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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인터넷 사역 한국으로 넷째날을 뒤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이유

2025 인터넷 사역 한국으로 넷째날을 뒤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이유: 1. 인간적으로 볼 때 결코 감사할 수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감사의 글을 이 새벽에라도 쓰게 하시기에 2. 인생의 위기와 고통 속에서 오히려 예수님의 비천함을 묵상케하시고 예수님의 비천함이 우리의 비천함이 되게하고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엿보게 되었기에 3. 가정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믿음의 주님이시요 온전케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고 계시기에 4.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사람들을 그 때 그 때 보내주시사 마음을 준비케하여 주시고 주님의 때에 주님의 뜻대로 적합한 결단을 내리게 하실 것이기에 5. 마음 문을 열어주시고 마음의 이야기를 쏟아내게 하셨기에 6. 반갑고 즐겁고 의미있는 만남과 대화들을 하게 하셨기에 7. 인간의 이성과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음으로 인정케 하셨고 지금도 인정케 하고 계시기에 8.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게 하셨기에 9. 목사님의 극심한 고통과 심지어 죽음의 문턱에서도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케 하셨기에 10. 가짜 목사와 가짜 복음을 경계해야 함과 동시에 교회 지도자들의 회개의 필요성을 인정 및 고백케 하셨기에.

“그제서야” 신부된 교회는 신랑되신 주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 그제서야 ”  신부된 교회는 신랑되신 주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 “ 그제서야 ” 신부된 교회는 신랑되신 주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   즉 , 교회인 우리가 영적으로 음란하게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여 돈을 그리도 열심히 찾고 쫓아갔지만 주님께서 계속해서 그 길을 막으시므로 말미암아 돈을 얻지 못할 그제서야 우리는 궁핍함 가운데서 주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   그 이유는 그 때 우리가 주님만 쫓고 따랐을 때의 형편이 돈을 쫓다가 궁핍해진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았기 때문입니다 ( 참고 : 호세아 2:7,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의 탕자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 눅 15:11-32).   아마도 그 이유는 탕자는 먼 나라로 가서 방탕한 생황을 하다가 자기 재산을 모두 날려버려 궁핍함 가운데 있었을 “ 그제서야 ”(17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는 제정신이 들어 “ 내 아버지의 집에는 양식이 풍부하여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 하고 말한 후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17-20 절 ,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한국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한국이 생각났습니다 .   느헤미야는 유다에서 바벨론에 도착한 몇 사람들에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오지 않고 아직도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   그러자 그들은 포로로 잡혀 오지 않고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큰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진 채 그대로 있고 성문은 불탄 이후로 다시 세우지 못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   그 말은 들은 느헤미야는 주저앉아 울다가 며칠 동안 슬퍼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 느헤미야 1:2-4,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한국이 생각났습니다 .   만일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나 아니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국으로 피신해 온 사람들이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통해 지금 남한으로 넘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도 북한에 살면서 큰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파 슬피 울면서 하나님께 간구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우리 주위에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우리의 형편을 살피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우리의 형편을 살피고 있습니다. 아르타크셀크세스 황제 ( 아닥사스다 왕 ) 가 율법에 정통한 학자이며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준 편지 내용을 보면 “ 나는 자문관 7 명과 의논한 끝에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 그 형편을 알아보려고 너를 보낸다 ” 라는 내용과 “ 또 네가 바빌론도에서 얻을 수 있는 은과 금 ,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 하나님의 성전에 바칠 예물도 가져가거라 .   너는 이 돈으로 즉시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과 소제로 드릴 곡식과 전제로 드릴 포도주를 사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의 단에 제물로 드리고 나머지 돈은 너와 네 동족들이 너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좋을 대로 사용하여라 ” 는 내용이 있습니다 ( 에스라 7:11, 14, 16-18,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내용의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우리 주위에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우리의 형편을 살피고 있다는 생각과 그들이 우리를 경제적으로 도와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알아서 그 돈을 사용하길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뤄지기를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이나 형편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뤄지기를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이나 형편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  아내인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고 나이가 75 세나 넘은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는 " 내가 네 후손을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할 것이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셀 수 있다면 네 후손도 셀 수 있을 것이다 " 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 창세기 11:30, 12:4, 13:16, 현대인의 성경 ).     이 도저히 불가능한 약속의 말씀을 받은 아브라함은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 로마서 4:18-21, 현대인의 성경 ).   우리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뤄지기를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이나 형편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 고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에게 물었습니다 .   느헤미야가 " 병이 없 " 는데 그의 얼굴에 수심이 있는 것을 보고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에게 "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 라고 말했습니다 .   느헤미야의 마음에 근심이 있음으로 얼굴에 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   그 이유는 느헤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   즉 , 그는 포로로 잡혀 오지 않고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큰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고 있고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진 채 그대로 있고 성문을 불탄 이후로 다시 세우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 느헤미야 1:2-3; 2:2).   우리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큰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므로 우리 마음에 근심과 얼굴에 수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   그 때에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며 사모해야 할 것은 "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 " 는 은혜입니다 (2:8:18).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를 도우실 때 "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 " 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0 절 ).

'하나님, 지금 제 생명을 거두어주세요.'

'하나님, 지금 제 생명을 거두어주세요.'  자기의 형편을 보고 극심한 두려움 속에서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광야로 들어가 죽기를 원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 ' 하나님 , 이제 됬습니다 .   지금 제 생명을 거두어주세요 .   저는 제 신앙의 조상보다 낫지 못합니다 '( 열왕기상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