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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한 알 같은 살아있는 믿음 (눅 13:18-19)

  https://youtu.be/-IF9LlaROSA?si=sitl9oecJuVNU27V

갇힘은 기회입니다. (7)

요셉이 10명의 형들에게 미움을 당하여 구덩이에 갇힌 바 된 것이  무슨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것일까요?   요셉이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종으로서 갇힌 바 된 것이 무슨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것일까요?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실제로 옥게 갇힌 바 된 것이 무슨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것일까요? https://youtu.be/uzX7d7tc3UA?si=8UNAhSY2yAb5h5oV

"사랑에 대하여 ..."

"저희 어머니도 요즘 몸 상태가 악화되어 요 며칠 사이에 세번이나 실신을 하시고 그제도 응급실에서 밤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냥 요즘 드는 생각은 서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며칠전에 썼던 글입니다. ‘사랑’에 대하여.. 어머니가 앓고 있는 병은 치매입니다. 소통이 어려워질 뿐더러, 때로는 공격성이 드러나기도 하고, 목적 없이 배회하거나,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해지며, 상황에 맞지 않은 탈의와 같이 사회성을 잃어가고, 인간의 기본적인 행위와 사고를 잃어가는 병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잃어가는 듯한 그 모습에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인간관은 인간의 가치를 '기능'이나 '소통 능력'에 두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의 흔적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에 있어 하나님을 닮은 탁월성입니다. 이는 인간을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나게 하며, 하나님과 인격적·영적 교제를 나누도록 창조된 독특한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살 수 없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은 본성적으로 '관계'를 갈망합니다.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어 관계의 방향이 잘못되었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사귐을 상실하였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관계를 향한 깊은 갈망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인간적인 행위와 사고 능력을 상실한 후에도 여전히 동물과 구별되는 점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저희도 치매를 경험하는 것이 처음입니다. 어제 아내와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새삼 신기했던 것은, 불안과 초조 속에서 이상 행동을 보이다가도,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할 때 안심하게 되고, 자신이 누군지를 잊어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자존심이 남아있어서, 상대방의 무시하거나 화내는 태도에 상처를 받을 뿐만 아니라,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누군가를 갈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선교(the Spirit-driven mission)를 해야 합니다.

주님이 세우시는 승리장로교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선교 (the Spirit-driven mission) 를 해야 합니다 .   그러기 위해선 교회 당회 (session) 원인 담임 목사인 저와 장로님이신 윤 장로님이 성령 충만해여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성령님께서 주님의 교회인 승리장로교회를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어떻게 그 때 그 때 사용하시길 원하시는지 지혜롭게 또한 영적 민감함을 가지고 잘 분별하여 성령님께 순종해야 할 큰 책임이 있습니다 .   그리고 집사님들과 모든 성도님들이 한 마음 , 한 뜻 , 한 사랑으로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함께 동참해야 합니다 .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7)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7)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낸 자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는 원리를 바울과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와의 관계 에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디모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믿음의 참 아들” ( 딤전 1:2), “사랑하는 아들” ( 딤후 1:2), “내가 주 안 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 고전 4:17). 이 표현들을 보면 디모데는 바울의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 며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었습니다 .   즉 , 그 두 사람의 관계는 영적 아버지와 영적 아들의 관계였으며 서로 사랑하는 관계였습니다 .   그러기에 바울은 사랑하는 신실한 영적 아들 디모데가 자기처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는 자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 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 빌 2:19-20).   바울은 이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속히 보내기를 주님 안에서 바랬습니다 .   그 이유는 그는 디모데를 통하여 그들의 사정을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를 통하여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정을 알게되므로 위로를 받길 원했습니다 .        

“Ministry flows from communion, and power flows more from prayer in a quiet place than from praise in a crowded city.”

“Ministry flows from communion, and power flows more from prayer in a quiet place than from praise in a crowded city.” As I meditate on the words, “But the news about Jesus spread even more, and many people came to hear his words and to have their diseases healed. But Jesus often withdrew to quiet places to pray” [ Modern Korean Bible : “However, Jesus’ fame spread even more widely, and many people gathered to hear His words and be healed. Yet Jesus often went to quiet places to pray”] ( Luke 5:15–16 ), I seek the lessons they teach. 1. Personal Reflections on Prayer and Ministry When I meditated on this passage on December 26, 2024, the theme that came to mind was: “The Backbone of All Jesus’ Ministry (His Public Life).” At that time, I reflected on Mark 1:35 (Modern Korean Bible): “Very early in the morning, Jesus got up, went to a secluded place, and was praying.” From this, I drew six reflections on prayer: (a) Early Morning Prayer: I believe that perhaps the Korean church’s ...

'사역은 교제에서 흘러나오며, 능력은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에서의 칭송보다 한적한 곳에서의 기도에서 더욱 흘러나옵니다.'

'사역은 교제에서 흘러나오며,  능력은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에서의 칭송보다  한적한 곳에서의 기도에서 더욱 흘러나옵니다.'         “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 그러나 예수님의 소문은 더욱 널리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들었다 .  그러나 예수님은 자주 조용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 현대인의 성경 )]( 누가복음 5:15-16) 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1)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2024 년 12 월 26 일에 “ 예수님의 모든 사역 ( 공생애 ) 의 가장 중요한 중추 (backbone)” 이란 말씀 묵상의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   그 때 저는 마가복음 1 장 35 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인 “ 이른 새벽 예수님은 일어나 외딴 곳에 가서 기도하고 계셨다 ” 을 묵상하면서 기도에 대해서 며 6 가지를 생각했었습니다 :   (a)     첫째로 , 어쩌면 이 말씀에 근거해서 한국 교회에 새벽기도회가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b)     둘째로 , “ 이른 새벽”이란 ‘조용한 시간 (quite time) ’이라 생각합니다 .   새 찬송가 539 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1 절 과 후렴 가사가 생각납니다 :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 놓고 주 십자가 사랑을 믿어 죄 사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