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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드시고 그 존재와 운명을 아시는 하나님만이 대답하실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을 만드시고 그 존재와 운명을 아시는  하나님만이 대답하실 수 있는 것이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 “선생님 , 모세의 법에는 형이 자식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어느 곳에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결혼해 살다가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   그리고 둘째가 형수와 살다가 자식 없이 죽고 세째도 그랬으며 일곱이 모두 그렇게 자식 없이 죽고 맨 나중에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   이렇게 일곱 형제가 모두 한 여자와 살았으니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 ”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 “너희가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는 장가도 시집도 안 가며 하늘의 천사들과 같이 된다 .   너희는 죽은 사람들의 부활에 대하여 모세의 떨기나무 기사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 이삭의 하나님 , 야곱의 하나님이다 .' 라고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 ?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 ( 마가복음 12:18-27, 현대인의 성경 ; 참고 : 마태복음 22:23-28; 누가복음 20:27-33) 는 말씀 중 오늘은 사두개파 사람들 ( 사두개인들 ) 이 예수님께 “선생님 , 모세의 법에는 형이 자식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대를...

주간 짧은 말씀 묵상 (2025년 4월 7-11일)

주간 짧은 말씀 묵상

 

 

 

 

악한 포도원 농부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인 알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으나 군중들이 두려워 예수님을 잡지 못하고 그냥 버렸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 장로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구실을 붙여 예수님을 잡으려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 이렇게 물어보게 하였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알기에 선생님은 진실하셔서 사람의 겉모양을 보지 않으시고 진리대로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시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거리낌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가복음12:12-14, 현대인의 성경).  저는 말씀을 마태복음 22 15-17절과 누가복음 20 19-22 현대인의 성경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할 오늘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을 예수님께 “그런데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왜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와 내게 보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은 “이 초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마가복음12:14-17,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1)   지난 주에 제가 네이버 블로그에 지금도 기름 부음 받은 주님의 종인 목사님을 대적하여 공격함에 있어서 ...”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 글에 누군가가 이렇게 댓글을 달았습니다: “목사님 ,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견해의 글이 없으신 겁니까 ?  정교분리는 맞지 않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저를 사랑하시는 어느 교회 장로님도 교회나 기독교 단체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대해서 발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제가 전도하고 싶어서 기도하고 있는 40 넘은 친구는 지난 주에 그의 Facebook 제가 요번이 윤석열 사태로 태극기 부대가 탄핵반대 시위를 하면서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몇가지들이란 제목 아래 4개로 나눠서 글을 것을 읽게 되었는데 4번째 글을 이렇습니다: ‘4. 목사들: 사람들을 집회에서 선동을 하는 목사들.  그리고 현장에서 헌금까지 챙기는 모습들이 너무도 보기가 좋았습니다.  목사들이면 사람들을 평화와 용서를 펼쳐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한테 강한혐오를 심어주는 분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목사들이 아니라, 자신의 부를 위해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글과 생각을 제가 생각할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특히 목사로서 한국 정치뿐만 아니라 미국 정치[지금 제가 사랑하는 아내는 미국에 4 부모님을 따라 이민 사람으로서 한국어도 줄을 몰랐기에 한국 정치는 전혀 모르고 미국 시민으로서 미국을 그녀 나름대로 사랑하기에 미국 정치에 대해 절제를 하면서 저에게 마음을 쏟아내곤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아내는 트럼프가 처음에 대통령이 되었을 너무나 많이 힘들어해서 결국 저랑 같이 공화당이었지만 그녀는 민주당으로 바꿨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당시 제가 TV 켜서 미국 뉴스를 때에 아내가 지나가다가 TV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아내는 저에게 이런저런 말들을 하곤 해서 결국 저는 TV 끊었을 정도였답니다.   제가 요정도로만 저희 부부의 미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께요.  저희 자녀들까지는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이유는 저는 그들의 아버지로서 그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미국 정치에 대한 견해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미국 대통령 선거 투표용지가 집으로 오면 견해를 그들에게 나눠서 그들이 저에게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아 아버지인 제가 원하는대로 투표하는 것보다 자기들 각자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정치적 견해대로 결정해서 투표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대해서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견해를 공적으로 설교 시간에나 아니면 교회 웹사이트나 카카오톡 방에나 또는 제가 운영하고 있는 여러 개의 웹사이트나 등등 나눠야 하는 맞는 것일까요?

(a)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제가 속해있는 어느 목사님들의 카카오톡 방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금했는데 이유는 다른 정치적 견해로 말미암아 신학교 동문 우정 관계가 매우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인 같습니다.  그런데 전에 제가 대학교 동문 친구들(대학 후배들)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 했는데 형제들이 미국 정치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얌전하게(?) 흥분도 하지 않고(감정도 섞이지 않게?) 서로의 다른점들을 말하는 것을 보고 제가 그들을 칭찬했었습니다.  친구는 아마 공화당인 같고 다른 친구는 아마 민주당인 같아보였는데 서로의 의견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름대로 미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견해를 점잖게 대화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감사했고 보기가 좋았습니다.

(2)   오늘 본문 마가복음 12 14절을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이 예수님께 그런데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하고 물어보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칭찬하고 추켜 세우면서, 그리고 예수님이 진리와 권위를 갖춘 가르치는 자로 인정하면서(호크마)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받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옳지 않은 것인지 그래서 세금을 바쳐야 하는 것인지 바쳐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예수님께 질문을 했는데 그들의 의도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궁지에 물아 놓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호크마).

(a)   예수 당시 유대 지방의 납세 문제는 민감한 문제였다.  갈릴리 지방의 분봉왕 헤롯은 종교적으로는 유대인이었으므로 그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종교적인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유대 지방은 아켈라오가 폐위되고 황제의 직속령으로 재편성되어 황제가 임명하는 총독이 다스리게 되자 유대 백성들은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 직접 세금을 바치는 격이 되었다.   한편 이때 가이사는 A.D. 12-37년에 로마를 통치한 티베리우스 황제였다.  그리고 로마 정부는 14년마다 번씩 지방에서 바쳐야 하는 세금의 총량을 결정하기 위해 인구 조사를 실시했다( 2:1).  이스라엘에서는 바벨론 유수때부터 이방 지배자들에게 조공(朝貢) 바치는 일이 문제된 적이 없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구 조사를 즈음하여 갈릴리 사람 유다( 5:37)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신데 이방 왕들에게 세금을 바쳐 그를 인정한다면 이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반란은 진압되었어도 가이사에 대한 납세의 적법성(適法性) 문제는 계속 신학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더욱이 하나님의 선민이 예루살렘성전이 있는 유대 땅의 소출(所出)에서 십일조를 성전에 바치면서 동일한 소출에서 떼어 이방인 왕의 통치아래 있다는 표로 세를 바치는 것을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꺼림직하게 여겼다(F. F. Bruce).  과격분자들인 열심당은 일을 수치(羞恥) 여겼다.  그러나 헤롯당은 헤롯 가문을 재흥시켜 헤롯 대왕의 호시절로 돌이키려고 로마 제국에 협력하면서 납세도 적극 권장하던 자들이었다.  어쨌든 지금 예수는 궁지에 빠졌다.  납세를 찬성하면 열심당과 바리새인들과 일반 백성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여 그들이 환영하는 메시아가 없고, 납세를 반대하면 헤롯당원과 사두개인들, 로마 총독과 헤롯 왕으로부터 정치범으로 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의 생각에 예수가 로마에 대한 납세를 찬성하지 않으실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사실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서 살려는 그들에게도 문제는 고민이었다.  여하튼 바리새인들의 사악함은 하나님의 도에 참된 예수의 견해 중에서 율법에 열심인 자신들과 일치되리라고 예상한 점을 이용한 있다.  왜냐하면 문제가 예수를 옭아매기에 충분한 문제였기 때문이다”(호크마).

(b)   여기서 특별히 가이사(Caesar)에게 바치는 세금에 관하여 질문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유대인들이 자기 나라를 무력적으로 지배하면서 높은 세금을 징수하는 로마 제국에 대해 깊은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같은 민족 감정에 대한 예수의 입장을 말하게 함으로써 예수를 로마 쪽이나 유대 쪽으로부터 미움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고안된 진퇴 양난식(進退兩難式) 교묘한 질문이다.  민족 감정으로 첨예하게 드러나 있는 지배국에 대한 세금 납부 문제는 초기 단계에 이미 유대인의 저항을 불러 일으킨 있다(I. H. Marshall).  예수 당시에 유대인의 () 로마적 감정은 세금 징수 문제에 있어 반발심으로 표출되었다.  그래서 정탐꾼은 자신들이 민족주의 운동을 하는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인 것처럼 가장하여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당연하게 세금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반대로 친로마적 발언을 한다면 예수를 환호했던 대다수 무리들로부터 배척당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호크마).

(3)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저희 부부만의 추억들이 두개가 있습니다.    잊을 수가 없는, 아니 잊혀지지 않은 추억들이지요.   추억들이란 첫째로 저희 부부가 6시간을 운전해서 San Francisco 가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있던 사랑하는 아내가 미국의 낙태 문제와 낙태를 반대하는 미국 공화당 정치인들과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위선적인 면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과 의분을 가지고 저에게 쏟아내는데 제가 6시간 동안 들으면서 힘들어 했던 기억입니다. ㅎㅎ (물론 이것은 아내의 견해에 대한 생각이지 정확하게 아내의 생각이나 관점이나 입장이 아닙니다).  둘째로, 저희 부부가 장모님을 방문하고자 9-10시간 운전하면서 가고 있었을 ( 때가 밤이었음)  옆에 앉아있던 아내가 미국 정치에 대해서  다시 자기의 견해를 말하는데 [한쪽으로는 제가 운전하면서 졸릴까봐 아내가 계속 대화를 하려고 했던 같은데, 다른 한쪽으로는 아내는 제가 변호사 기질이 있어서 논리적으로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정치적인 관점을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인 저에게만 쏟아냈을텐데] 제가 시간을 듣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녀에게 ‘Please stop’(제발 얘기하는 것을 멈춰달라고 부탁한 기억이 납니다. 하하.  아내는 저와 성격이 매우 달라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의분을 가지고 저에게만 쏟아냅니다 ㅎㅎ  대학교 후배 자매들 명과 6 넘도록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도 그녀들에게 쏟아내지 않고 저에게만 쏟아냅니다 ㅎㅎ.  그래서 제가 트럼프 대통령 1 실제로 뉴스에서 많은 미국 시민들이 우울해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내가 시민들 중에 한명이였답니다.  그러니 옆에 있는 저도  ㅎㅎ).

(a)   제가 저희 부부만의 추억들을 이렇게 나누는 이유는(아내를 생각할 나누고 싶지 않지만) 지금 미국을 사랑하는 미국 시민들의 정치적 견해뿐만 아니라 특히 이민자들이 고국을 떠나서 이방 나라(?) 와서 고생하시면서 살아가고 있으신데 각자가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시고 기도하면서 각자의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함께 승리장로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빌립보서1:27) 하시고자 노력들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성도님들에게 저는 담임 목사로서 또한 장로님은 장로님으로서 우리 당회원들이 어떻게 모범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i)                  골로새서 4 5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지혜롭게 행동하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까?  이유는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대할 지혜롭게 행동하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참고: (3-4,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있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나는 때문에 지금 갇혀 있습니다.  내가 비밀을 명확하게 전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도 바울이나 골로새 교회 성도들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사 불신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그들을 대할 지혜롭게 행동하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여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명확하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로도 복음을 불신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믿는 사람답게 생활하십시오.  그래서 내가 함께 있든지 떠나 있든지 여러분이 한마음 뜻으로 기쁜 소식의 신앙을 위해서 함께 싸운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         여기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말씀의 3가지 의미 첫번째는,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마음, 뜻으로 서서 서로 협력하는 것입니다(27).  그러므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마가복음8:35,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가면서(겸손한 마음) 모든 형제, 자매들과 마음을 품고(빌립보서4:2) 뜻인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에 있어서 서로 돕고 힘을 합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누가복음22:42, 현대인의 성경).

(4)   예수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의 위선”[개역개정은 외식함”] 아셨다 라고 마가복음 12 15 현대인의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마태복음 22 18 현대인의 성경은 예수님은 그들의 간교한 생각”[개역개정은 악함”] 아셨다고 말씀하였고, 누가복음 20 23 현대인의 성경은 예수님은 그들의 간교함”[개역개정은 간계”] 아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a)   저는 말씀들을 비교하면서 함께 묵상할 위선 간교함 연관성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i)                  여기서 위선”(hypocrisy)(마가복음12:15, 현대인의 성경)이란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원래 무대에서 연기를 하거나 역할을 수행하는 예술을 의미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생활에서 가장하거나(the idea of pretense) 불성실한 태도(insincerity) 연관되기 시작했습니다.   신약 성경의 문맥에서 용어는 겉으로는 경건이나 의로움을 드러내지만 내면에서는 죄나 속임수를 품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용됩니다.   개념은 1세기 유대교의 종교적 맥락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예수님은 종종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인터넷).

(ii)                여기서 간교함”(craftiness)(누가복음20:23, 현대인의 성경)이란 종종 속임수나 교활함과 연관된 영리함 또는 능숙함을 묘사하는 사용됩니다.   용어는 반드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 교활함을 암시하며, 종종 조작이나 속이는 행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용어는 경건한 지혜(godly wisdom) 세속적인 교활함(worldly cunning) 사이의 대조를 강조하는 사용됩니다(인터넷).

(iii)              저는 단어의 원어 헬라어 의미를 생각할 겉과 속이 다른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은 위선자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활한 사람들로서 겉으로는 예수님에게 선생님, 우리가 알기에 선생님은 진실하셔서 사람의 겉모양을 보지 않으시고 진리대로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시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거리낌이 없으십니다”(마가복음12:14,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하였습니다(13).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14, 현대인의 성경)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iv)              마디로, 위선과 간교함의 연관성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에는 간교한/교활한 속임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예가 바로 창세기 3 1-6 말씀입니다. 1절을 보면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간교한 뱀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직접 받은 아담[(2:16-17)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에게 다가가서 질문을 던지지 않고 아마도 간접으로 남편인 아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여자에게 다가가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1, 현대인의 성경).  질문에 여자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그녀는 가장 간교한 뱀하고 말도 섞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동산의 과일을 먹을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과일은 하나님이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죽게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2-3, 현대인의 성경).  여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인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2:16-17) 비교해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말씀하셨는데 여자는 뱀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과일은 하나님이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아라하고 말했다는 차이입니다.  그런데 차이가 가벼운 것일까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그저 지역적으로 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말했지 나무가 하나님과 자기의 남편인 인류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못했다고 생각함).  여기서 가장 간교한 뱀은 여자의 갈라진 ["무너질 것이다!"라는 도비야의 조롱에서 '무너지리라'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 터진 , 갈라진 '(느헤미야 4:3)] 보고 그녀를 공격한 것입니다(참고: 창세기 14:15,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틈을 보인 여자에게 뱀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되어 선악을 분별하게 것을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이다”(3:4-5, 현대인의 성경).  이젠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2:17) 가장 간교한 뱀으로 가장한 사탄의 말인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3:4, 현대인의 성경) 사이에서 누구의 말을 순종해야 하는지 선택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녀의 선택은 사탄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자가 나무의 과일을 보니 먹음직스럽고 보기에 아름다우며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였다. 그래서 여자가 과일을 따서 먹고 자기 남편에게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6, 현대인의 성경).  그녀는 이리 선택한 것일까요?  이유는 그녀는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였기 때문이요 이유는 그녀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2:15,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사람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세상에서 나온 세상에 있는 모든 , 육신의 정욕[“먹음직스럽고”(창세기3:6, 현대인의 성경)] 눈의 욕심[“보기에 아름다우며”(6, 현대인의 성경)] 삶에 대한 자랑”[“지혜롭게 할만큼 탑스럽기도 하였다”(6, 현대인의 성경)](요한일서2:16, 현대인의 성경) 이끌림을 받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고 자기 남편인 아담에게 줬을 아담은 그녀를 사랑으로 책망하고 열매를 받지 말고 먹지도 말았어야 했는데 그도 그것을 먹었습니다(창세기3:6, 현대인의 성경).

·         이렇게 아담의 여자 하와에게는(20) "가장 간교" 뱀이 있었던 반면에(1) 다윗의 아들 암논에게는 "심히 간교한" 요나답이 있었습니다(사무엘하13:3).  "심히 간교한 " 요나답은 다윗의 아들 암논으로 하여금 어리석은 일이요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말았어야 일인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되 억지로 동침한 그녀를 "심히 미워"하되 "이제 미워하는 마음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했습니다(1-15).

·         간첩(창세기 42:9, 14, 현대인의 성경) 같은 사탄과 그의 종들은 우리의 틈을 엿보다가(42:12) 우리에게 어떠한 갈라진 ["무너질 것이다!"라는 도비야의 조롱에서 '무너지리라'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 터진 갈라진 '(느헤미야 4:3)]이나 허물이나 그릇함을 보게 되면(다니엘 6:4, 개역한글 틈을 타서 우리를 공격합니다(창세기 14:15,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우리는 사탄과 그의 종들에게 틈을 보여서는 아니 됩니다.   이유는 사탄과 그의 종들은 빈틈을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 안에 " 허물어진 " "매꾸" 않으면 사탄은 " 허물어진 " 노리고 우리를 공격하고 유혹하여 우리로 하여금 시험을 들게하므로 하나님과 교회 식구들에게 죄를 범하게 만들 것입니다.

(5)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의 간교함을 아시고[참고: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마가복음12:15,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그들의 간교함을 아시고”(누가복음 20:23, 현대인의 성경)] 간교한 사탄 예수님을 시험(유혹)했을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셔서 승리하셨습니다(마태복음4:1-11; 야고보서4:7).  우리도 예수님처럼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에배소서6:11).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처럼 간교한 사탄의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여 승리해야 합니다. 

(6)   예수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의 위선을 아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시험하시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마가복음12:15, 현대인의 성경).  시험 질문은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였습니다(14, 현대인의 성경).

(a)   여기서 시험이란 헬라어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누군가나 무언가를 시험하거나 시도하는 행위를 설명하는 동사입니다.  이는 사람의 품질이나 신실함을 조사하는 긍정적인 시험과, 악을 행하도록 유혹하는 부정적인 시험을 모두 나타낼 있습니다.   동사가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믿는 자들의 신앙을 시험하여 그들을 강화시키는 것을 의미할 있습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사탄이나 악한 세력이 사람들을 죄짓게 유혹하는 것을 의미할 있습니다(인터넷).

(i)                  문화적 역사적 배경: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시험은 교육, 군사, 철학의 맥락에서 흔한 개념이었습니다.  시험은 개인의 가치나 능력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하나님에 의한 시험이 신앙을 정련하고 정화하는 방법으로 이해되었으며, 이는 아브라함과 욥의 이야기에서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시험을 성장의 신성한 도구이자 죄의 함정이 있는 이중적인 의미로 반영하고 있습니다’(인터넷).

·         예를 들어, “시험 긍정적인 의미는 하나님께 아브라함을 시험”(창세기 22:1)하신 것입니다.  시험 문제는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2)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았을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습니다.  그는 많은 후손을 보게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인데도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바친 것입니다”(히브리서11:17, 현대인의 성경).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의 믿음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까지도 다시 살리실 있다고 믿었습니다”(19 상반절, 현대인의 성경).

·         예를 들어, “시험 부정적인 의미는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신 것입니다(마태복음4:1).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기록되었으되”(현대인의 성경은 “성경에는”)(4, 7, 10)하고 말씀하시면서 승리하셨습니다.  이렇게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에도 마귀의 종들인 (1) “지나가던 사람들”과 (2)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과 (3) 예수님과 함께 못박힌 “강도들”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22:39, 41, 44).  시험이란 마디로 요약한다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보러 ‘너 자신을 구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참고: (40, 현대인의 성경) “성전을 헐고 3 만에 짓겠다는 자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신이나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너라”; (42, 현대인의 성경)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자야,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그러면 우리도 믿겠다”].   , 그들은 예수님에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말고 살라고 시험한 것입니다. 

(b)   오늘 본문 마가복음 12 12-17 맥락을 보면 시험이란 단어는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로서 사탄의 악한 세력이요 위선자들인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들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궁지에 몰아넣고자 덫이나 함정을 파서 예수님을 사로잡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하고 물었던 것입니다(14, 현대인의 성경)[참고: 이미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시험을 받으셨는데 번은 그들이 하늘에서 오는 기적을 요구하였고(8:11, 현대인의 성경) 다른 번은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10:2, 현대인의 성경)하는 질문을 받으셨음].  질문에 대하여 호크마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지금 예수는 궁지에 빠졌다.  납세를 찬성하면 열심당과 바리새인들과 일반 백성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여 그들이 환영하는 메시아가 없고, 납세를 반대하면 헤롯당원과 사두개인들, 로마 총독과 헤롯 왕으로부터 정치범으로 몰리게 되기 때문이다”(호크마).

(i)                  예수님은 그들의 정중하고 호의적이며, 간절한 물음 속에 있는 살의와 사악함을 보셨습니다.  이에 대해 마가는 '외식함', 누가는 '간계'라고 표현했습니다(마가복음 12:15; 누가복음 20:23). 그들의 입으로 말한 '외모를 보지 않으시는' 예수님은 당신을 시험코자 하는 그들의 중심을 아셨고 그것을 백성들 앞에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질문이 가지고 있는 함정과 덫을 바로 아셨던 것입니다(호크마).

·         우리도 사탄과 그의 세력의 함정과 덫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 우리는 사탄의 시험”(유혹)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대한 지식을 굽게 합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지식을 구부러트립니다.  사탄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불신하게 만들고 거짓을 믿게 만듭니다.   거짓은 바로 우리가 시련을 당하고 있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유혹하신다는 거짓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시험(시련) 받을 사단의 유혹에 빠져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께 시험을 받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분명히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신하게 만들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려고 애를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유혹을 믿음으로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성경 욥기에 나오는 욥처럼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허락된 사탄의 유혹을 받을 욥처럼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해서는 아니 됩니다(욥기1:22).  오히려 우리는 욥처럼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23:10) 믿음으로 우리가 접하고 있는 시련을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리할 우리는 욥처럼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옵는 축복을 누리게 것입니다(42:5).

(7)   어제 한국에 있는 어느 부부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하는데 부인 자매가 하는 말이 자기 어린 아들이 저를 동전 목사님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하.   저는 글을 읽고 놀랬습니다.  이유는 어린 아이가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저랑 만났을 제가 가지고 있는 동전을 가지고 같이 놀았었는데 기억을 아직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를 동전 목사님으로 알고 있다고 해서요. ㅎㅎ  그래서 제가 어제 아이와 그의 남동생에게 미국 동전 선물 2개씩을 막둥이 예은이의 방에 가서 봉지에서 허락없이 꺼내서 가방에 미리 넣어두었답니다. ㅎㅎ  계획은 이번 마지막 주일에 부부와 부부의 아들들과 만날 동전 목사님 그들에게 미국 동전을 선물로 주려구요. ㅎㅎ

(8)   오늘 본문 마가복음 12 15 하반절에서 16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들에게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와 내게 보여라”고 말씀하셨는데 마태복음 22 19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내게 보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a)   여기서 세금으로 바치는 데나리온 대해서 먼저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데나리온 신약 성경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로마 화폐로서 당시 가장 널리 유통되던 화폐였습니다.  그리고 화폐에는 재임 중인 황제의 이름과 칭호가 찍혀 있어서 황제의 재산임을 나타냈습니다.  당시에는 어느 나라가 새로 세워지거나 왕이 새로 즉위하면 왕의 화상(畵像) 넣은 돈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것들이 유통되는 곳에서는 세금을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데나리온 주화에는 당시 황제 가이사 디베리우스(아우구스투스의 아들) 얼굴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주화의 글귀는 황제의 이름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면에는 그의 어머니가 여신으로서 묘사된 그림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로마 주화에 그려진 황제의 얼굴은 종교적 권위가 부여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E.Stauffer).  그래서 유대인들은 화폐를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몸에 지니고 다니기를 꺼려했었습니다(호크마).

(i)                  데나리온의 가치는 성인 남자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고, 로마 군인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금은 로마 황제가 발행하는 은화로 바쳐야 했기에 사람들은 매년 일인당 데나리온을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고 로마에 세금을 납부하던 데나리온 하나를 보이라고 하셨던 같습니다(호크마). 

(b)   저는 여기서 세금 생각할 오래 전에 김동길 연세대 명예 교수님이 여기 Los Angeles 오셔서 강연을 했었을 우리 크리스천들 보러 나라에 세금을 받쳐야 것은 권면한 것이 기억납니다.  이유는 얼마나 우리 크리스천들이 정직하게 나라에 세금을 받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기독교 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서도 나라에 세금을 양심있게 받치는 것을 권면하는 신문 광고를 여러 기억이 납니다.

(i)                  마태복음 22 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받쳐야 예물(헌금)들은 받친다고 하면서 나라에 받칠 세금은 받치고 있지 않는 크리스천들이 너무나 많은 같습니다.   

(9)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들이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 초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마가복음12:16, 현대인의 성경)[“ 돈에 누구의 초상과 이름이 새겨져 있느냐?”(누가복음20:24, 현대인의 성경)]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황제의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마가복음12:16, 현대인의 성경).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하고 말씀하셨는데(마가복음12:25, 현대인의 성경)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할 지난 주에 어느 형제를 통해 그의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쓰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정치관 관한 글이 생각났습니다. 글의 부분만 나눕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는 그리스도인이란, 결국 땅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주신 문화적인 사명들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면서도, 더욱 궁극적이고 본질적으로는 자신이 영원토록 거할 하나님 나라가 오기를 소망하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천국의 모형인 교회를 중심으로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바로 세상에 속한 자요, 하나님 나라에 속한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나라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바르게 유지한 세상과 관계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제도권인 가정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직장과 국가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나라 국민으로서의 정체성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세상의 학문, 예술, 재물, 명예를 대하는 모든 자세와 태도 역시 나라 국민으로서의 바른 정체성과 균형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유병수 목사님).   

(a)   부분의 글이 생각난 이유는 아마도 예수님께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인 같습니다(마가복음12:25, 현대인의 성경).  말씀과 유병수 목사님의 글을 연관해서 묵상하며 반영하며 자신에게 적용할 저는 유병수 목사님이 말한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는 로서 먼저 저는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 20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곳에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중 계명인 천국 계명을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 39,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저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덤으로 주실 것이다”(마태복음6:33,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을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고자 조금이나마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저는 또한 미국 시민으로서 책임을 감당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 1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정부 당국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국 시민으로서 미국 정부 당국에 복종해야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책임 중에 중요시하는 것은 매년마다 나라에 세금을 내는 것과 투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i)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마가복음12:25,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요?  분명히 그들은 예수님을 종교적인 올무나 정치적인 올무(함정) 빠지게 하려고 했었을 텐데 예수님의 답변이 바리새파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종교적인 올무에 빠지게 없게 되었고, 헤롯 당원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정치적 올무에 빠지게 없었기에 요즘 소위 말하는 멘붕 상태”[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상황(인터넷)] 이르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문이 막혀 버렸다”(마가복음12:17,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22 26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기는커녕 예수님의 대답에 놀라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         저는 말씀을 묵상할 사도행전 18 28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여 대중 앞에서 보기 좋게 유대인들의 말문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말씀의 문맥을 보면 일찍 주님의 말씀을 배워 열심히 전도하며 예수님에 관해 정확하게 가르쳤으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을 뿐이었던 유대인이요 잘하는 성경 박사였던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배은 (25-26, 현대인의 성경)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여 대중 앞에서 보기 좋게 유대인들의 말문을 막아 버렸던 것입니다(28, 현대인의 성경).

-          우리가 상대방의 말문을 막아 버리기 위해선 아볼로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배워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특히 우리는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합니다(베드로후서3:18).  우리는 무엇보다도 훨씬 가치가 있는 우리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야 합니다(빌립보서 3:8).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하게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아볼로처럼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여 대중 앞에서 보기 좋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 버려야 합니다(사도행전18:28,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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