혜의 깊이가 크기와 넓이와 높이를 아셨던 분이시다. 그래서 그 분은 양로원에 계셨을 때에도 그리도 주님의 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를 드리고 싶어하셨다. 나는 고 유정숙 권사님을 생각할 때 "은혜"라는 단어와 함께 고린도전서 15장10절 말씀이 생각났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2) 고 오뎍겸 장로님: 평강 (Peace)
고 오 장로님, 나의 장인 어르신은 찬송가 "내 평생에 가는 일"을 좋아하셨다. 그런데 나는 지난 주 금요일 새벽기도회 때에서야 처음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아니, 어떻게 돌아가시기 전까지 질병으로 그리도(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당하시고 계셨는데 그 찬송가 1절 가사처럼 "내 평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을 늘 편한다"라는 고백을 찬양으로 하실 수 있으셨을까?' 어떻게 그 고통의 길이 순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 고통 중에 "늘 잔잔한 강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너무나 어려우셨는데 어떻게 "나의 영혼을 늘 편한다"라고 찬양을 즐겨하실 수 있으셨을까?? 나는 평화롭게 잠드신 장인 어르신을 생각할 때 "평강"이란 단어와 함께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이 생각났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3) 중학교 친구 목사인 Rubin 선교사의 어머님 권사님과
(4) 몽골 참사랑 교회의 나르만다흐 전도사님: 사랑 (Love)
나는 새해 들어서 1월 4일 금요일에 고 유정숙 권사님의 하관 예배를 인도한 후 그 다음 날 토요일 같은 시간에 장인 어르신의 하관 예배를 인도한 후 1월 7일 오후에 Rubin 목사의 어머님 권사님의 장례식에 다른 중학교 친구 인규 집사하고 같이 참석했다. 교회 본당 의자에 인규랑 둘이 앉아 있는데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인규를 생각할 때 그는 작년 어머님과 그가 그리도 사랑하던 15살 밖에 안된 막내 아들을 이 세상에서 떠나보냈는데, 그리고 나는 나를 무척이나 사랑해 주시던 교회 유권사님과 장인 어르신을 떠나 보냈는데 ... .이렇게 우리 둘이 앉아서 Rubin 목사가 그리도 사랑하던 어머님 권사님의 장례 예배를 참석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받은 귀한 은혜는 친구의 어머님 권사님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지 방 벽에 고린도전서 13장과 손주들의 사진을 붙혀놓으시고 기도를 하셨다는 말을 듣고 나는 도전을 받았다. 안그래도 금년 교회 표어가 "서로 사랑하라"(요 15:12)이고 헌금송을 복음성가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를 부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권사님의 살아 생전에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벽에 붙혀놓으시고 기도하셨다는 말을 듣고 나 또한 적어도 "사랑은 오래참고"란 복음성가를 주일 헌금 때뿐만 아니라 삶 속에 외워서 부르면서 마음으로라고 기도하면서 가정에서부터 실천에 옮겨야 겠다고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지난 주 월요일 운동을 하다가 몽골 참사랑 교회 페이스북에 올라온 나르만다흐 전도사님(25살)의 사진과 참사랑 교회 사모님이 쓴 몽골어를 "Translation"(번역)을 눌러서 영문을 잃어보니까 "eternal country"란 말을 보고 혹시나 전도사님이 영원한 나라로 갔다라는 생각이 들어 좀 놀랬다. 믿겨지지가 않았다. 약 4년 전에 몽골에 갔었을 때 세미나 때랑 농구할 때랑 식사 등등 본 기억이 나는 전도사님인데 .. 확인해 보니 교회 연합 세미나 도중 쉬는 시간에 소파에 앉아 있다가 쓰러져 이 세상을 떠났다는게 아닌가. ㅠㅠ 그래서 나는 지난 주 한주간 동안 매일 자주 몽골 참사랑 교회 페이스북에 들어가 올라오는 글들과 사진과 동영상을 계속 보았다. 장례 예배 후 고인의 무덤을 보니까 마음이 슬펐다. 그 교회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과 온 교우 식구들은 얼마나 마음이 힘들고 슬플까 라는 생각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고 나르만다흐 전도사님을 통해 주시는 마음은 그 분이 우리 교회에 쓴 기도 편지에 부탁한 3 가지 기도 제목 중 첫번째 기도 제목은 전도사님이 이젠 이 세상에 없기에 더 이상 기도를 할 수가 없고, 두 번째 기도 제목인 친척 전도(전도사님은 고아로서 친척 분들을 전도하고 싶어 그 친척 집에 거하면서 참사랑 교회를 섬겼다고 함)를 위해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함께 기도하자가 권면했다. 세 번째 기도 제목은 몽골 참사랑 교회를 위해서이다. 그런데 참 생각케 만든 것은 고인에 대한 참사랑 교회 사모님과 지체들의 글들을 보면서 나르만다흐 전도사님에 대한 추억이 일관된 면이 있다는 것을 엿보았다. 그 일관된 면이란 고인을 통하여 사랑을 느꼈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주는 도전은 과연 내가 죽으면 나에 대해서 사람들은 무슨 일관된 기억이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남은 인생을 주님 앞에서 이웃을 사랑하면 살아야 함을 도전받았다. 나는 Rubin 목사의 어머님 권사님과 몽골 참사랑 교회 나르만다흐 전도사님을 통해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고린도전서 13장(사랑장)에서 각각 3가지 씩 6개 교훈을 받았다:
1. 사랑은 오래참고 (4절)
2.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한 것을 내 마음/생각 속에 기록해 놓치 않고) (5절)
3..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는니라 (7절)
4. 사랑은 온유하며 (4절)
5. 사랑은 나의 유익을 구치 않고(상대방의 유익을 구하고) (5절)
6. 사랑은 항상 소망하느니라 (7절)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