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4)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마지막 문안 인사를하면서 아리스다고를 “나와 함께 갇힌”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 골 4:10). 이 헬라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나의 동료 포로”를 의미하며 , 아마도 우리는 그는 실제로 바울과 함께 감옥에 있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 니다 . “나와 함께 갇힌” 자라는 이 명칭은 빌레몬서 1 장 23 절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 와 로마서 16 장 7 절 (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 에도 나옵니다 . 여기서 아리스다고와 에바브라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의 공통점은 영적 전쟁인 복음 사역을 위해 바울과 함께 고난을 겪으며 결박된 진정한 전우라는 것입니다 . 바울이 사 용한 헬라어 “ 쉬나이크말로토스 ” 는 신약성경에 단 세 번만 사용된 특별한 칭호로서 바울은 수많은 동역자 중에서도 복음을 위해 실질적인 신체적 자유를 포기하고 고난의 현장에 끝까지 함께한 이 네 사람에게만 이 특별한 호칭을 부여했습니다 ( 인터넷 ).
크리스찬 직업인의 소명 “성공을 너무도 강조하는 세상에서는 직업에 대한 관심 때문에 소명에 대해서는 귀머거리가 되는 경향이 있다 . … 소명과 연결되지 않은 직업은 서로를 분리시킨다 . 반면에 소명에 대한 순종을 표현하는 직업은 , 공동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재능을 내어놓는 구체적인 방식이 된다 .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것은 우리의 직업이 아니라 우리의 소명이어야 한다 ." [ 헨리 나우웬 , “긍휼” ] ------------------ 성공을 너무도 강조하는 이 세상 직업 세계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듣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아 보입니다 . 오직 승진 또는 더 많은 돈을 외치는 세상 직업 세계에서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는 있지만 크리스찬으로서 왜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지 소명의식을 잊어버리고 하루 하루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러한 소명의식이 결핍된 가운데서 일을 하는 직업인들은 그저 교회를 다니는 직업인일뿐 결코 크리스챤 직업인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크리스챤 직업인이라면 분명히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그저 교회를 다니는 직업인일 뿐입니다 . 그리고 그저 교회를 다니는 직업인은 세상적 흐름 속에서 승진과 더 많은 돈을 추구하는 가운데 직장 동료들을 경쟁자로 보기에 자기의 목표를 성취하는데 방해가 되는 경쟁자들을 밀어내는 배타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결국은 서로를 연합하기보다 서로를 분리시키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 그러기에 이러한 직업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