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이유 (7)
[골로새서 1장 1-8절]
셋째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의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5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현대인의 성경) “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이 전에 진리의 말씀인 기쁜 소식을 들어서 확신하고 있는 하늘 나라의 소망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살아오시면서 동서남북으로 갇힌바 되었던 경험이 있지
않으십니까? 실제로 지금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가 갇힌 바 되지 않았나요?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람이 보기에 갇힌바 된 상황으로 인도하시는 것일까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홍해 바다 앞에서 애굽 왕 바로가
보기에 갇힌바 되었고(출14:2), 다윗도 그일라에서 이스라엘 왕 사울이
보기에 갇힌바 되었습니다(삼상23:7).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부르짖게 만드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건지심)의 능력을 나타내시므로
더욱더 구원의 하나님을 믿게 만드시고자 그러시는게 아닐까요?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윗만이사람들 보기에 갇힌바 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40장
3절을 보면 요셉도 옥에 갇힌 바 되었었고, 예레미야 38장 6절을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도 구덩이에 갇힌바 되었으며, 요나서 2장을 보면 요나 선지자도 큰 물고리 뱃속에 갇힌바 되었으며,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와 사도 바울 및 실라도 감옥에 갇힌바 되었었습니다(행12:5;
16:23-24). 그렇게 우리도 갇힌바 되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잠잠히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홍해 바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갇힌바 되었을 때 모세가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중요한 것은 우리도 갇힌 바 되었을 때, 그래서 우리가 동서남북을 아무리 보아도 문제의 해결점이
없고,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건질 수 없을 때, 구원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반드시 건져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스가랴 9장 12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동서남북 갇혀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소망을 품은 자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갇힌바되었을 때, 아무리 동서남북을 보아도 문제의 해결점이 안보여 낙심되고 불안해 할 때 시편 42편
5, 11절과 43절 5절에
3번 반복해서 시편 기자가 자기 자신에서 선포하고 하나님께 간구한 것을 기억나곤 함: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그래서
저는 제 자신에게 이렇게 고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임스야, 너는 왜 낙심하고 불안해 하느냐. 너는 주님께 소망을 두라!”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하는지 세 번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즉,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의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생각났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도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살전1:2-3). 실제로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했던 이유는 동일하게 그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 때문이었습니다(골1:3-5; 살전1:2-3). 특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소망”에 관하여
사도 바울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했던 구체적인 이유는 그들은 예수님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10절을 보십시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그러면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했던 세 번째 이유인 그들의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 대답을 골로새서 3장 4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현대인의 성경)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는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요한일서 3장 2-3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그리고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데살로니가전서
3장 13절이 생각났습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비슷한 바울의 기도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왜 바울은
이렇게 간구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너희의 거룩함이”(4:2)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3절). 결국 요한일서 3장 2-3절 말씀이나 데살로니가전서
3장 13절과 5장 23절 말씀의 일관된 메시지는 주님을 향하여 예수님의 재림의 소망을 가진 우리는 주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하신 레위기
11장 45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은 그들이 전에
들은 “복음 진리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서(골1:5) 바울과 디모데 뿐만 아니라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골로새 교회 신실한 성도들도 예수님과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3:4).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2절, 현대인의 성경), “위에 있는 것을 찾으십시오.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곳입니다”(1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 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하늘에 간직한 축복을 여러분이 받도록 하셨습니다”(현대인의 성경). 이러한 하늘에 간직한 축복이 여러분에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하늘에 소망을
쌓아둔,
제임스 김 나눔
(2022년 6월 26일,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는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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