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탄 계절에 사도 바울은 두기로를 특별히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보냈다(골4:8)하는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gave)(요3:16)는 말씀과 더불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주"셨다(gave up)(롬8:32)는 말씀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셨다(gave Himself up)(엡5:2)는 말씀을 연관해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마27:46)라는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우리 목숨을 잃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막8:35). https://youtu.be/amBwOJJrKxs?si=B6DoBllFE_Il7U-p
그릇된 관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릇된 관점이란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사 53:2). 즉, 우리의 그릇된 관점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빌 1:6)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못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순종하심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불순종의 관점으로 순종을 바라볼 때 우리는 순종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그릇된 관점은 하와아 선악과를 보고 보암직했다는 말씀을 생각할 때 좀 더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창2:6). 분명히 선악과는 순종의 관점으로 볼 때 보암직해서는 아니되는 것이였는데 하와의 관점에서는 보암직한 것을 보면 그녀 마음에 순종의 미보다 불순종의 추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안목의 정욕(요일2:16)에 이끌려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엿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릇된 관점은 안목의 정욕에 이끌려 그릇되게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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