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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시민이요 미국 시민인 "동전 목사님"의 책임?

천국 시민이요 미국 시민인 "동전 목사님"의 책임?       악한 포도원 농부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한 말인 줄 알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으나 군중들이 두려워 예수님을 잡지 못하고 그냥 가 버렸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 서기관들 ) 과 장로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구실을 붙여 예수님을 잡으려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중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 이렇게 물어보게 하였습니다 : “선생님 , 우리가 알기에 선생님은 진실하셔서 사람의 겉모양을 보지 않으시고 진리대로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시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거리낌이 없으십니다 .   그런데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 옳지 않습니까 ?   우리가 바쳐야 합니까 ,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 ”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왜 나를 시험하느냐 ?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와 내게 보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은 “이 초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 ? ”하고 물으셨습니다 .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 마가복음 12:12-17,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마태복음 22 장 15-22 절과 누가복음 20 장 19-26 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할 때 오늘은 예수님께서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와 내게 보여라” [“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내게 보여라 ”( 마태복음 22:19, 현대인의 성경 )] 하고 말씀하시자 바리새파 사...

마음에 눌림(약함)은 기회입니다. (8) (시편 61편)

마음에 눌림(약함) 기회입니다. (8)

 

  

 

[시편 61]

 

  

이번 수요일에 한국에서 메일 하나가 왔었습니다.  인터넷 사역으로 알게 자매인데 번도 만난적이 없지만 9년전부터인가 메일을 가끔씩 주고받았습니다.  메일 내용은 투석 준비로 수술을 앞두고 있다 내용과 더불어 무엇보다도 저는 이상 신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저는 메일을 받고 자매를 기억하며 기도하다가 이러한 짧은 글을 썼습니다: “지속되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아무리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으신 하나님이 너무 멀리 느껴지기까지 때에는 충분히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61 1-2절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기도에 유의하소서 마음이 약해 때에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여기서 “내 마음이 약해질 때”란 말씀은 우리가 이미 묵상했듯이 여러가지 우고에 싸여서 기진맥진해 가고 절망되어 가는 상태를 가리킵니다(박윤선).  시편 기자 다윗은 근심하고 괴로워하되 기진맥진해 정도로 근심하고 괴로워하므로 결국 절망감까지 느낄 있는 상태까지 이르게 것입니다.  원인은 그의 “원수”때문이었습니다(3).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적용할 때에 우리가 근심하고 괴로워하되 기진맥진해 정도로 근심하고 괴로워하므로 결국 절망감까지 느낄 있는 원인은 우리의 원수보다 우리의 가족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족이 원수 정도까지 정도로 가족 관계가 악화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배우자를 원수처럼 여기고, 부모님이나 자식을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우리에게 절망감까지 느낄 정도로 극심한 근심과 괴로움을 겪는 원인이 가족이 있다고 말했을 때에는 원수같이 미운 가족을 말하기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말합니다.  사랑하기에 우리는 가족으로 인해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낙망하고 절망까지 있습니다.  정도로 지금 가족의 문제들이 심각합니다.  그리고 심각한 가족 문제이기에 우리는 충분히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심지어 기진맥진에서 절망감까지 느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1)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 마음이 너무 약해져있으면 하나님께 부르짖을 힘도 없을 있고 또한 너무나 절망적일 때에는 기도도 나오지 않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로마서 8 26 말씀이 점점 위로와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저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되 제가 마땅히 “하나님의 뜻대로”(27,  참고: 요일 5:14, 현대인의 성경)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지만 오직 성령님이 말할 없는 탄식으로 저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성령님뿐만 아니라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시사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저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니(34) 얼마나 힘과 위로가 됩니까.  이렇게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는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으시겠습니까(61:1). 

 

오늘 본문 시편 62 2절을 보면 다윗은 마음이 약해 때에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여기서 “땅 끝에서부터”란 말씀은 우리가 이미 묵상했듯이 다윗이 그의 원수로 인해 그의 마음이 약해졌을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셨다는 생각 속에서 자기가 하나님에게서 너무나 멀리 떠나 있다고 느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삼하7:9)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다윗과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의 마음이 약해졌을 (61:2)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멀리 떠나 버리셨다는 생각하고 느낀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은 시편 22 1-2절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 ? 어째서 나를 돕지 않으시고 내가 신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십니까?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밤낮 울부짖어도 주께서는 아무 대답도 없으십니다”(현대인의 성경). 

 

우리도 충분히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하며 또한 느낄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위기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그리도 간절히 밤낮으로 울부짖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없는 같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시는 같고 우리를 멀리 하시고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하며 또한 느낄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없나이다”(22:11),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19)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이렇게 기도할 중요한 것은 임마누엘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생각과 느낌은 우리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약해지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멀리 떠나신 같고 또한 우리를 버리신 같을지라도 사실과 진리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시기에(8:8; 1:23) 진리를 믿음으로 우리는 임마누엘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할  우리도 다윗처럼 “그는 어려움을 당한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그들을 멸시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부르짖을 귀를 기울이셨다”(22:24, 현대인의 성경)라고 고백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초점을 맞추고 싶은 말씀은 오늘 본문 시편 61 2 하반절에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란 말씀입니다.  다윗은 절망되어가는 상태에서 주님을 그리도 갈망할 있었던 것은 주님만이 그의 소망이 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떠한 소망이 되시는 주님이심을 다윗은 믿었습니까?  바로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신 주님이심을 믿었습니다(3).  그리고 그는 “주의 한결같은 사랑과 성실하심으로 그를 보호”해 주실 믿었습니다(7,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다윗은 주님께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Lead me to the rock that is higher than I)라고 간구했습니다(2).  저는 오늘 다윗이 하나님께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62:2)라고 기도한 내용을 묵상하면서 자신에게 적용하고 싶습니다.  저는 마음이 약해져서 낙심할 뿐만 아니라 절망적일 때에 요나 선지자처럼 다시 주님을 바라보므로(2:4) ‘나보다 높은 반석’(the Rock that is higher than I)이신 주님(61:2; 고전10:4) 인도함을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견고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처럼(7:24) 견고한 믿음으로 걸음 걸음 걷고 싶습니다(40:2).  그리고 저는 주님의 재림의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고전15:58).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언젠가 토요새벽기도회 설교한 혼자 기도하는데 "나를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라" 시편 27 5 하반절(현대인의 성경)["He will lift me up on a rock"(NASB)] 말씀이 다시금 생각나면서 사랑하는 아내가 높은 꼭대기에서 찍어서 저에게 보내준 밑에 사진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아내가 꼭대기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보면서 얼마나 좋아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는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마음속에 그리어 ...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영혼이 찬양하네").  찬송가 " 높은 곳을 향하여"(I'm Pressing on the Upward Way) 5 가사입니다: " 주를 따라 올라가 높은 곳에 우뚝 영원한 복락 누리며 즐거운 노래 부르리".  사랑하는 사촌 여동생 수정이가 주님을 따라 올라가 " 높은 곳에 우뚝 " 있는 모습을 믿음으로 상상하니 좋았습니다. 시편 27 4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가지 그것을 구하리니 내가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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