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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 입니 다 .   지혜의 하나님이시요 능력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 자체가 지혜요 능력 입 니다 .   그 말씀 , 그분의 가르치심을 듣고 감탄한 회당 안에 모였던 사람들처럼 지금도 교회당에 모여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인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 새찬송가 200 장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 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양드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 (1 절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주니 , ( 후렴 )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이유 (4) (골로새서 1장 1-8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이유 (4)

 

 

 

[골로새서 1 1-8]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3-6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과 디모데가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한 3가지 관찰을 통해 교훈을 받습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쓴 편지들을 보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1:3),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현대인의 성경)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을 생각하며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1:16),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1:3-4),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살전1:2),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현대인의 성경) “나는 밤낮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조상 때부터 깨끗한 양심으로 섬겨 온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딤후1:3),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현대인의 성경) “나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생각하며 언제나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1:4).  이 말씀들을 생각할 때 먼저 저는 개인적으로 이 사도 바울의 편지 내용들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조금이나마 습관이 된 것이 있습니다.  그 습관이란 제가 기도하고 있는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들에게 카카오톡이나 문자나 글을 써서 보낼 때 ‘나는 기도 가운데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당신을 생각나게 하시므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등등 라고 써서 보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억하며 기도합니다’라는 문장은 사도 바울이 여러 교회 성도들을 기억(또는 생각)하며 기도하였다는 말씀을 통해 배운 것이고, ‘성령님께서 당신을 생각나게 하시므로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은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살아생전에 한국에 사시는 안 모 권사님께 제가 저와 우리 승리장로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드렸을 때 그 권사님께서 저에게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시기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의 말씀을 하셨을 때 제가 그 권사님에게 배운 것입니다.  또한 저는 이 사도 바울의 말씀들을 생각할 때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는 “모든 성도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6:18)라고 권면했다는 것은 그는 자기가 편지를 쓴 내용대로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Continually, Paul practices what he preached(Eph.6:18)(KJV 성경 주석)][(6:18, 현대인의 성경) “성령님 안에서 항상 열심히 기도하고 간구하며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모든 성도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이것은 참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목사나 말씀을 가르치는 성경 교사가 ‘모든 성도님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라고 가르치고 나서 우리가 실제로는 모든 성도님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고 쉬는 죄를 범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엘이 한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나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중단함으로 여호와께 범죄하지 않을 것이며 계속 선하고 옳은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칠 것입니다”](삼상12:23).

 

둘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자였습니다.

 

여러분, 육신의 눈으로 볼 때에는 결코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그 좋은 성경적인 예가 바로 요나서 2장에 나오는 요나 선지자입니다.  요나 선지자가 쳐해 있었던 상황은 결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밤낮 3일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습니다(1:17).  그는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다(2:2).  그는 바다 깊은 곳에 던져졌습니다(3).  그는 주님 앞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했습니다(4).  그리고 그의 생명은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7). 그는 죽음의 땅에 갇혀 있었습니다(6).  이런 상황에서도 요나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1, 9).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요나는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였기 때문입니다.  요나 선지자가 기억한 과거의 하나님의 은총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가 바다에 던져졌을 때(1:14)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시사 요나를 삼키게 하시므로 그가 밤낮 3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입니다(17).  이것이 바로 요나가 과거에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요나가 기도하며 기대했던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가 기대했던 구원은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말씀하시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2:10).  그러나 주권자이신 하나님 구원은 큰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삼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1: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2:1, 9).

 

우리 기도의 응답이 우리 기대대로 현실화 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 응답의 현실화는 우리가 기도한 내용대로, 우리가 기대한 대로 돼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기도 응답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이루어졌음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므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입니다”(9)라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서 현재에도 구원을 베풀어 주실 줄 믿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13:8) 구원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요나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사 요나를 육지에 토해 내게 하셨습니다(2:10).  요나는 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았습니다.  요나의 상황은 드디어 변했습니다: 물고기 뱃속이 아닌 육지로.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뿐만 아니라 우리도 상황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지난주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 복음성가 “날 구원하신 주 감사”를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 찬양 2절 가사입니다: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셨는데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면 가능합니다.  성경 골로새서 316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갈 때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신 것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제일 사랑하시고, 우리를 제일 잘 아시며 또한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으신 이유 또한 분명히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인 줄 믿기에 우리는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해도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님으로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16 1-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우리는 평생 기도하면서 평생 감사해야 합니다.  , 우리는 평생 감사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감사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고기 2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시기 전에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14:19, 현대인의 성경).  또한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도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를 드리셨습니다(11:41).  이렇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우리가 믿음으로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때 일어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감사합시다.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들리 때마다 감사합시다.  사람들에게 말을 할 때마다 감사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합시다.  교회를 생각하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신 마태복음 16 18절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계심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가정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 로마서 8 28절의 말씀대로 가정의 모든 역경과 고통 등을 통해서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줄 믿고 감사합시다.  개개인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디모데후서 2 13절의 말씀대로 비록 우리는 신실하지 못했을지라도 진실하신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해 나아가고 계심을 믿음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위하여 기억(생각)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3절 말씀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1 16, 빌립보서 1 3-4, 데살로니가전서 1 2, 디모데후서 1 3, 빌레몬서 1 4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한다고 편지를 썼는데 흥미로운 점은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기도”와 “감사”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연결성(connection)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연결성이란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기억(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로 맡겼을 때 하나님께서 그 성도들의 마음과 삶 속에 역사하시고 계시므로 말미암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는 교훈은 저의 책임은 담임 목사로서 저의 책임이 여러분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면서 하나님께 기도로 여러분들을 다 맡기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과 삶 속에 역사하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므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13절에서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항상 감사를 드렸는데 9절과 12절 하반절에서도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그치지(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서(9) 그들도 자기와 디모데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12, 현대인의 성경).  또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 15절 하반절에서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고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권면을 했고 16절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현대인의 성경), 17절에서는 “그(예수님)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골로새서 4 2절에서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현대인의 성경) “항상 기도에 힘쓰십시오.  기도할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고 그들에게 권면을 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들이 돼야 합니다.  우리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하며 또한 서로를 위하여 기억하며 계속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십시다.  

 

셋째로, 사도 바울과 디모데는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디모데후서 편지를 보면 바울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디모데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 세대(후세대)를 이해하십니까?  어느 한 기독교 웹사이트에서 “Z세대에 관해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여섯 가지”란 제목 아래 기사가 있어서 읽어보았습니다.  여기서 “Z세대”란 일반적으로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출생한 세대라고 합니다(인터넷).  제가 이 Z세대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몇까지 좀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점들이 있습니다: (1) 먼저 Z세대는 (일종의) 무신론자이다고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Z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성경을 읽을 가능성이 적다고 합니다.  Z세대가 다른 어떤 세대보다 덜 종교적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성경에 들어 있다고 믿을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합니다.  그들 중 삶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을 만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그들의 개념은 많은 경우에 미디어를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2) Z세대는 (병적일 정도로) 디지털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Z세대는 때때로 아이젠(iGen)이라고도 불리며 항상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세대라고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시각과 기준을 만드는 게 온라인이라고 합니다.  금식하면 그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소셜미디어 금식이라고 합니다.  (3) Z세대는 이 세상이 상처투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삶의 의미나 정의 추구 같은 어려운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더 나은) 공동체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4) Z세대는 (열정적으로) 원칙을 따지는데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원칙 하나는 말에 행동을 맞추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을 말로 설명하지 말고, 행동으로 말하라. 저는 이 몇 가지 점들만 생각을 할 때에 우리 자녀들(후세대들)의 영혼 구원과 신앙생활을 위해 우리가 부모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자녀들(후세대)은 삶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을 만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그들의 개념은 많은 경우에 미디어를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점과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원칙 하나가 말에 행동을 맞추는 것을 생각할 때 그 기사를 쓴 저자의 말대로 우리 부모(할아버지/할머니도) 우리의 믿음을 말로만 설명하지 말고, 행동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3절을 보면 사도 바울과 디모데는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디모데후서 편지를 보면 바울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디모데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성경 디모데후서 1 3절을 보십시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현대인의 성경) “나는 밤낮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조상 때부터 깨끗한 양심으로 섬겨 온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2)를 쉬지 않고 생각(기억)하면서 밤낮 간구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였는데(3)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은 디모데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경 디모데후서 1 5절을 보십시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여기서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신실한 믿음, 위선이 없는 믿음, 가짜가 아닌 믿음을 의미합니다.  성경 로마서 4 18-21절에 나와 있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3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아브라함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성경 로마서 4 18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현대인의 성경) “아브라함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었으므로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라고 하신 약속대로 그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거짓된 믿음, 신실하지 못한 믿음, 위선이 있는 믿음, 가짜 믿음은 바랄 수 있는 중에는 바랄지 모르겠지만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지 못합니다.  오히려 바라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면 의심을 “믿음”이라는 말로 덮습니다.  ‘나는 믿노라’고 믿음 있는 척은 하지만 실상 마음속으로는 ‘이 일은 불가능하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그리고 디모데처럼 거짓이 없는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가 돼야 합니다.  바랄 수 있을 상황만 아니라 바랄 수 없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랄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돼야 합니다.  소망이 전혀 없어 보일 때도 소망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이 눈의 아무 증거 없어도 걸어가야 합니다.

 

(2)  아브라함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믿음이 연약해 지지 않고 오히려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이었습니다.

 

성경 로마서 419-20절을 보십시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현대인의 성경) “아브라함은 자기 나이가 백세가 다 되어 몸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아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거짓된 믿음, 신실하지 못한 믿음, 위선이 있는 믿음, 가짜 믿음은 불가능 한 상황에 처하면 믿음이 연약해집니다.  상황이 점진적으로 불가능해져 갈 때에 믿음 또한 점진적으로 연약해져 갑니다.  이러한 거짓된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 상황에 이끌림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불신 속에서 믿음 있는 척 하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가리게 됩니다.  위선이 있는 믿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돌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그리고 디모데처럼 거짓이 없는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가 돼야 합니다.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믿음이 연약해 지지 않고 더욱더 강해지고 견고해지는 믿음으로 우리는 걸어가야 합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점진적으로 어려워지고 불가능 해져가는 상황 속에서도 의심하지 않으며 믿음이 연약해지지 않고 더욱더 강해지는 ‘불가능제로’의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3)  아브라함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성경 로마서 421절을 보십시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거짓된 믿음, 신실하지 못한 믿음, 위선이 있는 믿음, 가짜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보다 자신의 능력을 더 믿고 의지합니다.  결코 거짓된 위선적인 믿음은 자신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철저히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 자기의 능력을 더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한 가운데 더 위험한 것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여 가능한 일을 해결하므로 말미암아 더욱더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 결과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노라 합니다.  위선이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위선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 붙잡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붙잡혀 살아가야 합니다.  결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 이끌려 살아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면 일수록 더욱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기력함을 철저히 깨달아가는 가운데 더욱더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충분히 설득 당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3절에서는 사도 바울은 이러한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진 디모데와 함께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한 것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를 기억하면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는 자신과 디모데와 함께 그들을 기억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사도 바울처럼 기억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감사하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진 신실한 성도는 또 다른 형제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둘이 함께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함께 감사하는 모습이 참 본이 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에 적용을 해본다면 제가 거짓이 없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윤 장로님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장로님과 제가 함께 우리 거짓이 없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승리교회 성도님들을 기억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한다면 이 얼마나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입니까!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싶은,

 

 

 

제임스 김 나눔

(2022 3 20, 기도하는 자, 감사하는 자, 원로 목사님과 장로님과 함께 승리장로교회 신실한 성도님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함께 감사 기도를 드리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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