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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시민이요 미국 시민인 "동전 목사님"의 책임?

천국 시민이요 미국 시민인 "동전 목사님"의 책임?       악한 포도원 농부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한 말인 줄 알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으나 군중들이 두려워 예수님을 잡지 못하고 그냥 가 버렸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 서기관들 ) 과 장로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구실을 붙여 예수님을 잡으려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중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 이렇게 물어보게 하였습니다 : “선생님 , 우리가 알기에 선생님은 진실하셔서 사람의 겉모양을 보지 않으시고 진리대로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시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거리낌이 없으십니다 .   그런데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 옳지 않습니까 ?   우리가 바쳐야 합니까 ,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 ”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왜 나를 시험하느냐 ?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와 내게 보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은 “이 초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 ? ”하고 물으셨습니다 .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 마가복음 12:12-17,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마태복음 22 장 15-22 절과 누가복음 20 장 19-26 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할 때 오늘은 예수님께서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와 내게 보여라” [“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내게 보여라 ”( 마태복음 22:19, 현대인의 성경 )] 하고 말씀하시자 바리새파 사...

주간 짧은 말씀 묵상 (2025년 3월 31일 - 4월 4일)

주간 짧은 말씀 묵상

 

 

 

포도원 농부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 장로들에게 “너희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으니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신기한 일이다.' 라고 성경 말씀을 읽지 못하였느냐?[ “라고 기록된 성경 말씀이 무슨 뜻이냐?(누가복음20:17,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해 둔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백성이 나라를 얻을 것이다.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깨어질 것이며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인 알고 즉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으나 군중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기에 두려워 예수님을 잡지 못하고 그냥 버렸다(마가복음12:10-12; 마태복음 21:42-46; 누가복음20:17-19,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묵상할 가지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해 둔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백성이 나라를 얻을 것이다”(마태복음21:43, 현대인의 성경)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할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길 너희는바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 장로들로서 그들은 산헤드린[유대인들의 최고 법원으로서 그것의 주요 기능은 백성들의 종교 생활에 관해 재판하는 것이었음(인터넷)] 대표하던 사람들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들로 여김을 받지 못했기에(데살로니가후서1:5)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 장로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들로 여김을 받지 못한 이유는 그들은 거듭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이며 유대 민족을 다스리는 산헤드린 공회 의원인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없느니라”(요한복음3:3).  여기서 거듭난다 것은 니고데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롭게 태어나서[“거듭난다 말은 문자 그래도 해석하면 위로부터 태어난다 뜻임(인터넷)]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의미입니다(요한복음1:12-13)(인터넷).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거듭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아직도 허물과 죄로 죽어있었고(에베소서2:1)[불순종과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이었고(현대인의 성경)]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직도 하나님과 원수 되어있었기에(로마서5:10)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3)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들입니까?  거듭난(중생한)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과 더불어 구원(영원한 생명)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들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고린도후서5:17)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요한복음1:12)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마태복음21:43, 현대인의 성경).  개역개정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나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의미를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a)   첫째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는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i)                  갈라디아서 5 22-23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9가지 성령님의 열매를 하나로 요약한다면(갈라디아서 5 2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령의 열매에서 열매 원어 헬라어 단어가 복수가 아니라 단수임을 생각할 ) “사랑”(나머지 8 열매들은 사랑 열매에 포함되어 있다는 전제아래)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는 성령님의 열매로서 성령님의 열매는 예수님의 이중 계명인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22:37, 39) 천국 계명 말씀에 순종하므로 맺어지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는 성령님의 열매요,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          우리는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의를 행하신 것처럼(요한일서2:1, 6) 우리도 의를 행해야 합니다.  여기서 의를 행한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는 것입니다(3:11, 23).  우리가 성령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할 우리 마음에 평강과 기쁨이 넘칩니다( 찬송가 293 주의 사랑 비칠 때에후렴을 보면 사랑 속에서 화평함과 기쁨 주네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음).  로마서 4 17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기쁨)이라.”

-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한일서4:8, 16).  사랑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3:11, 23).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게 생활하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인 성령님의 열매, 사랑의 열매를 계속해서 맺어 드려야 합니다.

(b)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i)                  빌립보서 1 27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 생명을 버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마가복음8:35, 현대인의 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면서(삶으로 복음전도)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께 복음의 열매를 맺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골로새서 1 6 말씀입니다: “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번역) “ 복음은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날로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4)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 장로들에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깨어질 것이며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마태복음21:44, 현대인의 성경; 참고: 누가복음20:18,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신 내용은 문맥상으로 여기서 위에 떨어져 부서지는 형국에 처해질 사람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 장로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들의 말로가 어떠할 것인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말로란 깨어질 것이다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하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는데 궁극적인 의미는 마지막 심판 날에 그들의 형제를 찾아볼 없을 정도로 완전한 파멸을 말합니다(호크마).  

(a)   저는 말씀을 묵상할 시편 73 아삽의 시가 생각났습니다.  이유는 아삽은 교만한 악인들이 되는 (형통함) 보고 질투하여 그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한 반면에 (시편 74:2-3, 현대인의 성경) 의인은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으니까(14)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 그것이 그에게 심한 고통이 되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에야 악인들의 종말(최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16-17).  아삽이 깨닫게 악인들의 종말(최후)입니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현대인의 성경) “주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셔서 파멸에 밀어 넣으시므로 그들이 순식간에 멸망하여 끔찍한 종말에 이릅니다.  그들은 아침이 되면 사라지는 꿈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일어나시면 그들이 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18-20),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할 것입니다. 주께 신실치 못한 자를 주는 멸망시키셨습니다”(27, 현대인의 성경).

(b)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형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시편 92 7 말씀입니다: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라”[(현대인의 성경) “악인이 잡초처럼 성장하고 번영할지라도 영원한 파멸이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악인의 형통을 보아야 하는지 3가지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i)                  우리가 현실 속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악인은 흥왕하되 신속하게 흥왕한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기자는 본문에서 악인을 풀과 비교하면서 "생장"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수고도 들이지 않고 간교함 속에서 신속하게 성공한다는 말씀입니다.  얼마 저희 집에 뒤뜰 잔디가 죽어가는 부분이 있어서 아내와 제가 약도 뿌려보고 물도 뿌려보고 씨를 사서 뿌린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빨리 자라나서 푸른 녹색의 잔디를 보고 있습니다.  아마 이와같이럼 악인의 형통은 풀처럼 신속한 것을 시편기자는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ii)                악인의 형통은 마치 들풀의 무성함과 같이 보일 있지만 중요한 것은 열매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악인들이 그들의 흥왕 속에서 하나님 보시기엔 아무 열매를 맺고 있지 못합니다.  열매 없는 풀과 같은 악인의 형통, 그것이 바로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악인의 모습입니다.

(iii)              악인의 신속한 형통은 결국 영원히 멸망당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돼지를 도살장에 끌고 가기 위해 먹여서 살을 찌우는 것처럼 악인의 형통의 목적은 영원한 멸망을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D.L. Moody 악인의 형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악인은 필경 풀처럼 연료가 되기 위하여 생장한다"(무디).

(c)   우리는 악인의 형통한 것은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 21 4 말씀입니다: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죄니라”[(현대인의 성경) “거만한 눈과 교만한 마음과 악인의 성공은 죄가 된다”].

(i)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고 악인과 함께 있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리할 정녕히 우리의 장래가 있겠고 우리의 소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잠언 23:17-18; 24:1).

·         우리는 고난이 없는 악인의 형통함보다는 고난이 있는 의인의 형통함이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질투할만한 악인의 형통함에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나 재앙이나 고통이 없기에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의인의 형통함에는 고난이나 재앙이나 고통이 있기에 겸손히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시편 73:3-6, 14, 16; 히브리서 5:8).

(5)   적어도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 장로들은 예수님께서 악한 포도원 농부 비유를 말씀하셨을 악한 농부들이 자기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a)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마음에 찔림이 그들로하여금 회개케하기보다(참고: 사도행전2:37-38) 오히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참고: 7:54, 57-58). 

(6)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구실을 붙여 예수님을 잡으려고했습니다(마가복음12:13, 현대인의 성경).  마태복음은 어떻게 하면 말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 있을까 하고 의논하였다(마태복음22:15, 현대인의 성경) 말씀하고 있고, 누가복음은 그들은 예수님을 세심하게 지켜보다가 첩자들을 냈다(누가복음20:20, 현대인의 성경) 말씀하고 있습니다.

(a)   마가복음 12 13 현대인의 성경 말씀에 구실을 붙여라는 말씀은 개역개정은 책잡으려 하여라고 말씀하였는데 말은 덫을 가지고 짐승을 사로잡는 것을 설명할 사용하는 로서(호크마) 마태복음 22 15 현대인의 성경은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였다는 말씀은 개역개정은 올무에 걸리게하려고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말씀도 본래 사냥에 사용되는 말로서 대상에 대해 주도 면밀하게 함정이나 덫을 설치하는 것을 말합니다(호크마).  누가복음 20 20 현대인의 성경 말씀에 세심이 지켜보다가 말씀은 개역개정은 엿보다가라고 말씀하였는데 말씀은 주의깊게 몰래 지켜보는 것을 뜻하며 문맥상으로 예수님의 약점을 책잡아 공격하려고 호심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라는 뜻입니다(호크마).

(i)                  말씀들의 의미들을 생각할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 장로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주도 면밀하게 함정() 설치하여 주의깊게 몰래 예수님을 지켜보면서 예수님의 약점을 책잡아 공격하려고 호심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수가 있습니다.

·         저는 말씀들의 의미들을 생각할 창세기 4 7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여기서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말씀은 영어로 “sin is crouching at the door”인데 저는 영어 성경 말씀을 묵상할 오래전 중국 무협 영화인 와호장룡이란 영화 제목이 생각납니다.  이유는 영화 제목이 영어로는 “Crouching Tiger”이기 때문입니다.  영어 영화 제목의 "crouching"이란 단어는 마치 호랑이가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날카로운 손톱을 지켜 세우고 문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이와같이 죄가 우리를 삼키려고 우리 마음의 문에 항상 엎드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죄의 무서움 혹은 죄의 강력한 소원/원함(desire)입니다.  사실 성경은 "죄의 소원"(its desire is for you) 우리에게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4:7).

-          마치 호랑이처럼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짖게 만들고자 강하게 역사하는 죄의 강력한 소원을 우리는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어떻게 가능할까요? 

n  요한계시록 3 20 말씀이생각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지속적으로 나눌 때에 죄를 다스릴 있다는 말씀입니다. 

n  한가지는 창세기 47절에서 "선을 행치 아니하면"이란 말씀입니다.  악을 이길 있는 방법은 오직 선을 행하므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21절에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7)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 장로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구실을 붙여 예수님을 잡으려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을 예수님께 보냈다(마가복음12:13,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묵상할 흥미로운 점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은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면에서 서로 다른 견해로 잦은 충돌을 일으켰던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관한 문제만은 일찍부터 협력하여 일을 꾸몄었다는 것입니다[(3:6, 현대인의 성경)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급히 나가서 헤롯 당원들과 만나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의논하였다”].

(a)   저는 이것을 묵상할 누가복음 23 12 현대인의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처럼 지냈으나 바로 서로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원수처럼 지냈던 헤롯[예수님이 태어나셨을 헤롯 왕은 아들인 헤롯은 이스라엘 지역의 왕이었음(인터넷)] 빌라도[로마 황제로부터 파송 받은 총독(인터넷)] 예수님에 관하여서는 서로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시편 2 2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현대인의 성경) “세상의 왕들이 들고 일어나며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은 자를 대적하여”].  원수로 지냈던 헤롯과 빌라도가 서로 다정한 친구가 되어서 기름 부음 받으신 예수님을 대적했던 것처럼[그들은 예수님이 무죄인 알았지만 헤롯은 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한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보냈고(누가복음23:11, 현대인의 성경)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번이나 말해 놓고서도(14, 15, 22) 결국 군중들이 소리로 외쳐대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끈질기게 요구하자 마침내 그들의 소리가 이기므로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대로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주어 그들이 마음대로 하게 하였습니다(23-25, 현대인의 성경).

(i)                  지금도 기름 부음 받은 주님의 종인 목사님을 대적하여 공격함에 있어서 서로 관계가 좋지도 않은 교회 장로님들과 집사님들과 심지어 권사님들까지 함께 연합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것은 마귀가 좋아할 일이지 결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시편 133 1 말씀입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번역) “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8)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은 예수님을 가리켜 선생님이라는 정중한 말을 사용한 이유는 예수님은 진리와 권위를 갖춘 가르치는 자로 인정한 것으로서 네가 무슨 권세로”(마태복음21:23)라고 했던 말투와는 전혀 달리 예수님을 칭찬하고 추켜 세우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호크마). 

(a)   야고보서 3 1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심판을 받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현대인의 성경) “형제 여러분, 너도 나도 선생이 되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아는 일이지만 선생 우리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만일 선생님이 말에 실수가 없으면 그는 자기 자신을 다르실 있는 완전한 사람이지만(2, 현대인의 성경) 말로는 맞는 말을 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자기가 가르신 것을 실천을 하지 않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같다면(마태복음23:3, 현대인의 성경) 그것은 위선자들이지(13, 현대인의 성경) 올바른 선생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군중들과 제자들에게(1, 현대인의 성경) “너희는 선생이라는 말을 듣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8, 현대인의 성경).

(b)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이 예수님을 칭찬하고 추켜 세우는 전략을 사용한 것을 생각할 잠언 27 21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서 추켜 세울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이 뭔가 착각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미 교만해져있다는 증거입니다.  특히 만일 우리가 위선자들의 아부성 칭찬 듣기를 싫어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는 사람들의 칭찬에 익숙해져있다는 증거입니다.  전도서 7 5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칭찬을 듣는 것보다 낫다.”  우리는 오직 주님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태복음25:23)라는 칭찬 듣기를 사모하고 소망해야 합니다.

(9)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은 예수님에게 우리가 알기에 선생님은 진실하셔서”(마가복음12:14,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하였는데 저는 말씀을 생각할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진실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물론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은 진심으로 예수님은 진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와같이 거짓되고 위선적인 사람들이 우리에게 당신은 진실한 사람입니다또는 당신은 진실합니다하고 칭찬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추켜 세우는 거짓된 칭찬 듣기를 좋아하기보다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성령님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마음을 찔러 우리의 거짓됨이 들춰지는 것을 좋아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a)   어느 권사님이 28 전엔가 목사가 저에게( 당시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 ‘진실하십시오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목사는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다시 상기시킵니다.  다시 말하면, 목사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한 목사는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시편33:4, 현대인의 성경) 정직하게 증언하면서(잠언12:17, 현대인의 성경) 주님을 진실하게 섬기는 자입니다(열왕기상18:3,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진실하게 섬기는 진실한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진실한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욥기6:25, 현대인의 성경).  이유는 진실한 목사는 말로만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3:18, 현대인의 성경).

(10)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은 예수님에게 “... 사람의 겉모양을 보지 않으시고 진리대로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시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거리낌이 없으십니다”(마가복음12:14,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했는데 실제로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양을 보시지 않으십니다(갈라디아서2:6; 에베소서6:9,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도 사람의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요한복음7:24, 현대인의 성경).  야고보서 2 1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운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답게 여러분은 사람의 겉모양만 보지 마십시오.”  만일 우리가 말씀을 불순종하여 사람의 겉모양만 보고 판단한다면 우리를 죄를 짓는 것이며 율법은 우리를 범죄자로 선언할 것입니다(9, 현대인의 성경).

(a)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성경 교사가 진리대로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면 그는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요한일서2 9-11 말씀입니다: “ 가운데 있다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어둠에 행하며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우리가 거리낌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의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3:23, 현대인의 성경).

(i)                  만일 우리가 말로만 하는 죽은 사랑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책망할 일이 있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질 수가 없습니다(18-20,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 서로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 양심은 우리를 책망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무엇을 구하든지 받을 것입니다(21-22).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는 성령님이 가르치신 대로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기에(2:27) 우리 양심이 우리를 책망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 속에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10).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도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간구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우리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떳떳이 주님을 뵙게 것입니다(28,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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