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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찬양대 찬양 (2025. 8. 24.)

  https://youtu.be/sQ2wxk6a8MU?si=AZ-4OEU-ZJTVVluc

둘중에 하나입니다.

둘중에 하나입니다 .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할 정도로 ( 전도서 2:10)  안목의 정욕 ( 요한일서 2:16) 에 이끌려  보지 말아야 할 여자를 보던지  아니면  내 눈과 약속하여  처녀를 주목하지 않던지 ( 욥기 31:1)  둘 중에 하나입니다 .   우리는 우리의 눈을 통제해야지  우리 자신이 눈에 통제를 받으면 안됩니다 .          ( 유진 피터슨의 " 물총새에 불이 붙듯 " 을 읽으면서 )

그릇된 생각

그릇된 생각  우리는 그릇된 생각을 합니다 ( 사 53:4).   우리의 그릇된 생각이란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5 절 )  우리는 예수님께서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4 절 ).   분명히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지시고 (4 절 )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건만  우리는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며 ( 신성모독죄 )  성전을 모독한 죄로 ( 성전모독죄 )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생각합니다 .   분명히 그분의   고난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인데도 말입니다 .   우리의 그릇된 생각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   교만은 우리의 생각을 삐뚤어 놓습니다 .   교만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   그래서 하와는 선악과를 보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었을 뿐만 아니라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던 것입니다 .   이것을 사도 요한은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요일 2:16).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로서 좆아온 것이 아닙니다 .   이것은 세상으로 좇아온 것입니다 ( 요일 2:16).   이렇게 이생의 자랑은 그릇된 생각을 하게 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합니다 .

그릇된 가치관

그릇된 가치관 우리는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 그릇된 가치관이란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 사 53:3).   예수님을 귀하에 여기지 않는 이유는  우리는 슬픔과 질고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3 절 ).   예수님은 간고를 많이 겪으셨습니다 (3 절 ).   즉 , 예수님은 슬픔 ( 비애 ) 의 사람이셨습니다 (3 절 ).   또한 예수님은 질고를 아는 분이셨습니다 .   즉 , 예수님은 질고에 익숙하신 분이셨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슬픔도 그리고 질고도 싫어하므로  얼굴을 그것들로부터 돌립니다 .   그 이유는 우리는 기쁨과 행복 ,  그리고 안락함과 평안함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싫어하며 멸시까지 하는 것입니다 .   그 이유는 우리의 그릇된 가치관은  육신의 정욕에 이끌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요일 2:16).   마치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보암직했을 뿐만 아니라 먹음직도 했던 것처럼 ( 창 3:6)  우리의 그릇된 관점에서 세상에 많은 것들을 바라보면서 보암직 할 뿐만 아니라  먹음직 한 이유는 육신의 정욕 때문입니다 .   육신의 정욕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가치관을 버리게 하고  오히려 순간적인 가치관을 택하게 만듭니다 .   육신의 정욕은 무엇이 참으로 귀하고 무엇이 하잖은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   그 결과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헛된 것들을 먹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 

그릇된 관점

그릇된 관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릇된 관점이란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 사 53:2).   즉 , 우리의 그릇된 관점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 빌 1:6)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못보는 것입니다 .   우리는 예수님의 순종하심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우리의 불순종의 관점으로 순종을 바라볼 때  우리는 순종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    우리의 그릇된 관점은  하와아 선악과를 보고 보암직했다는 말씀을 생각할 때  좀 더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 창 2:6).   분명히 선악과는 순종의 관점으로 볼 때  보암직해서는 아니되는 것이였는데  하와의 관점에서는 보암직한 것을 보면  그녀 마음에 순종의 미보다 불순종의 추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   그녀는 안목의 정욕 ( 요일 2:16) 에 이끌려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엿던 것입니다 .   이렇게 그릇된 관점은  안목의 정욕에 이끌려 그릇되게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 

마음과 육신이 따로

마음과 육신이 따로  제 마음은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요셉처럼 행하고 싶은데  제 육신은  삼손처럼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 삼하 12:14).  사 탄은  저의 취약점인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 요일 2:16) 을 자극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게 하므로  저를 낙심시키며 저의 영적 힘을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